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윗과 골리앗 (삼상 17:31-54)

첨부 1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시고 다윗을 다음 왕으로 기름 부으신 후에 블레셋 족속이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 그래서 사울왕은 온 이스라엘 군대를 모아서 블레셋군대와 엘라 골짜기에서 맞서게 되었다. 그런데 전세는 완전히 블레셋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왜인가? 블레셋군대를 이끄는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너무나 크고 강했고 이스라엘 군대 중에 아무도 그에게 대항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4절 이하에 보면 골리앗은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고 했다. 그의 키는 2.1m 가량 되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는 거의 3m 가량 되었다고 말한다. (명지고등학교 농구선수 한기범의 키가 2.5m였다. 그는 바짝 말랐지만 골리앗은 체격도 좋았다.) 그리고 그는 11kg이 넘는 커다란 창을 마치 나무지팡이 휘두르듯 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그의 그런 모습에 기가 죽고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중에 한 사람이 나와 자기와 싸워서 전쟁의 결판을 내자고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중에서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다고 하는 거인인 사울왕도 그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거인 골리앗의 모습과 포효하는 괴성에 압도당해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도 이런 상황을 만날 때가 많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믿음의 길을 갈 때에 골리앗과 같은 엄청난 방해와 장애물을 만날 때가 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 어떤 사람의 힘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엄청난 장애물 앞에서 우리 스스로가 작아지고 무척이나 초라해 보일 때가 있지 않았는가?

하나님께 사로잡힌 상상력
이런 상황에서 어린 다윗이 이 전쟁터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사울의 왕궁과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사울 왕도 섬기고 아버지의 양도 치곤 했다. 그런데 그의 형들 중 셋이 전쟁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치즈와 빵을 들려서 보내면서 안부를 알아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전쟁터에 나와 보니 한심한 모습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없는 이방족속의 군대 앞에서, 한 사람의 거인장수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었다. 무려 사십 일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23절을 보라. 다윗이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그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24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며 25 더러는 가로되 너희가 이 올라 온 사람을 보았느냐 참으로 이스라엘을 모욕하러 왔도다”고 했다. 그러자 다윗은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했다. 화가 났던 것이다.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윗의 차이가 무엇인가?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무슨 차이가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골리앗의 모습을 보고 그의 말을 듣고 덜덜 떨고 도망치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감히 이방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욕할 수 있느냐고 했다. 생각의 방향과 생각의 내용이 전혀 달랐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은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어려움에 처하면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된다. 많은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지 않은 쪽으로 상상을 하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 일에 실패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경우를 상상하고 놀라고 고민하고 염려하곤 한다. 이런 경우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성공하고 해결할 경우를 생각하고 상상하고 미리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담대하게 일어서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 즉 골리앗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상을 해야 하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대한 골리앗의 모습과 괴물 같은 음성에 그만 압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골리앗에게 잡혀서 죽고 패배하는 상상을 하고는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생각과 마음이 문제에 짓눌려 버린 것이다. 그들의 상상력이 악의 세력에 붙잡혀 버렸던 것이다. 악한 사탄이 문제와 사건으로 우리를 압박해 들어와서 우리의 생각까지 지배한다. 사탄은 우리가 문제와 사건 자체만을 바라보게 함으로 실망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다윗이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점은 무엇이었는가? 그는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거인 골리앗을 보고 기가 질린 것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이라는 문제를 보고 기가 질려서 하나님을 바라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골리앗이라는 문제를 보았지만 즉시 눈을 돌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눈에 거인으로 보이는 골리앗이 크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골리앗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는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곰과 사자가 공격해 올 때에도 그는 겁먹지 않았다. 곰과 사자의 포효하는 소리보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더 크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곰과 사자의 모습보다는 하나님의 모습이 더 뚜렷하고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34절에서 다윗은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골리앗과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대답했다. 36절에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고 했다. 그가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거인 골리앗이나 곰과 사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엇이든 이길 수 있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나는 아무 것도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두려운 일이 된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그만 일에도 놀라게 되고 세상과 사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탄과 세상이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탄도 세상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시한다. 

골리앗이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는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이 보기에는 심각한 영적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영적인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면서도 세상과 사탄의 공격 앞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 문제와 사건 앞에서 기가 죽어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병에 걸린 사람들이다. 믿음이 식어지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는 그 때문에 놀라고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불안해하고 떨게 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승리할 것을 상상하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담대해진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어떤 것을 생각하고 상상하는가?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는 파도 위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출렁이는 물결과 커다란 파도를 보자 그만 빠지고 말았다. 우리도 문제와 사건만을 보면 물에 빠질 수밖에 없고, 골리앗의 모습만 보면 벌벌 떨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 파도 위를 걸을 수 있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에게서 떼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을 지키라. 믿음의 승리를 상상하고 담대하게 골리앗 앞으로 나가서 다윗처럼 승리하라.

두 가지의 방해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려는데 두 가지의 중간 방해가 있었다. 하나는 맏형 엘리압의 방해였다. 28절을 보라. “장형 엘리압이 다윗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라고 했다. 엘리압은 어린 다윗을 무시했다. 그는 아마 다윗이 자기 대신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실 때문에 다윗을 미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보기에는 어린 다윗이 “저 골리앗을 이기면 왕이 어떤 상을 준다고 하던가?”라고 말하는 것이 기가 막혔고 교만하게 보였다. 

다윗은 이미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아직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처지였고 왕위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먼 그런 때였다. 아직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형에게도 무시를 당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가려 할 때에도 이런 방해가 있다. 가장 힘든 것이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개 이런 방해와 시험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다. 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경우도 있다. 그리고 다윗의 맏형 엘리압처럼 내가 무시하거나 뿌리치고 가기 힘든, 나를 누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 나의 믿음의 길에 방해자로 나타나기가 쉽다.

그런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때에 다윗은 어떻게 했는가? 29절을 보라. “다윗이 가로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하고 돌이켜 다른 사람을 향하여 전과 같이 말하매 백성이 전과 같이 대답하니라”고 했다. 그는 형에게 “제가 아무런 이유 없이 괜히 왔겠습니까?”라고 한 마디 대답을 하고는 다시 돌아서서 다른 사람과 대화를 계속했다. 형의 말에 끌려 들어가지 않았고 형의 말에 화를 내고 대들지도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골리앗과 싸우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왜인가? 그의 싸움의 상대는 엘리압이 아니라 골리앗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형 엘리압에게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시키려 했다면, 또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엘리압에게 대들거나 싸우려 했다면 그는 골리앗과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 문제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 지 알았기 때문에 그는 엘리압에게 주목하지 않고 골리앗에게 주목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골리앗과 싸워야 하는데 엉뚱하게 엘리압과 싸우게 되었던 경우는 없었는가? 싸울 상대가 아닌 사람과 싸우다가 정작 싸워야 할 경우에는 싸우지 못하고 실패한 적은 없었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엉뚱한 문제에 끌려 들어가서 정작 중요한 문제는 손도 대보지 못하고 실패한 경우는 없었는가? 

이것이 다 사탄의 전략이고 계략인 것이다. 이런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물리치고 끌려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오로지 골리앗과의 싸움에만 집중하고 온 힘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방법의 유혹이었다. 사울 왕은 골리앗과 싸우기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래서 오라고 해서 보았더니 어린 다윗이었다. 그래서 그는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했다. 그는 다윗이 양을 치면서 곰과 사자를 물리쳤다는 말을 하자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면서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그 갑옷을 입어보고는 도로 벗어버렸다. 왕의 갑옷이니 좋은 갑옷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자기 몸에 맞지도 않았고 그것을 입고 싸우기에는 익숙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겁고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냇가로 내려가서 매끄러운 차돌 다섯 개를 골라서 손에 들고 골리앗에게로 나갔다.

우리에게도 종종 이런 경우가 생긴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믿음의 방법으로 문제를 향해 용기 있게 나가려고 할 때에 우리에게 좋은 갑옷을 입혀 주려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된다. 저마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 준다. 그들은 나보다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고 모든 면에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방법을 알고 있고 경험도 많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제시하는 방법과 충고들과 지침들이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대로 해보려 할 때에 무언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가?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윗이 사울의 갑옷을 벗어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인가? 사울은 그 나라의 왕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울은 다윗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갑옷을 벗어버려야 했다. 자기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방법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무기를 빌려서는 안된다. 내게 맞지 않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따라하려 해서는 안된다. 내게 맞는 내 무기가 있어야 한다. 내게 맞는 내 방법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고 알려 주시는 그 방법과 그 무기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지 않는다고 그를 믿음이 없다고 비난해서는 안된다. 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하라고 강요해서도 안된다.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맞는 방법과 무기를 주시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선한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사울의 갑옷을 벗어버리라. 내게 맞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방법은 던져 버리라. 사람의 방법과 세상의 방법은 던져 버리라. 믿음의 방법,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가라. 그러면 반드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승리할 수 있다.

다윗처럼 시냇가에 무릎을 꿇라. 하나님께 간구하라. 그러면 승리의 물맷돌을 발견하게 해주신다. 승리하는 방법과 길을 알려주시고 보여주신다. 싸우러 나가기 전에 먼저 시냇가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나아가 승리하라.

결단의 순간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갈 때에 다윗 뿐만 아니라 다윗의 형들과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위기의 순간에 서 있었다. 결단을 요구하는 순간이었다. 골리앗을 두려워하는 공포로 떨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승리를 믿을 것인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한 영광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의 믿음은 형편없었다. 왕의 믿음이 어린 소년의 믿음만 못하였다.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내일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 되라. 현실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래서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믿음의 큰 승리를 얻으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