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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좋은 일꾼이 됩시다 (딤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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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꾼이 됩시다 (딤전 4:6) 

(딤전 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 한 평생 고생하고 있는 저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 바가 있습니다. "당신은 철학, 신학, 의학, 음악의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유명한 학자이기도 한데 왜 하필이면 아프리카에 가서 그 고생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 참 이상합니다. 사람이 꼭 그렇듯 고생스럽게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까?" 슈바이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를 동정의 눈으로 보지 마시오.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아십니까? " 이것이 생을 바로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것이 얼마나 영광되고 행복한 일인데 나를 동정하는 거요, 하고 그는 대답했답니다.

교회 내에는 두 종류의 성도가 있는데 바로 일꾼 성도와 일감 성도라 하기도 합니다. 

금년 표어를 좋은 일꾼이 됩시다 라고 정했습니다.

좋은 일꾼이 되는 조건은 무엇이겠습니까

형제를 깨우치는 일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당시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에 닥칠 배교에 대하여 대처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배교의 유혹에서도 성도들을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디모데에게 말씀을 깨우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환난이나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말씀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일꾼은 성도들이 말씀에 굳게 서도록 항상 깨우치고 권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구원의 지혜가 있으며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딤후 3:15-16)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그런데 바울은 형제를 말씀으로 깨우치면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믿음의 말씀은 디모데가 소유한 구원을 얻는 복음을 말하며, 선한 교훈은 그가 어려서부터 배우고 실행해 온 성경적 교훈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깨우치는 자가 그 자신의 성장이 없이는 다른 사람을 깨우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닥치는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 나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꾼은 성도를 말씀으로 깨우쳐 굳게 서도록 하고 자신도 부단히 노력하여 말씀으로 무장하는 자입니다.
  
미국 남북 전쟁이 끝난 후에, 두 병사가 고향으로 가다가 언덕에 있는 교회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병사는 교회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하였고, 또 한 병사는 술이나 마시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 뒤에도 한 병사는 경건하게, 또 한 병사는 술고래로 수십 년을 살았습니다. 결국 술로 살던 병사는 술 중독으로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교도소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미국의 22대 대통령에 클리블랜드가 당선되었다는 기사 때문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클리블랜드는 바로 전쟁이 끝난 뒤에 자기와 함께 고향으로 가다가 교회에 가서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했던 전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안에서 자신이 먼저 깨어야 하고 나아가 형제를 깨우쳐 야육하는 일꾼이 좋은 일꾼인 줄 믿고 좋은 일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좋은 일꾼의 생활은 어떠하여야 하겠습니까?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딤전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말과 행실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일꾼은 행실이 거룩하고 경건하여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합당하고 모든 믿는 자에게 복이 될뿐더러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와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 빛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 말과 행동에서 일치하지 아니하고 모순이 된다면 복음은 절대로 전파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이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을 잘 믿었던  링컨의 정직성이 미국인들에게 양심의 지표가 되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링컨은 너무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8세 때 집을  나와 상점점원을 지냈고, 19세때  고향을 떠나 멀리  미시시피 강의 화물선 일꾼으로  고된 노동을 했고, 20세 때는 일리노이 주 어느  상점에서 일했습니다. 밤늦게 상점 문을 닫고 결산하려던 링컨은 어느  부인으로부터 3센트를 더 받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1시간이나 걸려 그  부인의 집을 찾아가서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해서 3센트를 더 받았습니다."하고 3센트를 내밀자 부인은  "어머나! 이것은 백금보다 귀한 3센트군요 당신의 그 고귀한  마음은 반드시 참된 값으로 인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하였다합니다. 링컨은 거스름돈을 조금 덜 준 것을  발견했을 때에도 20리가 넘는 길을 달려가서 갖다 주고 오기도 했다 합니다. 그는 한때 동업자와 함께 사업에  손을 댔다가 동업자가 죽고 그 동업자가  진 빚 1,100달러를 고스란히 떠맡게 되었다합니다. 그 당시 생활비를 제외하면 평생을 벌어야 할 돈이었다합니다.  그는 채권자들을 찾아가서 평생 동안 벌어서 갚겠다고 약속했다합니다.  

그는 17년 후인 1849년에 그 모든  빚을 다 갚을 수 있었다합니다. 17년  동안 그것도 자기 빚이 아닌 남의  빚을 떠맡아 갚아나간다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기나긴 세월의 아픔을 참으면서 그 빚을 다 청산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가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그는 지구촌에서 가장 정직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미국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링컨의 이런 정직성을 배우며 자랐고 그것이 미국 정신문화의 바탕이 되어 오늘의 초거대 강국을 만들었다합니다.
  
믿음과 사랑에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말과 행실을 피차에 나누어 생각할 수 없듯이 믿음과 사랑도 불가분의 관계로서 항상 병행되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이 없이는 사랑이 실현될 수 없고 사랑 없이 믿음이 입증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고 했습니다.
진실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좋은 일꾼은 믿음도 좋아야 하지만 더욱 그 믿음을 사랑으로 나타내어 실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자 테니스 스타인 알프스 소녀라고 부르는 스위스의 마르틴 힝기스라는 선수는 테니스 신동이라 일컬어졌던 소녀이고 테니스 챔피언입니다. 1999년 윔블던 대회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선수입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어느 날 16세의 무명 선수에게 55분 만에 2:0으로 완패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경기가 윔블던 대회 사상 최악의 이변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테니스 챔피언이 무명선수에게 왜 어이없이 참패를 당했는가 하면 전날 어머니와 크게 다투고 마음이 불화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거기에 또 그의 어머니가 경기 도중 자리에서 퇴장하였는데 그 모습을 목격한 이 챔피언이 순간적으로 감정이 엉망으로 뒤엉켜 버려서 정상적으로 경기를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챔피언은 결국 무명선수에게 무참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이 선수는 엄밀히 말하자면 무명선수에게 패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기분에 패배한 것입니다.

중국 선교의 선구자인 허드슨 테일러는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중국 땅을 밟아 평생 동안 중국 선교에 헌신했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일생을 선교사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러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의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악기를 조율 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일이죠?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에 나의 생각을 맞추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되고 행복해지게 마련입니다."
    
정절에 본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정절이란 신앙의 정조를 지키며 경건한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도라면 누구나 이 정절을 지켜야 하지만 특별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은 이 정절에 남다른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몇 가지의 문제들이 항상 위협을 합니다. 첫째는 이성 문제며, 둘째는 재물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권세나 명예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이 되려면 이러한 것들에 초연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에 초연하지 않고는 결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트라이얀 황제의 기독교인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남아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았을 때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인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왕에게 보고하라고 지시 중요한 내용을 요약해서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은 결코 도적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간음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황제시여 그들은 결코 부채에 깨끗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처럼 높은 도덕관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들었던 트라이얀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핍박 하려던 자신의 생각을 바꿨습니다. 무엇이 이 황제의 생각을 바꾸었습니까? 그는 기독교인들의 경건생활에 진정으로 감복 했던 것입니다.

    
좋은 일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딤전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읽는 일에 전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누에가 뽕잎을 많이 먹어야 실을 많이 뽑아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어야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에 충실할 수 있는 법입니다.

시 119:103을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이 말씀은 옛날 고대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녀 양육의 풍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녀들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정성을 다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정말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서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서 상을 준비했습니다. 

하루 분량을 정해 놓고 이것을 읽고 외우면 당시 아이들이 가장 먹고 싶어 했던 꿀을 주었습니다. 처음에 아이들이 꿀을 먹을 생각에 성경을 읽고 외웠습니다. 그러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 읽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성경 읽는 일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러면 꿀을 줄 필요가 없게 됩니다. 지금 이 때의 상황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하니이다”  말씀을 많이 읽으면 영혼이 강건해지고 그 삶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날로 장성하고 그 삶이 풍부해질 때 좋은 일꾼으로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입니다.
   
권하는 일에 전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권하는 것은 ‘바른 길로 가도록 간곡하게 타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상대방을 격려하고 힘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권하는 것이 어떻게 내 영적인 성장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려면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보다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권면하고 격려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자기 일이 바빠서 그런지 남을 돌아보는 일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 코가 석잔데..’, ‘내 일이 발등에 떨어 졌는데 어떻게 남을 돌봐..’ 이렇게 생각하고 오로지 내 일에만 매달립니다. 참 지혜로운 것 같지만 성경에는 그러한 것을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하지를 않습니다.
   
가르치는 일에 전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합니다. 어느 읍에 한 유명한 랍비가 찾아 왔습니다. 읍장이 이 랍비를 안내하여 읍의 경비 상태를 보여 주었습니다. 한 곳에는 사병들이 붐비고 있는 작은 요새가 있고, 또 다른 곳에는 나무 울타리로 둘러친 보루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읍장은 랍비를 모시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 랍비는 말했습니다. "나는 아직 이 읍이 어떻게 해서 지켜지고 있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읍을 지키는 것은 사병이 아니라 학교입니다. 왜 나를 맨 먼저 학교로 안내하지 않았습니까?" 유대인은 2천년 동안 나라는 없었어도 그 민족과 전통이 없어지지 않고 보전되었는데, 이것은 순전히 교육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배움으로써 유대인이 되고,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유대인임을 전한 것입니다.

고구려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 합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온 남편은 우울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군 생활에서 마음에 상처를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 대하기를 싫어하고 방에만 콕 박혀 지내고 있었습니다. 활동이 전혀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방에만 콕 박혀 있는 사람들을 요즘 말로는 <방콕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방콕파가 되어 두문불출하고 지내니 아내가 애가 탔습니다. 그래서 당시 최고로 지혜롭다고 알려진 현인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사정을 들은 현인이 말했습니다. <살아 있는 호랑이의 수염 한 가닥이 있으면 남편의 병을 고칠 수 있지요.> 그 날로 아내는 살아 있는 호랑이의 수염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호랑이가 즐겨 먹는 음식을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에서 호랑이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호랑이가 나타나 먹이를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내는 매일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조금씩 호랑이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반년을 그렇게 정성을 드렸습니다. 이제는 호랑이와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랑이 곁에 서 있어도 호랑이는 자기에게 먹이를 주는 친절한 사람으로 알고 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반년 동안 호랑이를 살살 쓰다듬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제는 호랑이 곁에 앉아 호랑이 목을 어루만질 수 있게까지 되었습니다. 이제는 안심하고 호랑이의 콧수염 한 올을 뽑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 년이 걸렸습니다. 소원을 이룬 아내는 호랑이 수염을 들고는 현인을 다시 찾았습니다. 호랑이 수염을 구할 수 있게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현인이 말했습니다. <살아 있는 호랑이의 턱수염을 구하는 그런 정성을 병든 남편에게 쏟으면 남편을 구할 수 있을 것이요.>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우울증에 걸려 있는 남편을 고쳤다합니다.
    
좋은 일꾼의 조건은 말씀에 깨어 형제를 깨우치고 양육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일꾼의 생활은 말과 행실에 본이 되고 믿음과 사랑에 본이 되고 정절에 본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좋은 일꾼의 자세는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교회에 좋은 일꾼이 되어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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