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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구영신] 옛사람과 새사람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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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과 새사람 (엡 4:17-24)

여러분의 통장에 매일 아침마다 86,400원을 입금시켜주는 은행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계좌는 당일에 그 돈을 다 쓰지 못하면 밤 12시 정각에 어김없이 빠져나갑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날 통장에 입금된 돈을 모두를 인출해서 어디든지 사용할 것입니다. 모아 놓을 수 없고 그날 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기에 누구든지 그 돈을 그날에 무엇에든지 다 사용하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같이 하루라는 시간 86,400초를 주십니다. 그날의 시간은 하루가 지나가면 다시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하루라는 시간을 보람 있게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쌓일 것입니다. 그러나 게을러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후회와 아쉬움만 남고, 시간은 날마다 빠져나가고, 인생에는 어느덧 잔고가 하나도 없는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한 번 이상 달력을 보며 시계를 보면서 살아갑니다. 인생이란 연속되는 시간을 계산하면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역사를 이루고, 역사는 한 인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지어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매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늙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늙어갈수록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젊었을 때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느리게 느껴지지만, 늙으면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변화해가는 시간들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두가 싫어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쉽게 고치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는 묘한 심리가 있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고, 잘못된 행동이라면 바꾸어야 마땅한데 그걸 바꾸지 못하고 살아가는 답답한 사람입니다.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고착상태>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유치한 습관이나 부정적인 습관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해서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으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고 하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착상태에 빠져서 변화를 싫어합니다. 아니 변하자니 불안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이 변화지 않는다는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세상은 모든 것이 변하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본래적으로 정지상태란 없는 겁니다. 모든 것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속에 나만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변하지 않는 그것이 최고의 안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내가 안변하고 있는 겁니까? 착각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 착각은 안 변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라고 하는 거꾸로에로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왕 변할 바에야 퇴보로의 변화보다는 생명으로의 변화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성경은 201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2012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변화하기를 요구합니다. 어떻게 변화하라는 겁니까?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변화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벗어 버려야할 옛사람이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지극히 육체 주도적으로 살았던 모습입니다.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철저히 자기 위주로 살았습니다. 신앙이냐, 상식이냐의 문제 가운데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항상 상식을 택했고, 세상방식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만족해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을 얻었노라고 기뻐했습니다만 그것도 잠시 여전히 그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 아깝고, 교회나 신앙생활에 투자하는 것이 바보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그렇게 살아오면서 신앙적인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졌습니다. 타락된 인간의 모습으로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명목상 그리스도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마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과 똑 같이 살아가는 위장된 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아직도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옛사람에 대해서 뭐라고 합니까? 

먼저는 허망하다 그랬습니다. 목적이 없습니다. “남이 장에 간다고 하니 거름지고 나선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정도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허우적거리기만 했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를 모르고 사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 다음 옛사람은 총명이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불신앙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성의 능력이 어두워져서 매사에 감정적으로 대항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무지함이라 그랬습니다. 도덕적 판단력을 잃어버리고 선악의 구별이 모호해 지는 것을 이릅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이 굳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강퍅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고집만 남아서 자기 집착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불쌍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는 무감각해진다 그랬습니다. 감각능력이 상실되어버렸습니다. “정직한 십일조를 하라, 전도를 하라, 기도에 힘쓰라” 어떤 자극에도 감각이 없습니다. 반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마저도 무뎌진 채로 살아가는 이 옛사람은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는 방임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영어로 말하면 Give up, 즉 포기상태입니다. 이건 시쳇말로 막가자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대를 걸 수가 없을 만큼 인간됨을 포기한 최악의 상태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지경입니다. 

이 모든 행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버리기를 요구하는 옛사람의 모습입니다. 2011년을 지내오면서 우리에게 이런 삶의 모습들이 있었다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012년도에는 새로워지라고 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무엇으로 우리가 바뀌고 변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오늘 성경은 23절에서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그랬습니다. 

여러분, 물질로 사람이 달라지려고 한다면 진실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환경으로도 사람을 바꾸지 못합니다. 교회가 달라지면 내가 바뀔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구조와 제도가 개선되면 내가 좀 바뀔 것 같다고 혹시 생각하지 않습니까? 천만에입니다. 이것으로는 안 됩니다. 애초에 교회가 문제 있는 것이 아니요, 구조와 제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되고, 가치관이 달라져야 변화됩니다. 

구조를 바꾸고 사회제도를 바꾸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던 사람이 [칼 마르크스]입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런 고로 외적문제로는 내적문제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내적인 것은 내적으로, 영적인 것은 영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중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심령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에 사람이 사람 됩니다. 근본은 영적 문제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문제요, 하나님과의 만남의 문제입니다. 

오늘 새로워지고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새사람이 됩시다. 먼저 여러분의 심령이 새로워지는 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라가던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고 나아가는 2012년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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