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겨울에 태어난 아이

첨부 1


아들, 아들, 딸, 아들, 딸.
이만하면 되었다.
아들 셋에 딸 둘이면 부러울 게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게다가 막내가 딸이니 그것도 좋구나...

막내가 이제 다섯 살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계획에 없던 아이가 또 생겼다.
이제 아이 키우는 일에서 좀 벗어나는가 했더니
원치도 않는 아이가 또 생겼구나.
이를 어쩌나.....

남편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남편이 만나고 다닌 여자가 벌써 몇 명인가.....
내가 저 어린 새끼들 키우는 낙이라도 없었으면 진작에 미쳐버렸을 것이다.

일년에 몇 번 어쩌다 집에 오시는 시아버님은
날만 새면 시어머니와 싸우다가 해가 지고,
며칠 뒤면 또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시곤 하셨다.

그 아버님은 이제 이 세상 분이 아니시지만,
아직도 예전에 아버님과의 불화로 상한 속을 내게다 화풀이하시려는지
눈만 뜨면 나를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와
나를 구박하는 재미로 집에 들어오는 것 같은 저 호랑이 남편 그늘 아래서,
게다가 자식이 이미 다섯이나 있는데,
내가 이 아이를 또 낳아야 하나?.........
잠이 안 온다......

여긴 병원문앞이다.
힘들게 버스 타고 읍내 병원까지 왔건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병원문이 닫겨 있다.
할 수 없지.
힘없이 돌아서서 집으로 왔다.

며칠 뒤.
식구들 몰래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멀리 병원이 보인다.
아, 오늘은 문이 열려 있구나. 천만 다행이다.
잰걸음으로 병원을 향해 가는데
하필이면 병원문 앞에서 시동생을 만났다.

"형수요..... 이것도 생명인데 이라마 안 됩니데이..... 고마 집에 가입시더."
하이고, 눈치도 빨라.
우째 알았으꼬?
시동생 손에 붙들려 집으로 오는 길,
그럼 약으로라도 해볼까....다른 방법이 없는가...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이 아이는 유독 몸이 무겁다.
우물가에서 물동이 하나 이고 오는 것도 식은 땀이 흐른다.
한겨울에 낳을텐데 그것도 걱정이다.

오늘도 밭 매다가 배가 아파 하늘이 안 보였다.
일하다 말고 논다며 시어머니는 또 뭐라고 하시는데
그 소리가 꿈결같이 아득하게 들리고,
내 몸이 땅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아.....
내가 못된 생각을 하고 병원을 찾았다고 이 아이가 나를 벌 주는 걸까......

...............

오늘은 바람이 유독 차다.
진통이 온 지 벌써 열흘 째,
얼마나 더 지나야 이 아이가 세상 구경을 할까...
병원이라도 데리고 가 주면 좋으련만,
시어머니는 내가 게으름 피운다고 또 구박이시다.

나흘이 더 지났다.
이젠 내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힘까지 다 빠진 것 같다.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을 것만 같다.

배가 아픈지 보름째,
아침부터 진통이 격렬하다.
바늘도 안 들어가게 표독스런 얼굴로 노려보시는 시어머니 앞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집안일을 다 하고 저녁 설거지까지 다 마쳤다.

밤 아홉시가 넘을 무렵,
드디어 아이가 태어났다.
또 딸이다.
원치도 않았는데 게다가 딸이니 이 녀석 팔자도 기구하겠구나...

아무도 기다리지 않던 아이라 배내옷도 없다.
다섯살난 언니의 속옷을 입혀 놓고 보니
왜 이리도 불쌍한지..
아가야, 어쩌자고 너는 태어났느냐....
.
.

누나의 출산을 축하한다며 남동생이 아이 이름을 지어왔다.
옥 경(璟), 빛날 희(熙)
외삼촌의 뜻대로 옥같이 빛나게 살아다오.
아가야, 비록 너의 출생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너의 앞날은 모든 사람 앞에서 빛나는 삶이 되어다오.

-------------------------------------------
36년 전 저의 출생이야기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