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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따르는 생활을 하라 하십니다 (요 1: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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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따르는 생활을 하라 하십니다 (요 1:43-44)

요 1:43-46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요1;43-46 말씀으로 [예수님 따르는 생활 하라 하십니다, 예수님 따르는 생활 하라 하십니다]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 하나님의 위로와 놀라운 은혜가 사랑하는 도곡교회 성도님들과 가족위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따라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 따르는 생활 하라 하십니다]

사랑하는 도곡교회 성도 여러분 !
  
새해 첫 주일이 지난 지 한 주간 이지만 느낌은 오늘이 첫 주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제 막 시작 막 시작 했는데 벌서 한 주간이 지난 아쉬운 느김이 들기 때문입니다. 올 한에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은혜 가운데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들의 계획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전도자로 살아 주님 원하시는 아름다운 소원들을 이루어 드리는 귀한 생활 되어지길 원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데가볼리 군대 들린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복음을 이웃들에게 가족들에게 일가친척들에게 전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모습도 이들처럼 행하여 하나님께 기쁨 드리고 우리들 주변이들,일가친척,이웃,직장 동료들이 천국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음전하는 자로 남은 우리의 삶이되어지길 원합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에게 주변 성도님들에게 함께 권면하면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쳐다보면 따라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성경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들은 배와 그물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사람을 잡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신 목적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불러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나서 오늘 이 자리에 이르며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몰라 세상을 따라가면 멸망 길에 선 이들에게 복음 전도자로 힘 있게 살리는 복음 능력의 복음 ,전도자로 살아 죽음이 가득 찬 세상에 전도자로 힘 있게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두 가지로 생명의 양식을 주십니다.
*첫째로 예수님 따르는 생활 하라 하십니다.1;43
*둘째로 빌립을 불러 일꾼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4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우리들은 주님을 따라 나선 이들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십니다. 우리들에게 누군가 전하여 주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기쁨 되고 즐거움이 되는 전도자들로 남은 우리의 삶을 살아가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말씀에 이끌려 따라가면 성령님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 따르는 생활 하라 하십니다.1;43

요 1:43 말씀에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고 빌립과 나다나엘을 부르시기 위하여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쫓으라 하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말씀으로 만나주시며 주님을 따르길 원합니다. 빌립을 제자로 불렀습니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와 한 동리 사람이요 친구였습니다.  복음은 부모나 형제자매, 친구 등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전파되어 나가는 것이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생활 즉 좇는 생활을 위하여 우리들을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삶은 주님의 뒤를 좇는 생활입니다. 
 
본문 말씀에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이 말씀의 원뜻은
당시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계신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따르라는 결단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부르실 때도 세관에 앉아 일을 하는 세리 마태를 부르실 때도 나를 좇으라 하십니다.
 
마19:21과 눅18:22 말씀에 같은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이 다르게 들려주시고 계십니다. 
마19;21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눅18:22에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좇으려며 내 것을 나누어주며 좇는 것이 바른 생활이며 많은 것을 가져도 예수님 우리들과 함께 계시지 아니하며 인생은 빈 손이니 주님을 바로 따라야 부족함이 채워주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좇는 생활은 순종의 생활입니다. 결단의 생활입니다. 아담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따라 행동하다 좇겨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뒤를 바짝 좇아가야 하는데 멀리 떨어져 좇아 가다가 그만 예수님을 모른다는 범죄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인생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우리의 복의 근원주님을 가까이 좇는 생활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 생활해야 하는데 말씀을 등뒤에 버리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가다가 북쪽 이스라엘은 영원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남쪽 유다가 이것을 보고 깨달아 하나님 말씀을 따라 생활해야 하는데 우상을 여전히 따라 가다가 망하여 바벨론에 70년간 종살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따라 행하며 주님의 발걸음에 맞추어 행동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감동 주시는 대로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 행동 하시는지요 ?  우리들을 불러 자녀삼아 주신 사실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주신사명 감당하시려 귀한 생활을 힘쓰시고 계신지요 ?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을 올해에는 감당 잘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귀한 생활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전도자로 사명감당하며 다라야 합니다. 바울과 제자들은 주님을 목숨을 위해 받쳐 끝까지 좇았습니다. 우리들의 남은 인생도 주님 끝까지 좇는 귀한 생활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둘째로 빌립을 불러 일꾼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44

오늘 요1:44말씀에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을 불러 제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세워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만 하셨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갈릴리 벳세다 사람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환경과 세상의 기준에 근거하여 사람을 불러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도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려는 사람을 불러 사명자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집안에서도 내어 둔 다윗을 불러 사용하신 것은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고 그분의 인도와 지도로 양떼를 몰고 다니며 그들에게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를 찾아 양떼를 돌보는 다윗을 불러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안드레와 베드로를 제자삼아 그들을 데리고 가시다가  이튿날 갈릴리에서 빌립을 만나 나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빌립도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은 벳새다 사람이었습니다. 
 벳새다는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마을 입니다. 그럼에도 벳새다 사람들은 회개치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권능을 베푸신 이유는 그 권능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라면 반드시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구원하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께 나와 회개하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권능을 통하여 기적의 현장에서 그들은 신기한 구경거리로만 치부하며 배부름으로 그것으로만 만족하였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에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으로 예수님을 좇은 적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좇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좇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표적은 예수님이 표적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출 때에 크게 무서워하였습니다. 

눅2;10-12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표적은 예수님이 곧 표적이십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표적을 보고 그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표적 즉 기적은 내가 하나님을 은혜로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마 11:20-24 말씀에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시며 제일 먼저 외치신 것이 회개하라 입니다.
세례요한도 회개하라고 외치며 회개의 세례를 요단강에서 베풀 때  회개하지 아니하는 종교지도자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책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시려고 니느웨 성에 요나를 보내어 회개하라  전하십니다.  니느웨 성 백성들이 왕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회개할 때 그들을 심판하겠다는 것을 거두시며 그들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십니다.
 
성경은 회개하여 구원받는 역사와 회개하지 아니하여 멸망 받는 역사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하나님은 바로에게 모세를 보내어 바로 왕이 회개하도록 10가지의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장자재앙 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 양을 잡고 피로 회개한 백성들은 살려 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애굽 사람들은 양을 잡고 피를 문에 바른다고 사람이 살 수 있나  조롱하며 회개하기를 거부한 애굽 백성들 장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교만히 행하다가 애굽 장자들이 죽고 나서 백성들을 보내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여전히 교만하여 애굽 전차 부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잡아 오라고 합니다. 그들을 잡으려 갔던 군대들은 홍해에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는 같은 벳새다 사람이지만 예수님의 제자로서 큰 일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벳새다 사람임에도 빌립과 안드레와 베드로는 예수님을 좇는 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이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셨음에도 회개치 아니한 자들 또한 벳새다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거듭하여 말씀하시기를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예수님을 만난 자는 누구나 회개하여야 합니다.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며 자신이 빼앗거나 토색한 것을 갚고 바른 삶을 살고자 고백할 때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눅19:8-9 말씀에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며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벳세다 사람들은 오해하기를 예수님이 권능만 베푸시는 분이신 줄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권능을 베푸신 가장 큰 이유는 회개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회개가 있어야만 구원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벳새다나 고라신은 회개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화가 있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화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자신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입니다. 아니면 죄가 있기는 하지만 회개할 만큼 크지 않다고 여기는 자입니다. 죄가 클지라도 죄를 회개할 대용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죄를 깨닫게 하는 분이시며 죄 사함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네 벳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이 권능을 베풀어도 꿈적도 아니하였습니다. 회개는커녕 교만이 하늘까지 치솟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들을 예수님은 지금 부르셔서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한 가족일지라도 예수님 말씀을 듣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모친으로 인정하십니다. 한 동네가 아니라 한 형제자매라 하여도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를 제자로 인정하는 분이십니다. 
 
빌립도 안드레도 베드로도 모두 한 동네 벳새다입니다. 그 나머지 벳새다 사람 또한 한 동네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다른 예수님이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이 한 동네에서 빌립과 안드레와 베드로를 제자 되게 하셨고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이 한 동네에서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한 동네에서 일어난 이 두 가지 이야기는 이후 심판 때에는 두 가지 결과로 갈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분을 높이며 복음 전도자로 길을 달려가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빌립처럼 우리들을 불러 일군 삼아 주신 것을 기억하시며 살아가시는지요 ? 우리들은 주님의 은혜로 부르심에 응답하지 아니하였으면 망할 죄인입니다. 불러 주시고 사명 주신 것을 기억하며 우리들처럼 주님을 만나 우리들의 가족들이 우리의 집안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먼저 우리의 믿음을 회복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들은 주님의 도움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긍휼에 의하여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고 귀한 직분 받았으니 이 직분을 바울처럼 사용하여 전도자로 주의 뒤를 따를 수 있는 우리의 남은 생애가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도곡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오늘 본문을 통하여  두 가지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 

*첫째로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라 하십니다.1;43
*둘째로 빌립을 불러 일꾼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4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우리의 발걸음을 예수님 뒤를 다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는 일군이 되기 위해 우리들을 불러 주신 사실을 기억하시는지요 ? 일군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생각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주인 되신 예수님 나를 불러 주신 예수님의 뜻대로 생활하시는지요 ? 
 
주님의 뜻은 우리들이 성령충만 받아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지역을 따라 연고를 , 환경따라 우리들을 불러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부름 받은 것을 기억하며 끝까지 충성하므로 회개하여 살리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우리의 남은 시간들이 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불러 나를 따르라 하십니다. 우리들은 얼마만큼 주님을 뒤를 따르며 주님께서 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일 생명 살리는 귀한 일들을 감당하셨는지요 ? 이 일을 남은 생명을 받쳐 감당 하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지길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20108 도곡교회 김백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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