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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불일듯 하게 하라(2) (딤후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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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일듯 하게 하라(2) (딤후 1:9-12)

: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2012년! 이 한 해를 새 날로 펼쳐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004년 1월 3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 탐사를 위하여 보낸 로버가 화성에 착륙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스피릿입니다. 3주 후 두 번째 화성탐사 로버 오퍼튜니티가 스피릿의 반대편에 착륙했습니다.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인간이 화성에 보낸 쌍둥이 로버로 화성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지구로 보내 화성을 알아가게 하였습니다.

스피릿은 6년 3개월 간 화성을 돌아다니며 탐사 활동을 하고 수명을 다하였습니다. 오퍼튜니티는 여전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릿이나 오퍼튜니티를 화성에 보낼 때 그 수명은 3개월이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화성의 혹한과 먼지, 장시간 태양광 노출 등으로 동작이 멈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버들은 태양전지로 움직이는데 태양전지판에 먼지가 두껍게 쌓여 충분한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지구의 명령을 수신하지 못해 ‘중태’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피릿은 당초 기대치인 3개월의 25배를 넘는 시간 동안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늙고 낡기는 하였지만 오퍼튜니티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화성 로버들은 미국 항공우주국의 최고 과학자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기간을 활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로버의 태양전지판에 화성의 먼지가 두껍게 쌓이면서 자연히 활동을 멈출 것으로 예상됐으나 화성의 바람이 태양전지판에 쌓인 먼지를 날려버린 덕에 이처럼 장수를 누린 것이라고 합니다.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날아가서 여전히 활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먼지가 쌓일 수 있습니다. 근심의 먼지, 두려움의 먼지, 염려의 먼지, 게으름의 먼저, 교만의 먼지가 쌓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우수한 재능이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고장 난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그 먼지들을 불어서 날려버릴 바람이 필요합니다. 바람이 불어 먼지들을 날려버리면 다시 태양의 에너지를 받아 작동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디모데는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던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함께 아파하여 눈물을 흘리는 감성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수하고 정직한 거짓 없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디모데에게서 은사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증거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그 사역을 부끄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두려움의 먼지가 쌓여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조금씩 사그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다시 불일듯 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처했습니다.

디모데의 마음을 어떻게 다시 불일듯 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의 마음에 쌓인 먼지들을 날려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다시 불일듯 하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먼지들을 날려버릴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와야 하는 것입니까?

사람들은 새해가 되었으니 무엇인가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사람들은 신(新)바람, 새로운 바람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새로운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바람, 신(神)바람, 먼지를 날려버릴 성령의 바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 쌓인 먼지들을 날려버릴 바람은 성령의 바람입니다. 마음에 내려앉은 모든 먼지를 날려버릴 바람이 불어 다시 불일듯 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의 바람이 다시 불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은사로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생각하여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확신하여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바람을 기대하며 무엇을 확신하여야 합니까?

먼저, 9절 말씀입니다.

: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죄 가운데 있던 사람을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십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 공로 없이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I. 우리는 은혜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득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그 은혜를 인정하고 확신하여야 합니다. 다른 그 어떤 노력들보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믿음 없이는 새로운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주신 은혜가 때를 따를 돕는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은혜는 거저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고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로 내가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은혜로 받았습니다. 우리가 죽음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희생하심으로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행위를 통하여 구원 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공군의 참모총장을 지냈고, 지난 해 6월까지 극동방송 사장으로 봉사한 김은기 장로님의 간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실한 불교도로 성장하였던 그였습니다. 그가 결혼하고 아내의 간곡한 권유로 교회에 겨우 나가게 되었습니다. 기왕 교회에 나갔으니 알고나 다니자며 성경을 읽었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성경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오류 덩어리’였답니다. ‘어떻게 사람이 물 위를 걷지?’ ‘소경이 눈을 뜬다고?’ ‘말씀으로 이 세상 만물을 지으셨다는 게 말이 돼?’ 그는 허탈한 웃음만 지었습니다. 성경의 내용들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억지로 다른 사람들과 오랜 시간 찬송을 부르고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 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은기야! 은기야!”

누군가 그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그토록 부인하던 예수님이 물 위에 서서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내가 너를 택한 것은 네가 잘나가서 아니야.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또 너를 전도의 도구로 삼기 위함이야.”

이렇게 그는 빛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예수님을 자랑하게 되었다고 간증합니다.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은혜로 된 것이기에 자랑할 것이 자신에게는 없습니다. 자랑한다면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자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런 은혜를 받은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도 받지 않은 것처럼 사는 것이 배은망덕입니다. 은혜는 우선 그것이 은혜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자랑거리가 있어야 어께를 펼 수 있는데 신앙은 자랑 할 것이 없다는 것이 힘이 됩니다. 내세울 것이 없기에 오직 그 은혜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는 두려움을 내어 쫓기 위하여 무엇을 확신하여야 합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이제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가 이 세상에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폐하셨습니다.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나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핵심입니다. 사람을 영원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죄의 문제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삶을 위하여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은혜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승리를 보증하여 줍니다. 죽음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영원히 썩지 아니할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영원한 승리입니다.


II.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언제나 영원한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염려의 먼지는 은혜의 빛을 막아 승리를 의심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미 이루신 일들을 의심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길 줄 알고 싸우는 사람은 이기지만 질 줄 알고 싸우는 사람은 질 수 밖에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의 드라마가 성공하는 대박 공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는 어느 정도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내용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대박공식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혀 모르는 것이라면 관심을 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뻔한 내용이면 관심을 붙잡아 둘 수가 없습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관심을 유발할 수 있으면서도, 자세히는 모르기에 빠져들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극이 그런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이라든지, ‘세종대왕’이라든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인물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생소합니다. 유명한 역사적 인사를 소재로 하지만 내용은 소설 같은 이야기를 함께 버무린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으나 생소하여 시청자들이 계속해서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진 셈이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신앙은 역사극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결과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뻔한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개되는 과정을 모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알아가야 하는 내용입니다. 전혀 결과를 알지 못한다면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알기에 어떻게 전개될 지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중계방송을 보지 않고 경기장에 나가서 실제 경기를 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즐기는 사람은 실제 경기를 보고나서도 또 녹화하여 재방송까지 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미 승패의 결론이 난 경기의 재방송을 보는 사람이 진짜로 스포츠를 아는 사람이랍니다. 그것은 결과뿐만 아니라 경기의 흐름까지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통하여 경기 결과만 아는 것으로 만족하는 저 같은 사람은 스포츠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결과를 알면서도 그런 결과를 가져온 원인과 흐름을 즐기는 사람이 진정한 스포츠맨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이미 결론이 났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을 천국이 확실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반드시 갈 천국을 확신하고 천국에 갈 때까지의 과정을 즐기는 것입니다. 승리를 확신하는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게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실 결론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신앙은 결론을 의심하면 과정을 이루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결론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마침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천국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할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을 내어 쫓기 위하여 우리가 확신하여야 할 것은 또 무엇입니까?

11절 말씀입니다.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바울 자신은 그가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가 되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확신하였습니다.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III. 우리는 사명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하여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죽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자신이 할 일에 대한 사명감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사명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자식을 위한 부모의 마음도 일종의 사명입니다. 국가의 부름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사명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이미 결론을 났는데 그 결론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가기 원하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여야 합니다.

한 게으름뱅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게을러서 돈도 잘 벌지 못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누구를 만나 대화하고 무슨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몹시 싫었습니다. 자연히 아내의 잔소리를 매일 들어야 했습니다. 직장에서도 무능하다 하여 퇴출 일보 직전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죽어서 눈을 떠보니 자기가 천국에 와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매일 상에 가득하였습니다. 그를 간섭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일 안하고 밤이고 낮이고 잠을 잘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내의 잔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지나간 추억이 되었습니다. 진작 죽지 못하고 이렇게 좋은 천국에 이제야 온 것이 후회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노는 것이 점점 지겹게 느껴졌습니다. 먹을 것도 많고 잠 잘 자유는 있는데 자기가 할 일거리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천사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아무 일이라도 좋으니 소일거리를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이곳에서 그가 할 일은 전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말동무라도 좀 붙여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냉정히 이곳에서는 그와 말동무 될 사람도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하도 답답하여 천사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천국이 뭐 이래, 차라리 나를 지옥으로 보내주시오!”

그 때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니, 그럼 당신은 여태껏 여기가 천국인줄 아셨소!”

사실 그는 지옥에 갔었던 것입니다.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곳은 지옥이라는 것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것은 지옥입니다. 사명 없이 사는 곳은 지옥입니다.

일을 하기 원하시는 분들에게 일거리가 있고, 원하는 직장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잔소리를 듣고, 귀찮은 일이 있어도, 때로는 고통과 생명의 위협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이 있을 때 살아가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그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십시오. 자신의 사명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감당할 능력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또 무엇을 확신하여야 합니까?

12절 말씀입니다.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고 사명을 감당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낙심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은 것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능히 지켜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IV. 우리는 보호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까? 혹시라도 당할지 모르는 일에 대한 염려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은 믿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쓰러져도 붙들어 주시는 분을 믿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상실을 경험하였습니다. 가족을 잃는 경험도 합니다. 친구를 잃기도 합니다. 재산을, 직장을, 건강을 잃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지금 있는 것도 즐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보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안전한 곳으로 우리의 것을 옮겨 놓으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품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이란 여인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눈 수술을 받다 실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아내의 직장출퇴근을 지극정성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리나 얼마 후 남편이 말했습니다. 

“여보! 계속 이럴 수 없으니 내일부터는 혼자 출근해요.”

부인은 남편의 이 말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했습니다. 여러 번 넘어지며 서러워 눈물도 흘렸지만 점차 출퇴근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보름쯤 지날 무렵, 그녀가 버스를 탔다가 내리려고 할 때 운전기사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살펴주시네요. 저 뒤에 있는 분이 남편이 아니세요?”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냉정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같이 타고 뒷자리에 앉아 아내의 출퇴근길을 말없이 지켜주었습니다. 언제라도 달려가 도와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십시오. 행여 우리가 넘어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사탄이 우리의 영혼에 손도 대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그 좋은 천국에서 얼굴과 얼굴로 친히 만나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함으로 고난 중에서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위기는 근본의 위기라고들 합니다. 우리 시대를 기초 학문의 위기, 근본의 위기라고 정의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진단은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듯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의 기본을 무시하고 어떤 특별한 것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은 우리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이미 결론이 난 승리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미 받은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영원한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은혜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근심의 먼지, 두려움의 먼지, 염려의 먼지, 게으름의 먼저, 교만의 먼지를 날려버릴 은혜의 바람,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람 앞에 우리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쌓여버린 먼저를 날려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승리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사명으로 불타올라야 합니다. 보호를 확신하여야 합니다. 이번 부흥성회를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불일듯 하게 합시다. 

은혜와 승리와 사명과 보호를 확신하심으로 흔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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