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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데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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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데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민 13:25-33)


지난 주일에 울산의 어느 큰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지난 해에 그 교회에 등록을 했던 김집사님이 찬양대를 하겠다고 해서 담임 목사님이 찬양대원으로 임명을 했습니다.  그런데 임명하고 보니까 이 집사님은 음치에다 박치였습니다.  목사님이 들어보아도 이것은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찬양대를 그만두라고 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교회를 떠나갈 것이 염려가 되어서 아무 말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성탄절 칸탄타를 하면서 일이 터졌습니다.  이 집사님의 음치와 박치가 그대로 다 드러났습니다.  결국 연말이 되고 신년에 다시 임명을 해야 하겠기에 지휘자가 목사님께 요청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제발 내년에 찬양대원에서 빼 달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께서 이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처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정공법으로 나갔습니다.
"집사님, 지난 주에 어떤 찬양대원이 저에게 찾아와서 집사님의 음치와 박치 때문에 찬양대원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안하지만 내년에는 찬양대 말고 다른 사역을 감당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목사님, 그걸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저는 목사님이 설교를 못하신다는 소리를 수 백 번도 더 들었는데요."

우리는 종종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표현을 듣게 됩니다.  B. C. 49년 1월 새해가 밝아오는 날 당시 로마의 유명한 장군이었던 줄리어스 시저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로마의 반역자가 되느냐, 아니면 혁명가가 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입니다.  시저는 그 동안 갈리아 지역의 정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로마에 돌아가 집정관에 취임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저보다 폼페이우스를 더 선호했던 원로원은 그가 무장해제를 하고 로마로 돌아오도록 결정을 내립니다.  시저는 그러면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폼페이우스도 함께 군사의 지휘권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지만 원로원이 최종적으로 이를 거부하자 그는 1월 10일 로마의 1개 군단을 거느리고 갈리아 지역과 로마의 경계선상을 흐르고 있는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전우들이여, 이 강을 건너면 세상은 바뀐다.  그러나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진격하라!"

이렇게 해서 시저는 폼페이우스를 제압하고 위대한 대 로마제국의 기초를 놓게 되는 중요한 전기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말은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는 표현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그렇게 루비콘 강을 건너는 체험을 하게 되는 순간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전환점의 시간들을 우리가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운명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을 떠나 다베라를 거쳐 바란 광야에 들어와 바란 광야 북쪽의 변경 도시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한 다음에 광야에서 40여년 동안 뱅뱅 돌기 시작합니다.  그 운명의 도시인 가데스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신명기 1장 19절을 찾아서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호렙산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여기 호렙산은 시내산을 말합니다.  그들은 시내산을 떠나 크고 두려운 바란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네아라고 하는 변경 도시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신명기 1장 22절과 23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그 땅이 어떤 땅인지 우리가 먼저 자세히 정탐을 해 보자고 합니다.  그래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게 됩니다.

오늘 민수기의 본문은 그 열두 명이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그 보고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하고 나머지 열 사람은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됩니다.  10:2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다수를 따라서 그렇다면 그 험악한 땅, 승산이 없는 땅으로 우리가 진격해 들어가기보다는 차라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면서 소요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민수기 14장 1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그들은 밤새도록 울고불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3절에 보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한 이후에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이 큰 소요와 저항 사건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하게 됩니까?

민수기 14장 33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그들은 이 반역의 사건 때문에 40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났던 새로운 세대만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 가데스의 반역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가지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남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2012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한 해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교훈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믿음의 교훈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데스에서의 사건은 우리들에게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던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가 결코 잘못된 보고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열 명은 나름대로 사실과 경험에 입각한 성실한 객관적 보고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름지기 보고는 자기 감정에 따른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지극히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는 이렇습니다.  우리의 판단에 의하면 그 땅은 사람이 살만한 땅이 못되고, 거기에서 우리가 상대를 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들보다 신장이 훨씬 크고 강합니다.  그러니까 도저히 승산이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13장 33절 마지막 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방금 읽은 본문에서 심리학자들의 유명한 두 가지 단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는 '메뚜기 콤플렉스'이고, 또 하나는 '거인 콤플렉스'입니다.  내가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인 콤플렉스'와 나는 저 사람에게서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는 의미에서 '메뚜기콤플렉스'를 말합니다.  가령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부탁을 할 때 "저 같은 것이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메뚜기 콤플렉스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혹시 메뚜기 콤플렉스에 걸리셨습니까?" 라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과거 우리의 부모님들이 쉽게 들을 수 있는 말들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엽전이 별 수가 있나."  이 말은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의 화폐 가치는 아주 없었습니다.  한국의 엽전은 아주 낮은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을 비하할 때, "한국인이 별 수 있나" 이런 말을 할 때 "엽전이 별 수가 있나"라는 말을 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지금은 이 말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본과의 비교에서 열등감을 우리가 상당히 극복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왔지만 아직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노예 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도 종살이를 했는데 그 거대한 사람들이 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하다.  이 열등감, 그리고 이런 패배의식이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문제는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이 아닙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정말 문제는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홍해 바다를 여시던 하나님이십니다.  마라의 쓴물을 치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르비딤의 반석에서 생수를 나게 하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시내산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분명히 믿을 수가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두려워합니까?  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칩니까?  그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아주 안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철저히 믿지를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기적의 하나님도 믿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경험하는 나의 이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믿음 없는 사람처럼 행동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믿음 없는 사람처럼 말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이 문제만은 도저히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만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부딪히고 있는 이 상황, 이 조건에서만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들입니다.  어제는 믿었는데 오늘은 믿지 못합니다.  성경을 믿으면서 오늘의 현실은 믿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인 후에 살아야 할 복음적인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처음 예수를 믿었을 때 그 믿음이 지금도 필요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붙들고 어제도 살았고, 그 믿음을 붙들고 오늘을 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붙들고 내일도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입니다.

갈렙은 이런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군중들은 아주 달랐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어제는 믿는 것 같았는데 오늘은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도울 수 없는 하나님인 것처럼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30절을 보십시오.  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과 전혀 달랐던 갈렙의 반응과 태도를 보게 됩니다.  본문 30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여러분, 그 땅을 취하십시다.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고, 그렇게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아우성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 갈렙으로 하여금 이런 태도를 만들어낸 것입니까?  객관적인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갈렙도 열 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정탐을 다녀왔기 때문에 그 상황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분명히 열 명의 보고는 지극히 객관적이고 사실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열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대답을 민수기 14장 8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14장 8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기에 보면 아주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렇습니다.  갈렙이 그렇게 외칠 수 있었던 열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함께 하시면 무엇이 걱정입니까?

그래서 민수기 14장 9절 하반부의 고백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옛날 번역이 더 좋았습니다.  개역판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우리를 맞서고 있는 저들이 아주 대단한 것 같지만 걱정하지 마.  그들은 우리의 밥이야!

갈렙이 이렇게 고백하고 외칠 수 있었던 열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돕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갈렙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홍해를 여시던 하나님이십니다.  마라의 쓴물을 치유하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르비딤에서 반석을 깨어 생수를 내시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도 여러분과 저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참으로 믿으신다면 왜 걱정하십니까?  그 하나님이 정말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무얼 두려워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 속에 하나님을 더하기(+) 하는 것입니다.  이 환경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도우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을 우리의 상황 속에 하나님을 더하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든 하나님을 더하기 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십자가를 '더하기 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더하기 하시면, 그래서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걱정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미련한 사람은 자꾸만 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빼려고 합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십시다.
"제발 빼기만 하지 말고 더하기를 하십시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 한 해를 당당하게 돌파할 수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거인처럼 우뚝 선 불가능의 상황 앞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넌 내 밥이야!"  우리 다같이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쳐 보겠습니다.  "넌 내 밥이야!"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행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들과 사역들 앞에서 거대한 아낙 자손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소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불가능의 상황 앞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나는 결코 물러갈 수 없다고 선포하시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미 약속한 승리가 이미 우리의 승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순종의 교훈입니다.

결국 열 명의 정탐꾼들을 따라 이 소요에 동참했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또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불순종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따라서 애굽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금 가나안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엄중하게 경고한 바가 무엇입니까?  민수기 14장 9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지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 훗날 히브리서 기자는 이 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히브리서 4장 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복음의 소식을 듣고서도, 약속의 땅을 주신다는 분명한 말씀을 듣고도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저들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히브리서 4장 11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어려워질 때 절대 "환경이 어렵구나, 내가 힘들겠구나"  그것만 묵상하지 마십시오.  환경이 어려울 때 어려운 것만 생각하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워질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이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를 고민하십시오.  그런데 우리들 중에는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사역을 중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안할 때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기쁨으로 섬기던 봉사를 환경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셔서 이 일로 섬겨야 한다고 시작했던 그 일을 나를 둘러싼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역과 헌신을 중단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를 인도하신다고 믿었던 내 삶의 주인 앞에 내 소유의 주권에 대한 고백으로 드렸던 십일조와 드림이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드림을 중단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는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지난 해에 우리 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그 동안 감당해 오던 모든 선교를 잠정 중단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제 마음은 한 시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늘 하나님께 죄를 짓는 마음이었습니다.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부담을 드리기 위해서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솔직한 제 신앙의 고백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선교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쥐구멍을 찾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데 지난 주에 캄보디아에서 선교를 하시는 이용우 선교사님으로부터 구구절절이 마음을 울리는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이 메일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말할 수 없는 메아리가 울려왔습니다.  "지금 오 목사 너와 너의 교회가 이 일을 외면한다면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저는 이 소리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한 주 헌금을 통해서 미약하지만 도와야겠다고 기도를 하고 주보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합니다.  선교사님보다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선교 현지에서 건축을 하다가 재정 부족으로 중단된 현지 교회를 돕고 선교사님의 사역에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다시 하루라도 빨리 선교의 사역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솔직히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없다면 어떻게 재기가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건강 제약품 가운데 맨소래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약품을 처음에 시작한 사람은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라는 사람입니다.  이 분이 죽은 후에 이것이 일본 기업으로 넘어갔지만 하이드라는 사람이 맨소래담을 처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백만 장자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사업이 잘 되다가 미국의 경제대공황이 왔을 때 10만불의 빚을 지고 파산을 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에 빚잔치를 한 후 새롭게 재기를 결심하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십일조였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당신 제 정신이냐?  아직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데 무슨 십일조냐?"라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제 정신이라고.  하나님이 나에게 깨우쳐주신 사실이 있는 데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빚부터 갚아야 한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하는 빚인데, 도적질은 부채와 같은 것인데 내가 하나님의 빚부터 갚기로 결심을 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하나님이 그를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그는 멋지게 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분의 일이 아니라 십의 이, 삼, 사, 나중에는 10의 9까지 드리는 전설적인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순종하고자 할 때 우리를 붙들고 있는 제일 커다란 유혹은 다음에 대한 걱정입니다.  내가 이렇게 어려운데 헌금을 하면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몸이 허약하고 피곤한데 봉사를 하면 내 몸은 더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이 어떤 마음으로 순종했을까요?  순종하면 좀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러나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순종하면 이후의 발걸음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을 것입니다.  순종하면 그분이 책임져 주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믿음을 붙잡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순종하면 그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일생을 책임져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민수기 14장 8절의 이 고백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이것이 우리가 금년 한 해를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열쇠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돌파하지 못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 속에서도 믿는 것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믿음의 자녀가 되고, 순종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자녀들 앞에서 그 삶의 본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처럼 그 땅에 만만치 않은 위기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그래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일어섰을 때 그들은 마침내 그 땅을 향해서 힘차게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를 살아가면서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또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이 얼마나 힘든가, 내가 이 현실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오늘의 난관과 역경 앞에서 던져지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이 난관 앞에서 다시 한 번 순종을 결단하시겠습니까?"

내가 그 동안 순종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돌아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앞에서 순종을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역사의 창조를 위해 믿음과 순종의 결단으로 내 인생의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려움과 난관이 태산처럼 가로놓여 있는 2012년을 믿음과 순종으로 당당하게 승리하며 헤쳐나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금년 내내 시간마다 때마다 일마다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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