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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두고 사건 (행 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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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고 사건 (행 20:1-12) 
 
 
오늘은 드로아에서 있었던 유두고 사건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데메드리오로 인한 “소요”가 그치자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갔습니다(1). 바울은 일찍이 고린도 교회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근심하게 한 편지’를 보내 놓고선 후회하면서 드로아에서 디도가 가져올 소식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디도를 만나지 못했으므로 복음의 문이 열렸음에도 전도하지 못했고 편치 않은 마음으로 마게도냐로 건너갔지요. 마게도냐에 도착해서는 육체적으로 쉬지 못하고 여러 가지 환난을 겪었는데 밖으로는 싸움이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디도를 만나 좋은 기별을 듣고서 위로를 받고 쓴 편지가 고린도후서입니다(고후 7:5-16; 2:12-13).

2절을 보면 “그 지경으로 다녀”갔다고 했는데, 아마 2차 전도여행 때 개척했던 교회들을 다시 방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후 아가야 기역인 헬라(Greece)에 도착하여 “거기 석 달을” 머물렀습니다(3a). 이때가 57년이나 58년 겨울 무렵인데, 이 기간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했지요. 1절과 2절에 두 번 등장하는 “권”함과 12절의 “위로”라는 단어(parakalevw, 파라칼레오)는 ‘곁에’와 ‘부르다’의 합성어인데, ‘초청하다’, ‘권면하다’, ‘격려하다’, ‘위로하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는 이처럼 여러 말로 서로 권하는 일이 늘 필요한 것 같습니다. 바울 역시도 근심이 있을 때는 전도하지 못하다가 위로를 받고서야 영감 넘치는 서신들을 쓰며 기쁨으로 사역할 수가 있었지요.

이렇게 1년 남짓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에 다니는 동안에 바울은 기근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해 연보도 거두었습니다(24:17; 롬 15:25-27; 고전 16:1-4; 고후 8-9). 고린도에서 배타고 곧바로 안디옥이 있는 수리아 땅으로 가려고 했으나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함을 알고 계획을 변경하여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합니다(3). 이때 “베뢰아 사람” 소바더,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가 함께 갔습니다(4). 맡은 거액의 연보 때문에 행여나 훼방 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각 지역 교회의 대표들과 함께 동행한 것이지요(고후 8:19-20).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주의하고 조심했습니다. 흔히 ‘하나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시도하니까 그분께서 지켜주시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합당한 계획도 준비도 주의함도 없이 모험에 뛰어드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태도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 곧 조롱하는 일입니다(갈 6:7).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누구보다 강하게 신뢰했을 사도는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계획을 변경하기도 하고 훼방 받을 만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면서 일을 진행시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참으로 믿는 자는 함부로 모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참으로 믿는다면 스스로도 최선을 다해 예비하는 자세가 성경이 가르치는 성도의 올바른 행동입니다(눅 14:28-33).

4절에 언급된 “그들”은 먼저 드로아로 가서 기다렸고(5), 바울과 누가가 포함되었을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서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드로아에서 7일 동안 머물게 됩니다. 2차 마게도냐 지역 방문 기간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했던 누가가 7-12절에서 드로아에서 있었던 한 날의 한 사건은 상대적으로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일반 역사가가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개인의 사소한 일상의 일조차 상세히 기록하는 성경의 독특한 역사 시술 방식입니다.

7절의 모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유대 날짜 계산법을 따르면 “안식 후 첫 날”은 토요일 해진 후부터 일요일 해지기까지에 해당이므로 토요일 저녁에 모인 셈이고, 로마 계산법으로는 토요일 밤 12시부터 일요일 밤 12시까지여서 일요일에 모인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난”(11) 날을 “이튿날”이라 표현했으므로 로마 계산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누가가 2장 15절에서는 오전 9시를 유대 계산법에 따른 “제삼시”로 기록했지만, 그것은 유대인 베드로가 유대인을 향해 말한 것을 인용했을 따름이고 이방인 지역에서 이방인인 누가는 로마 계산법을 따라 말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요.

날짜 하루 때문에 논란하는 이유는,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는 구절이 ‘초대 교인들은 주일에 모여 예배하는 관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성경상의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교부 이그나티우스(Ignatius, 110년 경 순교)는 성도들이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에 그들의 생을 새롭게 한다”(Magnesians 9:1)고 했습니다. 종합해보면, 유대인 성도가 중심이었던 초기 성도들은 안식일에도 모이고 주일에도 모였지만, 복음이 이방인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회당을 떠나 유대교와의 구별이 명백해짐에 따라 주일에만 모이게 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성도가 “안식 후 첫날에” 모인 것은 특별하지 않지만, “강론”이 엄청나게 길어서 “말을 밤중까지 계속”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당시는 네로 황제(Nero, 재위 54-68)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던 때인데, 바울은 이미 1-2년 전(55-56년 경)에도 고린도교인들에게 “임박한 환난”(고전 7:26)을 염두에 두고 교훈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5-6년이 지나면 네로가 로마에 불을 지르고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워 혹독한 박해가 시작됩니다(64년). 바울은 드로아 성도들에게 마지막 설교가 될 것임을 예상하고(23), 교회에 닥칠 환난을 대비할 믿음을 가질 수 있게끔 밤을 세우더라도 가르치기로 단단히 결심한 것 같지요.

그런데 모임 중에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졌습니다(9).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흔히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려하기 쉽습니다. 유두고가 창문에 걸터앉은 것을 건방진 자세로 지적하기도 하고, 말씀 강론 중에 졸았던 경외심 부족을 책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바울의 설교가 너무 긴 것조차도 트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자체는 유두고를 전혀 나무라지 않습니다. 바울 역시 자신의 긴 설교를 자책하지 않고 사건을 수습한 후에도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11)를 지속합니다.

물론 유두고 본인이 이 사건을 징계로 받아들이고 말씀 들을 때마다 태도를 삼가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크게 유익하겠지요. 사도와 모든 청중이 심각하게 말씀을 나누고 있는 동일한 현장에서 혼자 졸았으니 각성할 일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12절의 “아이”라는 표현은 유두고가 불과 7-14세의 소년이었음을 말해주는데, 그렇다면 늦은 밤 긴 강론 속에서 졸았던 일을 많이 나무랄 수는 없지요. 또 “윗 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8)라는 환경 묘사는 많은 등불로 인해 탁해진 공기는 졸기 쉬운 환경을 조성했다는 것, 졸지 않으려고 창문에 걸터앉았으나 결국은 “졸음을 이기지”(9) 못했다는 유두고에 대한 변호적인 해석도 가능하게 합니다.

아무튼 본문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사건 후의 반응에 집중합니다. 성도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할 때, 당사자가 자신의 잘못된 태도를 되짚으며 뉘우치는 일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다보면 성도 간에 서로를 탓하기 쉽고 나중에는 ‘이런 일을 있게 하신’ 하나님까지 원망하기 쉽습니다. 교회가 상처 입기 쉬운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발생한 문제의 책임 소재를 따지기보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태도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수습하려고 해야 하겠지요.

바울은 설교 도중에 즉시 내려가서 “아이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무리를 향해 “떠들지 말라”(10a)고 했는데, 떠든다는 것은 데메드리오로 말미암았던 “소요”(1)라는 단어 동사형입니다. 유두고의 추락사가 온 회중을 엄청나게 동요케 했음을 말해주지요. 하지만 바울이 소요를 막았던 것은 “생명이 저에게 있다”(10b)는 사실을 선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사이기도 했던 누가는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고 기록했었습니다(9).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사망이 분명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셨던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래서 12절에도 죽은 것 같았던 아이라 하지 않고 “살아난 아이”라 부릅니다. 바울은 다시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밤새 이야기한 후에 떠났습니다(11).

성경에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왕상 17:21; 왕하 4:34; 눅 7:11-17; 요 11:38-44; 행9:36-41). 이들의 다시 살아남은 부활과 다르지만 부활을 상징하는 의미는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유두고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은 절묘하게도 교회가 “떡을 떼려”고 모인 후에 “떡을 떼어 먹”기 전에 일어났습니다(7, 11). 시기적으로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던 무교절(첫날밤이 유월절)이 막 지난 때였고(6),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이었습니다. 그동안도 여러 번 떡을 떼는 일이 있었겠지만 이날은 떡을 떼고 먹으면서 유달리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실감나게 기억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드로아 성도들은 살아난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날의 사건과 더불어 그 날에 밤새워 들었던 말씀과 떡 뗌의 의미를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온 교회를 충격적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조차도 기묘하게 사용하셔서 오히려 적지 않은 “위로”를 받게 하셨지요(12). 많은 고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갈 바울에게도 이 사건은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23). 성도에게도 때때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지만 이것조차 복음의 진리를 깊이 각인시킬 수 있도록 섭리하시는 우리 하나님으로 인한 깊은 위로하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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