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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 이름의 능력 (행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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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이름의 능력 (행 4:12)

몇 년 전에 뉴욕의 한 메디칼센타 외과의사가 7,000km 대서양 건너 프랑스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담낭을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을 했습니다. 광섬유로 연결된 아주 작은 수술칼을 이용해 미국에 앉아서 프랑스에 누운 환자를 수술했다는 것입니다. 이 원격수술은 시간차가 0.15초에 불과해 실제 수술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수술의 이름을 1927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했던 찰스 린드버그의 이름을 따 “린드버그 수술”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과학의 힘을 실감케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빌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정보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대는 정보가 힘이요 돈이요 재산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의 힘은 무엇입니까? 교회에는 세상이 가지지 못한 힘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신령한 힘이 있습니다.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원의 문제, 영생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힘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이름의 능력이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파킨스씨 병에 걸려 힘든 투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TV에서 한 번 보았는데 무엇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손을 덜덜 떠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전성기 시절 “나는 이 땅의 힘의 제왕이다”라면서 큰소리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떨리는 손으로 겨우 물건을 붙잡을 정도로 약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어쩌다 이런 병에 걸렸느냐고 안타까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가 이 병에 걸렸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인간의 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사람이 만든 힘은 다 유한합니다. 정보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세월이 흐르면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은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능력은 예수 이름의 능력입니다. 

올 해 교회 표어를 “영혼구원에 앞장서는 교회”라고 정하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해야 영혼구원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첫 번째 조건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 예수 이름의 능력을 깨닫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그 예수 이름의 능력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 예수 이름의 능력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한다’, ‘영생을 얻게 한다’는 뜻입니다. 내게도 예수님이 필요한가? 내게도 구원이 필요한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미래가 결정됩니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그런데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를 성경에서는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흔히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은 지옥이라는 단어를 마치 신화나 전설에서나 등장하는 유치한 소리로 간주해 버리고, 지옥이라는 말조차 비웃고 무관심으로 일축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부인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교회 가서 목사 설교를 듣는데, 헌금 설교 다음으로 듣기 거북한 설교가 지옥에 대한 설교라고... 그것은 들으면 유쾌하지는 않은 소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사람도,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아무리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도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부패한 성향이 있습니다. 

재작년에 설악산에 갔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산을 오르는 그 길고 긴 줄이 아주 튼튼하고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들기를 ‘만약 이 긴 줄 가운데 단 1cm라도 녹이 슬고 썩어 있다면 과연 그 케이블카가 무사히 산을 오르내릴 수 있을까?’ 케이블카는 졸지에 추락하고 말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운명입니다. 99% 선을 행하고 1% 죄가 있어도 지옥으로 추락하고 말 운명, 이것이 인간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고 말씀합니다. 

예수 이름의 능력을 아십니까? 예수의 이름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고 우리를 구원해 주는 이름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단 한 마디만 들어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들어야 한다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제 힘으로 걸을 수도 없고 제대로 말을 할 수도 없는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 시인은 “그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예수의 이름을 노래했습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 ” 

우리의 찬양 속에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는 찬양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예수, 언제나 기도 들으사 오 예수 나의 손잡아 주시는 가장 귀한, 귀한 그 이름”, “예수, 놀라운 이름, 아름다운 영광의 주 - - - 임마누엘 함께하시는 은혜의 구주 말씀이라”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도행전 3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옵니다. 예루살렘이 온통 소동이 났습니다. -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전 입구에 나면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어서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구걸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성령께서 베드로의 마음을 감동했습니다. 앉은뱅이는 계속 구걸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3장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내가 줄 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랬더니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았고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을 의사인 누가가 기록했습니다. (3:7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여러분, 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입니까?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고 법석을 떱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에 드나들던 사람들이 구름 떼와 같이 그 주변에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앉은뱅이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을 무슨 신을 보는 것처럼 신기해 가지고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권세가 어디에서 나왔느뇨.’ 

(3:15~16) “(너희는) 생명의 주(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여기 예수의 이름이란 말이 한 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이렇게 예수 이름을 가지고 이 사람이 나았다고 소리를 치고 베드로가 증거하니까 그것 때문에 붙들려서 끌려가서 감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재판정에 끌려 나왔습니다. 재판을 담당한 대제사장들은 궁금했음 도대체 갈릴리의 어부 출신인데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그걸 알고 싶어서 그들을 신문했습니다. 

(4:7)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10절)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예수의 이름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예수요, 예수 이름 빼놓고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예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예수 이름을 증거 했습니다. 위협을 당하고 핍박을 만날 때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싸웠습니다. 병자를 앞에 놓고 예수 이름으로 그들을 일으켰습니다. 귀신과 악령의 역사 앞에 예수 이름으로 대적했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그들은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2. 예수 이름의 능력을 주신 이유 

하나님께서 예수의 이름, 그 이름의 능력을 주신 이유는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치유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를 해봐야 예수 이름의 능력을 알게 됩니다. 왜 그 능력이 내게 나타나지 않는지 아십니까? 성령의 능력도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구체적으로 역사합니다. 성령의 은사도 복음 전하는데 사용하면 폭발적으로 나타납니다. 왜요? 거기에 사용하도록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는데 ‘고구마 전도왕’으로 유명한 분, 김기동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아주 탄탄한 중소기업 두개를 경영하는 아주 성공적인 기업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예수 믿고 은혜받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만 해도 매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사철만 되면 전세 값이 올라서 늘 싼 집을 구하러 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보냈던 모양입니다. 

한번은 반 지하에서 살다가 싼 방을 구하러 이곳저곳 다니다 어느 복덕방에 들어갔습니다. “싼 방 하나 없습니까?”, 한참 복덕방 주인이 생각을 하더니 “싼 집이 하나 있기는 한데 젊은 사람에게 소개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왜요?”, “폐가 아파트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안 살고 아예 방치해 놓은 폐가. “왜 폐가가 되었는데요?”, “2년 동안 네 가정이 그 집에 들어갔는데 3개월도 안 되서 남편이 죽기도 하고, 아내가 죽기도 하고 식구 중에 한 사람이 죽어서, 지금은 아무도 안 들어갑니다”, 그 집이 과천 주공아파트 404동 605호였습니다. 그 집에 가 보았습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듯한 집, 왕거미 9마리가 거미줄을 치고 있더랍니다. 문은 덜커덩거리고 창문은 깨어져 있었고 금방 뒤에서 누가 머리 풀고 나타날 것 같은 집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수 믿는 사람이니 이까짓 것 내가 못 가? 싶어서 “계약합시다”, 그랬더니 “당신 아직 젊고, 애가 둘이나 된다면서 괜찮겠소?”,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니까요”, 그랬더니 복덕방 주인이 연락을 해 가지고 집 주인이 대전에서 올라왔습니다. 그 주인이 ‘당신 정말 괜찮겠느냐고.' 계약서를 쓰다말고 “괜찮겠어요?”, 도장 찍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몇 번이나 괜찮겠냐고 다짐을 하더래요.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부인과 아이들에게 얘기합니다. “얘들아, 귀신의 집으로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됐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집에 이사 가는 거야. 당신 알겠지? 얘들아 알겠지?”, 그래서 이사 왔습니다. 

이사를 와 놓으니 그 주변에 있는 아파트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염려 반 호기심 반 쳐다 보는 것입니다. ’저 불쌍한 사람이 가족을 잃게 생겼구먼‘, 그렇게 자기를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는데 3달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과천 교회에 김기동 집사라는 사람입니다', 6개월이 되었습니다. 어려웠던 기업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났는데 직원이 수 백명으로 늘어났습니다. 2년 만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복덕방 부부가 예수를 믿었고 대전에 있던 국장이란 집주인이 예수를 믿었고, 404동에 사는 사람의 절반 가까운 사람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40평 아파트 당첨이 되어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404동 주민들이 다 모여서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일장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님을 믿으면 귀신, 잡신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환난의 문제가 다 사라집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그 후 그 동에서 한 사람 두 사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천 시내에서 아파트 한 동이 100% 한 교회에 등록한 동은 그 동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똑같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렇게 신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고, 무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믿느냐? 안 믿느냐? 그분을 진정으로 우리 삶 속에 적용하며 그 분의 이름을 붙들고 살아가느냐 아니냐의 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큰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이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월요일이라 피곤하기 때문에 잠을 청하는데 앞에 사람이 계속해서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숨을 푹푹 쉬면서... 마음속에 성령의 감동이 오기를 ‘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라. 저 사람에게 복음를 전해라', ‘하나님 저는 피곤해요. 지금 가서 복음을 전해야 돼요. 이 사람에게 복음 전하다가 피곤을 쌓으면 오늘 집회부터 망쳐요', 

한참 졸다가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서 보니까 앞에 있는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나가더니 기차 난간에서 뛰어내려서 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 목사님,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평생 이제는 하나님 앞에 민감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성령의 임재, 성령의 명령에 민감한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그때부터 성령 앞에 순종하고, 성령에 민감한 사역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여러분, 똑같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신나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고, 무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정말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믿느냐? 안 믿느냐? 그분을 진정으로 우리 삶 속에 적용하며 그 분의 이름을 붙들고 살아가느냐 아니냐의 이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자꾸 위축되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잃어버렸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잃어버린 교회들, 예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할 줄 모르는 교회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교회”,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전도의 감격과 기쁨, 그 보람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꾸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이럴 때 기도합시다. “오~ 하나님! 이제 새롭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주십시오. 성령의 능력을 부어 주십시오. 예수 그 이름의 능력을 칠 배나 더하여 주십시오!”, 

“영혼구원에 앞장서는 교회”,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교회”, 그러한 교회를 위해서 예수 이름의 능력을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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