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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을 정한자의 삶 (단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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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한자의 삶 (단 1:8-21)


2012년 새해 두 번째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뜻을 정하고 살아간 다니엘의 삶에 대해 생각하므로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만사는 마음먹기에 다렸습니다.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각오와 결심을 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민족의 선각자였던 함석헌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 
모든 일은 뜻이다. 
뜻에 나타난 것이 일이요, 물건이다. 
뜻있으면 있다(存在). 
뜻 없으면 없다(無). 
뜻 품으면 사람, 뜻 없으면 사람 아니, 
뜻 깨달으면 얼(靈), 못 깨달으면 흙.
전쟁을 치르고도 뜻도 모르면 개요, 돼지다. 영원히 멍에를 메고 맷돌질 하는 당나귀다.

뜻이란, 생각을 마음에 정하는 것입니다. 목숨이 있어 사는 것이 아니라, 뜻을 정하고 살아야 진정으로 사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유대 나라가 망할 때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들은 남달리 영특해서 바벨론 나라 미래의 인재로 선발되어 특별 교육을 받는 그룹에 속했습니다. 이들에게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가 제공될 만큼 최상의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출세와 성공이 보장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각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개나 돼지, 맷돌질하는 당나귀로 살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이 본문에 8절에 기록된 말씀처럼“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뜻을 정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자신의 일생의 삶의 모습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잣집 머슴이 주인 집 딸과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가능성이 없음은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리면서 결혼을 허락해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상한 대로 결혼 승낙은 고사하고 주인의 호된 야단과 함께 그 머슴은 주인집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의 딸도 부모 몰래 집을 나와 그 머슴과 함께 먼 곳으로 도망을 가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매일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파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부잣집 딸이라 배운 것이 많았지만 남편은 배운 것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부부는 서로 대화가 되지 않았고, 부인의 마음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인이 남편에게 권면하기를,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이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깊은 산속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목이 말랐습니다. 물을 찾아 계곡으로 내려간 이 사람은, 바위에 고여 있는 물을 발견했습니다. 물을 마신 후, 이 바위에 웬 물이 고여 있을까 생각하며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높은 곳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물망울이 모인 것임을 알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떨어지는 작은 물망울이 단단한 바위를 움푹 파이도록 했고, 거기에 물이 고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물방울이 긴 세월을 두고 끊임없이 떨어졌을 때 단단한 바위에 구멍을 냈다는 것이 그로 하여금 새로운 각오를 하도록 했습니다.“아니다. 

나도 이제부터 공부하자. 무식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아내가 얼마나 답답할까?”그러면서 집으로 달려온 그는 아내에게 배우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나이가 40세였습니다. 훗날 이 사람은 훌륭한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랍비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아키바”라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유태인들은 자녀들이 어른의 말을 알아들을 때쯤이면 이 아키바에 대한 이야기를 꼭 들려준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새 마음, 새 각오 즉 뜻을 정하고 살아간 삶의 결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한 사람의 결심이 때로는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그 사람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결심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뜻을 정하고 살아간 다니엘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대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전 약 600여 년 전에 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특히 다니엘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자로 유명합니다. 

다니엘은 유대나라가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1차 침공 때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는 귀족 출신으로 재주가 있었고, 학문을 많이 닦은 총명한 청년이었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은 바벨론에서도 인정을 받아, 바벨론나라의 국가 관리자 후보생으로 선발되었습니다. 이것은 3년 과정의 학교로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쳐 장차 나라의 일꾼으로 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곳 기숙사의 음식은 왕의 음식으로 영양가가 높고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었습니다. 

함께 있는 동료 학생들은 모두 그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그 음식을 먹지 않고 채소만 먹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들의 결심을 감독관에게 말했습니다. 
“감독관님, 저는 임금님의 음식대신 채소만 먹겠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
“그 음식들은 다른 신에게 바쳐졌던 것이며, 성경에서 먹도록 허락되지 아니한 고기로 만든 음식이라 먹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바벨론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기 전 먼저 그들이 섬기는 우상에게 드리고 먹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는 식용이 금지된 고가가 있었는데, 바벨론은 하나나을 섬기지 않는 나라이므로 이 규례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하나님의 법과 신앙양심을 어기면서까지 육신을 위해 음식을 먹지는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의 말을 들은 감독관은“너희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책임이 내게 있는데, 채소만 먹어 야윈 모습을 왕이 보신다면, 왕의 명령을 어긴 책임으로 내 머리가 위태롭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감독관님, 10일간만 시험을 해보아서 채소를 먹은 우리들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서 그때에 보이는 대로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그렇게 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말대로 10일이 지났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얼굴이 다른 동료들보다 더욱 아름답고 윤택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다니엘은 그곳 학교에서 3년간 채식을 먹으며 성경에서 금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一. 다니엘이 정한 뜻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1. 육신 중심이 아닌 영혼 중심의 삶, 자기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결심한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그들에게 제공되는 음식의 영양분이 풍부하고 입맛에 맞는 고량진미였지만 그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신앙양심에 거리끼는 우상 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에 좋다하여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순간 육신에는 좋겠지만 그것이 영혼에 해가 되어 나를 멸망으로 끌고 가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육와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육신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먹고 마시며, 놀고 즐기기를 좋아합니다. 혼은 지식과 문화를 추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영은 신을 찾고 신과 교통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육신의 욕망은 항상 영혼의 욕망과 대립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도록 합니다. 그 증거를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으므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행복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곧 저주와 불행이었습니다. 무엇이 이처럼 하나님의 법을 어기도록 하여,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원죄의 조상 즉 저주받은 조상이 되게 했습니까?

창세기 3장 6절에 말씀하시기를“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라고 했습니다. 먹음직, 보암직, 실과를 따먹고, 이 모두가 무엇입니까? 바로 육신의 욕망입니다. 이 육신의 욕망이 저주를 받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이 육신의 욕망을 쫓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대게 동물적 욕망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 자기만 위하려는 욕심, 세상의 향락 등입니다. 

이러한 육욕을 따라 살아가면 타락하게 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노아 때의 대홍수 심판, 소돔과 고모라 성의 유황불 심판은 모두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러한 육신의 욕망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죄하며 타락한 사람의 특징은 육신의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동물적인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6절~8절에 말씀하시기를“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왜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사망에 이르게 될까요?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하셨습니다. 육체의 생각은 항상 성령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반항하고서야 어떻게 복을 받고 살겠습니까? 

하나님께 반항하는 사람에 대해 사도행전 26장 14절 말씀에 기록하시기를“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헬라와 라틴세계에 널리 알려진 속담으로, 신을 대적하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가시채란, 끝이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채찍을 가리킵니다. 이 가시채는 밭을 갈 때 소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여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반항하는 육체의 생각은 어떠한 것들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절~21절에 말씀하시기를“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는 이러한 요소가 없습니까? 이처럼 타락한 요소가 내안에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역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내 속의 적들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나를 넘어지게 하는 최대의 원수는 내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잠언 16장 32절 말씀에“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이처럼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영혼이 잘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혼이 잘 된 사람을 사랑하시며 풍성한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요한삼서 1장 2절 말씀에는 영혼이 잘 된 사람에게 범사가 잘 되고 강건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잘된 영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고 섬기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르다가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아래 놓인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지 않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로마서 13장 11절~14절 말씀에 당부하시기를“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이 말씀처럼 살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당부하신 이 말씀이 새해를 맞이한 우리 모두의 결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이 풍상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다니엘은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믿음으로 환경을 이기고자 결심했습니다. 
물고기를 보면,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거센 물결을 거슬러 위로 올라갑니다. 다니엘의 삶은 마치 살아있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다니엘이 처한 환경은 어떤 처지였습니까? 나라가 망할 때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갔습니다. 그곳에서 주어진 음식은 우상 제물이었습니다. 다니엘이 만일 믿음이 약했다면, 처한 형편에 순응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함께 교육을 받는 유대인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만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비록 왕이 하사한 진미라 할지라도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여기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올곧은 믿음, 강직한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 환경과 믿음 사이의 갈등을 겪을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담대한 믿음으로 환경의 위협과 유혹을 이기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1930년 프로펠러 하나가 달린 단말기를 타고 처음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찰스 린드버그입니다. 그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일에 도전 했다가 생명을 잃었습니다. 린드버그는 그 조그마한 비행기를 타고 무려 33시간을 비행하여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이로 인해 세계적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웅이 된 후 파리를 방문했는데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인파가 몰려 왔습니다. 

그때 어느 큰 담배회사 사장이 이 기회를 이용해 자기 담배회사 광고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린드버그에게 다가가 담배 한 개비를 주면서 말했습니다.“린드버그씨! 이것을 손에 끼어도 좋고, 입에 물어도 좋습니다. 한번만 포즈를 취해 주십시오. 그러면 사진 한 장을 찍는 대가로 5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70여 년 전 5만 달러는 대단한 액수였습니다. 그러자 깊은 믿음의 사람 린드버그는 대답하기를“저는 세례를 받은 크리스천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이 말은 파리 신문에 기사로 실렸고, 그 기사는 파리 시민에게 대단한 화제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지만 죽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갑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2장 2절에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 모두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환경의 위협과 유혹을 이기는 결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2장 32절 말씀에“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하셨습니다. 

二. 다니엘이 뜻을 정해 살아간 결과는 무엇입니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자신의 안일이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며 살아갔습니다. 육신의 욕망보다는 영혼의 욕구를 우선하며 살아갔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맞춰 적당히 살아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그 환경을 이기며 살아갔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에게 주어진 결과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러한 다니엘을 남달리 사랑하셨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왕의 진수를 먹은 사람들보다 더욱 건강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남다른 뛰어난 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높여 바벨론의 수석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훗날 간신들의 음모로 굶주린 사자 굴에 던짐을 받았을 때 사자의 입을 막고 다니엘의 생명을 건지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선지자가 되게 하셨고, 그를 통해 다니엘서 라는 성경을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상 드린 말씀처럼 다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삶의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후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우리 모두도 새해에 다니엘의 결심을 본받아 성숙한 신앙인의 자리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과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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