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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소금과 빛이다!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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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금과 빛이다! (마 5:13-16) 
 
 
❚소금과 빛

여러분,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나는 그리스도이다”(I am a Christian)라는 제목으로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표어의 첫 문장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 세 가지 중 첫 번째는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이라는 이름값을 잘 하자”였고,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답게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기억나시지요? 그러면 세 번째 사명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나는 소금과 빛이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하는데 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말이 그리스도인의 세 번째 사명인 ‘세상을 향한 사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 이 두 가지가 바로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주로 ‘빛과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이름에도 ‘빛과 소금 교회’나 한자로 ‘광염교회’도 있지요. 그런데 요즘은 ‘빛과 소금’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어 ‘소금과 빛’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주제도 ‘세상의 소금과 빛’이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늘 본문에 소금이 먼저 나오고 빛이 나중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체육대회를 하면서 ‘연고전’이라고 부르냐, ‘고연전’이라고 부르냐 신경전을 펼치다가 결국 한 해는 ‘연고전’으로, 한 해는 ‘고연전’으로 번갈아가며 부르기로 했다는데, 사실 ‘빛과 소금’이냐, ‘소금과 빛’이냐 하는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성경에 소금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소금과 빛’인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면 먼저 이 두 가지 중에서 ‘소금’에 대해 알아봅시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봉급생활자를 흔히 ‘샐러리맨’(salaried man)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정확한 영어 표현이 아닌 ‘와이샤쓰’처럼 일본에서 만들어낸 국적불명 영어입니다. 아무튼 영어에서 월급을 뜻하는 샐러리(salary)는 ‘소금’을 의미하는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병사들 월급을 소금으로 주었던 데서 유래했는데 당시 소금은 같은 무게의 금과 가격이 같았을 정도로 귀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소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인체에 필수적인 나트륨을 공급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 염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인간은 오래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금은 바다가 있어야만 생산이 가능하고 일부만 암염(巖鹽)이라고 부르는 바위에서 나오기에 지금은 너무 흔하고 값싼 것이지만 고대에는 너무 귀하고 비쌌습니다. 그래서 소금 무역이 가장 중요하고 소금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질 정도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고대로부터 소금은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상징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가장 귀한 존재’고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뜻뿐만 아니라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 속에는 소금이 가진 세 가지 역할이 들어 있습니다.

첫째, 소금은 음식에 맛을 냅니다. 제가 음식을 좀 짜게 먹습니다. 그래서 국이 싱겁다고 소금 좀 달라고 하면 아내가 “건강 생각해서 음식 좀 싱겁게 먹으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요즘 이렇게 염분이 몸에 안 좋다고 건강을 위해 싱겁게 먹자고들 하는데 솔직히 소금이 없어 보세요. 음식에 무슨 맛이 나겠습니까? 삶은 계란에 소금이 없으면 무슨 맛이고, 등심 안심 구워서 소금 안 찍으면 무슨 맛이 납니까? 그래서 소금은 반드시 필요하고 소금이 있어야 음식에 맛이 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맛없는 세상에 맛이 나게 하는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주고, 살 맛 안 나는 세상에 살 맛 나게 하는 존재가 되라는 뜻입니다. 

둘째,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소금을 넣어야 음식이 부패하지 않습니다. 지금이야 냉장고도 있고 좋은 방부제도 많지만 옛날에는 소금이 유일하게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금으로 음식을 저장하는 염장(鹽藏) 기술이 어느 나라나 발달했고, 바닷가가 없는 저 내륙 안동에 안동 간고등어가 나온 이유도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썩어가는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 노릇을 하라는 뜻입니다.

셋째, 소금은 다른 것을 썩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하지만 그 자신이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제사할 때 사용하는 향이나 하나님께 드리는 곡식제사인 소제에는 반드시 소금을 칩니다(출 30:35, 레 2:13). 그래야 그 마음과 헌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민수기 18:19에 보면 ‘영원한 소금 언약’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변질되지 않는 소금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우리가 세상을 썩지 않게 할 사명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도 절대 변하지 말고, 변질되지 말고 순수한 마음과 자세로 우리의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종합해 볼까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은 세상에 맛을 주고, 세상을 부패하지 않게 지켜주고, 나 자신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이 세 가지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사명, 즉 지난주에 말씀드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하는 진짜 크리스천의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끝날까지 변치 않고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은 끝없이 부패하고 썩어갑니다. 왜요? 죄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통령 임기 말이 되자 각종 비리가 쏟아져 나옵니다. 정치권에서는 누가 돈을 주고 누가 받았다고 연일 폭로전을 벌입니다. 정치권뿐입니까? 경제, 사회, 왕따와 청소년 비행 문제 등 신문은 오늘도 각종 더럽고 추악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예전에는 좀 나았나요?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더럽고 냄새나는 일들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속에서 썩어 가는데 어찌 냄새가 안 나겠습니까? 이 썩어가는 모습을 매일 보고 살려니 어찌 사람들이 살맛이 나겠습니까? 뉴스에 보니 소 값 폭락으로 소를 팔아봐야 사료비도 안 나오니 자식처럼 아끼던 소를 굶겨 죽인 농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사람이 한 말이 바로 “정말 살 맛 안 납니다”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 보고, 우리 그리스도인들 보고 방부제 역할도 하고, 살맛도 좀 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나게 하려면, 그리고 방부제 노릇을 하려면 녹아야 합니다.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녹아지는 자기희생을 통해 세상을 살 맛 나게 하고, 썩지 않게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런 사명을 감당해야 할 소금이 녹지 않고, 희생하지 않아서 맛도 잃고,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13절 뒷부분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옛날 이스라엘에서 사용되던 소금은 대부분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은 천일염이 아니라 염분이 있는 늪지 같은 곳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에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순물 속에 섞인 순수 소금은 더 잘 녹아서 먼저 녹아버리고 불순물은 남게 되는데 이 찌꺼기는 짠맛이 없어 아무 쓸모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불순물, 즉 ‘맛을 잃은 소금 찌꺼기’를 어디에 사용했는가? 그들이 살던 집은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는데 그 위에 흙을 뿌려 방수도 하고 열도 막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을 그 지붕의 흙 위에 뿌리면 흙이 더 단단해지고 새는 구멍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헌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붕에 올라가 돌아다니기도 하고 기도도 하고 운동장이나 공공집회 장소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이 소금은 사람들에게 밟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명을 잃어버리면, 스스로 녹아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이렇게 “아무 짝에도 쓸 데 없어” 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밟히는 신세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은 있지만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름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요즘 우리 기독교가, 성도들이 사람들에게 밟히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밟냐?”고 억울해하기 전에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인의 사명,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잃고, 짠맛을 잃고 ‘이름만 그리스도인, 무늬만 크리스천’이 되면 교회 교적부에는 “우리 교회 성도입니다” 하고 이름이 남아있을지 몰라도 정작 하나님께는 “아무 쓸 데 없어” 가치가 없어 버림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꼭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있음으로 해서 세상이, 가정이, 내가 속한 모든 곳에 살맛이 나게 되고, 썩지 않게 만들기 바랍니다. 잘 녹아서, 희생해서 이 소금의 사명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 비교할 수 없는 큰 상급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반대로 이름만 그리스도인이요 성도인데 이 사명 감당 못하고 맛을 잃은 소금, 가치 없는 소금 되면 버림받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도 버림 받지 말고 하나님께 꼭 필요한 존재 되기 바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두 번째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입니다.

빛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명확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앞서 소금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면 빛은 단 하나, 어두움을 밝혀 환하게 만드는 역할과 그렇게 함으로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14절에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을들은 보통 산 위에 지어졌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 역할을 잘 하면 이 세상은 어두움에 가려지지 않고 환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은 악의 세력, 죄의 영역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얼마나 많은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악이 지배하고 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빙산의 일각처럼 그 중 대부분은 드러나지도 밝혀지지도 않고 어두움 속에 숨겨지고 맙니다. 아무리 단속을 하고 법을 강화해도 이것을 다 드러낼 수도, 밝혀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역할을 하면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임이 드러나고, 악은 악임이 밝혀지고, 반대로 선한 것, 아름다운 것도 다 밝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여기서 ‘말’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처럼 곡식을 재는 나무 그릇을 뜻합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쌀 팔아 와라”고 심부름 시키시면 “쌀을 돈 받고 팔라”는 뜻이 아니라 “쌀 사오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쌀가게 가서 됫박으로, 말로 재서 사오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벽을 파서 만든 ‘등경’ 위에 둡니다. 

그래야 빛이 좀 더 높아져 멀리 비치게 됩니다. 하지만 등불을 ‘말’로 덮으면 빛이 가려지지요. 세상에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지 말 아래 두는 사람이 없다는 말씀은 교회와 성도들의 개방성을 뜻합니다. 이 세상을 향해 빛의 사명을 하려면 이런 저런 형식이나 고집에 얽매이지 말고, 또 폐쇄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의 마지막 결론이 16절에 나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세상 사람들 앞에 빛으로 비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뭘 봐야 합니까? ‘착한 행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 바른 삶을 보고 “야, 과연 그리스도인답구나” 해야 되고, 나아가 “저런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로구나” 하고 인정해서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고는 우리는 절대 세상의 빛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이같이 빛을 비추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러려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바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습이 본이 되어야 합니다.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녹아지고 희생해야,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그래야 우리를 인정해 주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게 됩니다.

말씀 맺습니다. 올 2012년 우리 교회 표어, 다시 한 번 제창합니다.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금과 빛” 이 표어 꼭 잊지 마시고, 올 한해, 아니 영원토록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녹아지고 희생하여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 다 되기 바랍니다. 그래야 “저 사람이 있어서 살맛이 난다”며 세상 사람들이 감동하고 인정해서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나고,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고, 그래야 우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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