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히 11:1-3)

첨부 1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 히 11:1-3)

지난 주중에 사경회 부흥집회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왔습니다. 혹독한 감기의 뒤끝이라 목소리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그래도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여러분들이 부족한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 그곳에 모인 여러 교회에서 오신 성도들을 보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을 믿고, 또 서로 사랑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모습을 보고,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정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쉬는 중에, 지나간 TV 프로그램 중, 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잔잔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MBC 방송에서 방영했던 ‘남극의 눈물’이라는 프로인데, 2년여 동안 방송국 스텝들이 지구의 끝 남극대륙에 가서 찍은 것들을 두 편 연달아 보았습니다. 

그 엄청난 추위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어쩌면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인데 그곳에서 2년여 간을 보내며, 소중한 영상을 찍은 제작진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 카메라 감독은 얼굴에 동상이 걸렸는데, ‘야,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내용을 보기 시작했는데,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삶을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극한 상황에 적응해 가며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온 것들이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영상들을 보며 가장 크게 생각된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오묘함이었습니다. 

그 극한 상황의 극지에도 생명을 살게 하시고, 유지하게 하시고, 이어가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이 세상의 주관자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과 무분별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질서가 점차로 파괴되어져 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연을 보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세계와 이 세상의 생명체들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 충만하신 하나님, 지금도 살아서 이 세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오늘 성경말씀 히브리서 11장은 성경 전체에서 ‘믿음장’이라고 불리우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 앞에 중요한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히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 말씀은 신약 성경에 세 번 나옵니다. 

(롬1:17)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갈3:11) “...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리고 오늘 말씀 앞의 히10:38입니다. 

구약에서의 말씀도 같은 결론으로 갑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구약성경의 계명은 613개입니다. 그 중에 ‘~을 하지 말라’는 365개, ‘~을 하라’는 248개입니다. 

이 613개의 계명은 주의 백성들이 살아갈 삶의 규범입니다. 그것들을 더 함축성있게 줄여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 ‘십계명’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을 6개의 교훈 안에 요약하였고, 미가는 다시 3개의 교훈으로 함축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그것을 한 마디로 설명합니다. (합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즉 ‘믿음으로 살아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만드신 그분이 살아계시고, 이 순간 나와 함께 계시고, 그분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입니다. 믿음은 실존하시는 하나님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희망했던 것들에 대한 보증(assurance)’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무엇을 얻고자 했을 때 그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꼭 그것을 주신다고 자기 마음에서 보증하는 그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또한 한편으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바랄 수 없는 중에서 바라는 것’을 말합니다. -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미지의 땅으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는 그 땅에 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주께서 가라고 하시므로 떠납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무모하리만큼 담대한 아브라함의 행동, 그것이 믿음입니다. 

어느 믿음이 좋은 처녀가 정말 멋있는 총각을 만났습니다. 서로 좋아지내고 결혼까지 약속을 하고 그 집에 갔더니. 글쎄 이걸 어쩝니까? 그 남자가 알고 보니 아주 철저한 보살 집 아들이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이제는 돌아설 수도 없고 진퇴양난입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결혼을 하고, 남편의 고향인 원주로 가서 가정을 꾸몄습니다. 이 며느리가 처음에는 시어머니 몰래 교회 나가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어느 날 드디어 시어머니가 알게 되어 난리가 났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말합니다. “10년만 기다리자 그러면 어머니마음이 수그러질 것이니 그때 마음대로 신앙생활하면 되지 않아” 

이 남편 속셈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0년쯤 지나면 포기 하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몸은 교회에 못 나갔지만 속장에게 부탁해서 주보를 매주 받아서 집에서 혼자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부인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 하고 있었는데 속장을 통하여 십일조는 꼬박꼬박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 후 남매의 자녀를 낳았는데 이 아이들을 교회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그 후 크리스마스 행사나 어떤 행사가 있을 때는 꼭 목사님이나 담당 선생님께 부탁을 해서 순서에 꼭 넣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항상 시어머니를 보냅니다. 이 시어머니 처음에는 교회가 못마땅해서 안 가시려고 하다가 며느리가 ‘저는 바빠서 못가니 어머니가 가셔야지요, 아무도 안가면 아이들이 섭섭하잖아요’ 라고 하면서 권면합니다. 손주들을 사랑하는 시어머니는 싫어도 할 수없이 교회에 갑니다. 처음에는 저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손주들 재롱 피우는 것을 보고 점점 앞으로 가셔서 나중에는 손뼉을 치시며 즐거워 하셨습니다. 그러길 10년, 세월이 흘러 10년째 되는 그 날, 부인은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남편에게 정색을 하고 앉아서 묻습니다. “여보 당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세요?”, 갑자기 물으니까 남편 대답이 “우리 결혼기념일? 당신 생일? 장모님 생신?”, 나중에는 “내 생일?”, 어이가 없는 이 아내, “오늘이 바로 당신이 신혼 때 약속한 10년째 되는 날이에요. 그러니 이제 허락하세요”, “무엇을?”, 까맣게 잊고 있던 남편이 어리둥절합니다. “10년만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이제는 교회에 나가겠어요. 

그 동안 나는 나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힘들었어요. 그러나 기다렸어요, 오늘을 위해서.... ”, 남편이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동안 신앙생활을 안 했으니, 다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 당황한 남편은 어머니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시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얘! 한 사람이 예수 믿는데도 우리가 이렇게 집안이 잘 되는데 이왕이면 우리 식구 다 가서 예수 믿고 모두 잘살아 보자꾸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인은 10년을 하루같이 기도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지 했더니 온 가족을 구원 시켜주시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1절에서의 ‘증거’라는 말은 희랍어로 ‘엘렉코스’라는 말인데, 이 말은 ‘확신’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내적인 확신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 심판이 내려서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노아는 아무런 징조도 볼 수 없었습니다. 노아의 눈에 비가 올 징조는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믿음의 눈을 통해서 비가 철철 내리고 온 땅이 물에 잠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미션스쿨인 어느 고등학교에서의 일입니다. 교목이 학생들에게 채플(학교예배)에 출석할 것을 열심히 권고하는데 한 학생이 도무지 응하지를 않습니다. 답답해진 교목은 그 학생을 불러 사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군은 왜 그렇게 예배출석을 거부하는가?”, 학생이 대답하기를, “목사님, 저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예배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제법 그럴 듯한 논리입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목사님이 제안을 했습니다. “학생! 지금 한 말을 거꾸로 한번 해볼 수 없겠나?”, 잠시 머뭇거리던 그 학생이 다음과 같이 중얼거렸습니다. “예배에도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볼 수가 없다?”, 목사님은 학생을 향하여, “바로 그걸세. 이제 예배에 참석하게나”라고 권면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전도를 하면 사람들은 자꾸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공식은 이와 다릅니다. 성경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하지 않고 믿는 것이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11장에 보면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으면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려고 하지 마십시오. 환상은 안 보아도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십시오. 노아가 청명한 날씨만 보았다면 방주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도 가도 끝없는 벌판을 보았다면 행진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의 벽만 보았다면 행진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보이는 것들은 우리를 실망시킵니다. 보는 것은 우리를 좌절시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떠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때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을 비로소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이것을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2절은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의 선배들이, 믿음의 조상들이, 혹은 믿음의 장로들이 이 믿음으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2절에서의 ‘증거’라는 말은 희랍어로 ‘말튜레오’라는 말인데, 이것은 ‘법적인 증거’라는 뜻입니다. 법적인 증거로 채택된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심증이 아니라 물증입니다. 선진들이 믿음으로 증거를 얻었다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 확실하고 분명한 결과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분명하고 확실한 증거를 가져왔다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이 증거란 말이 ‘Good Report\'라고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히11장에는 이 ‘증거’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합니다. 11장의 결론 부분인 39절은 이 장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증거를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12:1에서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가르칩니다. 

아벨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것이 증거입니다. / 노아가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더니 그 홍수 심판 속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증거입니다. /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떠났더니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증거입니다. / 모세는 믿음으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마침내 백성들을 해방시켰습니다. 증거를 받았습니다. /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돌았습니다. 그리하여 성이 무너지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받은 증거는 분명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놀라운 증거를 가져옵니다. 믿음은 위대한 업적을 성취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1492년 8월 4일에 콜럼버스는 88명의 선원을 모집하여 3척의 작은 배로 신천지를 발견하겠다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항해하는 70일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반란과 생명의 위협과 돌아가자는 선원들의 주장 때문에 온갖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때 콜럼버스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 세계를 보여주실 것이다” 

마침내 10월 12일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신념과 신앙은 다릅니다. 신념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분명한 믿음의 대상이 있는 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우리를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 545장)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 버리고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삶이 이것을 보증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올 한 해 굳건한 믿음으로 승리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