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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전도회주일] 생명 지킴이 여성 그리고 어머니 (창 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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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지킴이 여성 그리고 어머니 (창 2:18-25)
   
오늘은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여전도회주일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여전도회는 평양의 널다리골 교회에서 최초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널다리골교회가 후에 판교교회라고 하였고 평양중앙교회라고 하였고, 장대재교회로, 유명한 장대현교회가 되었습니다. 이 널다리교회는 1892년 4월 최치량의 여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명한 마포삼열목사님이 개척하신 평양의 최초의 교회가 널다리골교회였습니다. 

이 널다리골 교회에서 1898년 2월 20일에 부인전도회가 조직되었으며, 이신행여사가 회장이 되어 무려 25년간 재임하였으니, 가장 오랫동안 회장으로 봉사하신 분입니다. 이 전도회에서는 매주일 엽전 한 푼씩 모아서 그들 중에 한 사람을 평양에서 가까운 순안지방에 보내어 전도하게 하였습니다. 회원이 증가하면서 그동안 모은 한화 600량- 미화300달러를 가지고 전도부인을 파송하고 장대현교회를 건축하는데 헌금하여 큰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 의주교회에서 여전도회를 조직하였고, 1904년에는 평북 초산읍교회, 강계읍교회, 황해도 황주읍교회에서 부인전도회가 조직되었고, 1908년에는 평양성 장로교회 연합부인전도회가 조직되었고, 이어 남평안여전도회연합회가 조직되면서 전국적인 여전도회로 확산되어갔습니다. 1928년 9월 9일에 대구 신성교회-서문밖에 교회에서 전국여전도회연합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이신행권사님은 1893년도 예수 믿기 시작하신 평양의 최초의 여신도였습니다. 이권사님은 선교사님을 도와 교회내의 모든 봉사를 담당하였고, 매주일은 엽전을 모았고, 성미를 모아서 힘들게 목회하시는 교역자들을 도와드렸습니다. 1912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었는데, 그 때 총회를 조직한 것을 기념으로 선교사 3분을 중국 산동성에 파송하는데 여전도회에서 한 분을 책임지기로 하였습니다. 

평양에 두 번째로 설립된 교회는 여자교회인데, 널다리골교회가 세워진지 1년 후인 1894년에 사창골에 세워진 여자교회였습니다. 널다리골교회는 남자들만 모이고, 사창골에는 여자들만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여성들이 남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널다리골교회가 장대재로 이사할 때에 남자들만 모이는 교회가 여자교회와 함께 모이고 사창골교회는 장대재교회에서 분립하여 남자와 여자들이 함께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평양에는 남문밖교회, 산정현교회, 창동교회, 서문밖교회들이 설립되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교회가 설립되면, 바로 이어서 여전도회가 조직되었고, 여전도회가 교회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휴전 후에 서울로 올라오신 성도들이 예배드림으로 1953년 8월 2일에 설립되었는데, 여전도회는 1954년 2월 14일에 조직되었으니, 교회에서 가장 일찍 조직된 선교회가 되었습니다. 초대회장에 이정인 부회장에 백학수, 서기에 이춘심 부서기에 정영옥 전도부장에 원성녀 조직부장에 박제숙 종교부장에 양규연씨가 되었고, 한 달 후에 여전도회 헌신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에는 헌신예배를 드리면 서기가 나와서 호명하였고, 그러면 자기가 암송하는 성경구절을 암송하여 출석을 확인하였습니다. 저희 어렸을 때에도 청년회 헌신예배를 드리면 성경을 암송하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한 주간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제6일에 가축과 땅의 모든 짐승을 지었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의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시는데, 사람을 지으실 때에 먼저 남자 아담을 지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네페쉬’라고 하는데, 네페쉬는 사람의 몸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근원을 말합니다.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동방의 에덴동산에 두시고, 동산을 경작하며 동산을 지키고, 모든 만물에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모든 짐승에게 무엇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는가 보시려고,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 앞으로 모든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로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 이끌어가셨고, 아담은 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아담은 짐승들과 새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면서 모든 짐을 유심히 보았지만, 자기와 어울리고 교제하고 함께 있을 그런 무엇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짐승이 지나가고 새들이 지나가도 아담은 자기 혼자였고, 외롭고 쓸쓸하였습니다. 아담에게 어울리는 짝이 없으므로 외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모든 짐승과 새들이 암수가 있어 함께 어울려 지내는데, 자기만이 혼자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아담을 지켜보다가 하시는 말씀이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고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창2:18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동물들 중에는 아담과 어울리고, 교제하고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아담은 보통 잠에 드는 것이 아니라, 깊은 잠이라고 하였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잠에 떨어졌다는 말입니다. 70인역 성경에서 히브리어의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면서 황홀경의 상태, 전혀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상태인 ‘엑스타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꺼내시고, 대신 살로 그곳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갈빗대를 가지고 여자를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을 유심히 살펴보시고, 돕는 배필로 여자를 지으셨으니, 남자를 만들 때보다는 더 깊이 생각하시고, 남자에게서 보이는 약점이나 보완할 점을 파악하시고 여자를 만들어 돕는 배필이 되게 하셨으니, 훨씬 잘 만들고 정밀하고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냥 흙으로 만든 아담보다는 아담 안에 있던 강하게 만드신 갈빗대를 가지고 만들었으니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의 어떤 연약한 부분이라도, 남자의 갈빗대보다 강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여성들은 강합니다. 인내심이 강합니다. 모성애가 강합니다. 강한 것을 찾아보라고 하면 여자들의 어느 것도 남자들보다 더욱 강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습니다. 이 말은 신부를 신랑에게로 데리고 오는 신부의 아버지와 같은 모습니다. 하와를 아담에게로 데리고 옵니다. 그 때 마침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담이 자기는 자기 혼자 있어야 하는 존재로 알았는데, 마침 자기에게로 걸어오는 여자를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창2:23은 정망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문장은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시적인 형태의 문장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면 시인이 됩니다. “뼈 중의 뼈”와 “살 중의 살”이란 말이 병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자라 부르리라”는 말과 “남자에게서 취하였는즉”이라는 말은 교차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이라는 말은 “이것은”이라는 말입니다. 앞에 나타난 여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원문 성경에는 있는 한 글자를 번역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파임”이라는 말인데, 이 말이 중요합니다. 하파임이라는 말은 “at last”, ”드디어”, “마침내”라는 말입니다. 아담은 자기와 어울리고 함께 동행하고 교제할 수 있는 자기와 똑같은 사람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살 중의 살, 내 뼈 중의 뼈로구나”라는 외침입니다. 

새번역이 시적인 감흥이 나도록 잘 번역하였습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아담이 얼마나 학수고대하였으면 “드디어 나타났구나, 이제야 나타났구나”라고 탄성을 지르겠습니까? 

이제껏 많은 동물을 보았지만, 하와는 본질적으로 그들과 다른 존재였습니다. 아담은 자기 앞에 나타난 하와를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여자라고 하겠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보면 재미있습니다. 남자는 ‘이쉬’라고 하고 여자는 ‘이솨’라고 합니다. 이 단어가 말하는 바는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인간성을 지닌 존재이며 가장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지어준 것은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존재이지만, 이름을 받는다는 말은 이름을 지어주는 이에게 속하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성의 구별은 상호 보완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지으실 때에 먼저 남자를 지으시고, 유심히 살펴본 결과 남자 혼자로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만들 수 없고, 남자 혼자로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남자 혼자 있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자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남자가 혼자 지내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러기 아빠’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혼자 있었던 동안 그의 앞에 동물들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혼자 있다 보면 잘못하면 동물적인 가치관에 빠지고, 보이는 것이 동물들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동물적인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혼자 있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 나는 혼자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잘못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면서 타락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는 오늘 돕는 배필이라는 영원한 진리에 대하여 깊이 상고하려고 합니다.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는 말은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 성경에서는 “그러나 아담에게 적합한 조력자가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지나가는 여러 동물들 가운데서 자신에게 적합한 돕는 자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뜻입니다. 아담 혼자 지내는 것보다 하와와 함께 지내는 것은 보다 나은 정도가 아니라, 그래야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돕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라고 하고, 돕는 배필이라고 하면 ‘에제르 네게드’라고 하는데 남편에 대한 아내의 마땅한 역할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독처하는 것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외롭다거나 부족한 정도가 아닙니다. 아담에게는 돕는 배필이 있어야 완전하고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돕는” “돕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제르-Ezer”라는 말입니다. 공동번역에서는 “거들다”고 했습니다. 돕는 배필이란 말은 “거들 짝”이라고 했습니다. “거들어 준다”는 말도 재미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알맞은 짝”이라고 했습니다.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의미라고 봅니다. 

NIV 성경에는 Helper Suitable 이라고 하여 “합당한 협력자”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의 “에제르”라는 말은 돕는다, 원조하다, 지원하다, 구조하다는 말로, 군사적인 지원을 나타내는 강력한 도움을 말합니다. 에제르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미합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지고 온 사람입니다. 이 말은 군사적인 도움, 원군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확실한 승리를 가져다주는 원군을 의미합니다. 돕는다는 말에는 이렇게 귀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조금 도와주고 협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생의 반려요, 하나님의 도우심이요, 승리를 가져다주는 원군과 같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어떤 사람을 돕는다는 것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도움을 받는 사람보다 더 강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남자의 힘만으로는 인생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실 때에 새번역에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새번역 창 2:18)라고 하셨습니다. 

알맞은 짝이라고 하여, 어울리는 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동일성의 문제가 아니라, 보완성을 의미합니다. 

“여성과 초대 기독교”라는 책이 있습니다. 장신대의 서원모교수가 쓴 책입니다. 이 책에서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일명 크리소스톰)이라는 교부가 쓴 창세기 강해를 인용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여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부터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 이전에는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존재였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여자를 지으실 때에 단순히 돕는 배필이라고 하지 않고, “그에게 걸맞은 돕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와 여자는 단순히 돕는 사람이 아니라, 걸맞고 어울리고 함께 가야 하는 배필이라고 하셨습니다. 

황금의 설교가라고 하던 요한 크리소스톰은 “여자는 단순한 돕는 배필이 아니라, 남자와 걸맞고 어울리고 함께 가야 하는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는 돕는 배필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는 “케네그드”라는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그 말을 직역하지 몫하였습니다. 그 말은 “그에게 어울리는, 걸맞은”이라는 말입니다. 20절 하반절에서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그와 닮은, 어울리는, 걸맞은 돕는 자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고 불순종한 이후에 여자에게 책망하시면서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3:16)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과거의 원죄를 해결하고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실낙원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복낙원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에 본래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원리를 가지고 살아가야 온전한 가정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먼저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보다 돕는 사람이 훨씬 더 강하다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노엘 파이퍼라 분은 존 파이퍼 목사님의 부인이신데, 목사님 못지않게 활동하시고 많은 저술로 아주 좋은 책을 남겼습니다. 그 사모님이 쓰신 책 중에 “불멸의 신앙, 한계를 뛰어남은 믿음의 여인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책에서 5명의 위대한 여성을 소개합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부인 사라 에드워즈, 아랍인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일생을 마친 릴리아스 트로터, 중국 선교사로 어린 아이들을 공산 혁명에서 살려낸 글래디스 아일워드, 그리고 한국의 안이숙여사, 아프리카 콩고에서 선교한 헬렌 로즈비어 이상 5명에 대하여 그들의 신앙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라 에드워드라는 사모님은 조나단 에드워드의 부인으로 미국의 대각성운동을 주도하시는 남편 조나단을 도와서 엄청난 사역에 뛰어 들었습니다. 남편 조나단이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천연두 예방주사를 맞았는데, 아직도 의학이 발달되지 않은 때여서 그만 천연두에 걸려 죽었습니다. 1703년에 태어나 1758년 5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모님도 49세 이질로 죽었습니다. 오늘과 같으면 오래 사실 분들인데, 의학이 발달되지 아니한 때에 살았기에 일찍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정말 사랑하였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목사관에는 항상 손님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 여행 중에 있는 성도들이 목사관에 와서 자고 먹고 신세지고 갔습니다. 사모님은 한 번도 싫다는 내색도 없이 그들을 섬겼습니다. 대각성운동을 전개하시는 남편을 따라 수많은 사역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사라는 아내이며, 엄마이며, 여행객들이 안주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에드워드 부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부부의 경건한 삶을 배우려고 수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을 영접하고 먹이고 입히면서 사람을 길렀습니다. 

조나단 에즈워드 목사님은 어거스틴과 칼빈 이후에 나타난 뛰어난 신안이요 신학자요, 목회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 사라 에드워즈는 남편에 못지않게 뛰어난 분입니다. 조나단과 사라 사이에는 11명의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1900년에 윈십(A. E. Winship)이라는 분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을 조사하였습니다. 1400명이 넘는 에드워즈의 후손으로 대학총장 13명, 교수65명, 변호사 100명과 법과대학장 1명, 판사 30명, 외과의사66명과 의과대학장 1명, 국가 공무원80명, 그 중에 미국상원의원 3명, 대도시의 시장이 3명, 주지사3명, 미국 부통령 1명, 재무부장관 1명이 나왔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들이 쓴 책만도 135권에 달하고 있습니다. 18개의 신문사 편집인, 해외파송 선교사 100명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연구보고서를 내면서 “사라 에드워즈만큼 한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어머니가 또 있을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여전도회원들은 생명 지킴이들입니다. 가족의 생명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생명을 지켜나가는 이들은 여성들이요, 어머니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에서 앞장 서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들이 여성들입니다. 돕는 배필로 부르심을 받은 여성들은 오늘 우리 사회가 비인간화되어가고 타락해가는 사회를 막아서면서 충성하셔서 주님 앞에서 많은 칭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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