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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교회답게 1 (행 1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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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교회답게 1 (행 12:1-12) 
 
  
❚교회론이 중요합니다

오늘 설교를 마친 후 부르게 될 찬송은 208장 <내 주의 나라와>입니다. 이 찬송의 1절 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이 가사를 부를 때 마다 참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낍니다.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주와 그 전 주 설교를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또한 내가 다니는 교회, 내가 섬기는 교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내가 우리교회 성도로서 효자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순히 내가 다니는 교회기 때문에 우리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찬송 가사처럼 우리 교회가 “주님이 피 흘려 사신 교회”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신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값을 주고 사신 교회인데 어떤 값이냐? 주님의 피값입니다.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흘려 사신 고귀한 교회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이 피값 주고 교회를 사셨다”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집니다. 그만큼 교회는 소중하고 값진 것입니다. 세상 어느 장소보다, 세상 어떤 것보다 가장 귀하고도 귀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저는 해마다 연초에 ‘교회론’(敎會論)에 대한 설교를 꼭 합니다. 왜일까요? 그만큼 올바른 교회론에 입각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론이 바르지 않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교회에 실망해 떠나는 성도나 이유 없이 여러 교회를 떠도는 성도가 나오게 됩니다. 또한 교회를 어지럽고 힘들게 하는(=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힘들게 하는) 성도가 생기는 것도 교회론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요즘 한국교회를 위협하는 신천지나 안상홍 증인회 같은 이단 사이비가 판을 치는 이유도 다 올바른 교회론에 입각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 위해 반드시 바른 교회론을 세워야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사도행전 12장을 통해 올바른 교회론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시리즈 설교의 제목은 “교회를 교회답게”입니다. 남자는 남자답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듯, 어른은 어른답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듯, 하나님의 교회는 참으로 교회다워야 합니다. 이 시대에 교회답지 못한 교회도 엄연히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이 피값을 주고 사신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지, 어떤 교회가 진정 이 시대에 교회다운 교회인지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교회를 통해 알아보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본문 사도행전 12장 1~12절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서 우리 교회가 진정 교회다운 교회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오늘 본문에 나오는 교회는 바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 태어난 교회인데 이 교회를 처음 세워진 최초의 교회라고 해서 ‘초대교회’라고 부릅니다. 또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라 해서 ‘예루살렘 초대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미 사도행전 2장에서는 이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상세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참으로 놀라운 교회입니다. 정말 다이나믹(dynamic)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힘 있는 교회입니다. 이 초대교회는 말씀과 교제와 기도에 힘쓰고 모든 재산을 나누어 쓸 정도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영감 있는 예배와 찬양이 살아있고 안 믿는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교회였기 때문에 구원 받는 사람의 수가, 성도의 수가 날마다 늘어나 큰 부흥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초대교회에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지요? “좋은 일이 많으면 마가 낀다”는 뜻인데 이 말이 생각해 보면 참 성경적인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 마(魔) 자가 ‘마귀 마’ 자거든요. 그러니 좋은 일, 기쁜 일이 많으면 마귀가 낀다는 뜻 아닙니까? 정말 이 말처럼 마귀사탄은 교회가 잘 되는 꼴, 성도가 잘 되는 꼴을 못 봅니다. 그래서 교회에, 성도들에게 좋은 일이 많으면 꼭 마귀가 나서서 딴지를 걸고 시험 들 일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나 성도들에게 좋은 일이 많아서 요즘 우리 교회 모습처럼 교회가 부흥하고 분위기가 좋아지면 꼭 시험 들 일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 반드시 기도하고 영적으로 긴장하지만 잘 나갈 때 영적으로 긴장이 풀어지고 느슨해져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잘 나갈수록 더 “넘어질까 조심하며” 이 시험을, 훼방꾼 마귀의 방해를 잘 이겨내면 더욱 더 잘 되지만 자칫 그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마귀의 훼방에 넘어가면 교회에 큰 시험거리가 생기고 성도들도 큰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너무 능력이 넘치고 날마다 부흥하고 잘 되니까 마귀가 방해를 하는데, 그 방해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박해(迫害)입니다. 마귀는 늘 어떤 나라에 복음이 전해지고 흥왕하면 그 나라의 위정자나 권력자들을 통해 큰 박해를 일으키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합니다. 우리나라도 초창기 복음이 들어왔을 때 임금이나 위정자들을 통해 큰 박해를 일으켜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습니다. 

마귀가 예루살렘 초대교회도 핍박과 박해를 통해 훼방하는데 사도행전 3장과 4장에 보면 곧바로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어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고, 절대 예수라는 이름을 퍼뜨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풀려납니다. 또 7장에는 초대교회가 세운 일곱 집사 중에서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하고, 8장에 가면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 사울로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본문인 12장 1절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여기 보십시오. 헤롯 왕, 이 헤롯은 대(大) 헤롯, 즉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할아버지 헤롯이 아니라 그 손자인 아그립바 1세를 가리킵니다. 이 헤롯 아그립바가 마귀의 사주를 받아 초대교회를 핍박하게 되는데 이 핍박 때문에 야고보가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과 야고보 형제 중 하나인데, 늘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제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헤롯 아그립바가 이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뻐합니다. 

남이 죽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네요. 사람이 악해지면 이렇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고 전하는 기독교인들을 보고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하며 너무 미워했습니다. 자기네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전하니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눈엣 가시 같은 존재들이었는데 임금이 알아서 죽여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헤롯 아그립바는 “옳다구나, 이번이 백성들에게 인기를 끌 절호의 찬스다” 하고 베드로도 잡아들인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엄중하게 지키기 위해 옥에 가두고 군인 넷씩 네 패, 그러니까 도합 열여섯 명이나 지키게 한 것입니다. 한 사람 지키는데 열여섯 명이나 군인을 동원한 것을 보면 헤롯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가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입니다.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 때는 사형집행을 못 하니까 유월절만 지나면 사형집행을 하려는 것이지요. 이제 바야흐로 초대교회와 그 지도자인 사도들에 대한 본격적인 핍박과 박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선교하는 교회, 박해 받은 교회

그런데 여러분, 오늘 설교제목이 무엇입니까? “교회를 교회답게” 즉 어떤 교회가 진정 교회다운 교회인가? 이 질문에 대한 첫 번째와 두 번째 답이 여기 나옵니다.

첫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이 초대교회처럼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초대교회가 왜 이렇게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선교하고 복음 전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초대교회가 선교를 안 하고 복음을 안 전했다면 박해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재판도 하고 “좋은 말로 할 때 복음 전하지 마라, 예수의 이름을 퍼뜨리지 마라” 하고 경고하지 않습니까? 

또 사도행전 7장에도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하자 유대인들은 “귀를 (틀어)막고”(7:57) 돌로 쳐 죽입니다. 듣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초대교회가 박해가 두려워서 적당히 타협하고 조용히 자기네들끼리만 예수 믿고 살았다면 핍박은 없었겠지요. ‘적당히’ 믿고 ‘적당히’ 교회 다니고 끝난다면 아무 일도 없을 텐데 경고를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부득부득 복음 전하고 선교하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 기독교는 바로 이런 종교란 말입니다. 

교회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구원 받는 길이 예수님 밖에 없는데,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핍박 때문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라고 고백한 것처럼 곧 죽어도, 목에 칼이 들어오고 옥에 갇혀도 안 전하고는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깨닫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반드시 선교해야 합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복음 전해야 교회다운 교회요, 성도다운 성도인 것입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는 전교인 전도작정을 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전 교인이 457명을 전도하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물론 이 숫자대로만 전도한다면 우리 교회에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겠지요. 하지만 저는 솔직히 좀 실망했습니다. 우리 교인 숫자가 얼마인데, 항존직만 해도 얼마인데 한 사람이 한 명만 전도작정 해도 천 명은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복음 안 전하고 전도 안 하면 교회다운 교회 아닙니다. 전도 안 하면 성도다운 성도 못 됩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명심하시고 아직 전도작정 못 한 분은 올해는 나도 꼭 한 영혼 이상 전도하겠다 결심하고 이제라도 전도작정 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그래야 성도다운 성도입니다.

둘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박해 받는 교회, 핍박이 있는 교회’입니다. 왜 초대교회가 박해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앞서 나온 대로 복음 전하는 사명 감당하다가, 유대인들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복음 전하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왜 능력을 잃어갈까? 교회는 많고 성도도 여전히 많은데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핍박과 박해가 없고 오히려 누리고 군림하는 인상입니다. 교회 무시 못 합니다. 선거철이 되면 반드시 교회부터 와서 인사합니다. 

그만큼 교회가 힘 있는 교회, 센 교회가 된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긍정적인 측면은 있지만, 혹시나 교회가 적당히 타협하고 누리고 힘을 보여주려는 모습 때문은 아닌가 걱정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돌아봐야 합니다. 성도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이 없다? 예수 믿는 데 반대가 없다? 저항이 없다? 혹시 내가 적당히 타협하며 예수 믿기 때문은 아닌지, 뭔가 문제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마지막 세 번째로, 교회다운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중보하는 교회’입니다. ‘중보기도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5절부터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교회와 온 성도가 어떻게 합니까?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그렇습니다. 박해가 일어나고 베드로가 옥에 갇혀 사형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교회에 이렇게 큰 위기가 닥치고 성도들에게 문제가 생기니 교회다운 교회는 무엇을 하더냐는 말입니다. 온 성도가 힘을 모아 기도합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교회가 사명을 잘 감당하는데 왜 문제가 없겠습니까? 왜 마귀사탄이 훼방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 위기가 닥치기도 하고 시험 들 일도 생기고, 성도들 개인이 힘든 일을 겪기도 합니다. 병들고, 사업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가정에 위기가 닥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정말 교회다운 교회는 모든 논쟁과 말을 중지하고(국가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딱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온 교회가 간절히 중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24시간 기도가 끊이지 않고, 특히 중보기도가 24시간, 단 한 순간도 끊이지 않는 교회라야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그런 기도가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 6절에 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를 지키는 군인들이 16명인데 아예 베드로를 쇠사슬로 묶어놓고 두 명이 딱 그 옆에 붙어서 꼼짝 못하게 지킵니다. 또 밖에서도 파수꾼들이 지킵니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히 잠든 베드로의 믿음도 참 대단합니다. 베드로가 깨보니 이미 쇠사슬이 풀렸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11~12절에 보니 정신 차린 베드로가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도우신줄 깨닫고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이 집 다락방이 바로 예루살렘 초대교회였는데 거기 가보니 여러 사람이 모여 자기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깨닫게 된 것이지요. “아, 이 기적이 일어난 게 바로 성도들의 중보기도 덕분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의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켜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삶이 무거운 쇠사슬에 묶이고, 건강의 감옥, 물질의 감옥, 가정의 문제에 갇힌 성도가 풀려나고, 넘어진 성도가 다시 일어나고, 교회와 성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 내 문제가 해결된 것이,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이 다 성도들의 기도의 힘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 되기 바랍니다. 성도가 많이 모이는 큰 교회라고 해서 다 교회다운 교회는 아닙니다. 좋은 건물이나 시설을 가진 교회라고 해서 다 교회다운 교회 아니요, 예산이 많거나 지역에서 힘이 있어서 사람들이 무시 못 하는 교회라고 다 교회다운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선교하는 교회, 복음 전하는 교회입니다. 

그러다가 박해도 받고 어려움도 생기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복음의 본질을 적당히 타협하지 않는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무엇보다 기도하는 교회요 기도를 통해 날마다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다운 교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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