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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노라 (출 25:3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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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노라 (출 25:31-40) 


오늘 설교가 좀 딱딱할 것 같아서 재미있는 유머로 시작할까합니다. 조간신문을 보던 남편이 자신이 산 주식의 주가가 떨어졌다며 불평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옆에서 요즘 다이어트가 잘 안 된다고 짜증을 냅니다. 그러자 남편은 긴 한숨을 쉬더니, 주식 시세를 보다 말고 불쑥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투자한 것 중에 두 배로 불어난 것은 당신 밖에 없구려~!!” 범사가 안 되는 것 같아도 잘 찾아보면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중에 성막을 세워놓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막으로 나아갔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고 역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성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성막과 성전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주님께서 예루살렘 성정을 보시면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21절에 그 성전이 무엇인가를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전이나 성막도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옆의 그림은 성막의 구조를 그려놓은 것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인데, 그 문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성막의 문이 전체 성막 구조에 비해서 지나치게 큰데,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막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맨 먼저 번제단이 있습니다. 이 번제단에서 희생제물을 불태워 하나님 앞에 드렸는데 이 번제단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사역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번제단을 통과하면 여인들의 거울을 모아 만든 물두멍이 있습니다. 이 물두멍은 아론과 그 자손인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과 발을 씻는 일종의 커다란 세수 대야입니다. 이 물두멍은 죄인 된 우리들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보여줍니다.
성소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왼쪽의 순금 등잔대입니다. 이것을 메노라(menorah)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주보 속지에 있는 그림이 메노라 즉 등잔대입니다.
   
이 메노라는 세상의 유일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성막에는 이상하게 창문이 없습니다. 빛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외부로부터는 빛이 한 가닥도 들어오지 못하게 설계를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설계 실수입니까? 아닙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계시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빛, 사람들을 밝게 할 진리의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조금 발전적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메노라는 세상의 유일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발광체라면 그리스도인은 반사체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의 빛을 받아서 세상을 밝히는 반사체인 것입니다.
   
성경 엡 5:8,9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어두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빛입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체험이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간 선교사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 원주민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선교사님이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이후 원주민들은 그 선교사님의 비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당신이 이곳에 올 때에는 어두움이더니, 당신이 떠나간 지금 우리는 빛 가운데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빛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마 5:1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오늘 설교는 저와 여러분이 세상의 빛으로서 어떻게 해야 빛 된 삶이 가능한지 살펴보겠습니다. 

1. 변함없는 순결한 믿음입니다(31절). 
   
31절에 보니 등잔대 즉 메노라는 순금으로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금은 믿음을 상징합니다(벧전 1:7). 그런데 메노라에 사용된 금은 다른 이물질이 섞기지 않은 순금입니다. 순금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습니다. 불변을 상징합니다.
세상의 유일한 빛 되시는 주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 히 13:8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어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가 오늘은 우리를 버리시고 또 내일 기분이 좋아지시면 다시 우리를 구원하시는 변덕쟁이가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내 감정이 좋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내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도 내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인정받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상관없이 내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어떻든 내 믿음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환경이 어렵든지 좋든지 우리도 변함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 시 125:1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온산은 아브라함 때에도 있었고, 다윗 때에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예수님 때에도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은 시온산이 요동하지 않는 것처럼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성경 롬 8:35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사도 바울은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 때문에 환난도 당했고 곤고한 상황에도 처했습니다. 수많은 위험에 노출 되었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적들의 칼에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마귀는 세상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변질 시키려고 역사합니다. 어떤 사람은 고난으로 인하여 믿음을 버리고 어떤 사람은 풍요로 인하여 믿음을 버립니다.
성경 살전 2:3 말씀입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주님의 재림 전에 있게 될 일을 예언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믿음을 버리는 배교라고 가르칩니다. 믿음이 변하는 사람이 타락하는 것이고, 믿음이 변질된 사람이 들림받을 수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압니다. 돈에 약한 자는 돈으로 배교하게 만들고, 감정에 약한 자는 감정으로 배교하게 만들고, 쾌락을 좋아하는 자는 쾌락으로 배교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킵시다. 변함없는 믿음이 세상에 주님의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2. 연단을 통과한 믿음입니다(31절). 
   
연단을 통과한 믿음이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시골에서 예수 믿는 처녀가 버스 통학을 하다가 안 믿는 총각과 눈이 맞아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뜻 맞추고 살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에 간다고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교회도 못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좋아서 결혼했지만 남편 된 사람도 부인을 구박하고, 술 먹고 오면 때리고, 시어머니는 남들 다 잘 낳는 아들도 못 낳고 딸만 낳는다고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도저히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제가 떠나야겠습니다. 

이렇게 구박받느니 떠나야겠는데 친정으로는 못 가겠고 서울로 가야겠습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떠난다는 것입니까?” “아이들은 할머니가 기르겠죠.” “서울에 가서 뭘 하시려고요.” “낮에는 일하고 야간에는 신학교를 다녀서 전도사를 하렵니다.” “여기에서도 못 사는 사람을 누가 전도사로 오라고 한답니까? 당신이 여기에서 소금처럼 녹아지시오. 완전히 녹아져서 이 가문에 맛을 내고 그때 나에게 와서 서울로 간다고 하면 내가 장학금을 주겠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된다고 했으니, 여기에서 완전히 죽었다 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시오. 그리고 나를 만나러 오시오.” 그 말을 듣고 그 여성도는 새벽마다 나와 기도하면서 자기 존재를 완전히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때리면 맞고, 시어머니가 뭐라고 구박하면 “어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하고 울면서 웃으면서 자기는 죽었다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1년 동안 그렇게 사니까 시어머니가 그리스도에게 갈증을 느껴서 교회에 나왔고, 나중에는 시아버지와 남편까지도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31절에 보니 메노라를 순금으로 쳐 만들라고 말씀합니다. 쳐서 만들라는 말은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라는 말입니다. 메노라는 온전한 모형이 나올 때까지 쳐서 만들었습니다. 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 지혜 문학인 ‘미드라쉬’에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성막을 만들면서 등잔대 때문에 가장 고생을 했답니다. 다른 성물들은 다 만들었는데 메노라만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식양대로 성물을 만들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하였습니다. 도무지 메노라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만 모세는 메노라 만드는 것을 포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네가 만들었던 등잔대를 불속에 넣어라” 모세가 만들던 메노라를 불속에 넣었다가 꺼내서 한 번 쳤더니 메노라가 제대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또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메노라에 대해서도 ‘미드라쉬’는 이렇게 전해줍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는 메노라를 10개 만들어야 했습니다. 솔로몬이 금 1천 달란트를 용광로에 넣고 계속 불을 피웠습니다. 아침에 보니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이 금으로 메노라를 만드는데 만들고 나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보다 1디나가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작품이 나오기까지 80번을 불 속에 넣었다고 합니다. 메노라는 수많은 고난을 통과하고서야 만들어진 것입니다.
   
메노라를 쳐서 만들었다는 것은 연단을 통과해야 온전한 메노라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연단 받은 신앙이 빛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시는 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도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아야 세상을 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를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우리 속담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남자는 군대에 갔다 오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아들이 군에 입대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군대생활 힘들지만 제 아들을 더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처음에는 네 발, 다음에는 두 발, 마지막으로 세 발인 것은 뭘까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아기일 때는 네 발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지만 늙어서는 지팡이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이 이 퀴즈를 냈는데 엉뚱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답을 아시겠습니까? 어느 학생이 손을 들고 대답했습니다. “군인입니다.”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무슨 뜻이지?”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군대 다녀온 삼촌이 그러던데요, 군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엎드려뻗쳐 하고, 낮에는 줄창 걷고, 밤에는 머리를 박아야 한답니다.” 군인의 연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강한 군인이 되는 것은 강한 훈련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해병대나 특전사가 강한 이유는 훈련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군인은 강한 훈련으로 되는 것처럼 강한 믿음 역시 강한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연단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고난을 당할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왜 고난이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성경 벧전 4:12에서 사도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성경 욥 5:7에서 말씀합니다.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생에 고난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연단의 이유입니다. 성경 롬 5:4에서 연단의 이유를 밝힙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결국 소망에 이르게 하려고 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들이 되도록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단 받은 믿음을 통해서 세상에 주님의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사무실에 블루베리 나무가 있습니다. 그동안 사무실 안에 있었는데 얼마 전에 창밖으로 나갔습니다. 제 아내가 인터넷에서 화초에 관한 검색을 하다가 블루베리에 관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블루베리는 겨울에 한 달 이상 실외에서 추위를 견뎌야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블루베리가 열매 맺으려면 적당한 고난이 필요합니다. 블루베리에게 겨울 영하의 날씨는 열매를 맺기 위한 연단인 것입니다. 신앙인의 연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연단을 통해서 열매를 맺습니다. 연단을 통해서 하나님이 쓰시는 메노라로 준비되는 것입니다. 연단을 통해서 빛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연단을 즐기십시오. 

3. 주님과 연합된 믿음입니다(31,32절). 
   
이 메노라는 중심에는 본체가 있고, 옆구리에서 양쪽으로 세 가지씩이 나와서 일곱 가지가 되도록 만들게 하셨습니다. 메노라의 일곱 가지는 본체의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의 등잔대인 교회는 그리스도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결과로 생겨날 것임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주님에게서 나와서 그분과 하나가 되었고, 그분의 진리를 전파하는 역할을 그리스도 대신에 하는 기구가 세상의 빛인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연합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에 생기가 있고, 행복합니다. 주님과 연합해야만 열매 맺는 신앙생활이 가능하고 세상의 빛 된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 요 15:5에서는 주님과 우리의 연합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결국 말라 죽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영적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된 믿음의 다른 표현은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 오셔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도 성령으로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출27:20, 21을 보면 메노라에는 정한 감람유 즉 올리브기름만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메노라에 공급된 이 올리브기름이 타면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올리브기름이 없이는 메노라가 빛 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을 성도 개개인에게 적용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성령의 충만한 생활은 구체적으로 어떤 생활입니까? 성령의 충만한 생활은 성령의 감동과 인도에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도와주시는데 주로 생각과 감동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이 주시는 생각과 감동에 따라가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하는 것이고 그런 생활이 성령충만한 생활인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사에 보면 존경할만한 분들이 많습니다. 일제시대에 한국교회의 별과 같은 목사님이 한상동 목사님이십니다. 한상동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1941년 8월 신사참배 반대운동으로 한상동 목사님이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입니다. 심한 고문과 감옥의 나쁜 환경으로 한 목사님은 폐병이 다시 도져 그의 몸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졌고 죽음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몸의 고달픔과 괴로움을 느끼며 몸부림치다가 간신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때 잠결에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한 목사!”, “예” 한 목사님은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기도하라” 성령의 음성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가누기 힘든 몸으로 밤늦게 까지 기도했습니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3일째 밤에도 기도 후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잤습니다. 한 목사님은 그 날 밤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파란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잔디밭에 서 있었습니다. 웃옷을 벗은 몸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팔뚝에 힘이 솟았습니다. 한 목사님은 눈을 뜨고 주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건강을 다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 후 몸에 피로가 없어지고 오후마다 오르던 미열도 없어졌습니다. 기도하라는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서 사흘을 기도하다가 목사님의 병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깨끗이 치료된 것입니다. 한상동목사님은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빛 된 삶은 주님과 연합할 때 가능하고 주님과 연합하는 생활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입니다. 

4. 기도에 깨어있는 믿음입니다(33절). 
   
33절에 보면 살구꽃 형상으로 등잔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살구꽃은 히브리 말로 ‘샤케드’ 라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살구가 아니라 아몬드입니다.
이 아몬드 꽃은 깨어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아몬드 꽃은 봄에 가장 먼저 피는 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꽃을 깨어있는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깨어 있는 신앙이 있고 잠든 신앙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늘 깨어 있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깨어 있는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깨어있는 신앙은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마 26:40에 보면 주님께서 기도하지 못하고 자고 있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리고 바로 다음 절인 41절에서 이렇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눅 21:36에서는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성경 엡 6:18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성경 골 4:2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하는 것은 안테나를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처음 TV를 본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그 때는 흑백 TV였습니다. 그 때 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여로였는데 아이들은 주인공 여로 흉내를 내면서 놀았습니다. 발끝을 안쪽으로 모으고 절름발이 흉내를 내기도 하고, 혀 짧은 소리로 “색시야, 색시야”하면서 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TV를 만드는 기술이 좋지 않아서 TV를 보다가 “치~익”하는 소리가 나면서 화면이 사라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지붕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립니다. 밑에서는 TV의 상태를 보면서 소리를 질러서 안테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기도가 안테나와 같다는 말은 기도의 안테나를 세울 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TV에서 화면과 소리가 나오듯이 기도의 안테나를 세우면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과 감동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동에 순종할 때 신령한 생활이 가능합니다. 기도의 안테나를 세우고 순종할 때 열매가 풍성하고 세상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신앙인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을 풍성하게 받고 살아갑니다. 어떤 돈 많은 부자가 큰 사업 계약을 따내려고 큰 맘 먹고 작정해서 새벽 기도를 나갔습니다. 다른 기도는 하지 않고, “하나님, 이 계약이 잘 되게 해주십시오. 이 계약이 잘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반복적으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누군가 자기보다 더 간절하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하나님, 오늘도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을 잘 만나서 100달러만 벌게 해주십시오. 우리 식구가 살아야 합니다. 100달러가 있어야 우리 식구가 삽니다.”라는 기도였습니다. 

가만히 그 기도를 듣고 있던 돈 많은 부자가 어찌된 영문인지 그 사람에게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보시오. 여기 100달러 있으니 가지고 가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제발 다른 데 신경 쓰시지 않고 헷갈리시지 않게 방해 하지 말아요.”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기도해도 다 들어주시고 응답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기도라는 방법으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사모님과 데이트할 때 “주여, 오늘 데이트하러 가는데 제발 저를 좋아하게 해주세요.”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자는 감성적이라 땀 냄새가 나면 좋아하지 않는다. 샤워하고 가라. 그리고 향수를 뿌려라.”하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향수가 어디 있습니까?”, “밍크 비누가 있지 않느냐?” 목사님은 밍크 비누를 조금 묻히고 나가서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 아가씨가 목사님의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만약 자신이 기도하지 않았으면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말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데이트도 잘 하게 해주시고, 사업도 잘 하게 해주시고, 직장생활도 잘 하게 해주십니다. 학교생활도 잘하게 해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아이디어를 주셔서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기도에 깨어 있는가? 늘 자신을 살피기를 바랍니다. 메노라의 불은 늘 꺼지지 않도록 간검해야 했습니다. 낮에도 밤에도 꺼지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빛 된 생활을 하려면 늘 내 안에 불이 꺼져 있지 아니한가? 간검해야 합니다. 내 속에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는가? 버리지 못한 죄 때문에 불빛이 희미해지지는 않았는가? 알면서도 이끌려 가는 죄 때문에 기도가 막히지는 않는가? 대인관계가 막히므로 기도가 막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간검해야 합니다.
   
말씀 정리합니다. 우리는 메노라처럼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위하여 네 가지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변함없는 순결한 믿음, 연단을 통과한 믿음, 주님과 연합된 믿음, 깨어있는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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