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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전 10: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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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고전 10:31-33)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다른 것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오로지 그 하나만을 보는 사람을 사람들은 미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쳤다고 하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해서 정말 미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원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그 하나에 빠져 마치 미친 사람처럼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같이 미쳤다고 하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미쳐도 주를 위해서 미쳤다고 하였듯이 바울은 자신의 삶과 가치의 전부를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얼마나 주를 위해서 한가지만을 생각하며 살았는가를 밝히기를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고전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빌1: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고 하였듯이 바울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그의 전부였으며 삶에 유일한 목적이기도 하였습니다. 

자동차 왕이라고 하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공장에 큰 발전기 한 대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발전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공장은 멈추게 되었고 기술자들이 총동원 되어서 고장난 발전기를 고치려 하였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제품을 납품해야 하는 기일이 촉박한 상황에서 포드는 발을 동동 굴리던 가운데 그 당시 전기 분야에 최고 기술자로 알려져 있던 ‘찰리 스타인메츠’ 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찰리는 가지고 온 작은 망치 하나를 가지고 발전기의 몇 군데를 두드리더니 사람들에게 발전기를 작동시켜 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전기가 소리를 내면서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헨리 포드는 찰리 스타인메츠로부터 수리비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는데 자그마치 수리비가 만달러나 나온 것이었습니다.

혹 천달러를 만달러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닌가 싶어서 직원에게 알아보라고 했더니 만달러가 틀림이 없다는 말에 포드는 잠시동안 발전기를 살펴보고 두드린 것에 비해 요구한 수리비가 너무 비싸게 나온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청구서를 반송했습니다. 

얼마 후 찰리 스타인메츠로부터 요구 금액 내역서를 받게 되었는데 그 내역을 보니 발전기를 두드리며 일한 노임 10달러, 어디를 두드려야 고쳐지는지를 알아낸 기술 값 9,990달러 그래서 합 만달러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포드는 사실 하루만 공장이 멈추어도 손해나는 것이 몇십만달러였기 때문에 청구서를 받아들고 꼼짝없이 만달러를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많은 기술자들이 동원되어도 고치지 못한 것을 고친 것은 찰리였습니다. 
망치로 두들겨서 고쳤지만 발전기를 고친 것은 찰리였지 망치는 아니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여러 사람들이 망치를 들고 고치려 하였지만 정확하게 진단하여 고친 사람은 찰리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로 망치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망치가 찰리라는 최고의 기술자의 손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에 발전기를 돌아가게 한 것이지 망치 자체가 발전기를 고친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할 때에 그것은 내가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나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나를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떤 자리에서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31절에서도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할렐루야! 

무엇을 위해서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높이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나 좋아하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을까? 

이처럼 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좋아하면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인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그 첫째로 우리는 거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32절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바울은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거치는 자’ 는 거침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앞서 31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자유 사용에 대한 최종 결론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자유를 사용할 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는 목표아래 행동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하는 삶이라면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거나 넘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란 작게는 먼저 우리 주변 사람들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에게 배려라는 것은 사라진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만 잘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프랑스가 낳은 미술의 대가인 만종의 작가인 ‘밀레’ 의 이야기입니다.
밀레가 지금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한 화가이지만 처음부터 그의 그림이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명시절 너무나 가난하고 어려워 그림을 포기할 마음까지 가졌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의 친구였던 루소가 찾아와 “여보게 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났네 그 사람이 자네의 그림을 사고 싶어하는데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주게.”

이렇게 말하고는 반신반의하는 밀레에게 선급이라며 300프랑의 거금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루소가 건네주었던 그 돈은 밀레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밀레에게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고 있다고 하는 큰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 것입니다.

결국 밀레는 용기를 내어 그림에 전념하였고 몇년 후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아주 비싼 값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 루소의 집에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몇년 전 루소가 다른 사람의 부탁이라며 가져간 그림이 루소의 거실에 걸려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밀레는 친구의 깊은 배려의 마음을 알고 친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림에 열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난하고 지친이에게 물질로 도와준 루소의 마음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친구인 밀레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이 인정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심어주는 배려하는 마음이 바로 밀레를 미술의 대가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점점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말 한마디가 목회자와 피곤에 지친 여러분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할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보다 적극적인 삶을 말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33절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소극적으로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참 자유는 나 혼자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날 때 누릴 수 있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유익보다는 다른 사람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는 일로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확산될 때 그 기쁨은 더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공유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도 나의 유익보다도, 우리의 유익, 전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고 자유를 사용할 때에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궁극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3절에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고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거치는 자가 되지 않는 목적,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신앙의 지조가 있어야 하며 이웃에 대해 넓은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전도자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을 구원의 자리로 인도하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가장 큰 유익이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꿈을 꾸었는데 꿈에 죽어서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천국 문으로 들어가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긴 줄 뒤에서 보니까 예수님께서 천국 문에 나오셔서 사람들을 맞아 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보시더니 갑자기 아주 반가워하시면서 자기 앞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제쳐 두고는 자기에게로 달려 오시더랍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았는데 자기에게로 오시는 줄 알았던 예수님께서 자기를 지나쳐 가시더니 자기 뒤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로 달려 가시더니 그 사람의 손을 꼭 잡고는 목사님 어서 오시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반가와 하시더랍니다. 

이 집사님은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아니 목사님들은 세상에 있을 때도 늘 높은 자리, 앞자리에 앉고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았는데 천국에 와서도 이렇게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 이런 생각에 볼멘 소리로 따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런 것이 아니라 집사님들은 천국에는 많이 오시는데 목사님은 하도 오랜만에 한 분이 오셔서 너무 반가와서 그만 그렇게 하셨다고 하시더랍니다. 

물론 우스개로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직분이나 직업을 가지고 있든지에 관계없이 누구나가 다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택시기사분의 간증이 다른 사람들은 고된 일이라 하기 싫다고 하지만 자신은 자신의 직업이 하루 종일 전도하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직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재미에 일이 힘든 줄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주일 내내 교회에서 교회 일만 하는 목회자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나 어부나, 노동자 공무원이나, 학생이나 다 하나님께 맡은 일의 기능이 다를 뿐이지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기 게신 분들이 다 신학을 가고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농사는 누가 짓고 집은 누가 짓고 음식은 누가 하겠습니까?

목회자도 뜨거운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때에 진정한 목사로 여김 받을 수 있는 것처럼 택시를 운전한다 하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분처럼 일한다면 그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도 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6:28-29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사람들이 예수님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라고 했을 때 너희들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따라야 하고 전적으로 전도하는 일만 해야 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는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은 꼭 목회자가 된다든가 하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각자의 일터에서 주어진 삶을 살면서 그 삶 가운데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은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근면하고 정직하게 살면서 늘 기도하고, 찬송하며 또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쓴다면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바울처럼 혹은 순교자들처럼 특별하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택시를 운전하면서도 늘 주님을 전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분의 삶처럼 우리가 이 땅에서는 다윗과 같은 명성은 못 얻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을 통해서 세상에서 어떤 유능하고 뛰어난 사람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시작한 일이 주객이 전도가 되어 하나님보다 일이 더 우선이 되어버린 이들도 있습니다. 

이것 또한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시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라는 고백속에 이름을 남기거나 큰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려고 애썼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그의 삶이 다윗을 더욱 위대하게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는 향유를 부어드린 마리아와 두 렙돈의 헌금을 드린 가난한 과부에게서 그 누구에게서 보다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우리의 환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배우든 배우지 못했든, 있든지 없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상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가진 능력과 처한 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내가 가진 것과 내가 맡은 직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날마다 근심하며 이를 위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과 건강과 환경과 물질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올 한해도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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