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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힘이니라 (느 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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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힘이니라 (느 8:10-12)


2012년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가정과 선물들, 그리고 관계하는 일들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길 소원합니다. 요한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를 향해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절). 저도 이 복을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열고는 있지만 얼굴들이 밝지 못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학자들이 한결같이 2012년을 밝게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새해는 격동과 분노가 표출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총선으로 시작하여 대선으로 마치면서 예측불허의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대그룹들은 단단히 각오들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역사는 냉엄합니다. 힘이 있는 나라는 지배하고, 힘이 없는 나라는 압제를 당하거나 망합니다. 개인과 사회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힘을 소유하기 위해서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힘을 소유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진정 자신에게 힘이 된다고 확신합니까?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 남북으로 나뉘어져 북쪽은 B.C 722년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에 의해 멸망되었고, 남쪽은 B.C 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먹혀버렸습니다. 당시 바벨론은 대단한 강국이었으나 페르시아에 의해 망해버리고 맙니다. 힘이 없는 백성, 힘이 약한 나라는 가차 없이 먹혀버리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입니다. 이러한 현장을 목격한 느헤미야는 ‘야! 어떻든 힘이 있어야 되겠구나. 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구나!’ 이 사실을 그는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합니다. 당시 ‘왕의 술 관원’은 무엇보다 신분, 출신성분이 확실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술 관원은 보이지 않는 실세(實勢)였습니다. 늘 왕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자리에 오른 자가 바로 느헤미야입니다(느 1:11). 그는 우선 신분, 출신성분에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오르려고, 쟁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그가 그 자리에 올라 있는 것입니다. 그가 이 과정을 통해 어떤 원리를 발견했을까요? 

남쪽 유다가 망한 후 저들의 귀환은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1차로 귀환했던 스룹바벨이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2차로 귀환했던 에스라는 영적부패와 타락을 고치는데 주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돌아온 느헤미야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하는 일에 주력하여 52일 만에 감격스럽게 성벽을 완성하였습니다(느6:15). 

여기서 그치지 않고, 느헤미야는 지도자들을 세웁니다(느 7:1-2). 리더십을 확보합니다. 또한 인구조사를 했습니다(느 7:66-67). 이것은 군사력 점검입니다. 심지어 짐승의 숫자까지 카운트하고 있습니다(느 7:68-69). 이것은 전투력 점검입니다. 장비를 확보했다는 말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은금보화까지 열거되고 있습니다(느 7:70-72). 보급물자, 전투자금을 확보했다는 말입니다. 

지도자, 사람, 부하, 짐승, 금은보화, 이게 다 무엇입니까? 힘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힘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성벽도 완벽하게 쌓고, 문짝도 달았습니다.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짐승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금은보화도 풍부합니다. 이제 되었습니까? 과연 이제는 주변 나라들이 저들을 얕보지 아니할 것이며,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까요? 이러한 것들이 저들에게 큰 힘이 될까요? 

느헤미야는 ‘아니다’라고 단호히 답합니다. 그는 그것이 진정한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제국 바벨론이 한 순간에 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것들을 의지하고, 이런 것들에 안주하려는 것에 쐐기를 박는 것입니다. 그가 어떤 원리를 발견했기 때문일까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 ‘이 성이 안전판이 될 수 없으며, 너희의 힘이 될 수 없다. 너희의 진정한 힘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가 발견한 것은 ‘은혜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여호와가 힘이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할까요? 

느헤미야 8장을 자세히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가질 때 그것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될까요? 첫째, 말씀을 사모하는 태도입니다(느 8:1-6). (1)저들은 말씀을 사모하여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2)저들은 긴 시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3)저들은 말씀을 전하는 자를 존경하며 협력했습니다. (4)저들은 말씀 앞에 몸을 굽혔습니다. 

둘째, 말씀 앞에서 내 마음이 말씀과 일치되는 것입니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느 8:9). 말씀을 사모하면 그 말씀 앞에서 자기의 죄를 보고, 회개의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그 말씀을 통해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또 웁니다. 말씀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태도를 가지면 그 말씀이 나에게 살아서 다가옵니다. 나를 감동, 감화시키고, 변화시킵니다. 바로 그것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셋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느 8:13-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책을 통해서 초막절에 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가 칠월 일일이었는데(느 8:2), 초막절을 칠월에 지키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말씀을 자신들의 삶에 그대로 지체 없이 적용했습니다. 행동에 옮겼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에 감동함을 입고, 거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그것이 힘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의지합니까? 무엇을 힘으로, 버팀목으로 생각합니까? 어떤 종류의 성을 쌓고 안주하려고 합니까? 나에게 힘과 버팀목이 될 만한 것을 쟁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경주해서 그것을 소유하고, 이룩합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내게 언제까지나 힘이 됩니까? 버팀목이 됩니까?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만이 힘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 18:1).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아무쪼록 여호와를 기뻐함으로 새 힘을 얻는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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