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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말할 것인가 (출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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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말할 것인가 (출 18:1-12)     

구정 명절이 다가왔습니다. 명절이 되면 반가운 가족들이 만나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하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요? 

오늘 본문은 어제 읽고 묵상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모세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모세에게로 왔습니다. 
  
모세는 이드로에게 특별한 사위였습니다. 어느 날 이드로의 딸들이 남루한 남자 하나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드로에게는 일곱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딸들은 남자 못지않게 강했습니다. 딸들이 양들을 몰고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딸들은 거친 남자 목자들 틈에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 날도 이드로의 딸들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려 할 때 남자 목자들이 와서 이들을 내쫓으려 했습니다. 마침 이 때 모세가 거기 있었고, 모세는 여인들을 도와 양들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모세에게 고마움을 느낀 이드로의 딸들은 모세를 집으로 데리고 갔고,  이드로는 그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얼마 후 눈치를 보니 큰 딸 십보라의 마음이 모세에게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도 딱히 갈 데가 없어 보였습니다. 어차피 일할 사람도 필요하고, 강인한 남자가 있어주는 것도 필요했기 때문에 이드로는 십보라와 모세를 결혼하게 했습니다.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망하던 모세는 갈 데가 없었기에 이드로의 집에 얹혀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이드로의 가족들은 모세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세는 날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했습니다. <이보게, 자네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왜 그렇게 멀거니 애굽 쪽을 바라보고 있는가?> <조금만 계십시오. 그 때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랬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중에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모세는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애굽의 궁궐에서 왕자로 자랐으며, 자신에게는 어머니가 둘 있는데, 한 분은 낳아준 어머니로서 히브리 여자이며, 지금 애굽에서 노예살이하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자신을 물에서 건져 키워준 공주라고 했습니다. 바로의 궁궐 이야기며, 자신이 배운 것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신은 애굽 사람이 아닌 히브리인이며, 언젠가는 애굽으로 돌아가서  동족을 구원해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해가 흘러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없자, 모세도 포기하는 듯 했습니다. 애굽의 근황을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미디안 광야에 묻혀 평생을 살 각오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드로는 깊이 실망하면서 꿈을 접고, 오히려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사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말없이 양을 몰고 나가는 사위의 쳐진 뒷모습을 보기가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계속 함께 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모세가 그들과 함께 한 지도 어언 사십 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잊고 살던 어느 날, 모세가 흥분에 사로잡혀 돌아왔습니다. 그는 드디어 떠날 때가 왔다고 하면서 낮에 호렙산 근처에서 본 놀라운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양을 몰고 가다가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을 보았는데, 아무리 타도 나무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고 가까이 다가섰을 때, 그 나무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가서 내 백성을 구원하라>고 말씀하셨고, 이제 자신은 다시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아내와 아들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막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을 축복하여 보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집이 온통 텅 빈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딸이 아들들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막상 가보니 애굽의 상황이 심각했고, 바로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쉽게 내보지 않을 게 뻔했고, 시간이 필요했으며,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바로 왕의 세력과 맞서야 했기에 가족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만나기로 하고 자신과 아이들은 다시 돌아왔노라고 했습니다. 
그 후 이드로와 모세의 가족 모두가 마음을 졸이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을 도우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애굽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이 애굽을 벗어났다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버티던 바로 왕이 하나님께 항복하고 백성들을 내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식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왕의 군대가  백성을 다시 데려오려고 추격했는데, 놀랍게도 홍해가 갈라져 이스라엘을 구원을 받은 반면, 그들을 추격하던 애굽인들은 모두 수장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드로는 서둘러 딸과 손자들을 데리고 모세를 만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에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끝에 드디어 르비딤 근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세와 가족들이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그들은 얼싸안고 그 동안의 무사함과 애굽을 벗어난 것을 축하했을 것입니다. 그 날 밤 장작불 주변에 둘러 앉아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오랜만에 가족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는 우리와 비슷하지요? 

여러분, 이 때 모세는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우리는 모세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십 년 만에 애굽 궁궐 앞에 섰을 때의 감회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던 이야기, 백성들이 기뻐하면서도 반신반의하던 이야기, 그리고 바로 왕을 처음 만나러 갔을 때 바로 왕과 그 신하들이 사십 년 만에 나타난 모세를 보면서 보이던 반응, 한 때는 왕자였으나, 이제는 적이 된 모세를 바라보는 그들의 적대감.....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왕이 백성을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하게 압박한 이야기,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 그러나 굴하지 않고 백성들을 설득하여 바로 왕과 맞섰던 이야기, 드디어 사백 삼십 년 만에 애굽을 떠나던 밤에 있었던 그 감동,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의 절망, 추격해오던 애굽 군대로 인한 두려움, 그런데 지팡이를 내밀었더니 바다가 갈라져 구원을 받았고, 애굽 사람들은 홍해에서 멸망했다는 이야기 등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그 후에도 광야에 마실 물이 없어 고생했던 이야기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이야기며, 아멜렉이 쳐들어왔지만, 물리치고 승리한 이야기며, 이젠 백성들이 자신을 신뢰하게 되었고, 자신은 백성들에게 영웅이 되었다는 것 등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감탄을 연발했을 것입니다. 아들들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았고, 십보라는 사랑하는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이드로는 자신이 무슨 복이 많아서 이런 걸출한 사위를 얻었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읽은 성경말씀은 모세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했으나, 다른 방식으로 말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무엇을, 어떻게 말했습니까? 8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그 장인에게 말하매> 
  
그는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서 모세 자신의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한 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엄청한 일들이 일어난 현장에 모세 자신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이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방금 읽은 8절에서 보는 것처럼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말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말했습니다.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민 사람은 모세였지만, 홍해가 갈라지게 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싸울 때 산에 올라 두 팔을 들고 있었던 사람은 모세였지만, 전쟁에 승리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와 백성들이 한 일은 무엇일까요? 8절 중간에 보면 <그들이 당한 모든 고난과>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들은 고난을 당했을 뿐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뿐,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이게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모세는 모세 자신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충실한 수하인 여호수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주인공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 엄청난 모든 일의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모세의 말을 들은 이드로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9-10절을  보실까요?  <이드로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큰 은혜를 베푸사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심을 기뻐하여 이드로가 이르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너희를 애굽 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백성을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이드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모든 일을 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큰 은혜를 베푸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애굽 사람의 손에서 건진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위가 수고를 많이 한 것을 알고 있었고 자랑스러웠습니다만, 사위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 지팡이 같은 존재였고, 백성을 구원하고, 인도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드로는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하고> 할렐루야!  그는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위대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물리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와 그 가족들이 밤을 새워 나눈 이야기의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께서 하신 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해 말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말해야 합니다.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어떤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여기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말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전할 이야기의 주제입니다. 

우리는 종종 간증을 듣곤 합니다. 간증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간증이란 우리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하는 것이 간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에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잘못 짚었습니다. 요셉은 이런 점에서 대단히 훌륭합니다. 어느 날 바로 왕이 꿈을 꾸었으나,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깊이 고민에 빠진 그에게 술을 맡은 관원이 요셉을 소개했습니다. <자신이 왕에게 죄를 짓고 감옥에 갔을 때 한 히브리 노예를 만났는데, 그 젊은이가 자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 해석대로 복직이 되어 왕 앞에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즉시 요셉을 데려오게 했습니다. 왕이 기대어린 마음으로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창세기 41장 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이에 대해 요셉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6절을 보면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주체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꿈을 해석하는 것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오, 그 꿈을 성취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로부터 하나님 이야기를 듣게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할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님이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모세나 요셉은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었습니다. 
1899년에 태어나 1962년까지 산 <찰스 로튼, Charles Laughton>이란 영국의 영화배우가 있었습니다. 그가 미국을 돌면서 성경낭독회를 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대단히 잘 낭독했기에 청중들은 큰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의 성경낭독은 대단한 인기가 있었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자그마한 마을에서 성경을 낭독하게 되었습니다. 청중들은 평소처럼 깊은 감동에 사로잡혔습니다.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이 때 한 자그마한 노인이 일어나더니 자신도 성경을 읽어보겠노라고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청중들은 그 노인이 웅변이나 학식이나  읽는 기술에 있어서 로턴과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인은 틀리기도 하고, 더듬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인이 성경 읽기를 마쳤을 때 사람들의 눈은 눈물로 젖어 있었고,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습니다. 

모임을 끝마쳤을 때 어떤 사람이 찰스 로튼에게 물었습니다. <저 노인의 성경 낭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튼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노인께서는 성경의 저자를 잘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차이가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아는 것과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 어느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가족과 함께 모였을 때, 물었습니다. <에스더, 넌 지금까지 살면서 무슨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해?> 그랬더니 대답하기를 <좋은 가족을 주신 것이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그런대로 좋은 아빠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큰 딸에게 동일하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도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에스더가 반박했습니다. <왜 똑같이 대답해? 좀 창의력있게 대답해야지..> 그러자 막내가 끼어들었습니다. <이런 걸 어떻게 창의력으로 대답해? 은혜를 말하는 건데...> 우리 모두는 막내에게 감동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이야기는 책상머리에서 짜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간증문은 문장실력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로부터 나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 하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체험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땅끝교회 교우님들이 하나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성경에서 읽은 하나님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난 하나님,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하나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하나님 스토리를 말할 수 있길 원합니다. 
하나님 이야기는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또 듣는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해 줍니다. 이드로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 이야기를 들은 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뻐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의 기대와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음에 확신이 생기고 용기를 가지고 미래로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여기까지 도우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를 붙들어 인도하시길 기원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 멋진 하나님 이야기꾼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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