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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설날] 내가 복을 주리라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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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복을 주리라 (민 6:22-27) 


구정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고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복 받으라는 말은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오복(五福), 다섯 가지의 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① 수(壽)를 누리는 것, 장수하는 것입니다. ② 부(富)를 누리는 것으로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③ 강녕의 복으로 건강과 평강을 갖는 것입니다. ④ 유호덕으로 덕망과 명성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그 덕을 기리는 것입니다. ⑤ 고종명으로 제명대로 살다가 고통 없이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복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엡 1: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27절에서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복’(베라카)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영적인 것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일에 필요한 현세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지혜를 주시고, 물질의 부요와 함께 자녀와 건강의 축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려면 성도에게도 물질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물질의 복도 받아야 합니다. 어찌 물질만 필요합니까? 세상에서 출세도 해야 하고, 자식 복도 있어야 합니다. 올 한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이러한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요한 단어는 ‘여호와’라는 말과 ‘축복’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는 각각 네 번씩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호와’란 말은 22절과 24절, 그리고 25절과 26절에 있고, ‘축복’이란 말은 23절과 24절, 그리고 27절에 두 번 있습니다. 짧은 구절에 이렇게 축복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 것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 민족만큼 이나 복을 추구했던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축복한다.’는 것은 ‘좋게 말한다.’는 뜻으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복을 빌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통하여 복을 전하게 하시지만, 그 복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복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로부터 비롯된 복이며, 따라서 복을 주시는 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과 그 아들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받고 누릴 축복이 모두가 하나님에게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복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어가 ‘여호와’라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고, 여호와께서 너를 지키시고,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여호와께서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본문 27절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하시면서 다시 한 번 강조해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다시 확인되는 것은 복을 주시는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복을 주는 주체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이 복의 주관자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가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고 했습니다. 사 45:7절에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확신하시면서 올 한해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놀라운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내용, 곧 오늘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켜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지키다’는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란 뜻으로 ‘세심하게 보호한다.’, ‘주의 깊게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의 보호뿐 아니라 가난과 재앙과 각종 질병 및 전쟁으로 부터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신 32:10절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 127:1절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절대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알렉산더 대왕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정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경우 33살의 나이에 말라리아라는 열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말라리아는 열병은 모기로 인해 전염되는 병입니다. 세계를 정복하며 호령했던 위대한 황제, 그 위대한 왕을 지키는 호위군사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를 지키는 어떤 군사도 모기 한 마리를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복된 삶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나의 보호자로 삼으십시오.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가장 안전한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영혼의 울타리가 되시면 모든 재앙으로부터, 사단의 유혹으로부터, 사망으로부터, 저주로부터 보호해 주십니다. 올 한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안전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축복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은혜'는 히브리어로 '하난'인데, 이것은 “사랑과 호의를 베푼다,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기다, 동정과 자비를 느낀다”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헬라어로 ‘은혜’를 '카리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거저 주는 것' 곧 선물을 뜻하며, 동시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써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긍휼과 자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아 살아왔고, 또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엡 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은 죄악으로 죽을 수밖에 없고, 저주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대가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다 죽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도무지 살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무지 살 수 없는 상황이 무엇입니까? 

민수기의 총 주제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이라 할 수 있으며, 시내광야에서와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말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는 한 마디로 광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해야만 했던 그 광야가 도대체 어떤 곳입니까? 그 광야는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고 식물도 동물도 키울 수 없는 곳입니다. 그 광야는 마실 물이 없고 먹을 양식이 없는 곳입니다. 생명이 부지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주시는 만나와 반석에서 솟는 생수로 그들은 먹고 마시며 생명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돌보심과 하나님의 지키심과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 길을 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걸어가고 있는 이 광야길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어갔던 광야길 못지않게 힘들고 고통스럽고 위험한 곳입니다. 그리고 죄악이 넘치는 곳입니다. 이토록 살벌하고 위험하며 죄악의 유혹이 끊이지 않은 이 광야 같은 세상길에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축복은 평안의 복입니다. 

본문 26절에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라는 말은 마치 어머니가 젖 먹는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빠는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계속하여 지켜보는 모습을 말합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젖을 먹는 어리아이는 얼마나 평안하겠습니까?

평강은 ‘살롬’을 말합니다. 이 살롬은 “안전, 행복, 번창, 평안”등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기쁨과 생의 환희가 샘솟듯 솟아오르는 역동적인 평화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평안처럼 중요한 복은 없습니다. 삶이 아무리 부유해도 마음에 평안이 없으면 그 사람은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와 세상의 권력을 다가졌어도 평안이 없으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인류 역사상 유명한 건축물들은 불안 해소를 위해 세워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죽음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졌습니다. 만리장성은 황제의 정치적 불안해소를 위해 세워진 건축물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도 인간의 흩어짐에 대한 불안해소를 위해 쌓기 시작한 탑입니다. 

불안감이 강해질수록 모아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한 성벽도 비례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안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 주님과의 관계가 화목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마음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시 29:11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고 했습니다. 그리고 렘 29:11-1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쉼과 평안과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요 14:27절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편안은 환경적인 것입니다. 아무런 어려움이나 문제가 없을 때 주어지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내면적인 평안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에도 주시는 평안입니다. 주님의 평안이 임하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불안이 사라집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이 샘솟습니다. 모든 것을 넉넉히 이깁니다. 이 평안의 복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려야할 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평안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는 주님을 통하여 올 한 평안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지켜주심이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을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은혜 베푸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분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평안 주어질 때 우리는 마음과 생각까지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올 한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축복과 은혜와 평강으로 늘 함께 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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