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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남은 날 계수할 지혜 (시 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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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날 계수할 지혜 (시 90:12)
 

저로서는 제법 적지 않은 예배당을 건축해 본 적이 있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할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설계였습니다. 좋은 설계가 중요한 것은 그래야만 건물을 안전하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아름답게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계가 훌륭하지 못하면 첫째, 위험합니다. 구조계산을 잘못하면 위험한 설계가 될 수 있고 그 설계에 따라 시공을 하면 집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둘째, 비효율적인 건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배당을 건축하기 전 설계하는데 2년 정도 걸렸습니다. 설계사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담임목사인 저를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설계사가 저를 처음 만나 이야기하려고 하였던 것은 목회철학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것이 조금 이상했습니다. 건축하는 사람이 무슨 철학까지 이야기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무식했던 것이었습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담임목사가 어떤 목회를 하려고 하는가를 알아야만 하고 그것을 알려면 목회철학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 설계사의 생각이었습니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그런 작업을 통하여 건축을 하니 건축 후 후회하는 일이 적었습니다. 쓸모 없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아주 효율적이고 쓸모 있는 건축이 되었습니다. 효율적이란 말은 경제적이란 말과 같은 뜻입니다. 좋은 설계는 아주 경제적인 건물을 시공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셋째, 좋은 설계는 그렇지 못한 설계에 비해 건물을 아름답게 합니다. 같은 조건과 예산을 가지고도 좋은 설계는 건물을 비교도 안 되게 더 예쁘고 아름답게 설계합니다. 그것이 설계의 실력입니다.

저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인생도 건축과 같은 것인데 그러므로 인생을 건축함에 있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설계입니다. 좋은 설계도를 가지고 인생을 건축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인생의 건축은 결과가 달라 질 것입니다.

뜻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설계도 없이 인생의 집을 건축합니다. 그냥 대충대충 남 흉내내면서 깊은 생각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설계도 없이도 집을 지을 수는 있습니다. 시시한 판잣집을 짓는데 설계사무소를 찾아가 설계를 부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을 설계 없이 건축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판잣집입니다. 어쩌다 세상적으로 성공하여 그 판잣집을 제법 크게 짓기는 하지만 그냥 큰 판잣집에 불과 할 뿐 건축이라 할 수 없는 인생을 살다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작아도 작품성이 있는 아름다운 건축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커도 판잣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가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50이 조금 넘었을 때, 높은 뜻 숭의교회 목회가 세상의 주목을 한창 받고 있을 때 어느 잡지사의 기자 한 사람이 저와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인터뷰 끝에 마지막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지금 목사님이 가장 많이 기도하면 준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은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제 갓 오십에 한창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것 같아 보이는 목사에게서 가장 많이 기도하고 준비하는 것이 은퇴라는 말은 듣고 기자는 제가 장난처럼 대답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 기자에게 내가 지금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만 은퇴를 설계하고 준비해야 할 때가 벌써 되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 설계를 미루다가 정작 은퇴할 시기에 설계없이 은퇴를 하게 되고 그 준비 없는 은퇴 때문에 평생 수고하고 애쓴 목회가 물거품이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너지게 되고 그 무너짐이 커서 자신의 목회만 무너트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와 교계를 무너트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조금 일찍부터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고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저는 그 설계도의 순서대로 은퇴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큰 실수 하지 않고 이대로 잘 가면 작든 크든 평생의 목회를 잘 보존하고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고 명예스럽게 잘 은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어제 텔레비전을 보니 어느 방송국에서 well dying에 대한 내용을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잘 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고 보다 중요한 것은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개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말기 암이 되어 아무리 항암 치료를 해도 수명이 몇 개월 남지 않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항암치료를 받다가 병원에서 죽을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치료만 하며 짧은 시간을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죽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well dying이란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경우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기 위하여 기획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well dying의 포커스는 그래야만 몇 개월 남지 않은 삶이 더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데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을 결정합니다. 아름답고 훌륭한 인생을 설계하려면 반드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죽음이 생각보다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보다 죽음은 언제나 불시에 찾아 올 수 있는 것이라는 것 까지 계산에 넣고 인생을 설계한다면 정말 훌륭하고 근사한 인생을 건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가 한 기도에 유의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시편 기자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매우 중요합니다. 

‘나의 남은 날 계수할 지혜를 주옵소서’

죽음을 생각할 때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유산과 유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언에는 유산 분배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저는 제 죽음을 인생 설계에 반영하려고 했을 때 유산 분배에 대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유산 분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도 유산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생각을 설교 중에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제법 좋은 반응이 있었다고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 생각이 조금 더 발전하였습니다. 죽을 때 떼어드릴 하나님 몫의 유산을 죽을 때 내지 말고 미리 떼어 그것을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쓰다가 죽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난 해 말 결행하였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제 유산 상속자들인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였습니다. 다 기쁘게 동의를 해 주었습니다. 둘째 아이가 제 의견에 동의를 하면서 짧은 메일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세 마디의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좀 많다.’
‘우리에겐.’
‘그러나 참 좋다.’

하나님께 드린 제 유산은 열매나눔재단의 사역을 위하여 씌여 질 것입니다. 저는 당분간 이 일에 직접 관여 하여 일을 할 것입니다. 제가 재단의 이사장이니까. 그러나 은퇴 후에는 직접적으로 일에 관여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곁에서 이 일을 지켜 볼 것입니다. 평생 저는 이 아름다운 하나님의 일을 지켜보며 살아갈 겁니다. 틀림없이 행복할 겁니다. 죽어서 드리려고 했던 하나님 몫의 유산을 미리 당겨 드렸더니 죽음이 삶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삶이 되니 그 어떤 삶보다 아름다운 삶이 되었습니다.

트리플 서티(Tripple thirty) 라는 운동이 있답니다. 인생을 90으로 잡고 그것을 셋으로 나누어 그 때마다 가장 중요한 일을 설정한 것입니다. 

“태어나서 30년 동안은 열심히 공부하자, 30부터 60까지 30년 동안은 공부한 것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자, 60부터 90까지 30년 동안은 그 동안 벌었던 돈과 일을 하면서 쌓여진 경험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다 쓰다 죽자.” 저는 이제 그 트리플 서티 운동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저는 아직 더 일을 할 수도 있고 돈을 더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 때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지난 주 저는 저희 노회에 소속되어 있는 어느 개척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개척 된지 3년 된 교회인데 주일 출석인원이 약 20명 정도 되는 교회였습니다. 천안에 있는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에서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상가 교회일 줄로 생각했는데 땅 100평을 사서 조립식 건물로 자기 교회를 건축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일 년 예산이 2천 몇 백 만 원 정도 되는데 매월 이자와 전기세와 그리고 교회 승합차 기름 값을 내면 교역자 생활비는 한 푼도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도 목사님이 아주 긍정적이고 활발하여 그늘짐이 없었습니다. 목사님과 의논이 되어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 교인들을 그 집회에 참석하게 하였습니다. 130석 정도 된다는 예배당이 꽉 찼습니다. 교회 창립 이후 제일 많이 모였다면 좋아하셨습니다. 둘쨋 날 저녁 집회를 마친 후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인들을 교회 옆 카페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번개 공동의회(?)를 하였습니다. 당분간 목사님의 최소 생활비를 우리 교회가 후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일을 하면서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가 작아서 부흥회를 하기 어려운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집회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집회를 하면 그래도 제가 조금은 알려진 목사가 소문을 듣고 주변의 교인들이 집회에 참석하곤 합니다. 그 집회에 참석하신 다른 교회 교인들에게 이 교회가 자립할 때까지 한 달에 만 원이든 이 만 원이든 선교 후원금을 작정하여 지원하면 어떻겠냐 선동하면 선동 당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은 은퇴 후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인생의 참 근사해 질 것 같습니다.

well dying을 생각하듯 저는 늘 근사한 은퇴를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평균적으로 요즘은 은퇴 후에도 꽤 오랜 세월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은퇴 시기를 늦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은퇴 시기를 늦추는 것보다 은퇴 후 해야 할 근사한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캐나다 어느 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어느 은퇴하신 장로님으로부터 아주 근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를 은퇴하시면서 하시던 비즈니스도 정리를 하셨답니다. 다 정리를 하고 보니 많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답니다. 그리고도 조금 여유 돈이 남아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하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그 교회에서는 아이티를 선교하고 있는데 장로님이 그 선교지를 방문하여 살펴보시다가 아주 좋은 생각을 떠 올리시게 되었답니다. 장로님 눈에는 사방에 쓰레기처럼 굴러다니는 페트 병이 눈에 보이시더랍니다. 그것을 모아다가 녹여서 플라스틱 그릇과 용기를 만드는 공장을 세우면 페트 병을 주어오는 아이들에 돈을 줄 수도 있고 몇 명이라도 고용하여 직업을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 그 일을 하러 아이티로 가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참 많이 감동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를 훌륭하게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열매나눔 재단에서 지난 해 mysc라는 사회적 기업을 하나 더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재단이 해오던 사회적 기업 운동을 한 단계, 아니 한 열 단계 쯤 업그레이드 하게 될 기업입니다. 그 동안은 교회와 교인들의 후원금으로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펀드를 조성하거나 투자금을 모아 사회적기업을 세워나가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프랑스에는 sos라는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그 sos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은 200여개 이며 그 기업의 매출은 연 5 천 억원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mysc도 그와 같은 회사가 되려고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mysc의 사장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증권회사의 한국 사장이셨던 장로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엄청난 연봉을 포기하시고 연봉 한 푼 없는 mysc의 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일 주일 정도 돈을 택할 것인가 보람을 택할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시다가 보람을 택하기로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장로님도 트리플 서티의 마지막 단계를 눈앞에 두신 분이신데 정말 근사하고 훌륭한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청년들 집회를 하러 다니다보면 하나님께 대해 특별한 열심을 가진 청년들 중에 공부하는 것을 뒤로 하고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일만 하려고 하는 청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청년들을 저는 말립니다. 지금은 교회봉사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것이라고, 그래야만 훗날 하나님을 위하여 더 크게 그리고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 해 줍니다. 지금은 공부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최선의 일이고 그러므로 공부하다가 죽으면 순교라고 이야기해 줍니다.

공부할 때 일하려고 하는 청년들도 문제이지만 일하여야 할 때 공부하고 돈만 벌려고 하는 사람들도 제가 보기에는 문제입니다. 이제는 공부 좀 그만하고, 일 좀 그만하고, 돈 좀 그만 벌고 그 지식과 경험과 돈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쓰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은 생각지도 못하고 이 땅에서 평생 살 것 처럼 땅의 욕심만 부리며 열심히 사시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의 남은 날 계수할 지혜를 주옵소서.”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살아갈 때 죽음을 설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얼마 남지 않은 죽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을 설계에 넣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앞으로 얼마를 살든지 지혜롭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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