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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축복의 통로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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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통로 (창 13:14-18)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점으로 출발한 창대섬유는 종로에 본사를 두고 명품 직물생산에 앞장서나가는 기업입니다. 대표이사 노귀영 장로는 숱한 눈물의 기도 씨앗을 통해 가능했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2000년 3월 충남 공주 공장 화재 사건 이후 ‘축복의 통로로 사업장을 사용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노라 고백합니다. “새벽에 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교회로 향했습니다. 먼저 기도를 드리고 공장으로 내려갔지요. 얼마나 불이 크게 났던지 소방차가 40대나 출동했더군요. 다 타버린 원단과 기계, 그릇 등 잿더미가 된 공장을 보고서야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기에 직원들을 불러 모아놓고 “우리는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추산 15억의 재산피해를 입었고 공장 복구에 1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당시 상품화되지 못한 고급 원단들은 개척교회 커튼으로 제작하여 제공하였습니다. 곳곳에서 답지한 위로금을 선교헌금으로 바쳤습니다. 힘은 들었으나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노귀영장로는 축복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붙잡았습니다. 공장 부지를 추가로 매입하고 기계를 새롭게 들여놓으며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간증합니다. “결국 창대섬유는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창대케 하기 위한 심부름꾼이었고요.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까 고민하던 중에 교회 건립을 서원하였습니다.” 노장로는 아프리카 스와질랜드와 내몽골, 중국에 잇따라 교회를 세웠습니다. 미얀마에는 어머니 부의금으로 ‘어머니 성실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세계적 경제 한파는 창대섬유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노 장로는 압구정동 전시장을 폐관했습니다. 매출 규모도 턱없이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공장 입구에 25m 십자가 조형물을 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주께서 주신 복을 누리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기도할 수 있는 것이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응답 받을 수 있다는 것” 이라고 강조하는 노귀영 장로 진정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복음성가 ‘축복의 통로’ 를 같이 불러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예배하게 되리.”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축복의 통로가 되어 복을 확산시켜야 함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항상 복이 그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곳마다 형통함이 주어졌습니다. 그가 있는 자리에 언제나 축복이 임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축복의 통로였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려면 과연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첫째로 예배의 사람이 되어야 

조지 포먼((George E. Foreman)이 45세의 나이로 다시 권투시합에 나아가 세계 챔피언을 획득한 것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먼이 왜 다시 권투를 시작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포먼은 청년시절에 난폭하고 성미가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인생에 들어오셔서 새사람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건방지고 못된 사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후 포먼은 복음전도자로 십여 년간 살았습니다. 특히 텍사스 주 휴스톤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자기 돈으로 교회 건물을 지었고, 거리에서 마약과 범죄로 떠도는 청소년들을 복음으로 선도하고자 청소년 회관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일을 시작한 포먼에게 복음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재정적 지원이 더 필요했습니다. 결국 포먼은 자기에게 있는 실력과 기술을 다시 사용하여 권투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잘 몰랐던 그가 권투에 재도전한 이유였습니다. 그는 “진정한 승리는 예수께서 자기를 위해서 이루어 주신 거룩한 일”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포먼의 딸 나탈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본문 18절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라함은 옮겨가는 곳마다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로 기도를 드리고 새 삶에의 결의를 다졌습니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찬양하며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던 이유는 가는 곳마다 제단부터 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중요시하는 성도들을 크게 축복하십니다. 예배의 사람에게는 실패와 허물조차도 영혼의 성숙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더욱 더 예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성숙된 믿음이 되어 한 차원 더 높은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복이 따라다닌 것은 모름지기 예배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예배가 축복의 통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화평의 사람이 되어야

아프리카에 피그미(Pygmies)라는 소인족이 살고 있습니다. 피그미족은 체구만 작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좁았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눈에 보이는 강과 숲이 전부일 뿐입니다. 피그미족은 제한된 시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어느 날 인류학자가 피그미족 청년을 데리고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청년은 먼 평원에서 들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학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곳에서 풀을 갉아먹고 있는 벌레들은 무엇인가요?” 인류학자는 처음에는 피그미 청년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피그미족은 원근감이 없어서 거대한 들소를 작은 벌레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편견과 독선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은 현대의 피그미족입니다. 자신의 경험만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의 눈에는 황소도 벌레로 보일 뿐입니다. 그 편견과 아집으로 불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피그미의 의식을 버려야 넓은 세상이 바로 보입니다. 비로소 하나님과 이웃이 보이며 평화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하나님은 화평을 위해 손해를 보는 아브라함을 위로하시며 장차 그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축복의 통로가 된 것은 평화를 만드는 화평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평화를 위해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재산 때문에 조카 롯과 불화가 일어난 것을 알고는 롯에게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선택권을 먼저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불모지의 땅을 가짐으로 갈등과 불화의 소지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는 평화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화합을 만들고,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불화를 물리치며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희생과 손해도 감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늘의 축복이 주어지며 반드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부잣집에 결혼식이 있어 음식 장만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인은 집안에 있는 동물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습니다. “결혼식에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잔치를 하려하는데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동물들은 입을 모아 찬성이라고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주인이 “그렇다면 요리의 재료로 거위를 죽이기로 합시다” 말하자 거위가 새파랗게 질려 소리쳤습니다. “나는 큼직한 알을 낳아 집안에 늘 도움을 주지 않습니까? 저기 있는 암탉을 잡으시지요.” 암탉이 외쳤습니다. “무슨 소리예요. 나는 아침을 알려주는 직분을 맡고 있는데 저기 시원찮은 양을 죽이시지요.” 

회의에 참석한 동물들은 음식을 장만하자는 안건에는 찬성을 해놓고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는 한결같이 피할 궁리를 하기에 바빴습니다. 사랑은 자기 포기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내어 주셨듯이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바로 자신입니다. 내게 부어진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로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생각, 가치관, 나이, 환경, 조건, 모든 것을 초월하여 힘이 들어도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축복이 보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 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2장 4절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여기 ‘말씀’ 에 해당하는 ‘다바르’는 명령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으며 그 말씀의 권위를 존중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판단되면 그는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오로지 ‘예’만 있고 ‘아니오’는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미래의 되어 질 일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을 가지고 이끌어 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인생의 급선무는 인간관계나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즉 순종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좇은 순종이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만들었습니다.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안도르 폴데스(Andor Foldes)가 어린 시절 당시, 권위 있는 피아니스트 에밀 폰 사워에게 사사를 위해 찾아갔더니 베토벤 곡을 연주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폴데스에게 다가와 이마에 키스를 하면서 “내가 한 키스의 의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유명한 피아니스트 리스트(Franz Liszt)의 사사를 받았을 당시, 그가 키스를 하면서 ‘이 축복의 키스를 잊지 말아라. 축복의 키스를 재능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하라’ 고 말하였단다. 너도 훗날 이 축복의 키스를 꼭 전달하도록 하거라” 며 당부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위해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예배를 우선순위로 놓는 예배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름지기 불화를 극복하는 화평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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