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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 (고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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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 (고전 1:1-9)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그 중에서도 1-3절은 편지를 시작하는 인사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인사말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이 그의 편지를 받아 볼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른 사실입니다. 로마제국의 시민권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을 고린도 시의 교인들에게 그들이 그 무엇이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교회”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임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 또는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부른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을 편지의 머리말인 오늘 본문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3절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 7절과 8절에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9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라고 합니다. 

고린도는 로마제국의 번창하는 식민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한 때 로마에 대항하는 그리스 여러 나라의 동맹을 주도하다가 주전 146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한 세기 이상 폐허로 방치되었던 고린도는 율리우스 씨저에 의해 그가 암살당하기 직전인 주전 44년에 로마의 도시로 다시 건설되었습니다. 많은 로마인들이 고린도에 이주해 와서 살게 되었고 아가야 지방의 다른 어떤 도시에서보다도 로마의 영향력이 강한 도시였가 되었습니다. 

고린도는 지리적으로는 그리스 안에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로마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제국에서는 황제가 주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황제를 주로 여기는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인들에게 사도 바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거듭 쓴 것은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보기에 충분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참된 주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하고자 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로마시민이기보다 교회이고 성도인 것은 바로 그들의 참된 주가 로마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는 또한 지리적으로 지상과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서의 독점적인 이점을 지닌 도시였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종교가 혼재하기에 적합한 도시였습니다. 다신교에 빠지기 쉬운 이 도시의 교인들의 마음속에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반복함으로써 참되신 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심을 확고히 심어주려 했을 것입니다. 

셋째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한 것입니다. 이 시대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유일한 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절대복종하며 충성을 바치는 한 로마의 막강한 군사력에 의해 유지되고 보장되는 평화를 누릴 수 있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기원한 것은 우리가 진정 절대복종하며 충성을 바쳐야 할 주님은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참된 평화는 로마 황제와 그의 군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라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평화는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그냥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지 않고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한 것은 그래서일 것입니다. 로마의 평화는 전쟁이 없고 침략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정치적 의미의 평화를 주로 말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평화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이루시는 모든 역사의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가 회복됨으로써 얻게 되는 영혼의 평화와, 사람들 사이의 정의롭고 사랑의 나눔이 있는 관계가 복구됨으로써 세워지는 사회적 평화와,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 있는 관계로 되돌아감으로써 누리게 되는 자연의 평화를 다 포함하는 평화인 것입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해지는 것이기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한 것입니다. 

이렇게 간결하지만 의미심장한 첫머리 인사말을 마친 사도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본문 4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무슨 은혜를 주셨기에 사도 바울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입니까? 그 답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5절 이하에서 주고 있습니다. 먼저 5절에서는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모든 일에 풍족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이라 했지만 곧 이어서 그것이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 같은 것이 아니라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을 말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제한합니다. 또 “모든 언변”이라 한 것도 일반적인 뜻으로 말을 잘 하는 달변이나 우아한 수사학적 능력이라기보다 예언이나 각종 방언 말함(고전12:10)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지식”이라 한 것 또한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기보다 영적 통찰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당신의 나라와 구원의 진리에 속한 신비를 이해하고 참 하나님과 그에 대한 바른 신앙을 온갖 우상과 그 숭배로부터 분별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언변”과 “지식”을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풍족하게 받았다는 확신을 사도 바울은 무엇을 보고 갖게 되었겠습니까? 바울은 본문 6-7절에서 그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교회교인들 중에 견고하게 된 것을 보고 그런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도 바울의 증언을 말합니다. 

그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교회교인들 중에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은 바울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때 그들이 믿었고 그 믿음을 견고하게 지켰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고대하며 그때까지 그 믿음을 잘 지킬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은사를 부족함 없이 주신다고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을 사도 바울은 본문 8절에서 다시 한 번 표명합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 말 속에서 바울은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서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주께서 너희를 ...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재확인하며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이유를 또 다시 밝힘으로써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머리말을 마칩니다. 본문 9절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며 같은 믿음의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러한 교제에로 불러주신 것은 일시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초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 당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십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은혜를 주셨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 즉 하나님에 의해 구원에로 택하심을 받은 무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우리를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갖게 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시며 우리를 날마다 거룩하여지게 하시고 성도라 불리게 하셨습니다.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믿음과 성도의 삶을 지킬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주님 다시 오심과 최후의 심판과 하나님나라의 완성과 그곳에서의 영원히 복된 삶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갖고 살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그 믿음을 지키기에 필요한 모든 은사를 부족함 없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택하신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생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당신의 나라로 용납하여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견고하게 우리의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완전해질 수는 없지만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그 놀라운 구원의 복된 소식을 나아가 세상에 힘껏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선한 일을 힘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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