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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섬김의 지혜 (요 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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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지혜 (요 13:1-17)


예수님의 일생의 삶을 대변하는 도구 세 가지가 있습니다. 탄생하실 때에 사용하신 말구유와 세상을 떠나실 때 사용하신 십자가, 그리고 본문에 나타나 있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사용하신 세수 대야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모습은 너무도 귀하고 감동적인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이 교훈을 토대로 4세기 이후부터 고난주간 목요일에 교황이 아래 사람들 혹은 신학생들의 발을 씻기는 세족식 행사가 있습니다. 황금대야에 물을 떠 두고 교황이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제임스2세까지 나라의 왕들이 빈민의 발을 씻기신 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의 이 숭고한 정신을 몸소 깨닫기 위해 교회들마다 특별행사 때에 세족식을 행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셨을까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분명한 배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때는, 십자가를 지시기전 최후의 만찬석상이었습니다(누가복음 22:17~24). 

유월절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간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하심으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우리나라의 광복절과 같은 국경일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최대 명절입니다. 이 유월절 명절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유월절에 에굽에서 해방되던 전날 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양을 잡아 그 피를 대문에 바르라. 그리하면 천사가 내려와서 애굽의 각 가정의 장자를 죽일 때에 그 집을 넘어가고 그 집안의 장자는 무사하리라”(출애굽기 12:13)하셨습니다. 그래서 넘어가는 절기를 유월절(逾越節)이라고 합니다. 사망의 저주가 임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가 있는 곳에 죽을 생명이 살아나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절기에 맞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최후의 성만찬을 하시는 엄숙한 순간입니다. 그들이 섬기고 따르던 스승이 내일이면 십자가에서 극형을 받아야 하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긴장된 순간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자리에서 누가 더 크냐 하는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관습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밖에 다니다가 집안에 들어오면 반드시 발을 씻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건조한 사막지대이므로 먼지가 많았습니다. 요즘처럼 잘 만들어진 구두를 신고 다니는 때가 아니고 모두가 샌들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걸어 다녀도 발에는 먼지가 가득 묻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반드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담은 항아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종이 있는 가정은 종이 주인과 손님의 발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종이 없으면 아래 사람이 윗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때가 언제 입니까? 요한복음 13:4말씀에“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씻어야 할 발인데 그 집에는 발을 씻어줄 종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서로 씻어주어서야 했을 일입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와 저녁 먹는 순간까지도 먼지투성이의 발 그대로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가 크냐하는 다툼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누가 먼저 머리를 숙이고 내 발을 씻어주나 두고 보자”하는 기 싸움이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이신 예수님의 발마저 씻어드리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이기심과 시기심과 교만으로 가득 찬 가운데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3년 동안이나 함께 기거하며 가르친 제자들인데 아직 그들은 이처럼 한심한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대한 관심이나 다른 사람들의 존엄성이나 인격에 대한 존경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 이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으며,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자기에게 얼마나 쓸모가 있느냐’로만 판단하려 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을 눈앞에 두신 상황이었지만 거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하나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하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자기 자존심, 시기심, 교만뿐이었습니다. 이러한 기막힌 상황에서 예수님은 특단의 제자 교육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족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겸손 하라는 교훈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서로 높아지고자, 서로 먼저 대접을 받고자 시기하며 교만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수님은 종의 자세로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3-15) 하셨습니다. 

교만은 사람을 해칩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해치고, 상대방을 해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은 사람을 치유합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인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모두 발을 씻기기를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교훈에 깊은 충격을 받은 제자 베드로는 훗날 베드로전서 5:5에 기록하기를“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이 말은 수건을 허리에 동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연상하며 한 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만의 뿌리는 사탄입니다. 교만하여 하나님께 반항하다가 저주를 받아 땅으로 내어 좇긴 것이 사탄 즉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잠언 21:24 말씀에“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妄靈)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교만에 빠진 자를 가리켜“무례한 자”“망령된 자”라 하셨습니다. 妄靈이란“허망할 망, 거짓 망”자를 쓰고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허망한 영혼, 거짓된 영혼으로 비 없는 구름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향하여 잠언 15:25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하셨습니다. 교만한 자의 집을 헐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질 무렵, 길을 거닐던 이리가 자기의 긴 그림자를 보고 탄복하면서“아니, 내가 이처럼 덩치가 크다니. 그런데도 난 사자를 두려워했잖아. 이것 보라구. 내 몸의 길이기 3미터도 넘겠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리는“내가 왕이 되어야지. 그리하여 모든 동물을 다르실 테야. 물론 사자도 내 품으로 오게 해야지"라고 하며 만나는 동물들에게 횡포를 부렸습니다. 얼마 후 사자를 만난 이리는 거만하게 굴다 단번에 물려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자신의 허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바쳐 선교한 슈바이처가 언젠가 선교비 모금을 위해 고향으로 갔습니다. 세계적인 위인을 환영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1등 칸에서 내릴 것으로 알고 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기차가 도착하자 뜻밖에도 슈바이처는 3등 칸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환영객들은“박사님, 왜 3등 칸을 타고 오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슈바이처는“4등 칸이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할 수 없이 3등 칸을 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삶의 자세이며 삶의 지혜입니다. 잠언18장 12절 말씀에“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하셨습니다. 교만하면 그는 언제나 사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하면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2. 섬기라는 교훈입니다. 

서두에 드린 말씀과 같이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주인을,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섬기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3-15) 하셨습니다.

섬기라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있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세상적인 어리석은 방법에 의존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이기심, 경쟁자를 미워하는 시기심, 그리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으로 으뜸의 자리에 앉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방법인지 그들은 몰랐습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지닌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그러나 방법에 있어서 지혜로운 선택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으뜸의 자리에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마가복음 10:43-45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크고자 하면 섬기라, 으뜸이 되고자 하면 먼저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인간의 으뜸 되고 싶은 본능”이라는 제목의 설교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으뜸이 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힘을 가장 많이 가진 한 사람에게만 으뜸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으뜸이 되는 것이 너무도 쉽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으뜸이십니다. 그분은 힘으로 으뜸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섬기는 종으로 오셨고, 섬기며 살았고, 죽으시면서 섬김을 완성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됩니다. 종으로 살면 최고가 됩니다. 섬기는 데는 학위가 필요 없습니다. 종이 되는데 지위가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자리로 나아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섬김은 신앙생활의 최고봉입니다. 섬김은 신앙생활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을 신앙생활의 꽃이라고 합니다. 섬김 속에 사랑이 있고, 섬김 속에 겸손이 있고, 섬김 속에 온유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효민교회 의 목적인“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다섯 가지의 목표 가운데 마지막 다섯 번째가“섬김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므로 이 세상의 빛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 목표가 곧 오늘의 본문인“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4-15) 하신 말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17절 말씀에“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하셨습니다. 겸손히 낮아진 삶, 섬기는 삶을 살아가면 복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 어떠한 복이 임할까요? 

첫째로, 겸손하게 섬기면 기쁨과 건강의 복이 있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애들러 박사라는 분은 자기를 찾아오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이런 처방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당신은 가서 2주일 동안 매일 남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것만 골똘히 생각하고 한 번 실천해 보세요. 2주일 동안만 그렇게 살면 당신의 병은 깨끗이 나을 것입니다.” 이 처방으로 우울증이 나은 사람이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밖에 모릅니다. 자기의 입장, 자기의 생각,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불만과 불평, 짜증과 미움, 시기와 질투로 가득할 것입니다. 이 어찌 마음의 병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겸손히 섬기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기쁨과 평안이 샘솟습니다. 이것이 곧 행복인 것입니다. 

둘째로, 영광과 풍요로움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되고 장수하기를 원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섬길 자를 섬길 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에베소서 6:1-3 말씀에“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특징중 한 가지는 모두가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은 실수를 가려주었든 셈과 야벳은 넘치는 복을 받았으나, 아버지를 험담한 함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섬길 자를 섬기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축복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낯선 나그네를 극진히 섬기다가 천사를 만났고, 100세에 아들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온갖 서러움을 겪으면서도 외삼촌을 잘 섬긴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금의환향(錦衣還鄕)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가정에서는 아버지 야곱을 잘 섬겼고, 노예로 생활할 때는 주인을, 죄수로 감옥에 있을 때에는 간수와 다른 죄수들을 잘 섬긴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애굽의 총리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미디안 광야 처가에서 양을 치며 40년간 처가를 받들어 섬겼든 사람입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는 가운데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는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들은 40년을 하루같이 지도자 모세를 따르며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자기를 죽이려는 악한 왕 사울 앞에서 그래도 신하의 도리를 다하며 섬겼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보신 하나님은 사울에 주셨던 왕위를 빼앗아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복음 13:14-15)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섬김의 절기 설 명절을 맞았습니다. 섬길 자를 섬겨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하시며 섬기되 기쁨으로 섬겨야 하겠습니다. 
섬김이 수고롭기는 합니다. 그러나 내 한사람의 섬김이 온 가족에게 기쁨이 된다면 이는 보람된 일입니다. 나의 섬김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3,16 말씀에“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의 섬김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그들도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3에“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하셨습니다. 즐겁고 복된 설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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