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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를 교회답게 2 (행 1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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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교회답게 2 (행 12:13-19) 
 
 
❚기도하면서도...

헐버트 웰즈(H.G.Wells)가 쓴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대주교는 날마다 기도하던 습관대로 그날 저녁에도 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는 이렇게 경건하고 늘 기도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상 그의 기도는 습관적이고 늘 똑같은 기도를 반복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날도 언제나처럼 “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하늘에서 “오냐, 무슨 일이냐?”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소리를 듣자 대주교는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편은 우리의 습관적인 신앙과 기도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대주교는 평생을 기도해 왔는데 그 기도를 정말 듣고 있는 하나님이 있고 그 기도가 정말 응답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대답이 들려오자 너무 놀라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입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대주교씩이나 돼서...” 비웃을 것이 아니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매일 “하나님 아버지,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오냐, 무슨 일이냐?” 하고 진짜 응답하신다면 “에구머니나, 이게 웬일이래?” 하고 놀라지는 않을는지요? 혹시 우리도 이렇게 교회에 매주 나와 예배를 드리고 또 매일 기도하지만 너무도 습관적이고 형식적이어서 어떤 기대도 없는, 어떤 감동도, 역사도 일으키지 못하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기도하면서도 안 믿는, 기도하면서도 설마 그대로 이루어지겠는가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지난 주 설교를 통해 ‘교회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힘을 다해 전도하는 교회, 열심히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둘째, 이렇게 복음 전하다가 박해 받는 교회, 핍박이 있는 교회라야 교회다운 교회라고 했습니다. 셋째, 기도하는 교회, 중보 기도하는 교회, 기도를 통해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라야 교회다운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초대교회야 말로 이런 세 가지 모습을 보이는 가장 모범적인 교회라고 했고, 특히 초대교회는 박해를 받고 베드로가 감옥에 갇힌 상황일 때 온 성도가 모여 간절히 기도함으로 베드로가 풀려나는 기적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2:13~19에 보면 기도하면서도 믿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어떤 교회라고요? “기도하면서도 잘 믿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주교의 기도처럼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그 기도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줄 기대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교회의 모습을 통해 믿음이 적은 우리의 모습을 지적하며 진정 교회다운 교회는 어떤 기도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집종 로데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먼저 본문 13~14절을 함께 읽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
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앞서 1~12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꽁꽁 묶여 철통같은 감시를 받던 베드로를 풀어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뒤늦게 이것이 하나님이 일으키신 기적인 줄 깨닫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13절은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이 ‘대문’이라는 낱말은 말 그대로 ‘큰 문’입니다. 즉 다락방의 문이 아니라 그 집 대문을 두드렸다는 뜻이지요. 이것을 볼 때 이 집은 제법 큰 대문을 열고 마당을 가로질러 본 건물로 들어가는 큰 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가 모이던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은 이렇게 제법 큰 저택이었고 이 큰 집에서 성도들이 모여 초대교회를 세운 것입니다. 아마도 헤롯의 박해 때문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면서도 대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릴 때 제일 먼저 영접하러 나온 사람은 ‘로데’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아이입니다. 이 로데는 대문을 열러 나갔다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기뻐서 미처 대문을 열어줄 생각도 안 하고 집안에 달려 들어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어요” 하고 알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조금 이상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로데’라는 여자 아이입니다. ‘여자 아이’라고 번역된 말은 ‘작은 계집아이’ 혹은 ‘여종’이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8:17에 보면 이 사건 전에 베드로가 예수님이 체포되셨을 때 대제사장의 집까지 따라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모닥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에게 “너도 예수와 한 패 아니냐? 네가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문 지키는 여종’입니다. 

이 로데를 가리키는 ‘여자 아이’와 이 ‘여종’이 똑같은 낱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로데는 단순한 여자 아이가 아니라 그 큰 집의 문간방에 살면서 손님이 왔을 때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 여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이 여자 아이, 이 문지키는 여종의 이름이 여기 왜 나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뭐가 이상하냐고요? 이상하지요. 분명 이 여자 아이나 베드로보고 “나 너 안다”고 했던 문 지키는 여종이나 똑같은 수준의 여종인데 그 여종은 이름도 안 나와요. 

전혀 나올 필요가 없지요. 조연급도 아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 수준인데 이름이 왜 나오겠습니까? 심지어 오병이어 기적에서 주님에게 자기가 싸온 도시락을 바친 아이도 이름이 안 나오고 그냥 ‘한 아이’입니다(요 6:9). 비중으로 볼 때 오늘 장면에 등장하는 이 여자 아이도 그냥 스쳐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로데’라고 분명히 이름이 나와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냥 ‘한 여자 아이가’라고 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본문을 묵상해 보니 이 여자 아이, 정확히 말하면 그 집 대문이나 지키는 하찮은 여종의 이름이 분명히 ‘로데’라고 기록된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이 여종이 너무나 상반되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초대교회 성도들과 이 하찮은 계집종을 대조시켜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 아이의 이름을 기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면에서 너무나 다르냐?

❚달라도 너무 달라

바로 베드로를 맞이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습니다. 베드로가 귀환했을 때 그를 맨 먼저 영접한 것은 로데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이 로대라는 여종의 임무가 문 지키고 손님 오면 문 열어드리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평상시처럼 손님이 와서 대문을 열러 나갔다가 베드로의 음성을 듣고 너무 놀라서 미처 대문을 열어줄 생각도 안 하고 집안에 달려 들어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서 있어요” 하고 알렸던 것입니다. 옥에 갇혀있는 줄 알았던 베드로가, 또 조금 있으면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베드로가 갑자기 밤중에 돌아왔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놀라기는 로데나 안에서 기도하던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놀란 후 반응이 전혀 달라요. 14절에 보면 로데는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라고 했습니다. 물론 너무 깜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데가 “배드로가 돌아왔어요” 하고 말하자 초대교회 성도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15절에 뭐라고 나옵니까? “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보세요. 하찮은 계집종은 베드로가 돌아오자 기뻐하는데 기껏 베드로 풀어달라고 기도하던 성도들은 한다는 말이 “너 미쳤냐?”입니다. 로데는 이 말을 듣고 더 힘써 말합니다. “아니요. 정말이에요. 정말 베드로가 돌아왔다고요.” 그러나 이 말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 그러면 아마 베드로의 천사라 온 걸 거야.” 여기서 천사란 ‘수호천사’를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사람마다 수호천사가 있는데 이 수호천사는 수호 받는 사람과 같은 모습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응, 그렇다면 아마 베드로의 수호천사일거야”라고 반응한 것입니다. 끝까지 안 믿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봐라, 베드로가 돌아오자 똑같이 놀랐지만 천한 문지기 계집종은 기뻐하고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내 말이 진짜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베드로 풀어달라고 기도하던 성도들은 ‘너 미쳤니?’ ‘그건 아마 베드로의 수호천사일거야’ 하고 있지 않냐?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깨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라, 맨날 기도한다고 엎드려도 한낱 계집종 하나만도 못한 믿음이 되지 말고...” 그러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그렇다면 네가 기도하는대로 이루어질 줄 믿어라! 그게 믿음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초대교회처럼 위기가 닥쳐오거나 문제가 생기면 맨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 바랍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대로 이루어질 줄 믿는 믿음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입니다. 의외로 세상에는 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또 하나님이 대답하시자 심장마비로 죽은 대주교처럼 정작 기도는 하면서 정말 기도대로 이루어질 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그대로 이루어 주신답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받을 줄로 믿으라”가 아닙니다. “받은 줄로 믿으라”입니다. 앞으로 주실 거야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면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우리의 기도대로 이루어지는 것뿐이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은 기도대로가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뛰어넘는, 우리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위대한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실을 믿지 못하면, 의심하면 어떻게 응답이 이루어지고 어떻게 기적을 일으키겠습니까? 그러니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가 진정 성도다운 성도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교회야말로 진짜 교회다운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성도다운 성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다운 교회 되기 바랍니다.

❚기도의 세 가지 법칙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에 나온 교훈을 정리해 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기도의 세 가지 법칙에 대해 말씀합니다. 첫째,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으라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이렇게 믿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아니, 때로는 우리의 기도를 뛰어넘는, 우리의 믿음을 훨씬 넘어서는 놀라운 응답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이렇게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원수들은 패망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8~19절을 봅시다.

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
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
서 머무니라

날이 새고 베드로가 풀려난 것을 알자 헤롯왕은 어떻게 합니까? 교회를 핍박하고 베드로를 죽이려던 원수들은 크게 소동하며 헤롯은 베드로를 못 찾자 베드로를 지키던 파수꾼들, 적어도 네 명씩 네 조, 열여섯 명을 심문하고 죽입니다. 자기네끼리 처벌하고 자기들끼리 죽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보세요.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고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키시니 베드로가 풀려날 뿐 아니라 우리를 대적하고 죽이려던 원수들은 그토록 기세등등하고 강해 보이더니 결국 소동하고 당황하며 자기네끼리 싸우고 죽입니다. 스스로 패망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험한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고 죽이려는 원수들과 싸워 이기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좋은 무기를 안 쓰고 묵혀 둡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잘 사용하시는 여러분 되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원수들과 싸워 이기려면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처럼 우리 인생을 꽁꽁 묶고 있는 쇠사슬을 푸는 방법은, 우리를 가둔 감옥 문을 여는 방법은 오직 기도뿐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이룰 수 있는 믿음뿐입니다. 이런 기도, 이런 믿음을 가진 성도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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