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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날 (에 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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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날 (에 9:20-28)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명절인 <부림절>이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오늘날까지도 지키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본문 28절). <부림절>은 본문 21절에서 보는 대로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에 지키는 명절입니다. 아달월은 오늘날 우리의 연력으로는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에 걸친 달입니다. 이 아달월의 두 날 즉 십사일과 십오일을 <부림>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부림> 즉 제비를 뽑은 일 때문이라는 것이 오늘 본문 자체의 설명입니다. 

본문 24-26절에 보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했다는 것입니다. 부림은 본래 히브리어가 아니고 제비를 의미하는 아카디아어 “푸루”에서 온 것 같습니다. 

<부림절>은 그러므로 페르시아에 있던 모든 유다 민족이 그들을 멸절시키려고 한 무서운 음모로부터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받은 역사를 기리는 명절입니다. 달리 말하면 <부림절>은 유다 민족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음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본문 22절). 이 <부림절>에는 회당에서 에스더서 전체를 읽습니다. 사람들은 그때 민족구원의 영웅이며 에스더의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악한 원수 하만의 이름이 나올 때는 “우우” 하며 야유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는 남왕국 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에 사로잡혀와 살던 유다 백성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에서 살고 있던 유다 백성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크고 작은 무리를 지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모든 유다 백성이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상당수의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은 거기서도 자신들의 신앙전통을 고수하며 살았고 그 때문에 어디서나 다른 민족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으며 주변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유다 민족을 뿌리 뽑기 위해 혹독하게 박해하는 일도 자주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에 머물러 살던 유다 백성에게 최대의 위기가 닥친 것은 아하수에로가 페르시아의 왕으로 있을 때입니다. 아하수에로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다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온지 꼭 한 세기 후에 페르시아의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크세르크세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동쪽으로는 인더스 강을 넘어 인도의 서부지역까지, 서쪽으로는 나일강을 넘어 이집트와 에티오피아 땅까지로 가장 넓게 확장한 다리오 1세의 아들입니다.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 제국의 백이십칠 개에 달하는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에1:1). 그는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강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섯 달 동안 페르시아의 모든 귀족과 관료와 장수들을 자기 앞에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에1:3-4). 그 후에는 또 그의 왕궁이 있는 페르시아 4대 도성의 하나인 수산 성에 있는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화려하고 풍성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에1:5-8). 

그런데 그 마지막 날에 왕이 주흥이 일어나자 자기의 아름다운 왕후를 불러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이고 싶어했습니다(에1:10-11). 그러나 웬 일인지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했고 그래서 왕이 크게 진노하여 왕후를 폐위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에1:12-22). 그 후에 아하수에로는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페르시아 전국의 아름다운 처녀들 가운데서 새 왕후를 택하기로 했습니다(에2:1-4). 

그 기회를 이용해 수산 성에 살고 있던 유다 백성 중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자기가 딸 같이 양육하던 사촌 여동생 에스더를 유다인임을 밝히지 말라고 일러서 왕궁으로 들여보냈습니다(에2:5-10). 에스더는 거기서 마침내 왕의 눈에 들게 되었고 모든 여자보다 더 왕의 총애를 받게 되었으며 마침내 새 왕후가 되었습니다(에2:16-17). 

어느 날 모르드개는 대궐 문에 앉아있다가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엿듣게 되었고 그 사실을 왕후 에스더에게 알렸으며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그 사실을 왕에게 아뢰어 암살을 면하게 한 일이 있었으며 왕의 암살음모를 꾸몄던 두 사람은 교수형에 처해진 일이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되었습니다(에2:21-23).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이란 자를 자기의 모든 대신 위의 총리대신으로 삼고 모든 신하들에게는 하만에게 꿇어 절하라고 명령한 일이 있었습니다(에3:1-2). 그런데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할 때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았고 그 말을 전해들은 하만은 매우 노했는데 사람들이 모르드개가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모르드개만 아니라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을 죽여 없앨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에3:2-6). 

하만은 그 거사일자를 제비를 뽑아 정하고는(에3:7) 왕에게 아뢰기를 페르시아 안에 흩어져 사는 한 민족이 자기들의 법률만 지키느라고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으니 그런 무익한 족속은 진멸해야 한다고 간하여 소견에 좋을 대로 행하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에3:8-11). 하만은 제비를 뽑아 정한 날인 아달월 십삼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을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명하는 조서를 즉시 아하수에로 왕의 이름으로 작성하여 전국으로 파발마를 띄웠고 수산 성은 발칵 뒤집혔으며 전국에서는 유다 백성의 큰 근심과 절규가 일어났습니다(에3:12-15, 4:3). 

이 모든 일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하며 대궐로 들어가려 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에4:1-2). 그 소식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자기를 시중하는 내시를 불러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지를 알아보게 했습니다(에4:4-5). 자초지종을 알아보러 온 내시를 통해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전하기를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려 하는데 왕에게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했습니다(에4:6-8). 

내시로부터 모르드개의 부탁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다시 그를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전하기를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했습니다(에4:9-11). 

그 전언을 받은 모르드개는 또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기를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했습니다(에4:12-14). 그러자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5-16) 

삼일 째 되는 날 에스더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어전 맞은편에 나아가 섰습니다(에5:1). 왕은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보고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밀어 에스더가 가까이 오게 했습니다(에5:1-2).에스더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왕은 그녀에게 말하기를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에5:3) 했습니다. 

에스더는 다른 부탁 하지 않고 그저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에5:4) 하는 말만 했습니다. 왕이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만을 급히 불러 그와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갔습니다(에5:5). 그 잔치 자리에서 왕은 또 에스더에게 말하기를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에5:6) 했습니다. 에스더는 대답하기를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에5:7-8)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하만은 왕후가 자기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푸는 줄 알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다가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서 자기를 보고도 일어나지도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는 것을 보고는 매우 노하였지만 참고 집에 돌아와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며 왕후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오기를 허락 받은 자는 자기밖에 없었고 내일도 왕과 함께 청함을 받았는데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만족할 수가 없다며 그의 아내와 모든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 높이가 25미터쯤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청해서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로 하고는 나무를 세우게 했습니다(에5:9-14). 

한편 왕은 그 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으라 명했습니다(에6:1). 그런데 그 기록에서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가 자기를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에6:2). 왕은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묻었고 신하들은 대답하기를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에6:3) 하자 왕은 누가 뜰에 있느냐 물었습니다.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뜰에 와 있었습니다(에6:4). 

하만을 불러들인 왕은 그에게 묻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에6:6) 했습니다. 하만은 심중에 생각하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는 대답하기를 “왕께서 사람을 존귀하게 하시려면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가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에6:7-9)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하만에게 명하기를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에6:10) 했습니다. 하만은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번뇌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왕의 내시들이 와서 급히 그를 데리고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나아갔습니다(에6:11-14). 

하만과 함께 왕후 에스더가 베푼 둘째 날 잔치에 간 왕은 다시 에스더에게 묻기를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했습니다(에7:1-2). 그때 비로소 에스더는 대답하기를 “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 죽임과 도륙함과 진멸함을 당하게 되었나이다.”(에7:3-4) 했습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말하기를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며 그가 어디 있느냐?” 하자 에스더가 대답하기를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했습니다(에7:5-6). 하만은 왕과 왕후 앞에서 두려워 떨었으며 왕은 노하여 일어나서 잔치 자리를 떠나 왕궁 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왕이 자기에게 벌을 내리기로 결심한 줄 안 하만은 일어서서 왕후 에스더에게 살려줄 것을 구걸했습니다(에7:7). 왕이 후원으로부터 잔치 자리에 돌아왔을 때 하만은 에스더가 앉은 걸상 위에 엎드려 있었는데 왕의 입에서 하만이 자기 앞에서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는가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에7:8). 

그 말이 왕의 입에서 나오자 하만은 붙들려 나갔고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웠던 25미터짜리 나무에 달리고 말았습니다(에7:9-10). 왕은 그 날로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었고(에8:1) 에스더가 자기와 모르드개가 친척관계임을 말하자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주었습니다(에8:1-2) 모르드개가 페르시아의 총리대신이 된 것입니다. 에스더는 하만이 왕의 각 지방에 있는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해주기를 왕에게 청했습니다(에8:5-6). 

왕은 흔쾌히 에스더의 청을 받아들이고 즉시 조서를 내려 온 유다 백성이 다 안전히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게 해주었습니다(에8:7-14). 모르드개가 총리대신으로 왕 앞에서 나아갈 때 온 수산 성이 환희에 찼으며 유다인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넘쳤습니다(에8:15-16). 왕은 어명으로 그 날을 명절로 삼게 했으며 본토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이 유다인을 두려워하여 유다인이 되었습니다.(에8:17) 모르드개는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여갔으며 그의 명성은 각 지방에 퍼져갔습니다(에9:4). 

에스더서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겠습니까? 에스더서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은 그의 섭리하시는 손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비록 동족을 위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용기와 지혜와 자기희생에 힘입어 유다민족이 몰살의 위기를 넘겼지만 그 뒤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며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고 구원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성경에 포함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은 언제나 살아계시며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웅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하수에로 왕의 왕후 와스디가 감히 천하를 호령하던 왕의 명을 거역한다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고 모의하는 자들의 소리를 또 어떻게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또 아하수에로가 잠이 오지 않아 옛날 일기를 읽어보게 하는 일이 어떻게 때 맞춰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둘째는, 세상만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지 않고 다른 힘을 의지하려는 인간세계가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증오하고 박해하며 파괴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만은 제비를 뽑아 중요한 일을 결정지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제비뽑기가 아닌 모든 제비는 결국 우연이나 거짓 신을 의지하려는 것이며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그에게 맞서는 행위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그 누구도 멸망시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따라서 그의 선택도 불변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이 불충할 때 하나님께서 진노하기도 하시고 세상의 다른 힘을 이용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일시적으로 벌하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그의 백성을 괴롭히며 진멸하려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손에서 구원해주십니다. 

넷째는,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역사의 주인이시지만 사람들을 당신이 행하시는 일에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 모든 역사 속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헌신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자기를 희생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부림절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지금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조롱하고 비방하며 우리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자들이 창궐하는 시대가 되어 우리의 슬픔과 애통이 크다 할지라도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감사로 바뀌는 날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의 신실한 백성이 되기를 힘쓰며 우리 다 같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와 같이 애국애족하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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