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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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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 8:1-13)


여러분은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자유입니다! 좁은 의미에서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좀 더 넓은 의미에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주님도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해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주님은 또한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그런데 역사 속의 많은 교회들이 이 자유를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고 또 바르게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 안팎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미 초대 교회 안에도 그런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훗날 종교개혁자 루터도 타락한 중세 교회를 향해서 개혁의 깃발을 높이 들고 똑같은 말씀을 외쳤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왜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토록 심한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되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댈 수 있겠지만 저는 참 자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를 바르게 해석하고 또 바르게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로서는 속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동물의 고기를 먹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신에게 제물을 드리는 행위는 옛날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뺄 수 없는 삶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물로 바친 고기를 제단 위에서 모두 다 태워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먼저 상징적으로 적은 부분을 제단 위에서 태웠습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이 고기의 일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제물을 바친 사람이 남은 고기를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고기를 가지고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특히 혼인 잔치를 그렇게 베푸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한 분 하나님을 섬기게 된 성도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이런 잔치에 가도 괜찮은가?” “내가 우상이나 이방신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괜찮은가?” 만일 안 된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고기를 먹는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삶 자체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서는 현실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고린도와 같은 도시에 살다 보면 우상이나 이방신에게 바쳤던 제물인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날마다 부딪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말했습니다. 굳건한 믿음과 지식을 가진 성도라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는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상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나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오랫동안 우상이나 이방신을 진짜로 알고 믿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각이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우상이나 이방신은 진짜로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래도 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을 때마다 신앙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믿음이 강한 사람이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 믿음이 약한 사람의 믿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아니 단순히 믿음을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신앙 양심에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 해가 되지 않는 일도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해가 될 수 있다면 그 일을 중단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사도 바울은 믿음이 약하고 지식도 충분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거나 그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안전한 것도 다른 사람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시험에 대해서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성인들에게는 별로 유혹이 되지 않는 것도 미성년자들에게는 실족하기 쉬운 강한 유혹이 되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먼저 그것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교회 안에서는 모든 것을 지식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상이나 이방신에게 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런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에는 위험이 따르기 쉽습니다. 특히 지식은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듭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에 상대적으로 우월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런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닙니다. 비록 참된 지식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태도는 아주 잘못된 태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지식을 뽐내는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 특히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공동체로서 성도의 교제가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경험하는 현장인 교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그 중에서 성도의 교제는 더욱 강조되어야 마땅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즉 다른 성도를 배려하지 않거나 업신여길 때에 교회의 공동체성은 심하게 손상 받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믿음이 강한 성도들에게 믿음이 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왜냐 하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참 자유를 위한 기초를 쌓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도 강력하게 권면하지 않았습니까?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 5:13~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범죄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때문에 구원받은 우리는 그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참되게 그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으로는 결코 덕을 세울 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함으로써 교회의 덕을 세우고 구원의 주님을 항상 참되게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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