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토기장이의 비유 (롬 9:14-33)

첨부 1


토기장이의 비유 (롬 9:14-33) 

1.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 잘 만나 남보다 앞서 출발하고 있는데, 누구는 의식주부터 어렵고 신체적인 핸디캡(장애)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기 막히는 일들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일어납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정직과 성실을 삶의 모토로 산 사람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겉으로 볼 땐 천사(天使) 같지만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악한 사람은 오히려 일마다 번창하고 있습니다. 왜 못된 사람에겐 행운(幸運)이 찾아오고, 교과서대로 살고 있는 착한 사람들은 변변치 못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무리 세상을 원망하고 두 얼굴 가진 사람들을 욕한다 해도 세상과 내 인생은 하나도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출생에 대해 선택권이 없기에 세상은 한없이 불합리하게 보이고 실제로 불공평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혹자의 ‘불공평한 세상이지만’에서) “그러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하신 세상을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공평치 않으시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내산에 오른지 40일이 다 되어갈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올라간 후 감감무소식이어서 모세가 과연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며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며 “(출32:8)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가증한 모습에 진노하시며 모세에게 

“(출32:9-10)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만 남겨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진멸해버리시고 모세의 자손을 통해 아브라함의 약속을 성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애굽기32:11-13입니다.

(출32:11-13)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이같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진멸해버리시겠다는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 우상숭배에 가담했던 자들 가운데 회개하지 아니한 자들을 모두 처단해버렸습니다.

(출32:27) 이 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겠지만 광야 길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출33:3)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한다면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틀림없이 진멸하실 것이 때문에 함께 가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합1:13) 

하나님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동행해주시길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결국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내가 직접 너와 함께 가며 너에게 승리를 주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하시겠으나 이스라엘 백성과는 함께 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에 모세가 다시 기도드립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이 곳에서 우리를 보내지 마소서.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나와 주의 백성이 주 앞에서 은총 입은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야만 나와 주의 백성이 세상의 다른 민족과 구별이 됩니다.”(출33:15-16)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내 앞에서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잘 알고 있으니 네 요구대로 내가 다 들어주겠노라..내가 나의 선한 모든 것이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겠노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길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는 큰 죄악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진멸하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모세가 우상숭배하는 애굽을 용서하지 아니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셨는가, 그 근거를 말씀해달라고 요구하자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길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 자신의 기뻐하시는 뜻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시고 선택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뜻이라는 것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에 내려지는 구원의 은총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자신의 값없이 주시는 ‘절대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과 축복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갈 만큼 넉넉하지도 못했고, 어느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 만한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진술을 배워 사진 기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술을 엮어놓은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서점의 착오로 사진술에 대한 책은 오지 않고 발성법에 대한 책이 왔습니다. 이 소년은 너무 가난하여 그 책을 돌려보낼 만한 우송료도 없었거니와 반송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소년의 실망은 너무 컸습니다. 이 소년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실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발성법에 대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년이 그 책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된 찰리 맥카시입니다.(‘지혜로 여는 아침’중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성악가로 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은혜는 오늘 이 세대에 이방인에게나 이스라엘 사람에게나 차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습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호1:10) 라고 호세아 선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은혜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 구원의 선택이 이루어집니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주춧돌이 되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부딪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어 심판의 도구가 됩니다(본문30-33절). 죄인인 인간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껴안고자 친히 성육신(成肉身)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다하고, 오직 자신들의 율법 준수와 민족적인 특권의 의무에 젖어있던 유대인들에게는 생명을 주시는 산 돌, 예수 그리스도가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에서 “돌”과 “반석”은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고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돌과 반석에 부딪치고 거치게 되면 죽고 무너지게 되지만, 그 위에 인생을 세우면 튼튼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돌’(반석)에 부딪혀서 망했지만 이방 사람들은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반석’ 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이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선택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무 의와 공로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로 얻은 구원이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그 은혜에 우리의 삶 전체를 맡기며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2.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대로 은혜를 베푸셔서 선택하신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성민(聖民)’으로 택하신 것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거나 수효가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실만한 민족이어서 성민으로 택하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신명기7:6-7을 보겠습니다. 

(신7:6-7)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10:14-15,신14:2)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실 때 태중(胎中)에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창세기25:23입니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에서가 형이었지만 뱃속에서부터 동생 야곱을 택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말라기1:2-3입니다.
(말1: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왜 장자인 에서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택하지 아니하시고 동생은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택하셨는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또한 알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어 택하시는 것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그 됨됨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에서와 야곱의 업적과 공로를 다 살피신 후에 선택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선택은 야곱의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야곱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과 목적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에서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와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항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그 둘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이 선택하신다면 야곱 조차도 결코 선택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축복은, 행위와 업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약속의 씨로 선택되었다는 것에 더 큰 사랑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선택의 축복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에는 결코 후회하심이 없으십니다. 민수기23:19, 로마서11:29입니다.

(민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롬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사람의 선택보다 하나님의 선택이 더 높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을 두고 사람이 평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만큼이나 그 길과 생각이 다르고 높기 때문입니다. 이사야55:8-9입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람은 모든 일의 과거나 현재, 그리고 그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사무엘 선지자를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새의 아들들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에 당도해서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도록 하자며 자녀들을 모두 불러들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여러 아들들 중 누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선택됐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이새의 아들들을 차례로 자기 앞으로 지나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먼저 탁월한 신체를 가진 엘리압을 보고 ‘과연 하나님의 기름 부으실 자가 주님 앞에 있도다.’면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엘리압은 블레셋의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사울을 따라 종군한 바 있었습니다(삼상17:13, 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16:7입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래서 그 다음으로 아비나답을 보고 또 삼마를 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곳에 있던 이새의 일곱 아들들 중에는 왕으로 선택된 자가 끼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에게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새가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지금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이 막내를 불러오라해서 막내를 보니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바로 이 사람이니라.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막내 다윗에게 기름를 붓자 성령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습니다. 사람은 현재의 외모 등을 보고 판단하겠지만 하나님은 아직 ‘작은 아이’(말째)에 지나지 않은 다윗, 골격이나 인격 등이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소년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소년 다윗의 미래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어 그의 모든 앞날을 섭리하셔서 그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삼상16:6-13)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의 앞을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가로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그 아들 일곱으로 다 사무엘 앞을 지나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가로되 아직 말째가 남았는데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하나님께서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신 목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신 것입니다. 시편135:4입니다. 

(시135: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이를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5:16입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인생이 자신의 삶에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이 되려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선택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되 창세 전에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1:3-6입니다.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성도 여러분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태중에 지어지기 전, 아니 창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자신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받으신 성도 여러분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여러분의 삶을 섭리하셔서 마침내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실, 어느 길이 행복하고 ,누가 더 불행한지는 아무도 모르며 두고봐야 합니다. 

정말 우리들의 행, 불행은 그리스도의 날, 즉 역사 최후의 날에 가서야 말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호화롭고 영광스럽게 살았다 하더라도 그가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이라면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16:19-31에 나오는 나사로는 세상에서 비록 거지였지만 죽어 낙원에 들어가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 그 부자는 세상에서는 가장 부유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으나 결국은 지옥에 들어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네 생각에 이 사람이 복 받았다, 저주 받았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 깊은 곳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그렇게 간단하게 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복받았다’, ‘저주받았다’, ‘행복하다’, ‘불행하다’라고 해석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이해가 되는 일은 이해가 되는대로 감사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안 되는 대로 무조건 따라가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고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지금의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형편이 어떠하든지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그가 아무리 세상 부귀 영화 권세 명예를 다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항상 은혜인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15:10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든간에 그 선택은 깊은 사랑과 하나님의 뜻이 담겨진 선택인 것입니다.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은혜로써만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 선택은 인간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의 지위나 물질, 학식, 교양의 있고 없음 등의 인간적인 모든 조건이 하나님의 선택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인간의 문명과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 가고 있어도 인간은 스스로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이유와 목적은 본문 17절 말씀대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련한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미련한 자들을 지혜롭게 하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한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여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존귀하게 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전1:23-31)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이유와 목적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을 사랑하사 신령한 복을 주셔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아무런 값도 없이 크신 은혜로 성도 여러분을 택하신 그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성도 여러분을 택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1:3-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