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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제의 찬송이 된 사람 (창 4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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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찬송이 된 사람 (창 49:8-12)
   
창세기로부터 성경을 읽어가노라면 아주 감동적인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창세기 44장에서 유다라는 사람이 막냇동생 베냐민을 위하여 자신이 홀로 인질이 되겠다고 나서는 장면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사건만 만나면 눈물이 납니다. 그동안 야곱의 12형제들이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면서 형제 우애가 없었는데, 유다란 사람이 12형제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자기가 먼저 형제들의 짐을 지겠다고 하였습니다. 4분의 어머니로부터 배다른 형제들이 모이다보니 11째 요셉은 가장 사랑받는 부인의 아들이기 때문에 따돌림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헬이란 어머니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그에게서 낳은 아들인 요셉이 왕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가 애굽의 총리대신인 요셉 앞에 나아가 엎드리고 통사정합니다. 창44:30절부터 봅니다. 제가 새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아버지의 목숨과 이 아이의 목숨이 이렇게 얽혀 있습니다. 소인이 어른의 종, 저의 아버지에게 되돌아갈 때에, 우리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지 못하거나, 소인의 아버지가 이 아이가 없는 것을 알면, 소인의 아버지는 곧바로 숨이 넘어가고 말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어른의 종들은 결국, 백발이 성성한 아버지를 슬퍼하며 돌아가시도록 만든 꼴이 되고 맙니다. 어른의 종인 제가 소인의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안전하게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책임을 지고 나섰습니다. 만일 이 아이를 아버지에게 다시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면, 소인이 아버지 앞에서 평생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다짐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그의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 아이 없이,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얼굴을 뵙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에게 닥칠 불행을, 제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라는 사람은 야곱의 12형제 중에 4번째입니다. 

어머니 레아가 야곱에게서 내리 4형제를 낳았고, 후에 둘을 더 낳고 딸도 낳았습니다. 사실 언니인 레아는 동생 라헬보다 인물도 잘 생기지 못하였으며, 사랑받는 아내도 아니었는데, 자식의 절반 이상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을 독차지 하고 살던 욕심 많은 라헬은 두 번째 아들을 낳고서 일찍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베들레헴 근처에서 막내아들을 낳은 후에 난산 끝에 죽었습니다. 오늘과 같이 의학이 발달된 시대라면 다 살 수 있었는데, 일찍 죽었고 오랫동안 레아가 본래의 부인이었고, 후에도 남편과 함께 조상의 무덤에 들어갔습니다.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먼저 들여보냈지만, 어쨌든, 레아가 처음 부인이 되었습니다. 

레아가 먼저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레아를 보실 때에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이름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레아는 믿음이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괴로움을 돌보셨다고 고백합니다. 

두 번째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시므온’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므온이라는 이름은 “들으심”이라는 뜻으로, 여호와께서 자기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기에 또 아들을 주셨다고 시므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레아는 계속해서 낳았다 하면 아들입니다. 레아는 생각하기를 내가 세 아들을 연속해서 낳아주었으면 내 남편이 이제부터는 자기와 연합하리라, 이 말은 “이제는 남편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라는 말입니다. 그런 기대심으로 레위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레위’란 연합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남편 야곱은 라헬만 사랑합니다. 아니 아들을 많은 낳아주었는데, 야곱은 무심한 사람입니다. 

이제 레아는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지으면서 심사숙고한 듯합니다. 레아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말합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하면서 ‘유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라는 말은 찬양하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야다 ”라는 말의 사역형인데, 하나님의 속성과 그의 하신 일에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노래하고 외치는 것이 찬양입니다. 레아의 신앙이 남편에 대한 사모함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승화되어갔습니다. 한 여인의 비탄이 찬양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네 명의 아들을 낳아주었어도 관심조차 없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을 감격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레아의 믿음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레아가 정말 조강지처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10명의 형제들이 다 함께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집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꿈꾸는 동생 요셉이 찾아왔습니다. 동생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집을 나와 형님들을 찾아다니느라고 아주 멀리 나왔는데, 며칠 만에야 형들을 만나니 얼마나 반가울 것입니까? 그러나 형들은 동생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는 순간, 서로 마음이 통하기를 죽이자고 합니다. 서로가 말합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큰 형 르우벤이 듣고 형제들의 손에서 막내 동생을 구원하려 하여 “우리가 그의 생명을 해치지 말자”고 했습니다. 요셉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형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고 물이 없는 웅덩이에 처넣고, 이제 죽이려고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유다가 보니,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낙타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장사하기 위하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랐습니다. 미디안 상인들,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요셉을 파는데, 은20을 받고 팔았습니다. 

유다의 행동이 아주 나쁘지요, 어떻게 동생을 외국에 노예로 팔 수 있습니까? 그러나 팔지 않고 그대로 가면 살릴 수 있습니까? 요셉을 꺼집어내면서 우리가 장난으로 그냥 해본 일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형제간에 하나가 되고, 화목하게 될 수 있습니까? 동생과는 이미 원수가 되었고, 살기등등한 형제들이 동생을 죽이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을 살리는 것은 돈 받고 팔아먹는 것이 최악을 피하는 차선책입니다. 유다는 최악의 상황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유다는 사람 됨됨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 지혜를 주셨고, 유다의 지도력을 이용하서 선을 이루시고 있습니다. 

유다가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엘이라는 아들입니다. 다시 아들을 낳았는데 오난이란 아들입니다. 셋째로 또 아들을 낳았는데 셀라라고 했습니다. 장자 엘을 위하여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맞았습니다. 장자인 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엘을 치시므로 장자 엘이 부인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이제 가나안의 풍습을 따라 동생이 형수와 살아서 형님의 대를 이어주어야 했습니다. 이런 계대결혼 제도는 고대 사회에 아주 흔한 일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이 죽은 형제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이름을 보존하고 부인을 홀로 두지 않고 먹이고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난이란 둘째가 자식을 낳아도 자기 자식이 되지 않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고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설교 시간에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우니,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은 오난도 죽이셨습니다. 졸지에 두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아직 셀라가 장성하지 않았으니, 며느리보고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셋째가 장성하면 부른다고 하였는데, 셋째 셀라가 다 컸는데도 아무런 기별이 없습니다. 

며느리 다말이란 여자는 책임성이 강한지, 머리가 똑똑한지, 자기 살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그는 창녀로 가장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통하여 임신하였습니다. 유다에게 들려오는 말은 다말이라는 며느리가 행음하고 임신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합니다. 그때 다말이 시아버지에게 내놓는 것이 있었습니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이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유다가 그것을 알아보고 말합니다. “너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너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말은 다말의 행동이 결코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유다 자신의 처신보다는 더 타당성이 있다는 말이요, 약속을 잘 지켰다는 말이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허물을 보면서 며느리 다말의 행동에 대하여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수용하고 자신의 부덕으로 돌리고 사건을 마무리합니다.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들여보내면 혹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들이 장성하면 부르겠다고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며느리의 행동이 단순한 욕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후손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나중에 룻기에 보면 베들레헴의 여러 장로들이 룻을 축복하면서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룻 4:12)고 했습니다. 베레스와 세라의 후손이 번성하였습니다. 

유다가 가장 많은 가족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유다의 자손들은 며느리를 통하여 얻은 베레스와 세라가 번성하였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번성하는데,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가장 강성하게 일어났습니다. 

민수기에 보면 12지파의 인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지파의 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장정이 무려 7만4천6백 명이 되었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3만, 보통 4만- 5만 명 유다 다음으로 많은 지파가 단지파로 62,700명이었습니다. 광야 생활을 거의 마칠 무렵에 인구조사를 하였는데, 어떤 지파는 수가 줄어든 지파도 많았는데 유다지파는 7만6천5백 명으로 늘었습니다. 

시므온지파는 1차에 59,300명이었는데, 2차에는 22,200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레위지파는 남자 아이로 한 살 이상 된 모든 사람을 계수하였는데, 겨우 2만2천명이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성막의 동쪽에서 진영으로 이루고, 살았는데, 가나안 땅으로 전진하거나, 다른 민족과 전쟁할 때에 가장 선두에 서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가나안정탐꾼으로 12명이 파견되었을 때에 유다 지파에서는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는 사람이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유다지파의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여호수아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실한 일꾼을 배출한 지파가 유다지파였습니다. 

유다 자손은 항상 이스라엘 12지파의 선두에 서 있었고, 항상 12지파를 대표하고 있었고,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하고 살았으며, 이스라엘의 왕이 유다지파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지파를 잘 사용하셨습니다. 

한번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게 되었을 때에,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라고 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삿 20:18) 

항상 유다지파가 어렵고 힘든 일은 도맡아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사용하시는 지파가 유다지파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다는 형제의 찬송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형제의 찬송이 된 사람입니다.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해치려고 할 때에 혈육의 피를 흘리는 것보다 노예로 팔면,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의미로 차선을 선택하였고, 자신을 막냇동생 베냐민의 담보물로 대신 인질이 되겠다고 하였고, 형제들의 허물을 변호하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제들의 찬송이 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한 인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찬양을 받는다는 말이 몇 번 나옵니다. 그런데 유다가 형제들의 찬송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형제들 간에 한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어디를 가든지 자랑스러운 형제를 높이면서 자기는 그의 형제라고 말하게 됩니다. 

야곱은 그의 12아들들을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축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들들은 가차 없이 저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요셉은 세상에 없는 말로 축복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받은 아들들은 다 잘 되었고, 아버지의 책망이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재물보다는 축복하시는 말씀을 더욱 사모하여야겠습니다. 

1.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찬양받게 되었습니다. 

8절입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있지만, 한 사람을 높이고 그에게 모여 앉아 절을 할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당신과 같은 사람이 나의 형제였고, 나의 아우였다는 것으로 내가 절하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당신은 나의 형이지만, 우리 형제들의 자랑이요, 우리에게 많은 긍지를 심어주었다고 칭송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모이면 누군가는 앞장서서 힘든 일을 감당하고, 어렵게 사는 형제를 위로하며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형제들 간에 혹 잘 못한 것이 있어도 형제의 이름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하였지만, 아버지는 요셉에게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창 50:17)고 했습니다. 형제들 간에도 잘못이 있으면 비굴해보이더라도 용서를 빌어야 하고, 또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있습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고 하셨습니다.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있습니다. 

형제의 의무 중에는 고엘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을 물러줄 수 있는 형제입니다. 형님의 기업이 무너지면, 바로 밑의 아우가 그 기업을 살려주어야 합니다. 

유다는 모든 형제들의 허물을 짊어지고 용서를 빌었고, 그 책임을 도맡아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찬송이 되고 있습니다. 


2. 유다지파에서 다윗왕이 나왔습니다. 

9절입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고 했습니다. 

사자는 백수의 제왕입니다. 그의 앞에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누가 사자를 범할 수 있습니까? 사자는 짐승의 왕인 것 같이 유다 지파에서 왕이 떠나지 않고,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10절입니다.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실로가 오시기까지”라는 말은 실로라는 말은 지명으로 이해하지 말고, 추상적인 명사로 보면서 “평안의 때”,“안정된 시대”를 의미하여 메시아의 시대가 올 것을 내어다보고 있습니다. 유다지파의 왕권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예표하며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의 약속은 모세에게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계시되었고, 이제는 실로가 오시는 것으로 계시되고 있습니다. 모든 백성이 유다에게 복종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 유다는 평화와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11절입니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이스라엘 히브리 사람들은 평화시에 나귀를 타고 다녔습니다. 나귀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유다의 후손들은 평화를 구가하며, 경제적으로도 매우 안정되게 살아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2절입니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이 말씀은 유다가 지도자로서 우뚝 솟아오를 것을 내다보시는 말씀입니다. 유목민족에게 포도와 우유가 풍성해질 것이라,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 여러분도 흩어져 있던 형제들을 만나셨고, 우리에게 형제들이 있다는 것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12형제들 중에 유다라는 사람이 형제들의 자랑이 되었고, 찬송이 되었습니다. 

유다와 같이 형제를 사랑하며, 큰 책임을 감당하며, 살아가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형제들의 진정한 자랑과 기쁨이 되시는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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