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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토에서 일어나라 (시 1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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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토에서 일어나라 (시 113:7-9)

사람은 태어날 때는 아기였지만 점점 자랄수록 입었던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게 됩니다. 몸도 커지고 생각도 자랍니다. 자라는 사람은 버리는 것이 생깁니다. 신발도 버리고 옷도 버리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어린아이 같은 말을 버리고 어른 같은 말을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의 상징은 아담과 하와입니다. 아담은 생각이고 하와는 감정고대영어로는 사람을 man이라 하지 않고 마음 ‘mind’라고 썼습니다. 사람은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마음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창조주는 사람을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 가난에서 일어나라

“가난한 자를 먼지더미에서 일으키시며...”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가난한 자리에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가난한 자를 먼지더미에서 일으키십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있습니다. 부자 아빠는 부자되는 법을 압니다. 자식이 부자가 되게 합니다. 가난한 아빠는 평생 열심히 일했지만 가난합니다. 가난을 물려줍니다.  
  
하나님은 부자아빠이십니다. 가난한 자를 먼지더미에서 일으키십니다. 
가난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심리적인 가난입니다. 가난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신념 체계를 바꿔야 합니다. 성경적 사고, 성령론적 사고 방식으로 신념체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불황 중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밤이 새도록 고기잡이에 나섰으나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결과 두 배에 가득하게 잡았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린 것은 자기 신념체계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신념 체계를 장착한 것입니다. 자기 신념 체계를 말씀으로 바꾼 결과 놀라운 성과를 얻은 것입니다.
  
말씀으로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억압된 마음에는 번영하는 능력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이고 억눌린 사고 방식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요, 부유함의 조상입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옮겨간 것은 창조적인 부의 마인드로 옮겨간 것을 상징합니다.  
  
물질의 노예 근성으로 살지 말고 물질을 다스리는 주인의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가나안”이란 “물질의 영토”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담을 만든 땅의 흙은 “풍부하고 무한한 물질”의 상징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사람들입니다. 하늘 양식을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으라 하셨습니다. 
풍부하고 신비한 물질은 번영의 사고 번영의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풍요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습니다. 
부는 부유한 사고의 결과입니다. 부요의식이 신성한 물질입니다. 나 자신을 신성한 물질로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이 신성한 물질이 될 때 가난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8:18) 
  
아브라함은 75년간 살았던 바벨론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영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선구자였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이것은 예수님의 경제학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동의하는 사고 구조를 가질 때 모든 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 비천에서 일어나라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워”(7절) 

먼저는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셨는데 이번에는 “거름더미”에서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워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거름더미는 비천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 비천하게 자란 사람을 가리켜 거름더미에서 사는 자라고 합니다. 거름더미는 더러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거름더미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비천한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을 만큼 비천한 자리로 떨어졌습니다. 더 이상 깨질 수 없을 만큼 깨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친히 거름더미 같은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려오시어 그가 나를 “들어 세워”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서 세어주셨다는 말씀이 참 좋습니다.  
  
그분 손은 힘이 있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사람들은 베드로가 그를 일으켜 세운줄 알지만 그게 아닙니다. 
  
베드로가 백성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하나님이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다”(행3:12,13)라고 했습니다.  
  
앉은뱅이는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그가 앉아 구걸하던 자리가 거름더미였습니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2:7,8)
  
거름더미는 소똥과 쓰레기를 쌓아둔 곳입니다. 배설물이 얼마나 냄새가 납니까? 예수님은 못박힌 손으로 우리를 똥 무더기에서 들어올리셨습니다. 
  
거름더미는 심한 빈곤과 버림받은 자의 자리를 상징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가 머무는 곳이 거름더미입니다. 낮에는 거기서 구걸을 합니다. 밤이 되면 낮에 햇볕으로 따뜻해진 거름더미 속에 파고 들어가 추운 밤을 지새웁니다. 이것이 거름더미 인생입니다. 
  
거름더미에서 우리를 “들어 세워”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거름더미는 비천의 상징입니다. 비천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과 함께 세워주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불임에서 일어나라

“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9절)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여자의 몸에서 나왔습니다.  하와는 “자궁이 있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씨를 지니도록 지으셨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최초로 태어난 아들은 가인입니다. 부부가 아들을 낳고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4:1)고 했습니다. 인류의 첫 여성인 하와가 출산 능력을 자랑합니다. 출산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결혼한 여자가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하다가 아이를 낳으면 그것처럼 큰 경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불임 여성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임신하게 하십니다. 
  
사라가 그렇습니다. 그는 90세가 되기까지 임신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천사 셋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굽혀 절하며 발을 씻고 쉬소서, 떡을 가져오겠다고 합니다. 송아지를 급히 잡고 요리를 해 차려놓습니다. 그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내년 이맘때면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0) 말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 사라는 구십세에 사라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창21:6,7) 사라가 구십세에 이삭을 낳은 것은 사라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능력이었습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어 얼굴에 수색이 가득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었습니다. 불임으로 불행하던 여성을 임신시켜 행복하게 되고 “즐거운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성에게 출산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하지만 고통 없는 탄생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성은 열렬한 성도입니다. 출산은 여성만의 고통이고 여성만의 기쁨입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은 얼마나 출산을 원했는지 모릅니다. 나로 아이를 낳게 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했습니다(창30:22-24). 라헬은 둘째 아들을 힘겹게 낳고 죽었습니다. 그는 득남했다는 말을 듣고 혼이 떠났습니다. 라헬이 난산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습니다. “나의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이라 지었습니다. “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창35:17,18)
  
교회는 라헬 같아야 합니다. 자녀를 낳다가 죽어도 좋다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 자녀를 낳는 것이 소원인 교회말입니다. 교회는 복음의 씨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해산의 고통으로 신음해야합니다.   
  
“잉태치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 지어다 이는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사54:1)
    
할렐루야!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먼지더미에서 일으켜 주셨습니다. 영적, 경제적 가난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드리세요. 나머지 소유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들어 올려 세워주셨습니다. 비천한 자리에서 티끌을 떨어버리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자녀를 낳게 하시고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적 자녀를 해산하고 아이 우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산부인과 병동 같은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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