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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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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우를 잡으라 (아 2:15)


환경부에 따르면 야생동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수백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 중 멧돼지나 고라니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데 농작물부터 묘지 훼손까지 다양하며, 최근에는 도심에까지 야생 동물이 물출해서 인명피해까지도 발생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 각 도는 유해 조수 포획활동을 하고 있고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농가에 대하여 철망 울타리 또는 전기충격기 등을 설치할 경우 설치금액을 보조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금 이 시대에만 있는 일이 아니고 구약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 이라"했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왕과 시골처녀인 술람미여인과의 사랑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왕과 일꾼인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하나님과 성도의 사랑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고 해서 성경에서 제외될 여러번의 위기 가운데서도 결국 그런 위기를 다 물리치고 정경이 된 책입니다.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술람미는 성도를 포도원은 넓게는 교회 좁게는 가정,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은혜받은 성도의 심령인 것입니다.

포도원과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하고 예수 믿는 성도 한 사람을 상징하기도 하고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한 사람의 마음을 허물고 국가를 허물고 교회를 허무는 여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우는 어마어마한 집승은 아닙니다 작은 짐승입니다. 거기다가 작은 여우라고 했으니 여우 중에서도 결코 크지 않는 작은 여우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우가 있으면 포도원의 포도꽃을 떨어뜨리고 열매를 따 먹으며 가지를 살살갉아 먹어 포도나무를 다 죽여 버립니다. 이 여우를 그대로 포도원에 방치해두면 포도원이 망하게 됩니다.  

1982년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캘링은 월간지에 '깨진 유리창'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이를 본 사람들은 나머지 유리창도 깨뜨리거나 심지어 건물에 불을 질러도 된다는 신호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소한 침해행위가 발생했을 때 이를 제때 처리하지 않으면 더 큰 행위로 발전한다는 내용입니다. 나아가 이런 행태를 방치한 조직은 비슷한 패턴으로 망가지고, 사소한 공권력 무시가 국가의 근간을 흐틀어지게 할 수 있다는 게 '깨진 유리창' 법칙입니다.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방치해 두면 결국에 가서는 다 망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작다고 생각하는 것, 별것 아니라고 무시해버린 것이 큰 화근이 되기 일수입니다. 

가정사역을 하는 송길원의《비움과 채움: '어포스트로피'가 생각을 바꾸다》란 책에도 보면 "거목을 넘어지게 하는 것은 천하를 호령하는 벼락이 아니라 나무 속에 사는 조그만 딱정벌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주 작은 것, 그래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들이 우리를 넘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들어 앉아있는 미움이나 원망이나 분노라는 작은 딱정벌레가 내 자신을 먼저 조각내고, 마침내 상대방의 인생도 부숴뜨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이 작은 딱정벌레들을 잡아야 합니다.  

마귀는 헬라말로 "디아불로스"인데 이 말은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사이에'라는 '디아'와 '갈라놓다'라는 의미의 '불로스'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말로서 어떤 관계를 벌어지게 하고 나누어지게 하며 파괴하는 것이 마귀의 역할인 것입니다. 이 마귀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을 가지고 틈새를 벌려놓습니다. 엡 4:27에 보면 마귀에게 작은 '틈'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작은 여우은 작은 틈으로도 잘도 드나드는 것입니다. 

작은 여우는 포도나무 덩쿨 뒤에 숨어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우는 주로 밤에 활동합니다. 밤에 먹이를 찾습니다. 여우는 변신의 귀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은폐, 엄폐, 위장의 기술이 뛰어납니다. 교활합니다. 

작은 여우를 조심하고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한 그 시점을 오늘 본문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포도원에 꽃이 피고 있는 때였습니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포도원에 꽃이 피었습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다 잘 되려고 하는 떄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때 터지게 됩니다. 아주 사소한 것,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사랑이 멀어지고 결국 파경에 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 작은 여우를 용납하지 말고 잡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우리 성도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이 신령한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는 무엇이며 어떤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첫째는 이기심이라는 작은 여우입니다.  

포도원에 들어온 여우는 오직 이기심 밖에 없습니다. 여우는 매우 영리한동물이어서 자기의 먹이는 절대 빼앗기지 않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동물의 특징을 지녔습니다.  
이기심이란게 무엇입니까?나에게 초점을 맞춰달라는 것입니다 내 중심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내가 높임받고 나 잘 되는 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는 흥해야 하겠고 나는 쇄해야 하리라"는 정신이 없습니다. 이 이기심 때문에 믿음도 떨어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회사도 몰락을 합니다.  
  
이기심은 작지만 악한 여우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교회와 가정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천국 공동체입니다. 이기심이 없어야 하는 곳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의 공동체는 철저한 비이기적인 공동체입니다. 가정이 이기적인 집단이 되면 그것은 가정이 아닙니다. 교회가 철저하게 이기적인 집단이 되면 그것은 마귀 소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너희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도다"하신 말씀이 비이기적인 성전을 이기적인 곳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다른 모든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이지만 가정과 교회는 철저하게 이타적인 공동체입니다. 이기심을 물리치고 하나님 중심 예수님 중심 이웃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심은 같은 형제입니다. 작은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아간 한 사람의 작은 탐심으로 인해서 작은 성 아이성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이기심과 탐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사람은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불평도 체질화가 됩니다. 
불평은 비판을 낳고 비판은 비난을 낳습니다. 비판하고 비난하고 불평하는 습관이 있다면은 지금 이 시간 뒤로 미룰 것도 없이 그리고 아깝다 생각하지 말고 빨리 휴지통에 쑤셔 넣어버려야 합니다. 나중에 버리면 되겠지, 하고 미루다가는 평생 우리 곁에 머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참한 인생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바늘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도 물이 새는 것처럼  작은 불평으로 가정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지진같이 큰 것으로 가정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우습게 여길 수 있는 작은 요소로 쐐기를 박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에서 부터 시작된 작은 불평이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배교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곁눈질이란 작은 여우가 있습니다. 
  
사랑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부간에 가장 싫어하는 것이 무엇니까? 상대방이 자신을 주목하지 아니하고 겉눈질하는 것입니다. 집중해야 할 대상을 속이고 겉눈질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작은 곁눈질이 다윗에게 씼을 수 없는 실수를 하게 했습니다. 다윗의 곁눈질은 간음으로 발전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른 곁눈질은 영적 간음과 같습니다. 작은 곁눈질이 큰 화마가 됩니다. 

은밀한 곁눈질이 지붕 위에서 만민에 드러나게 되어 수치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윗의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곁눈질을 하면 안됩니다. 영적 게으름, 영적 태만에 빠지는 것, 세상 즐거움에 빠지는 것 이런 것들은 다 곁눈질을 하는 것입니다. 
'남들도 하는 곁눈질인데'라고 하는 사소한 생각이 바로 작은 여우입니다. 남들도 하는데 라는 생각이 아주 사소한 일들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행동도 거리낌없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의심의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여우는 의심이 참 많은 짐승이라고 합니다. 거기다가 포획될 위기를 겪은 상처받은 여우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더 은밀하게 움지일 것이고 온갖 방법으로 으로 자신을 숨기고 잡히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끔 119에서 동물을 구난하는 장면을 봅니다. 그런데 한 번 인간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동물들은 좀채로 인간에게 마음문을 열지 않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마음의 작은 상처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는 불신하고 의심하고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습니다. 작은 상처가 낫지 않고 덧나면 큰 병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마음의 작은 상처는 인생전체를 비극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마음의 작은 상처나 육신의 작은 상처를 버려두시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상처라도 속히 치료해야 합니다. 마음의 작은 상처로 인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 기도하지 못하고 성도의 교제나 성령님과의 교제가 깊어지지 못하고 빈곤해지는 것입니다.

진정성을 찾아야 합니다. 진정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주님께 최종 진실이 있고, 주님께 최종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을 의심하지 않아야 자발성을 끌어낼 수 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 전부를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이 말씀은 작은 것이 불러일으킬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데는 많은 누룩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누룩으로도 충분합니다. 고전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갈 5: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증상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병의 시작일수도 있습니다. 의외로 사소하다고 생각한 감기몸살에도 꼼짝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조그만 불씨라도 제때 처리하지 못하면 큰 불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방치하면 안됩니다. 반드시 막아야 하고 이미 들어온 작은 여우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우는 사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잡으라"하셨습니다. 잡으라는 말은 묵인하라, 우서워하라, 멀리하다, 쫓아내어버리라, 이정도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잡아버리라는 것입니다. 포획하라는 것입니다. 진멸해버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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