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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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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 4:1-8)


한 때는 사람이 똑똑한지 아닌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 IQ 즉 지능지수였습니다. IQ의 높고 낮음은 사람이 똑똑한지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IQ보다 EQ 즉 감성지수가 높아야 한다고 말하며 EQ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그것도 변하여 SQ를 말합니다. SQ는 사회적 지수를 말합니다. 이를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사회성’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서 진정으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자가 되었다 해도 대인관계가 좋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네 마네 한다면 아무리 큰 집에 산다고 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동료들과 갈등을 빚고 이웃들과 등을 지고 산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이뤄집니다. 가진 것이 조금 적어도 부부가 금술이 좋고, 부모와 자식 간에 사이가 좋고, 동기간에 우애가 있고, 친구 간에 우정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 행복하려면 삶과 대화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돈이 있고, 명예가 있어도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외로워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행복의 중요한 요소는 관계입니다. 

그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율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관계를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것이 바로 구원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진정한 믿음의 삶과 좋은 교회, 그리고 행복한 삶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성숙한 믿음과 하나님 안에서의 진정한 행복이 사회성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20대에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나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참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증인으로 앞장섰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멀리했습니다. 그를 친구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교의 사명을 받고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40대 초반입니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선교 팀을 이루었습니다. 마가가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선교 여행을 하는 가운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선교 여행이 너무 힘들다 보니 마가가 바나바와 바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마가로 인해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다투고 갈라서게 됩니다.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호하게 마가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며 반대합니다. 이 일로 바나바와 바울의 선교 팀이 갈라서게 됩니다. 바울이 성품이 부드럽고 관용적이기 보다 매우 자기중심적으로 강한 성품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때 바울의 나이가 40대였습니다.

바울은 50대에 고린도교회의 심각한 갈등과 다툼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잘난 사람들이 많아 자신들의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교회가 산산조각 날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교회를 힘을 다해 화해시키고자 노력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깊이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60대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 옥에 갇히며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는 중에 동역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복음을 위해 동역자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선교 초기에 그렇게 미워하고 욕을 했던 마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마가가 자신의 사역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매우 소중한 일꾼이고 동역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로마 감옥에서 쓴 옥중 서신을 보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관대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중심의 거친 관계에서 부드럽고 포용하는 관계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숙한 믿음의 자리로 나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겨 주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행할 때 성령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셨다’ 우리들이 깊이 묵상해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정말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생각도 다르고, 생활 습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한 생각을 품고, 같은 가치를 위해서 하나가 되어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사실 불가능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각각 다른 사람들입니다.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감성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과 느낌보다 행동이 먼저 앞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데 한 번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셨습니다. 각 사람의 머리위에 임하셨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성령님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를 인격적으로 만나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한 사람씩 모두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그들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셔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주셨을 때 그들은 서로 달랐던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일어나 일하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일꾼들이 많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많았던 고린도교회가 시끄럽고 다툼이 끊임없이 일어난 이유는 교인들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소리를 내는데 열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각자가 옳고, 자기만이 최고라고 외치니 교회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람의 생각과 소리는 큰데 하나님의 생각과 소리는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을 지키는데 ‘힘써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그것을 유지하고 지키는데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은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선 대전제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자꾸 흐트러뜨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단입니다. 사단은 의도적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 성숙한 백성이 되는 것을 방해합니다.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을 훼방합니다. 

이 사실은 이미 예수님께서 너무도 소상히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 17:11을 보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 기도가 저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 되기 힘든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고, 성령께서 하나 될 수 있도록 기본 토대를 만들어주셨지만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지켜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역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준엄한 명령이 주어집니다. ‘힘써 지키라’ 힘들더라도 힘써 지키라는 것입니다. 힘써 지키라는 말씀은 보통 노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입니다. 

내 생각과 뜻을 접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으로 무장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힘쓰고 애를 써야 합니다. 자신을 쳐서 십자가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한신 교회의 이중표 목사님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 분이 말하는 별세 신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팔팔하게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뜻이 내 속에서 이뤄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죽고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죽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만이 이뤄집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성령님을 말하면서도 성령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하나님의 뜻으로 변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믿음의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를 용납함 등이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믿음의 덕목들은 내가 죽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성령님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 가질 수 있는 믿음의 덕목들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덕목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위해 힘을 다해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한 주간의 삶의 자리에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사모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말과 습관, 그리고 가정과 직장, 교회 생활 속에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지배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새롭게 세워지고 회복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삶 속에 이뤄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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