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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덩이에 빠졌을 때 (창 37: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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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에 빠졌을 때 (창 37:12-28)

이성을 잃어버린 세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인과 법칙에서 나온 말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그런데 가는 말이 고운데 오는 말이 거칠 때 우리는 황당함을 느낍니다. 은혜를 베풀었는데 욕으로 돌아오면 어떻게 합니까? 세상엔 이런 일이 많습니다. 이성을 잃어버리고 감정이 앞서면 이런 우스운 일들이 생깁니다. 이런 일이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떼를 치고 있던 형들을 찾아갔습니다.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갔습니다. 헤브론은 남부 산지이고(14절) 세겜은 북쪽 도시형의 성이 있던 곳입니다(창 33:18-20). 그 길이 가까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약 90km 정도 되는 먼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형들이 그 곳에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상인이 형들이 세겜에서 더 북쪽인 도단으로 옮겼음을 알려주어 다시 도단까지 갔습니다. 그 길이 약 30-40km입니다. 모두 합하면 120-130km를 걸어갔던 것입니다. 남자 장정이 한시간 가는 거리가 보통 4km입니다. 그러면 서른 시간 이상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듯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의 안부를 보려고 갔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런 마음과 달리 형들은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유는 요셉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는 대로 그 꿈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할 것이란 꿈이었습니다(5-8절). 형제들 뿐 아니라 부모들조차도 요셉에게 절하게 될 것이란 꿈이었습니다(9-11절). 형제들은 비아냥거리며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8절)며 요셉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차에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요셉을 구덩이에 빠뜨려 그를 죽이자 그러면 그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24절). 

요셉은 꿈 때문에 엄청난 일을 당한 것입니다. 형들의 눈엔 자기들을 위하여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온 사랑스런 동생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을 보는 순간 이성보다는 감정이 그들의 판단을 지배했던 것입니다. 이성이 지배하지 않고 감정이 앞서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세상은 어두워집니다. 요즘 우리는 감성을 강조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올바른 감성은 우리들의 삶을 더욱 기름지게 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성의 바탕 위에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부조리하게 됩니다. 본말이 전도 될 때가 많습니다. 여자 친구와 교제를 계속하려고 그것을 말리는 부모와 동생을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그렇습니다. 믿음은 이성과 감성과 의지의 조화가운데서 성숙해져가는 인격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서 이성을 무시하거나 이성적 판단을 잃어버리면 저속한 광신이나 미신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성이 빠진 신앙은 무서운 것입니다. 집단 가출이나 집단 자살까지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아니 전통 교회 안에 머물면서도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세상엔 하나님의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중에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하면 세상을 떠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어린이 캠프장 화재로 자녀를 잃은 가정이 우리나라를 떠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습니다. 더 이상 상식도 없고 책임도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더 살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두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면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4-15). 

더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요셉을 죽음에서 건지는 사람도 그 형제 중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먼저 맏형인 르우벤이 요셉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21-22절)

뿐만 아니라 넷째형인 유다가 나서서 구덩이에 있는 요셉을 건져내고자 합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26-27절). 

이처럼 세상엔 전혀 소망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군데군데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요셉이 구덩이에서 낙망하고 어느 사람처럼 자살을 해버렸다면 이 일은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당사자의 마음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악으로 선을 갚는 세상을 경험하면 정말 지구를 떠나고 싶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부조리하고 이웃에게서 인면수심을 경험한다 해도 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밑을 보지 마십시오. 구덩이에 빠뜨린 사람을 쳐다보지 마십시오. 하늘을 보십시오. 그 때야말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이 반드시 함께 함을 믿고 기다리십시오. 요셉이 그랬습니다. 본문에 보니 요셉은 전혀 요동치 않고 있습니다. 형들을 향하여 노하며 고함치지도 않았습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요셉의 이 상황은 마치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 듯 합니다. 요한 사도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일생을 요약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 1:9-11)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곁에는 십자가 길에서 끝까지 따라오던 예루살렘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뿐 아니라 십자가에 죽어가던 당신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로다!"고 인정한 백부장도 있었고, 당신의 시신을 눕힐 무덤을 선 듯 내어놓은 부자 아리마데 요셉도 있었고, 무덤까지도 향유를 들고 찾아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이 부조리하고 악이 관영하긴 해도 다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성령이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믿음과 인내로 소망을 가지면 반드시 구덩이에서 올라 올 것입니다. 절망의 구덩이에서 나오려면

1. 과거의 망령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원치 않은 일들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슬프고 외롭고 분하고 원통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하여 하루아침에 장애자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빚보증을 섰다가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당하여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적 학대를 받아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한 사람도 있습니다.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갑자기 부도를 맞아 사업이 망하여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 세상을 떠나 모든 소망이 끊어지고 절망감에 쌓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참으로 괴롭습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깊은 상처가 남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상처로 인해 평생 동안을 어두움 속에 갇혀서 가슴앓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당합니다. 이러한 불행한 일을 안 당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뿐입니다. 고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어차피 이러한 고통은 살아 있는 사람이 겪어야 할 과정이라면 이러한 고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의 악몽을 훌훌 털어버리고 앞만 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여러분에게 물으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여러분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정말 낫기를 원하느냐? 정말 이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으냐?“ 그렇다면 여기 여러분을 향하여 외치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이 능력과 치유의 말씀이 지금 여러분의 귀에 들리신다면 이제 자리를 들고 일어나십시오. 과거의 아픔을 털어 버리십시오. 과거의 슬픔도 털어버리십시오. 과거의 원망을 털어버리십시오. 과거의 분노를 말끔히 씻어버리십시오. 대신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고 걸어가십시오. 이 길이 축복의 길이요, 이 길이 행복의 길입니다. 이 길이 소망의 길입니다. 이 길이 바로 인생 최고의 길입니다. 이와 같은 치유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마음속에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자리를 들고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심령을 괴롭게 하며 우리의 영혼을 어지럽히는 근본 정체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구덩이에 떨어진 요셉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을 뿐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마련해 준 채색 옷을 입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가 일부러 꿈을 꾸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잠을 자니까 꿈이 꾸어졌습니다. 그 꿈이 너무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왔습니다. 어린 마음에 숨길 수가 없어서 꿈 내용을 이야기 한 것 뿐입니다. 무슨 특별한 동기나 계략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형들이 잘 있나 보고 오라고 해서 심부름 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잘 못도 없습니다. 정말 그도 형들이 걱정되기도 하고 또 아버님이 말씀하시니 잘 되었다싶어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러 간 것입니다. 

그런 그를 형들이 죽이려고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봉변을 당한 그는 구덩이에 빠지지 않으려고 울며불며 몸부림을 쳤을 것입니다. 형들아 !! 살려줘!! 왜 그러는거야! 제발 이러지마!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아무 잘 못도 없는데 왜 그러는거야!!! 그러나 20대 30대의 건장한 형들은 울며불며 매달리는 요셉을 주목으로 때리고 발로 차면서 질질 끌고 가서 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때 요셉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그래! 이자식들! 내가 여기서 나가기만 해봐라! 너희들 한 놈도 안남기고 다 죽여 버리겠다. 그런데 조금 있다 형들이 구덩이에서 자기를 꺼냈습니다. 아! 형들이 이제야 뉘우치고 나를 다시 살려 주려하는구나! 그런데 웬일입니까? 자신을 밧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그리고는 노예를 사고파는 상인들에게 자신을 팔아 넘겨버렸습니다. 이런 기가막힌 일을 당하면서 도대체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이미 시퍼런 복수의 칼날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와신상담, 절치부심하며 원수 갚을 날만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 마음속에 이런 쓴 뿌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쓴 뿌리가 우리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걸어가라고 명령하지만 걸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모든 문제가 잘 풀리지 않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릴 수 없습니다. 괜히 화가 납니다. 조그마한 일에도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세상 사람이 다 자기를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원망스럽고 짜증납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왜 자기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깨닫지 못할 뿐 그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심령이 독으로 감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쓴뿌리 때문입니다. 이 쓴 뿌리는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아무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깊이깊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은밀히 조정하고 통제하며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실체를 알지 못하면서 순간순간 이용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행하고 있는 모든 악한 일들은 이 쓴 뿌리가 원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기 보다는 그 쓴 뿌리를 마음에 두고 자신의 운명의 일부로 받아들여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쓴 뿌리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살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태어 날 때부터 화를 잘 내는 사람이야!, 나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어! 
고치려고 해도 안돼! 저 사람은 원래 그래, 저 사람은 원래 욕쟁이야! 
저 사람은 죽어도 술 못 끊어! 담배도 못 끊는다고! 저 애는 원래 공부를 못해!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아무리 해도 안돼! 저 애는 태어날 때부터 등신이야! 
제가 뭐 노력한다고 되겠어!” 

이런 모든 부정적인 말은 따 쓴 뿌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악한 쓴 뿌리가 조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사람을 철저히 깔아뭉갭니다. 자신이 당한대로 모든 사람에게 복수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시 당한대로 자신이 상처받은 대로 다른 사람을 가시로 찔러댑니다. 자신도 왜 그런지 몰라요, 자신도 왜 그렇게 악하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알지 못해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조정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심령 깊은 곳에 큰 대못처럼 단단히 박힌 쓴 뿌리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원수 마귀가 몸서리치도록 무섭게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 손이 오그라진 목사 이야기

어떤 목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손이 오그라져서 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숟가락질도 젓가락질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문도 열수 없고 닫을 수도 없었습니다. 악수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손이 정상적으로 펴졌습니다. 이제 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 목사님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는 몇 달전 오스틴 목사님으로부터 원망에 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원망을 품으면 자신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치명적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기도의 응답이 방해된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속에 분노와 원망이 있는지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사람들이 저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고 저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던 것을 기억나게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그 사람들을 원망하고 분노했던 것을 기억나게 하셨어요. 저는 그들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제 손이 점점 오그라들기 시작했어요. 바로 그것이 원인이었어요. 저는 그 사실을 깨달은 즉시 그들을 용서하기로 작정했어요. 그리고 그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용서가 안 되었지만 계속 기도했어요.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손가락이 하나씩 하나씩 펴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 속에 있는 모든 원망과 분노를 찾아내서 제거하자 하나님은 저를 완전히 고쳐주셨어요. 자 제손을 보세요. 완전 정상입니다! 

진정한 마음의 행복과 자유를 얻고 싶다면 마음속에 있는 독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있는 쓴 뿌리를 털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문제의 원인을 보여 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즉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물줄기를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요셉이 형들에 대한 원한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면 그는 결코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분노의 쓴뿌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바로의 신하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왕의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지혜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분노의 쓴 뿌리를 지적하실 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그가 형들을 용서할 때 그에게 능력이 임했고 용서할 때 그에게 지혜가 찾아왔고 용서할 때 행복의 문이 열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도 용서함으로 마음속에 박혀있는 쓴 뿌리를 뽑아내십시오, 그리고 행복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그리고 그 행복의 대로를 향해 전진하십시오. 


3.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여러분! 정말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까? 정말 분통터지는 일을 당했습니까? 결코 여러분이 그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히10:30)”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의 상사가 이유 없이 여러분을 모욕합니까? 동료들이 여러분을 무시합니까? 사업상 상대방에게 속아 많은 돈을 날렸습니까? 열심히 일했는데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했습니까? 믿었던 친구가 배신했습니까?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여러분의 한을 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해결사가 되셔서 우리 대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기만 하면 우리 대신 우리의 대적들과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의 억울함과 원통함을 풀어주실까 의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고로 우리의 억울함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기록하고 계십니다.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어느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다 계획하고 계십니다. 

고로 우리의 미래는 인간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앞날은 우리의 직장 상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거래선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회사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아무도 우리의 승진을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사단도 방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소설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이 노예의 신분으로 고대의 대제국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소설같은 사건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맡길 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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