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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양(羊) (계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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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羊) (계 5:1-14)  

요한은 예수님을 어린 양이라 불렀다. 어린 양도 그냥 어린 양이 아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하였다. 요1:29 뿐만아니라 세례 요한은 요1:36에서도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였다. 교회 전통 중 한 가지에 의하면 이 내용을 저술한 이가 요한이다. 그리고 계시록 역시 요한의 저술이다. 

즉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의 저자들로 간주된 세베대의 아들인 사도 요한을 계시록의 저자로 보는 것이다. 또 한편 계시록의 저자와 요한복음의 저자가 서로 다를 것이라 가정할지라도 놀라운 것은 계시록의 저자가 천상에서 어린 양을 보았다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든, 서로 다른 사람이든 계5:6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그리스도는 유월절 양이었다. 유월절 양이 피흘림으로 희생될 때 피를 바른 자는 심판을 면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양으로 피 흘리고 희생함으로 우리도 살 길을 얻은 것이다. 

벧전1:18~19을 보라. 베드로는 확신한다. 여러분이 속량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피를 믿는 사람은 어린 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누구인지 다 아는 것이다. 21세기가 되었어도 세상과 불신자는 알 수 없다. 예수가 어린 양이라고 외친다면 수수께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안다. 요한이 하늘 문이 열린 곳으로 인도되어(계4:1) 성령에 감동되어(계4:2) 하늘 보좌와 거기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는데 계5:6에서 어린 양이 서 있는 것을 본 것은 단번에 예수를 본 것이다. 보좌 곁에 서 계신 어린 양 예수는 계5:7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고 계셨다. 그 예수님 앞에 세 가지 부류가 예배하며 경배하였다. 

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경배다. 

계5:8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경배하더라. 

② 많은 천사 -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천사의 경배다. 

계5:11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계5:12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③ 모든 피조물들의 경배다.

계5:13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여기 예배하고 경배하는 세 부류의 예배를 받으신 이는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이다. 어린 양이 경배를 받는 것이다. 어린 양이라고 해야 로마 제국은 잘 모른다. 어린 양이라고 해야 어린 양이 신화나 별자리에 나오는 이름처럼 보인다. 환난과 핍박의 시대에 경배 받으실 이가 예수라고 한다면 계시록 책이 남아날 수 있겠는가? 어린 양은 그리스도 교회에 통하는 유형론이다. 믿는 크리스챤에게 예배의 대상이신 그리스도 예수로 통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5장에는 어린 양이란 단어가 5번이나 나오는데 어린 양은 어떤 분인가?  

1. 어린 양은 죽임 당하신 이다. (계5:9)

“죽임을 당한”에서 죽음을 말하는데 요한은 동사 ‘스파조’를 사용했다. 이 말은 ‘도살하다’는 뜻이다. 출12:6을 보면 해질 때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은 집의 좌우 문설주와 안방에 바르라고 하였다. 여기 출애굽 때 양을 잡는다는 것이 바로 이 말이다. 예수는 죽임을 당하셨다. 그 도살되시는 예언이 고난받다는 종, 사53:7에도 나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래서 예수는 죽임을 당하셨기에 어린 양이다. 

죽임을 당하심으로 고난을 받고 피 흘리심으로 그 보혈로 대속이 되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함처럼 피 흘리심으로 나를 심판 받지 않게 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피 값으로 인해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계:5:9 어린 양 예수가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렸다 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바울은 엡1:7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피 흘림으로 죄에 대한 값을 지불했다. 피로써 우리가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나를 위해 도살당하신 분 예수가 어린 양이다.
 

2. 어린 양은 나라와 제사장들로 삼으신 이다. (계5:10)

우리는 본래 죽은 자들이다. 엡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다. 그 때에는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사탄을 따르고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따르던 자였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그런데 엡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우리는 살아난 사람, 새 사람이다. 살아난 것만이 아니고 함께 하늘에 앉는 자다. 즉 계5:10의 말씀 그대로 어린 양 예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다. 신분이 달라졌다. 완전한 새 신분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다리놓는 제사장, 이것이 구원 받은 자의 신분이다. 그리고 나라로 삼으셨다는 것은 ‘바실레이’란 말인데 왕권, 왕위, 통치, 백성의 뜻 중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신, 왕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백성의 신분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과 제사장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땅에서도 왕노릇 한다. 비실류 여인은 계시록에서 6번 나오는데 마지막 때의 신자의 위치다. 지금은 쫓기고 피해다니고 어렵고 곤고한 것 같아도 미래에 주어지는 신자의 자리다. 왕노릇하게 된다. 마치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마침내 왕노릇하게 되듯 우리가 다윗의 계보를 이어받은 자로서 다스리는 위치에 앉게 될 것이다. 믿는다는 것 때문에 다가오는 어려움, 그것을 보지 말라.
  

3. 어린 양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다. (계5:5, 6: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다. 그런데 그 두루마리 책이 인봉되었다. 그런데 그 인봉된 일곱 인을 누가 떼기에 합당한가? 아무도 없다. 

계5: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고 하였다. 그래서 환상을 보던 요한은 울었다. 아무도 이 두루마리 책을 본 자가 없기에 크게 울었다. 

그런데 계5:5은 말씀하신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일곱 인을 뗄 수 있는 이는 어린 양 예수님이다. 그래서 어린 양이 나아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서 두루마리를 취한다. 그리고 계6:1에서 어린 양이 일곱 인의 하나를 떼고 계6:12에서 여섯째 인까지 어린 양이 봉인을 떼는 기록이 나와 있다. 무슨 뜻인가? 

두루마리 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책의 인봉을 떼는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격자이시다. 왜냐하면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이다. 예수님은 이기신 분이고 메시야이기 때문이다. 어린 양 예수 외엔 두루마리 책을 펴거나 볼 수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책을 편다. 이는 하나님의 마지막 때의 계획, 역사를 주관하시는 섭리를 어린 양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예수 어린 양은 죽임 당하셨다. 약하고 약한 모습으로 도살당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이기신 메시야이시고 역사의 장래를 주관하시는 이시다. 오직 주님에게만 인류의 미래가 담긴 책장이 펴질 수 있는 권세가 있는 것이다. 어린 양 이 분에게만 예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 보좌에 앉으신 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유가 충분한 것이다. 책을 펴기에 합당하신 분, 그 어린 양은 실로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도 합당하시다. 그 어린 양 예수, 나를 살리고 나를 구원하신 이로 합당하시기에 나를 하나님 백성과 제사장 삼으신 것이 합당하시기에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린다. 

이제부터 울 필요가 없다. 예수를 믿는 것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 역사의 미래를 모른다고 내 앞일을 모른다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 두루마리를 취하신 어린 양 예수가 나의 구주가 되신다. 기쁨으로 찬양하라. 믿음으로 역사하라. 소망으로 인내하라. 예배와 경배만이 우리가 이 땅에서 우선으로 할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왜 날마다 모임을 사모해야 하는 지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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