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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먼저 된 자가 먼저 되라 (눅 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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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된 자가 먼저 되라 (눅 13:22-30)

미국 생활을 오래 하신 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워낙 면적이 넓다보니 운전면허는 필수인 곳입니다.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면허를 취득해야 했는데 그동안 한국에서 십수년 무사고의 경력을 자랑하던 터라 나름 자신감을 가지고 그래도 한번에 붙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운전면허에 응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열심히 운전면허를 준비해서 응시하였는데 주행을 다하고 들어오자 시험관이 다음에 또 보자고 하더랍니다. 탈락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분이 왜 떨어졌을까요?
이분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니 그래도 내가 운전 경력이 10년이 넘는데,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운전하던 사람인데 도대체 내가 왜 떨어졌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시험관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기를 결정적인 잘못이 교차로 멈춤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시험관의 이야기는 멈춤 표지판에 먼저 도착했으면 반드시 먼저 출발을 해야 하는데 당신은 먼저 오고서도 다른 차에 비해 나중에 출발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사실 먼저 멈추었다가 다른 차가 먼저 출발한 것을 꼭 내 잘못이라고 하기에는 억울한 상황일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원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먼저 멈추었다면 무조건 그 순서대로 먼저 출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먼저 멈춘 차가 당연히 먼저 출발해야 하듯이 교회에서도 먼저 된 사람이 먼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실지 모르지만 대체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원리라는 것은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먼저 온 차가 먼저 가는 원칙이 적용된다면 사실 신호등이 없어도 큰 혼란 없이 원활하게 소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생활을 먼저 한 사람이 먼저 되는 원칙이 교회에서도 적용되면 교회도 참 건강하고 안정적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혼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민의식에 도취되어서 잘못된 구원관을 가지고 있는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바르게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선택받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는데 그 사상은 계속 되어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하신 선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주변나라에 대한 배타심이 대단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무조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다고 자만하며 교만에 빠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자만과 교만으로 가득 하여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갈 것이라며 안일하고 나태한 신앙으로 일관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한 유대인들이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며 오히려 나중에 회개한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에 이를 것이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도와 들어야 할 대상자를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면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30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여러분은 이 말씀에서 어느 부분의 말씀에 더 마음이 가십니까? 
어느 부분의 말씀에 많은 위로가 되십니까?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는 말씀이 더 마음에 간다는 분들 손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또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는 말씀이 더 마음에 간다는 분들 손들어 보세요. 
사실 많은 분들이 이것 같고 저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부분에 더 많이 마음이 가고 은혜가 됩니다.

이 말씀은 그동안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늦게 신앙생활을 하신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데에 이 말씀을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엄밀히 말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다’ 는 것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 먼저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으로 내가 더 많이 알고 경험했다는 것에 만족해서 안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결국은 나중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천국에 당연히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작 깨어있지 않으면 결국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먼저 믿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시기 바랍니다.
23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구원받을 사람이 적은가요?” 다시말해 천국 갈 사람이 많은가 적은가를 물어보는데 예수님께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십니다.

24-29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무슨 말씀입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온 힘을 다해라.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며 집주인이 문을 닫으면 열어달라고 졸라도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우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주님이 우리에게 길거리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지만,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지만,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날 것이며 동서남북으로부터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는 뜻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말씀의 대상자가 누구입니까?
먼저 믿은 사람입니까? 나중에 믿은 사람입니까? 바로 먼저 믿은 사람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혼동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지, 그 의도와 그 말씀의 초점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먼저 믿은 사람이나 나중 믿은 사람은 모두가 소중하고 귀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믿은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믿은 사람이 먼저 되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의 의도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 먼저 믿은 사람은 먼저 믿은 사람이기 때문에 먼저 되고, 나중 믿은 사람은 나중에 믿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먼저 된 사람의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미국 테니스 선수 중에 ‘비너스 윌리엄스’ 와 ‘세리나 윌리엄스’ 자매가 있습니다.
언니인 비너스가 3년 먼저 프로로 데뷔 했는데, 동생인 세리나가 먼저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언니가 먼저 되었다가 나중 되고, 동생이 나중 되었다가 먼저 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얼마나 잘하는지 메이저 대회에서 네 개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하여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일 내가 부모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언니도 뛰어난 실력이 있지만 동생이 더 잘하니까 언론에서는 더 난리입니다.

언니가 이겼을 때하고 동생이 이겼을 때하고 기사가 다릅니다.
누가 이기던 이기면 이겼다고 하면 되는데 항상 두 사람을 비교해서 기사가 나갑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사실 운동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연습을 해도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부모의 심정이라면 언니가 먼저 시작을 했으니까 먼저 우승하고, 동생이 나중에 했으니까 나중에 우승을 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대개 부모님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동생이 아무리 잘하고 뛰어나도 그래도 첫째가 먼저 잘하였으면, 이왕이면 형이 동생 보다 계속 앞서기를 원하는 것이 자녀들을 둔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결혼도 그렇습니다. 이왕이면 막내보다 장남이나 장녀가 먼저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요즘은 시대가 바뀌었다 하더라도 부모의 마음은 그래도 첫째가 먼저 앞서는 것을 원합니다.
자녀를 낳아도 첫째가 먼저 낳아야지 첫째는 소식이 없고 둘째나 셋째가 먼저 낳으면 부모의 근심이 깊어집니다. 
순서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듯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사람이나 나중 믿은 사람이나 모두가 귀한 자녀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10년 믿었던 1년 믿었던 상관없이 10년 믿은 사람은 그만큼 먼저 되고, 1년 믿은 사람은 그만큼 뒤에 먼저 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의 신앙이 그렇게 순리적으로 되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중에 예수 믿은 사람들이 먼저 되는 경우는 많지만, 정작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계속 먼저 되어 나가는 경우는 적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먼저 믿은 사람들이 나중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워지고 등록교인이 되어서 적지 않은 시간을 지내면서도 늘 신앙이 그 자리거나 오히려 뒤처지는 분들을 보면 얼마나 목자로서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신앙의 연수는 짧지만 열심을 가지고 모이고 기도하기를 힘쓰시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 위로가 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목자의 입장에서도 먼저 되신 분들이 열심히 앞서 가면 뒤따르는 분들이 그대로 보고 따라 갈 수 있다면 교회는 질서가 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되어질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먼저 되었음에도 신앙은 뒷전이고 열심을 내지 못하고 세상 중심으로 살다보면 뒤처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도 옛날에는 열심히 했는데…’ 여러분 과거에는 열심히 하고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면 옛날의 열심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때의 열심에 맞게 지금 열매를 맺는 신앙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옛날의 열심이나 헌신의 열매는 없고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는다면 이것은 나중될 수 밖에 없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예수를 믿고 열심을 내서 먼저 되는 경우는 복되고 좋은 일이지만, 먼저 믿은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열심히 예수를 믿지 못하다가 뒤쳐져서 나중 되면 이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님께 대단히 책망 받을 만한 일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오늘 성경 말씀 그대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두렵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는 왜 믿습니까?
구원 받으려고 믿는데, 천국 가려고 믿는데 진작에 예수는 믿었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가 구원 밖에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저는 우리 교회의 모든 권속들이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교회를 나오시고 예수를 믿은 분들은 더욱 열심을 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여서 끝까지 먼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나중에 믿게 되신 분들은 먼저 믿은 분들을 본받으며 믿음과 신앙을 잘 지켜 나아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어 진다면 가장 이상적이고 좋지 않겠습니까?
결국 예수를 먼저 믿은 사람이나 나중 믿는 사람이나 구분 없이 모두 똑같이 먼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10년 경력과 1년 경력의 엄연한 차이가 있지만 영적인 축복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동일한 축복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믿은 사람과 나중 믿는 사람이 모두가 똑같이 열심을 품는다면, 먼저 믿은 사람은 먼저 되고 나중에 믿은 사람은 나중에 먼저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 모두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우리 교회의 모든 권속들도 이와 같이 끝까지 먼저 되는 자리에 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노아는 자녀들에게 먼저 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므로 노아에게 세상을 심판할 것이니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따라 노아는 그대로 방주를 짓습니다. 

사실 노아 본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가족들은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놀라운 사실은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은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인이나 아들이나 며느리는 노아가 하자는 대로 그냥 따라옵니다. 

‘하나님이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그러니깐 두 말하지 않고 온 가족이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답은 한 가지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섬기며 헌신하는 일에 가족들에게 모범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먼저 되었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먼저 되어 입으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의 가족들은 그러한 노아의 신앙을 보면서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먼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족 중에서 먼저 예수를 믿고 구원의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끝까지 먼저 된자로서의 믿음을 가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부인과 남편과 자녀들에게 먼저 된 자가 되어, 먼저 된 사람이 언제나 변함없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하면 그 모습을 가족이 보고선 그대로 따라갑니다.

여러분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것만으로 먼저 되는 것의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신앙은 교회에서 표시 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표시 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먼저 된 자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가족이 다 봅니다.
불신의 배우자가 모르는 것 같아도 다 봅니다. 
자녀들이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봅니다.
특히 자녀들은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서 갑니다. 

그래서 먼저 된 부모는 자녀들 앞이 무서운 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 두렵지 않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내가 가족들보다 먼저 믿었다면 끝까지 먼저 가시어 나중에는 모든 가족들이 함께 먼저 되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교회에서도 먼저 믿고 나오신 분들이 나중에 믿은 분들보다 먼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서 실천하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훈련소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믿음과 헌신과 섬김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라는 훈련소에서 말씀의 훈련, 섬김의 훈련, 기도의 훈련, 헌금의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훈련을 잘 받을 때에 먼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믿음 생활이 가정과 일터와 세상으로 연결되어서 먼저 된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 는 말씀에서 우리는 먼저 된 자가 먼저 되는 일에 더 많은 열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양보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승패가 결정되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입니다.
나는 먼저 된 자입니까? 나중 된 자입니까?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신 순간 모두가 이제는 먼저 된 자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먼저 된 자로서의 믿음과 신앙을 지켜 끝까지 먼저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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