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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마 2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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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마 22:15-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어느 동네에 술집의 단골손님들이 그의 바텐더가 그 동네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라 확신하고 1000달러 내기를 걸었습니다. 바텐더는 손으로 레몬을 짜 레몬즙이 모두 유리잔으로 들어가게 한 후, 그 레몬을 다른 경쟁자에게 넘겼습니다. 누가 그 레몬에서 한 방울만이라도 더 즙을 짜내면 돈을 갖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테면 역도선수, 부두 노동자 등이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키가 작고 마른 대머리의 남자 한 사람이 술집으로 들어왔는데, 그는 바텐더에게 “제가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습니다. 웃음소리가 그치자 바텐더는 “좋소” 하면서 레몬을 잡고 꼭 짰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마르고 주름 잡힌 레몬을 작은 남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 남자는 레몬을 손에 넣고 꽉 움켜잡았는데, 한 방울이 유리잔 안으로 들어가자, 군중의 웃음소리가 완전한 침묵으로 바뀌었습니다. 또 한 방울, 그리고 또 한 방울, 다 마른 레몬 껍질에서 모두 합해 여섯 방울의 레몬즙이 빠져 나왔습니다. 군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바텐더는 1000달러를 건네주면서, 그 작은 남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도대체 당신 직업이 뭡니까? 분명히 벌목하는 사람이나 역도 선수는 아닌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미소가 그 남자의 입술을 스쳐 지나가면서, 작지만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국세청에서 일합니다.”

공자가 험한 산중을 걸어가는데, 한 여인이 무덤 앞에서 서럽게 울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아버님과 남편을 호환으로 잃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호랑이에 물려 죽었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공자가 “왜 이 무서운 곳에서 살고 있느냐?”고 묻자, 여인은 “모르시는 말씀…”이라며, “아직 여기까지 찾아와 세금을 뜯어가는 관리는 없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논어의 “가혹한 정치(세금)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가정맹어호)”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기원전 6세기 사람인 공자가 이런 말을 했을 만큼 세금의 역사는 길다고 합니다. 프랑스 루이14세 때의 재상 콜베르는 “최고의 징세기술은 거위가 비명을 적게 지르게 하면서, 거위 털을 가장 많이 뽑는 것과 같다”고 했고, 마가렛 미첼은 “죽음과 출산과 세금, 그 어느 것 하나 편안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천재 아인슈타인조차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기 힘든 것은 소득세”라고 투덜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소위 ‘납세 논쟁’이라 불리는 논쟁기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금에 관해 시험 받으신 일이 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가버나움에서 성전 세를 받는 이들이 베드로를 통해 간접적으로 예수께 납세를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세상 왕의 아들이 그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듯, 예수님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성전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세금을 내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을 받으신 일입니다. 

이러한 납세 논쟁의 특징은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함께 예수께 와서, 납세 문제를 제기했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은, 서로 생태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소 서로 적대 관계에 있었으며, 사상적으로도 공통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세금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납세를 반대하였던 반면, 헤롯 당원들은 헤롯을 중심으로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모인 친 로마 계열의 사람들로, 납세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로 연합하여 예수께 찾아온 사실에서, 우리는 진리를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하나가 되는 불의의 세력의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1. 불의한 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합니다.

본문 15,16절에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리새파와 헤롯당의 연합입니다. 왜냐하면 이 두 그룹의 연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어려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헤롯당은 당시 유대를 다스리는 로마의 대리 통치자인 헤롯 왕가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세리처럼 세금을 징수하고 로마의 정책을 홍보하는 일에 주력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매국노 집단과 같았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통치와 세금 징수를 반대했던 민족주의자들로, 민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들 두 그룹은 물과 기름과 같이 도저히 합쳐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예수라는 그들의 공동의 적 앞에서, 예수를 음해할 목적으로 연합하고 제휴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자신들의 세속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이고 흩어집니다. 그들은 비록 평소에 적대 관계에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작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또 하나의 실례가 바로 예수님을 처형하기로 했을 때, 유대를 다스리던 로마 총독 빌라도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헤롯의 연합입니다. 성경은 이들이 평소에는 원수 관계였으나,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서로 원수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서로 작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악의 세력들은 평상시에는 서로 대립하다가도, 교회를 핍박할 때에만은 서로 작당을 해서 연합작전으로 교회를 괴롭힙니다.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각양각색이지만, 결국 다 모든 불의의 뿌리인 사탄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불의한 자들의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불의한 자들이 작당하여 대적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당연한 현상으로 이해하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아울러 성도들은 불의한 자들과 같이 세속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이고 흩어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따라 모이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2. 성도는 칭찬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 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만 보면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 당원들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존경한 듯합니다. 

이 악한 세력들은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할까, 어떻게 예수님을 제거할까 하는 목적으로 나아오면서도, 그 입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좋은 말을 다 동원해서 아첨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첨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항상 경계해야 됩니다. 정치인이나 종교인이나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아첨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치고, 그 말로가 좋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듣기 싫어도 바른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가 남이 칭찬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가 자신의 신앙에 대해 칭찬하면 우선 경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사탄은 먼저 자신이 우리의 선한 이웃이며, 우리를 위하는 자인 것처럼 안심시키고 접근하기 때문에, 지나친 칭찬은 사단의 공략일 수도 있으므로 경계가 필요한 것입니다. 칭찬을 듣게 되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것은 우리로 자만하게 하기 쉬우며, 신앙생활을 느슨하게 하여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자만입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인격적 특성도 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로부터 설교를 잘 한다고 칭찬듣기를 좋아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들로부터 신앙이 좋다든지 봉사를 잘한다고 칭찬듣기를 기대하는데, 이러한 칭찬 속에는 언제든지 사단의 독화살도 함께 들어있을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이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힘쓰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힘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칭찬 듣는 것은 좋으나, 사람들의 칭찬을 기대하며, 사람을 보고 일해서도 안 되고, 칭찬을 듣는다고 자만해서도 안 됩니다. 사단은 언제든지 우리를 위하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가 접근하는 목적은 우리를 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 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사탄의 공격은 주도면밀합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은 함께 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것은 납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즉 로마에 세금을 바쳐야 하느냐? 바치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 불가하나이까?” 이 질문은 겉으로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질문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해, 아주 치밀하게 준비하여 던진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만일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반역 선동죄로 몰아 고소하고자 했으며, 만일 예수께서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예수님을 매국노로 몰아,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척하게 만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참으로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의 질문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는 데 매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성도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탄의 공격도 주도면밀합니다. 사탄은 지극히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는 천사들 중에서도 최고의 위치에 있던 자입니다. 그러한 자의 공격이 어설플 리가 없습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넘어드릴 때의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주도면밀했습니까? 그는 우선 아담보다는 공격하기 쉬운 하와를 택하여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하와로 하여금 자신의 음모를 알아채지 못하고 범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탄의 술수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의 공격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도면밀한 사탄의 공격을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사탄의 공격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사탄의 주도면밀한 공격이라도 능히 봉쇄할 수 있는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동시에 모든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가 사탄의 주도면밀한 공격을 분쇄하고 무찌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가장 강력하면서도 유일한 무기인 것입니다.

4. 성도는 국민의 의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한지 불가한지를 묻는 자들을 향해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고 하시고, 그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자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이 형상은 가이사 디베료 황제의 형상이라고 대답하자 주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요구하는 자들에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 3의 답을 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의 음모를 지혜롭게 벗어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지 주님께서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주신 말씀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국가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분명하게 지적해 주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국가에 대한 의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신 것입니다. 유대 열심당원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상당히 불만스러웠을 것이나, 주님은 성도가 가져야 할 국가관을 제시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하나의 국가가 순전히 사람의 의지에 따라서 흥하게 되기도 하고 망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즉 국가의 흥망과 성쇠는 온전히 이 세계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임으로 나라나 주권자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은 “권세는 하나님께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국가나 권세 자는 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나 권세 자가 하나님의 뜻에서 완전히 역행하지 않는 한, 성도는 국가나 권세 자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국가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성도는 도리어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가장 모점적인 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결코 권세와 야합하거나 시류에 합류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그 일원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신앙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한다든지 납세의 의무를 어긴다면, 그는 범법자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입니다.

5. 하나님의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의무를 분명히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비록 이 세상 가운데 살고 있을지라도, 천국의 시민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국민에게는 반드시 국민으로서의 의무가 따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천국의 시민 된 우리에게도 감당해야만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나라의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주일을 하나님께 바쳐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오늘날의 주일입니다. 주일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용해도 좋은 날이 아닙니다. ‘주의 날’이란 말이 의미하듯이, 주일은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주님의 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병든 자나 낙심한 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전도하는 일을 비롯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도 드리지 아니하고 등산이나 친목회 모임이나 잔치 자리에 간다면 이는 곧 범법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초보적인 단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에 잘 참석하는 일입니다.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합니다. 기반이 든든해야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기초 실력이 튼튼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습니다. 기반이 있어야 사업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로 기본이 튼튼해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인 것입니다. 송정 중앙교회 성도들은 꼭 성수주일을 하여 놀라우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또한 성도가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 가운데 다른 하나는 곧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하여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할 수 있느냐?”고 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세금을 포탈하면 매우 엄히 처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로 알려졌던 김재준 박사 같은 분도 말하기를 “구원의 확신을 맛본 사람이 최소한 십일조도 바치지 못한다면, 그 신앙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세계의 대부호가 된 록펠러는 여덟 살부터 십일조를 시작하여, 세계 만민을 도울 수 있는 큰 축복을 받았으며, 무려 미국의 전 재산의 1/3이 록펠러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나라와 영생의 축복을 믿을진대, 십일조에 관한 축복의 말씀도 꼭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성도들 모두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하여서 병원에다 돈 갖다 주지 않는 평강의 복을 받으시고, 터진 웅덩이 파지 마시고 하는 일마다 번성하고 창대케 되는 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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