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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저녁부터 아침까지 (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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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부터 아침까지 (레 24:1-4)  

<등대지기>란 노래를 아시지요?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 한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 생각하라 저 등대를  / 지키는 사람의 / 거룩하고 아름다운 / 사랑의 마음을> 등대지기의 고독과 피곤한 삶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이 노래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론일 것입니다. 이론은 고독한 <등불지기>였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님으로서 출애굽의 과정에서 늘 모세와 함께 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마음에 모세 다음 가는 인물로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 최초의 제사장이 되었을 때 그는 더 대단한 인물로 우뚝 섰습니다. 아론은 화려한 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아론을 모든 백성은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의 삶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삶은 매우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아침 마다 아론은 몹시 피곤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모든 백성들이 잠이 든 시간에도 깨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낮에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광야를 이동한 날 밤에는 더욱 피곤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밤을 새운 그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이동한다면, 그 피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고독하고 피곤한 등불지기였습니다. 

그는 왜 성막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에게는 성막의 등불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정리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아론은 회막안 속죄소 위 곧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잔대 위의 등잔들을 항상 정리할지니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성막 안에 등불을 켜게 하셨습니다. 등불을 켠다고 할 때, <켠다>는 단어는 <하늘로 올라가게 한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는 등잔에 불을 붙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린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등잔불을 정리하는 사명을 아론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녁부터 아침까지>였습니다. 사막에 해가 지고 그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아론은 성막의 등불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론은 밤에 잠들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등대에 대해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등불을 켜기 위해 사용된 등대를 <메노라, Menorah>라고 합니다. 지금 화면에 보시는 것이 등대입니다. 등대는 정금 한 달란트, 즉 34킬로로 만들었습니다. 등대의 모양을 보면 가운데 한줄기가 있고 양편에 각각 세 가지씩 여섯 개의 가지가 있었습니다. 등잔은 모두 일곱 개였는데, 살구꽃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불을 붙여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등불을 계속해서 켜게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아론은 늘 등불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3절과 4절에 나오는 <정리한다>는 단어는 본래 짐승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나무를 가지런히 벌여 놓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정리한다는 것은 <질서 있게 배열한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잘 돌본다>는 의미입니다. 등불을 켜다 보면 불똥이 남고 찌꺼기가 끼게 되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을 제거하고 심지를 돋우어 주어야 합니다. 아론은 등불이 잘 타오도록 계속 잘 돌볼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래 질서를 주고,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주 만물을 <코스모스>라고 하는데, 이는 질서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손을 떼신 게 아닙니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돌보고 계십니다. 이 지속적 돌봄을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봄 덕택에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침엔 해가 뜨고, 저녁엔 달이 뜹니다. 사시사철이 질서 있게 바뀌며, 곡식과 열매를 맺습니다. 그 사랑 덕에 우리가 삽니다. 

밤새도록 타오르는 등불은 언제나 돌보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감사하고 우러르며 신뢰하고 경외함으로 섬긴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아론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정말 고단한 삶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론은 이 고단한 사명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반드시 누군가는 등불을 밝혀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습니다. 

등불이 꺼지는 것은 멸망의 상징입니다. 역대하 21장 7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음은 이전에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 또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남 왕국 유다의 왕들 중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는 악한 왕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하지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다윗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약속하시기를 <네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등불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손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면, 다윗의 후손과 그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멸망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등불이 켜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고 계시며,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을 신실하게 경외하고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등불이 꺼졌다는 것은 그 관계가 깨어지고, 비참한 멸망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등불이 꺼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주전 168년 말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란 왕은 예루살렘을 침략하였고, 유대인들에게 헬라식 삶을 강요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음으로 맞섰습니다. 결국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는 주전 167년 12월 25일에 예루살렘 성전을 자신들의 신 제우스에게 봉헌했습니다. 유대인들로서는 성전을 빼앗긴 치욕과 슬픔의 날이었습니다. 이때가 등불이 꺼졌을 때입니다. 

그러나 다시 등불이 밝혀지는 날이 왔습니다. 주전 164년 12월, 성전을 빼앗긴 지 만 3년 만에 <유다 마카비, Maccabees Judas>가 중심이 되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고, 성전을 회복했습니다. 그들은 제단을 다시 만들었는데, 이를 완성하는 데 8일이 걸렸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등대에 불을 밝혀야 하는데, 성전의 거룩한 기름을 적들이 모두 개봉하여 더럽혔기 때문에 기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구석에서 드디어 한 병을 발견했습니다. 그 기름으로는 하루 밖에 밝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름은 8일 동안 불을 밝혀주었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하누카 절기>를 지키기 시작했고, 이 하누카 절기를 <빛의 축제>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2절에 나오는 <수전절>이 바로 이 날입니다. 
  
성도 여러분, 등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등불이 꺼진다, 이건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등불이 밝혀져 있어야 합니다. 아론이 받은 사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등대의 불로부터 나오는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빛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3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한일서 1장 5절은 하나님을 빛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할렐루야!  그런가 하면 요한복음 1장 9절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말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아멘.  

여러분, 이처럼 빛은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것입니다. 빛은 온 세상 창조의 기초였습니다. 나머지 창조는 빛이란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빛은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시편 119편 105절의 그 유명한 요절을 아시지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아멘. 계속해서 등불을 밝힌다는 것은 <하나님, 언제나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그 말씀을 따라 인생의 길을 걷고,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경외하고 있습니다.>란 표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참 빛이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신뢰하는 믿음의 등불, 하나님을 높이고 우러르는 경배의 등불,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순종의 등불,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흐르는 사랑에 대한 감사의 등불,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을 선포하고 알리는 등불이 밝혀져 있습니까? 아니면 꺼져 있습니까? 이런 등불은 개인의 영혼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켜져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지금 혼란한 대한민국을 비출 등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성막에는 창문이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성막에는 그 어떤 빛도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만약 등대의 등불이 없다면 성막 안은 캄캄할 것입니다. 성막을 밝히는 것은 등대의 등불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등불이 꺼지면 안 되었습니다. 등불이 꺼지면 흑암이 찾아옵니다. 등불이 꺼지면 죽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로봇 머레이 맥케인> 목사님은 <성전을 밝히는 등잔은 늘 타고 있었다. 우리 역시 그래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등대도, 기름도 있어야 하지만, 그 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누군가는 아론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정 안에도 깨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회 안에도 깨어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누가 그 일을 맡겠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론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엊그제 저녁에 평소에 정신이 맑지 못하신 아버님께서 모처럼 정신이 맑아지셔서 제게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치 유언처럼 들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김 목사, 이젠 내가 정신이 혼미해서 기도도 잘 안 되고, 말씀도 다 잊어버리고, 생각이 잘 되질 않아. 나나 네 엄마나 어서 빨리 오늘이라도 하늘나라에 가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께서 너를 목사로 세웠으니, 교인들을 잃어버리지 말고 천국으로 잘 인도하게.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꼭 그렇게 해야 해. 그리고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으로 세워졌으니, 성령을 의지해서 하도록 기도하게. 그리고 나처럼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게 총명 달라고 기도해. 네 아이들도 하나님께 잘 하다가 천국에 가야하고....> 

이 말씀들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네가 교회를 위한 아론이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잊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땅끝교회 목사로서 우리 교회의 등불을 밝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로 가길 원합니다. 여러분, 제가 그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저 혼자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해 주시길 바랍니다. 잘 보고 있다가 잠든 이가 있다면 우리 서로 깨우길 원합니다. 

특히 저는 이번 부흥사경회를 통해서 꺼졌던 등불들이 다시 켜지길 원합니다. 성령의 기름이 다시 공급되어 환하게 밝혀지길 축원합니다. 교우님들의 마음에, 가정에, 우리 교회에 등불이 환하게 밝혀지길 소망합니다. 


두 번 째로 아론이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을 정리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사명이 아론 자신에게는 너무도 황송하고 감격스러운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론은 벌써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십계명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지요? 모세가 사십 일이나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위해 신을 만들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은 그들의 청을 따라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내용을 출애굽기 32장 1-6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우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의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이 아론이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사람이 삼천 명 가량이나 되었습니다. 이로 볼 때 아론은 제일 먼저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너무도 부끄럽고 황송하게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이런 그가 이스라엘 최초의 제사장까지 되었습니다. 이건 상상도 못할 파격적 은총이었습니다. 사형수에게 훈장을 준 격이었습니다. 아론은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던 그 날 그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멈출 줄 몰랐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제사장의 의복을 입을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자신에게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불을 정리하는 사명이 맡겨졌을 때, 어찌 불평할 수 있었겠습니까? 죽으라고 하셔도 따를 판인데, 영광스런 사명을 맡겨 제사장으로 세우시고, 등불을 돌볼 사명을 주셔서 섬기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하나님, 힘들어도, 고단해도, 잠을 못자도, 그 어떤 어려운 일도 괜찮습니다. 너무도 감사합니다.> 이게 그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우리에게도 아론의 마음에 있었을 그 감격이 넘쳐흐르길 기원합니다. 400여 년 전 독일 뒤셀도르프에 <슈테른베르크>란 화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페피타>란 집시 아이를 모델로 성 제롬 교회에 붙일 예수님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는 예수님은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시가 물었습니다. <저 사람은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고 있으니 굉장히 나쁜 사람인가 봐요.> 그는 기계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그분은 온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고난을 당한 거야.> 다시 집시가 말했습니다. <그럼 저 분은 선생님의 죄도 짊어지고 벌을 받았겠네요....> 이 말에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껏 예수님의 그림을 그리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림은 돈벌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집시에게 생각없이 대답한 말의 참뜻을 알기 위해 골방에 엎드려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는 주님의 보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의 가슴에 십자가의 보혈이 가져온 축복, 죽었어야 할 자신이 살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아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 기쁨과 감격이 넘치던 날 그는 예수님 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림을 완성하고 그 밑에 <내 너를 위하여 모든 것 주건만 너희는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써 놓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유명한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란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본 여성 찬송가 작가인 <하버겔, F. R. Havergal>은 유명한 찬송시를 썼습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성도 여러분, 예배가 힘드십니까? 구원받은 감격으로 예배가 회복되길 기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밖에서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힘드십니까? 구원의 감격으로 기쁨으로, 황송한 마음으로 하시길 부탁합니다. 어려운 이를 돕기가 힘드십니까?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고백하십시오. <주님,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제게 맡기십시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도 명령하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 회피하는 힘든 일이 있다면 제게 맡기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그 은혜, 말로 다할 수 없사오니, 제게 언제든지 명령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저녁부터 아침까지> 깨어 있는 등불지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번 부흥사경회를 통해 다시금 등불이 환하게 밝혀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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