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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좋은 일꾼이 됩시다 (골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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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좋은 일꾼이 됩시다 (골 1:23)


(골 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복음의 약속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피곤한 영혼에게 안식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배고픈 영혼에게는 음식이, 헐벗은 영혼에게는 옷이, 죄 된 영혼에게는 용서가, 포로된 영혼에게는 자유가, 약한 영혼에게는 힘이, 병들고 상처입은 영혼에게는 건강과 치료가, 겁 많은 영혼에게는 용기가, 가난하고 궁핍한 영혼에게는 풍요로움이, 보지 못하는 영혼에게는 빛이, 정죄 받은 영혼에게는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벤자민 키히 성경연구 올 시리즈)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꾼(디아코노스)은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 시중드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은 주인 되신 주님의 뜻에 복종하며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 시키는 복음을 위해  시중드는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실 바울의 삶은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오직 복음 전파에 일생을 다 바쳤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회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그에게 전부였습니다. 그는 이 복음을 위해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들었으며 죄수를 자처하여 로마에까지 왔고 복음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복음에 헌신된 삶을 살았기에 우리는 ‘복음의 일꾼’하면 즉각적으로 바울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만이 복음의 일꾼입니까? 바울만이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까? 바울에게만 복음을 위해 수고할 책임과 의무가 있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바울은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 선택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께서 복음을 위해 바울을 택하셨다는 성경의 증거를 통해 바울과 같이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이 복음의 일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복음의 일꾼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다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함인 동시에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것으로만 만족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음을 알고 일꾼으로서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일꾼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알렌 가디너가 티에라 델 푸에고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원주민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선교를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한 번 더 선교활동을 후원해 달라고 교구민들에게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로 그 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미신을 숭배하는 그 곳 원주민들에 의해 급기야는 희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시신은 그가 타고 갔던 작은 배에 실려 강 하류로 떠내려 보내졌습니다. 얼마 후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는 그가 죽기 전에 썼던 글이 있었다합니다. "나의 작은 배는 내 영혼의 벧엘입니다. 

잠을 자거나 깨어 있거나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이제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만나를 먹으며 보이지 않는 생수를 마시고 있습니다. 나는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주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독실한 신앙인들이 그의 무덤을 순례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일꾼으로서의 소명에 얼마나 강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던지 그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의 일꾼됨에 대한 강한 자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복음 전파를 위해서라면 자기의 모든 유익도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 생명까지도 아낌 없이,드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정녕 복음의 일꾼으로 일생을 사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복된 열매가 맺힙니다.

멕시코 모렐로스 지방의 한 권서인 발렌틴 토렌데스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성경을 사겠으니 집으로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가 방문하자 주인은 그를 새로 파놓은 무덤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주인은 토렌데스가 거짓 책들을 전한다는 생각에 그를 죽일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주인은 탄알로 몸을 채워서 죽여주겠다고 협박하였습니다. 그 때 발렌틴 토렌데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책들은 거짓 책들이 아닙니다. 그 책들은 복음의 책들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나를 죽일 수 있으나 심판 날에 당신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이 없었다고 변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죽기 전에 성경 명 구절만 읽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토렌데스는 요한복음 3장을 읽기 시작하여 16절에 왔을 때 그 뜻을 설명하려고 읽는 것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 많은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시게 될 만큼 하나님을 자극시킨 것은 사랑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때 주인의 가족 중 한 사람이 "대체 그 사랑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토렌데스는 "더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사랑에 대한 부분을 읽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고린도전서 13장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다 읽고 나자 그 집 주인의 딸이 울면서 어머니에게 매달렸습니다. 어머니는 토렌데스에게 좀 더 읽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토렌데스를 죽이려던 사람은 권총을 권총집에 꽂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더 무서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 방으로 가서 더 들려주십시오. 나는 속았습니다. 나는 그 책의 진리를 몰랐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생명 바칠 각오로 헌신할 때 복된 열매가 맺힘을 믿고 생명 바칠 각오로 헌신하는 복음의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그렇다면 복음을 왜 전해야 합니까?
화목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골 1:21-22)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죄인 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그 본성이 악합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모두 악할 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되었다고 했습니다(롬 1:21, 22)
이로인해 사형에 해당되는 일을 하면서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한다고 했습니다.(롬 1:32)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선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함 때문에 범죄했고, 하나님이 무서워 숨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담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택하셔서 그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계시를 주셨지만 그들은 쉬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저질렀으며, 하나님의 참뜻을 모르고 하나님 아들마저 죽이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떠나 있었고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분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결코 죄와는 하나가 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죄를 심판하시고 없이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수도 없으며 그의 영원한 심판과 형벌을 받을 존재였습니다. 죄인 된 인간과 하나님은 원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 되었습니다. 죄인이 거룩해지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과 화목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으로는 스스로 거룩해질 수도 없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인간의 모든 죄악을 담당시키시고 죽게 하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의롭다고 칭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 되는 길이 열렸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령을 보내사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심으로 그 사실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이로 이웃과도 화목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의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성도가 이웃과 불화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감동으로 인하여 화평과 일치를 가져오려고 노력하며 이웃에 자비와 긍휼을 베풂으로 기뻐합니다. 더욱 우리 자신과도 화목 되었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우리의 모습은 분열되고 방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나서 우리는 자아를 바로 찾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의 목표를 찾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심령은 평온함을 얻으며 내적 불화를 일소하게 된 것입니다. 
  
한 철학자는 복음의 약속을 받아들이라는 간곡한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 말미암아 친구와 토지를 잃게 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전도자는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써 입게 될지도 모르는 모든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증서를 즉석에서 써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불시의 재난들에 대한 확고한 보증을 받고서 기독교를 받아들여 가정에 재단을 쌓고 자신을 하나님의 추종자요, 종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여러 해가 흘러 그가 영원한 세상으로 떠날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한 그는 자기에게 증서를 써 주었던 그 전도자를 오도록 청하였습니다. 그가 오자 그는 그 증서를 찢어버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보상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께서 내가 일찍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입었던 모든 손실에 대해 내게 100배로 보상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화목을 이루는 길임을 믿고 복음의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그렇다면 복음의 내용은 무었입니까?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인간을 구원키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의의 승리가 어떤 사상가의 새로운 제창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실현된 것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란, 어떤 보고나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한 인격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아들의 소식이 이미 과거부터 약속되어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아들'에 대한 것을 전하기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났으며, 아무도 극복하지 못한 사망을 이기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 말씀에서 아들은 곧 인간의 죄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울의 시대에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심으로써 비로소 존재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는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분이십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복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내 마음의 왕좌의 주인을 바꿔야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에 의해 전해졌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백성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예언하였는데 그 예언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이 복음의 약속은 인류의 조상 아담에게 주어졌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써 인류의 새로운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세상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을 선언하셨으며 그 사실은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그리고 그 후 많은 선지자들로 인하여 면면히 전달되어 왔습니다.

모세는 그 자신이 정한 제사 제도 속에서 그리스도를 예언하였고, 다윗은 시편 속에서 그리스도와 성경을 확신하였으며, 그 자신의 권위와 통치보다 더 크신 후사를 예언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고난당하고 승리하는 메시아를 예언하였고, 그의 수많은 선지자들이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강림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선지자적 사명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성도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선지자들이 모진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기를 힘썼던 것처럼 오늘날 성도들도 복음을 선포하는 데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복음은 성령으로 전하는 진리입니다. 다른 학문은 성령이 없어도 전달이 됩니다. 머리만 좋으면 다 알 수 있고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성령 없이 절대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복음은 성경 속에 보존되어 왔습니다. 성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아래서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한 채 흑암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경을 전해 준 유대인들과 믿음의 선현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 속에 인류 구원의 복음이 보존되어 왔기 때문에 그 책을 '거룩한 책'이라 하고, '신성한 편지'라고 했던 것입니다.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담은 성경을 존중하고 귀히 보존하였으나 그 속에 있는 메시아가 예수라는 사실만 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어졌던 복은 이방으로 흘러가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에 의해 거룩한 사람의 손으로 쓰여졌고, 거룩한 교리와 생활의 원리가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와 은총의 책입니다. 그 속에서 복음이 보존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성경을 읽어야 하고 또 세상에 성경을 전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중국 신사가 선교사에게 묻기를 '당신은 왜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만 하십니까?' 하니까 선교사는 이런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했다합니다. '선생님은 아침 식사로 무얼 드셨습니까?' '예, 밥을 먹었지요.' '저녁에는요?' '밥이죠.' '그럼 어제 저녁에는 무얼 드셨어요?' '물론 밥을 먹었지요.' '그러면 날마다 당신의 생명을 위해 무얼 잡수십니까?' '참 어리석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밥을 먹어야 살 수 있을 게 아니오.' '꼭 같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 없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 외에 예수님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 1:7-9)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현대의 기독교인들 특히 이단적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관된 말씀을 각기 상이하게 해석하여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구원은 인간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므로 모든 행동에는 복음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병아리가 수풀에서 모이를 주워 먹고 다니는데 떡갈나무에서 도토리가 툭 떨어지면서 병아리 머리를 딱 때렸습니다. 

그러자 병아리는 깜짝 놀라며 하늘이 무너지고 천지가 뒤집어지는 줄로 알았습니다. 이 사실을 마음씨 착한 병아리는 산에 있는 모든 동물에게 알려 주려고 다녔습니다. "곰 아저씨 조심하세요. 하늘이 무너집니다.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에요." 곰은 큰일 났다며 걱정을 하였고, 고양이도 만나고 강아지도 만나고 범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꾀가 많은 여우를 만났습니다. 여우는 병아리가 모이를 먹다가 도토리에 얻어맞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우는 병아리가 자기에게 와서 그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주는 척하다가 잡아먹었습니다.

이는 성경은 몇 만 년을 공부해도 못 다할 것들인데 무엇 하나를 발견하여 이 성경은 잘못되었고 틀렸다는 것을 세상에 발표하여 세상에 돌아다니다가 악마란 여우에게 그 사람의 영혼이 잡아먹히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단적인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2월 첫 주는 총회가 정한 이단 경계 주일입니다
이단에 물들지 않으려면 복음만 믿고 따라야 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생명 바칠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으로 화목의 길이 열리게 되었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바로 알라야 합니다.
이 사실 바로 알고 복음의 좋은 일꾼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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