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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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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히 12:14-17)  

지난주에는 우리들이 꼭 레갑 자손들이나 아브라함의 자손들처럼 믿음의 신실한 가문이 되어 복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진실로 이런 가문이 되어 복에 복을 받고 형통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유명한 부흥사로 알려진 이성봉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만주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에 어느 교회 장로님이 아편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서 목사님이 “교회의 장로가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야 되겠느냐? 속히 손을 떼도록 하라”고 권면했더니 그가 말하기를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놈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이 장사를 하고 그만 두겠다”고 했습니다. 

몇 년 후에 다시 그를 만났는데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장로의 아들이 대학을 이미 졸업했는데도 여전히 아편 장사를 하고 있더랍니다. 이성봉 목사님이 “왜 아직도 그 일을 계속 하느냐?”고 했더니 그 장로가 하는 말이 “한 밑천 잡고 그만 두겠다”라고 하더랍니다. 

얼마 후에 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장로가 통곡을 하면서 그 외아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그 장로의 아들은 아편 중독자가 되었고, 죄를 지어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죄에서 떠나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기회를 아주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않아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경고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어 모두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은혜에 이르도록 힘쓰라

디모데전서 1:19-20절 말씀을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 선생이 목회를 하던 교회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참 은혜가 넘치는 훌륭한 교회입니다. 바울 선생도 그곳에서 3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성도들이 말씀을 사모 했는지 두란노라는 곳에 모여서 날마다 성경 공부를 하였습니다. 

당시 두란노 서원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 4시에 문을 닫았는데 사람들은 날마다 모여 예배하고 말씀을 듣고,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에베소에는 아데미 우상을 섬기던 많은 무당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자신들이 말씀에 감동해서 주술을 모아 놓은 책을 모아 불에 태웠습니다. 그 책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 책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은 오만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1천 5백만 원 정도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뜨겁게 성장하고, 이렇게 말씀을 사모하던 교회에 놀랍게도 “믿음의 파선한 사람으로 알려진 알렉산더와 후매내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참 끔찍한 일입니다. 

인생의 모든 배가 깨어져도 절대로 깨지면 안 될 배가 있다면 바로 믿음의 배요, 영생의 배요, 구원의 배입니다. 때문에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란 것이 무엇입니까? 인도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을 얻기 위해 40도가 넘는 한낮의 아주 뜨거운 햇볕 아래서 널빤지에 못을 박고, 그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벙어리가 아니면서도 벙어리고 살기로 서약하고 벙어리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수백 Km나 떨어져 있는 갠지스 강에 이르러 목욕 한 번하기 위해 맨발로 그 뜨거운 길을 걸어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못에 누워 있다고 구원을 받는 것일까요?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근다고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필리핀에는 매년 고난 주간이 되면 십자가를 지고 채찍에 맞는 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예수님이 고난을 받은 신처럼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그들은 로마인들이 사용하던 채찍으로 맞으며, 십자가에 달릴 때도 진짜 못을 사용해서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이런 고통을 당한다고 구원을 얻는 것일까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은 어떻게 보면 아주 값싸고 아주 단순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만하면 죄에서 벗어나 천국 백성이 되고,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광산에서 광부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말씀을 듣던 어느 광부가 말하기를 "나는 값없이 구원 얻는다는 종교는 믿어지지가 않소"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광부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일할 시간이 되었는데 이 탄광에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광부는 말하기를 "그거야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그만이지요."라고 했고, 목사님은 "위까지 올라가는데 한참 걸립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한 3분밖에 안 걸립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럼 나는 애쓸 필요가 없군요."라고 말하자 광부는 말하기를 "맞습니다. 당신은 그냥 타고 있으면 됩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그러나 처음에 이 탄광을 파고 이만한 장치를 한 사람은 힘도 들고 돈도 많이 들었겠네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광부는 "그거야 그렇지요. 이 지상에서 500m 아래에 있지요. 주인이 쓴 돈의 액수야 말로 다 할 수 없지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비로소 그에게 말하기를 "네, 옳은 말씀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 말씀에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다고 했는데, 당신은 `너무 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승강기를 설치할 때 든 비용이 엄청났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당신을 멸망과 사망의 굴에서 구원해 내시기 위해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으시게 한 그 비용은 참으로 엄청난 비용이었답니다."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는 하나님의 귀한 선물입니다. 에베소서 2:8-9절에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선물은 아주 값싼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다이아몬드를 모두 다 가져와 이곳에 쌓아 놓아도 구원과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로 주신 구원이라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구원의 선물을 얼마나 값싸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이 천국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더 이상 귀신과 마귀의 권세에 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주 값어치가 없는 싸구려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며, 죽은 후에 얼마나 비참한 곳으로 가야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눈이 감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영적인 눈이 열린다면 당장에 마귀에게 붙들려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어두운 영에게 붙들려 죄의 길에서 살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태복음 13:44절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결코 싼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도 살 수 없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해서도 꼭 가야할 곳이 천국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우리 속에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한다

에베소 교회에는 알렉산더와 후매내오라는 사람이 쓴 뿌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쓴 뿌리의 특징은 자신만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쓴 뿌리의 특징은 오늘 말씀처럼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발람이라는 이방의 거짓 선지자가 나옵니다. 이 선지자는 돈을 아주 사랑하는 이방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모압 왕 발락이 많은 돈을 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을 받고 가던 길에 나귀를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두려움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악한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우상의 제물을 놓아두고 피곤하고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의 여인들과 동침하게 하여 간음의 죄를 범하게 한 것입니다(계2:14). 

우리의 쓴 뿌리가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괴롭히는 걸림돌이 되면 안 됩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식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 대신에 이곳 저곳에서 “~~ 기도원”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에게 병을 고쳐 주고, 예언을 하면서 그를 위해 기도를 해 준다고 합니다. 

본래 성경에서 예언 기도는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언 자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원을 차린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기성 교회에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고,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요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진실로 이곳저곳에 차려지는 기도원이 정상적이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곳이라면 교회라는 간판을 붙여 하는 것입니다. 

부천의 어느 교회의 목사님은 자신의 성도 중에 어떤 분이 예언 기도를 받았는데 “당시 교회의 목사님에게서는 성령이 떠났어”라는 예언 기도를 받아, 교회에 시험 거리가 되었고, 교회가 분열되었다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정한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누가 성령의 충만해서 어떤 말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예언이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런 쓴 뿌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을 시험에 들게 하는 쓴 뿌리가 있습니다. 성도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의 쓴 뿌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고라의 자손들로 인해 큰 시험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모세와 아론 만이 하나님의 제사장이냐 우리들도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인 지도자인 모세를 대적하였고, 250명의 사람들이 고라의 자손들의 주장에 함께 동조하다가 결국 땅이 갈라져 땅 속으로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서 1:10-11절에는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항상 교회는 쓴 뿌리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쓴 뿌리는 자신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꼭 동조자를 만들고, 동조자들도 시험에 빠지게 하고 결국 함께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쓴 뿌리들이 조용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이단의 세력들이 알지 못하게 침투하여 교회를 분열시키고 대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천지라는 이단입니다. 통일교라는 이단입니다. 구원파라는 이단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라는 이단도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도 있고, 몰몬교도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쓴 뿌리들이 교회 안에서 역사하고 있고, 많은 성도들을 성경공부 또는 다양한 모임으로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들은 서로를 잘 돌아 봐야 합니다. 헛된 이단과 거짓된 모임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마음에 악한 쓴 뿌리가 자라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아직도 변화 되지 않은 많은 죄의 쓴 뿌리들이 있습니다. 분노의 쓴 뿌리가 있습니다. 냉소적인 쓴 뿌리가 있습니다. 대적하는 쓴 뿌리가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쓴 뿌리가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쓴 뿌리가 있습니다. 죄를 지적 받으면 가인처럼 안색을 붉히면서 하나님께 도전하는 악한 쓴 뿌리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고, 신앙에 시험 들게하고, 넘어지게 하는 쓴 뿌리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쓴 뿌리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 봐야 합니다. 부지런히 자신을 살펴서 이런 쓴 뿌리가 자라지 못하도록 말씀의 쟁기를 들고 마음의 밭을 쟁기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일주일만 밭을 돌보지 않으면 잡초들이 엄청나게 자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의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하루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말씀의 쟁기로 밭을 간 마음의 밭과 한 주 건너 뛴 영혼의 밭의 차이는 많이 나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 속에 있는 쓴 뿌리들이 말씀의 쟁기로 제거 되고, 갈아져서 많은 열매를 맺는 좋은 옥토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자

오늘 말씀 16절에는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결국 회개할 기회를 놓치고, 축복을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 회개해야합니다. 본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망명된 사람’이란 ‘귀중한 것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에서는 믿음의 가문을 이어갈 장자였습니다. 그는 축복을 받을 권한도 있었고, 장자로서 대를 이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사명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해 주신 그 사명을 아주 가볍게 여겼습니다.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가볍게 여기다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가고 만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을 가볍게 여겼는지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축복 받는 것보다 한 끼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장자 명분을 한 그릇 음식을 위해 팔아 넘긴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런 제직들이 있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여러분 내가 믿음으로 바로 서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들이 필요한 물질을 가득히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 13:5-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씀을 전해 준 사람들이 어떻게 은혜 아래 살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9절의 말씀처럼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고, 마음으로 은혜로써 굳게 하고, 음식을 따라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에서처럼 음식을 위해 살다가 망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역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한 끼의 배를 채우려다가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3:5절에는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날마다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한 그릇 양식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닙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육체적인 욕구나 욕망을 채우려고 살았던 사람은 모두 멸망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육신을 따라 살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집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아들을 보려고 몰래 첩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이 드러나고 온 교회에 알려지자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첩으로부터 옥동자를 얻었고 나름대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들 하나 밖에 없으니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쥐면 꺼질세라 놓으면 날아갈세라 귀중하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면서 앓다가 며칠 후 죽었고 말았습니다. 그때라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교회에 다시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을 보려고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다가 그만 자식도 잃고 영생도 잃게 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11-12절 말씀을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얻고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완전히 망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고 한 그릇 음식을 위해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축복의 자리에서 벗어나 영원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즉시로 회개해야합니다. 고치려고 마음먹었을 때 즉시로 변화 되어야 합니다. 회개를 뒤로 미루면 결국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렵습니다. 우리 중에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참으로 두렵습니다. 우리 중에 쓴 뿌리가 자라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성도들까지 괴롭히고 함께 지옥의 길로 갈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한 그릇의 먹거리를 위해 영생을 복을 팔아버린 에서처럼 먹을 것을 위해 영혼을 팔아 버리는 사람들이 있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이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따라합니다. “이제부터 영생을 위한 믿음의 경건한 싸움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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