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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헌신주일] 복음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요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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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요 1:9-13)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은 ‘생명’이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물’이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구"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 ‘나’가 가장 소중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중요한 것으로 보십니까?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어떤 어르신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돈’이 최고라 하십니다. 그런데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아셔야 합니다.   

성경은 무엇을 가장 소중한 것이라 할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입니다. 아멘? 
여러분도 하나님을 가장 소중한 존재로 믿습니까? 

우리 장로교에는 위대한 신앙고백서가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인데 그중에 ‘소요리 문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 안수집사, 권사 모든 직분자들이 임직을 받을 때 반드시 서약을 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그때 “대소요리 문답은 성경에 모든 진리를 총괄한 것으로 믿느냐”고 묻습니다. “아멘” 하고 대답해야 임직을 합니다. 

그 소요리 문답 제1문에는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합니다. 

답변은 뭐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히 여겨야 할 분은 하나님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란 말입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내가 있어야 하나님도 있는 것 아니냐?” 하시는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제 설교 준비하다가 잠시 멈추고 제 아들들과 딸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큰아들이 제일 먼저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마음으로 주변 사람을 사랑하며 이끼는 것”이라 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기다려도 답신이 없어 전화했더니 확인을 못했다면 즉시 확인해서 보내겠답니다. 잠시 기다렸더니 답이 뭐냐면 “가족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답이 왔어요. 

그런데 딸이 답이 없는거예요. 한참 기다리니 ㅋㅋ 왜 이러세요. 일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속히 대답하라고 재촉했습니다. 답신이 “하나님과 선교 그리고 가족”이라는 답이 왔습니다. 아빠를 기쁘게 하려고 그렇게 했는지 모르나 이만하면 목사자식들 답지 않습니까?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   

그런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일을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매우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 즉 복음을 믿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복음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알면 너무도 단순하고 결과가 너무도 명확한 것이 복음의 진리입니다. 

나이가 드신 어르신들은 스마트 폰을 사용하기 어려워합니다. 젊은 목사들도 복잡하다고 못하는 사람이 꽤 됩니다. 그런데 기능을 조금만 배워두면 너무도 편하고 좋은 것이 스마트 폰입니다. 

이 스마트 폰 기능을 소개해 볼까요? 텔레비전도 되고, 카메라도 되고, 녹음기도 됩니다. 이 설교도 이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고 있습니다. 
또 내비게이션도 되고, 은행일도 보고 인터넷도 되고 편지도 주고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행기 티켓도 예약할 수 있고, 신문도 보고, 성경도 보고 찬송가도 보고, 제 설교도 들을 수 있고 원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 알고 있나요? 
심지어는 여름에 모기도 쫓아주고 버스노선도 알려주고 간단한 질병도 원인을 찾아줍니다. 

그런데 좀 어렵다고 안 배웁니다. 그러면서 모르는 것이 속편하답니다. 그러니 답답하지요. 누가 답답한가요? 본이는 안답답합니다. 모르니까... 누가 답답하냐면 아는 사람입니다. 옛날 어르신들 중에 글 모르는 분이 많았지요? 누가 답답한가요? 주변 사람이 답답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두껍다보니 복음은 어렵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읽으려고도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실상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명확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가져다주는 복은 세상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복음은 어떤 것일까요? 어떤 것이기에 단순하고 명확하다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2012년도 선교헌신 작정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년에 한차례 선교 헌신 작정주일로 지키는데 오늘이 그날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우리가 믿은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봉독한 말씀 속에서 답을 찾습니다.   

1) 예수님은 세상에 오신 참 빛이라는 것입니다. 

9절을 보세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본문의 “참 빛”은 머리빗 ‘참빗’이 아니고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그런데 “참 빛”이란 말은 빛은 빛인데 참 빛이 아닌 가짜 빛도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참 빛”이 아닌 가짜 빛은 어떤 빛인가요? 이단들이 가짜 빛입니다. 통일교 문선명이도 가짜 빛이고 신천지 이만희도 가짜 빛입니다. 그리고 우상 종교도 가짜 빛입니다. 

유교에서는 공자를 빛이라 합니다. 
짐승같이 효를 모르고, 예절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부모 공경을 가르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절을 가르친 공자는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참 빛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도 빛이라 합니다. 
인생이 덧없음을 가르치며 지나친 욕심을 버리게 하고, 불필요한 살생을 금하고 모든 생명에 자비를 가르친 점에서는 석가도 어둠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참 빛이 아닙니다. 

또 ‘네 자신을 알라’고 외친 소크라테스도 빛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세상에는 빛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빛들은 다 참 빛이 아닙니다.   

그러면 참 빛과 참 빛이 아닌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요? 
그것은 영원하냐, 일시적이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무엇이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자가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한다면 다음 몇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개인이 행복해지고, 가족이 행복해지는가입니다. 
어떤 가르침은 개인을 불행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둘째, 그의 가르침이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가 입니다. 

어떤 나라는 종교가 국가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인도입니다. 힌두교가 그 백성들을 억압하고 자유를 빼앗습니다. 지금도 계급제도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온갖 것이 신입니다. 뱀도 신이고 쥐도 신이고 각종 동문이 신입니다. 그러나 발전이 없습니다. 

성경은 어떤가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할렐루야! 
그리고 셋째로, 그의 가르침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가? 그러면 기독교는 세 가지 다 Ok 할 수 있는 빛이 있는가요? 
물론입니다.   

예수 믿으면 개인이 행복해지고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예수 믿으면 형편없는 사람도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사회나 국가가 발전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참 빛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2) 그 빛이 각 사람에게 비추어졌습니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참 빛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특정인에게 빛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세상 각 사람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비추어 주셨습니다.   

어떻게 비추셨나요? 복음 전파자들이 온 세상에 다니며 전했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땅 끝까지 가서 비추었습니다.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 선교사들이 흩어져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전국 방방곡곡에 목사들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왜죠?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창조주인데도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받았는데 그 빛이 싫어 숨어버렸습니다. 무엇 때문이죠?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로 나오면 죄와 허물이 다 들어납니다. 그러니 숨어버리고 빛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지구상에 오셨는데도 당신이 만든 자기 백성조차도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11절 보세요.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도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외양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갈릴리 촌 나사렛에서 자라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내게도 비추어졌다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 빛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3)영접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집니다. 

12절을 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따라서 합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입니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곧,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힘들고 어려운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영접하여 모셔 들이면 됩니다. 영접하는 것, 곧 그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뭘 믿어야 하나요? 그 분이 하나님 아들이시고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는 구주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어떤 특권이 주어지나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으니” 할렐루야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고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되는 권세입니다. 이 권세는 힘입니다. Power입니다. 그리고 신분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의 종, 사탄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권리도 주어집니다. 보호받을 권리, 채움을 받을 권리, 그리고 주님이 주신 영생을 누릴 권리가 주어집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주어진다고 가짜가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세상은 비싸야 좋은 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싸구려면 천하게 여깁니다.   

옛날 실제 있었던 실화라고 합니다. 

서울의 어느 백화점에 물건이 300,000원짜리 밍크코트가 전시되었는데 며칠이 되도 안 팔리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원이 0을 하나 더 붙여 3,000,000원으로 써서 전시해 놓았답니다. 그랬더니 그날로 판매되었답니다. 

왜지요? 비싸니 가치가 있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심리가 있습니다. 비싼 것이 괜히 비싼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도 겉으로 보면 값없이 주는 공짜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값으로 대가를 치룬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구원을 값없이 공짜로 누리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엄청난 값을 치르신 것입니다. 그 분이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영접하면 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치르신 피값을 믿기만 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놀라운 특권이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할렐루야!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나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구원 받았다고 아들도 자동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자동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동으로 천국 가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달렸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사람의 뜻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의지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이제 예수 믿어야지” 굳게 결심한다고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야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거듭나야만 구원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택하시고(선택)’ ‘부르시고(소명)’ ‘믿게 하시고(신앙)’ 의롭게(칭의)하셨습니다.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구원받고 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열심히 예배드려야 합니다. 충성해야 하고 헌신해야 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소서2:8절을 보세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은혜도 선물이고 믿음도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받았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 믿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얻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2. 복음은 왜 전해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요3:16절을 아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예수님을 통한 얻어진 영생도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린 어찌해야 하나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 전해야 할까요? 

남들이 그들의 종교를 믿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요?   

얼마 전 제가 어떤 분에게 전도를 했더니 “나는 불교를 믿어요. 냅두세요.” 합니다. 그러니 제가 냅 두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더 확실히 전도해야 합니다. “거기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믿지 않으면 지옥 갑니다.” 그랬더니 다른데로 가버렸습니다. 

왜 전해야 하죠? 그대로 두면 분명히 지옥 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르기에 냅두라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왜죠? 왜 복음을 전해야 하지요? 

1)믿어야만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4:6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전해야 합니다. 혹시 다른 길이 있다면 냅둬도 됩니다. 그런데 없습니다. 

왜죠? 다른 곳에서는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한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종교 다원주의를 경계하셔야 합니다. 그것은 사탄의 속삼임입니다. 


2)믿는 자는 놀라운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신분의 변화, 이것은 세상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멘? 

죄의 종이었고 사탄의 종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이 아니고는 어떤 방법으로도 안 됩니다.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호를 받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의 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녀는 아버지에게 요구할 특권이 있습니다. 자녀만이 아버지 것을 내 것으로 누릴 특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직 믿음입니다. 고행도 아닙니다. 윤리 도덕도 아닙니다. 

12절 보세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렐루야! 
  

3)주님이 전하라고 명령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명을 바쳐서 전해야 할 이유는 우리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명령입니다. 막16:15절 이하를 보세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복음을 전파하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세워 일꾼을 길러 내는 것입니다.   

누가 해야 합니까?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 교회입니다. 이 나라 이민족이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페이스 북에 글을 써놓았습니다. 

“휴대폰이 고장이 나서 수리센터에 맡겼습니다. 수리하는 동안 둘째 딸의 휴대폰을 빌렸는데 하루당 1,000원에 빌려 쓰고 있습니다. 딸이 사용료를 원합니다. 무서운 세상입니다”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으니.. 그렇게 올린 것입니다. 아마도 핸드폰도 아빠가 사주고, 요금도 아빠가 내는 것 일겁니다. 그런데 하루 천 원씩 랜트비를 달라니 기가 막히지요? 저도 그 글을 읽고 많이 웃었어요. 

사실 우리도 하나님 것 빌려 쓰면서 하나님께 나를 사용하려면 사용료 주어야 한다고 하잖습니까? 그것도 적게 준다고 불평하고 와서 가르쳐 달라는데 교통비 안 준다고 안 가고 그러잖습니까?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갖고 있는 것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생명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하나님의 것 갖고 살면서 하나님 일 좀 하자면 사용료 내라고 하는 것이 우리 아닌가요?   

성도 여러분! 오늘 선교헌신 주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복음을 온전히 믿는 것이고 그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그것입니다. 그 일에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 드리시길 축원합니다. 정말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그 은혜 감격해 하며 그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일이 선교후원입니다. 

매월 얼마를 선교헌금으로 내실 것인지? 그리고 어느 선교사를 일년동안 후원기도를 할 것인지, 그리고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분은 어떤 선교단체를 도울 것인지 기록해서 내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에 헌금 기도할 때 같이 함께 기도할테니 작성하여 드리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드리는 작정서가 여러분의 신앙 고백이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단순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는 그 복음은 명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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