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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팡이 이야기 (민 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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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이야기 (민 17:1-11)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복되게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행복을 방해하는 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때 그들이 꿈꾸던 행복은 자유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그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적은 바로 왕과 애굽 백성들이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후에는 편안한 잠자리와 풍성한 먹거리가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야는 먹을 것도 부족했고, 잠자리도 불편했습니다. 광야 자체가 적인 셈입니다. 또 가나안에 들어갈 무렵 그들이 바라는 행복은 어서 빨리 가나안을 정복하는 것이었겠지요. 그 때 그들의 적은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애굽기부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들은 여러 가지 적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얻어가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적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왕이나, 애굽 사람들, 척박한 광야의 환경, 가나안의 백성들....이런 적들의 특징은 모두 외부의 적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적은 내부의 적이었는데, 놀랍게도 이스라엘 백성 자신이 적이었습니다.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강한 적은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민수기 16장과 17장은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 행복을 파괴했는지를 우리에게 확인시켜 줍니다. 

오늘 우리는 17장을 읽었습니다만, 그 배경은 16장입니다. 16장에는 광야에서 백성들이 경험한 매우 슬픈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날 백성 중 일부가 매우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주모자는 세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고라>였는데, 고라는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으로서 뜻밖에도 모세의 사촌이었습니다. 나머지 두 사람은 르우벤 지파 소속인 <다단>과 <아비람>이었습니다. 이들의 추종자는 이름있는 지휘관만 해도 무려 이백오십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민수기 16장 1-2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 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그렇다면 이들이 반란을 일으킨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모세를 축출하고 그 자리를 탈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6장 3절을 보면 반란의 목적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 서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의 자리에 욕심을 가졌습니다. 고라는 자신이 모세의 사촌이므로, 자신도 자격이 있다고 여겼는지 모르겠습니다. 다단과 아비람은 자신들이 열 두 지파 중에 처음인 르우벤 지파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었다는 불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들은 가나안 땅이 멀지 않은 곳에 이르자, 욕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많은 추종 세력을 거느리고 조직적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맞섰습니다. 

반란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으로 입을 벌리게 하여 그들을 삼키게 했습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만약 땅이 입을 열어 이들을 삼킨다면 이들이 하나님을 멸시한 죄를 지은 증거>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말이 끝나자 땅이 갈라졌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에게 속한 모든 사람이 멸망했습니다. 

16장 31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이 섰던 땅바닥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  그리고 여호와의 불이 나와 이들을 추종하던 이백 오십 명의 지휘관들을 삼켰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모세와 아론이 애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비난하는 백성들에게는 염병 재앙이 임하여 무려 만 사천 칠백 명이나 죽음을 당했습니다. 반란의 결과는 이처럼 참혹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스스로 파괴하는 어리석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되게 하려고 많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바로 왕을 굴복시키시고, 그들을 건지셨습니다. 척박한 광야에서 죽지 않도록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덮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여 춥지 않게 하셨습니다. 때를 따라 물을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복되게 하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을 파괴한 것은 어리석게도 그들 자신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행복을 파괴합니다. 자신을 그렇게 위한다는 사람들, 그래서 운동하고, 보약을 먹는 사람들이 독한 술을 몸에 쏟아 붓고, 인생을 담배 연기 안에 가둡니다. 더러운 삶에 자신을 맡깁니다. 행복의 보금자리인 가정을 파괴합니다. 행복의 샘인 아내를 버립니다. 행복의 든든한 지킴이인 남편 품을 떠납니다. 행복의 꽃인 자식을 버리는 부모도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들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잘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주셔도 스스로 망가뜨린다면 아무 보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본질에만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광야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가나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양보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했습니다. 왜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대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누가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는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가나안 땅에만 들어가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때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위해 모든 힘을 모아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또 애굽에서 그 곳까지 가는 데 모세 보다 유능한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모세를 중심으로 뭉쳐 가나안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라를 비롯한 사람들은 전혀 본질이 아닌 문제, 자신이 모세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을 들고 나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은 거기 속아 부화뇌동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부패는 본질을 벗어날 때 시작됩니다. 주부가 주부의 일에 몰두하지 않을 때 가정이 무너집니다.  군인이 국방보다 다른 데 신경을 쓸 때 나라가 무너집니다. 정치인이 백성을 돌보는 일보다 권력의 맛에 취할 때 국가는 망하고 맙니다. 선생님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보다 다른 것에 집착할 때, 직장인이 일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취미생활이나 개인적인 일에 몰두할 때, 학생이 공부보다 외모를 꾸미는 데 집중할 때, 목회자가 목회보다 취미에 몰두할 때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부패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 명예와 자리를 탐할 때 시작되었습니다. 

고라, 다단과 아비람 등은 반란을 위해 이름 있는 지휘관을 무려 이백 오십 명이나 모았습니다. 은밀히 이 많은 사람을 모으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비밀 회합을 열었을까요? 얼마나 많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목적, 본질이 아닌 것을 위해 사람을 모았을 뿐입니다. 아무 쓸모없는 낭비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사람을 모아 데리고 모세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모세여, 우리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의 헌신적인 수고를 너무도 잘 알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기 뛰어난 지도자들을 모아 왔습니다.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우리를 부르십시오. 우리가 힘이 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주인공이 되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 붓겠습니다. 자, 여러분, 가나안을 위하여 달려갑시다. 모두 함께 외칩시다. 가나안을 위하여!.....> 이랬다면 얼마나 멋이 있었을까요? 이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복음 증거입니다. 이번에 민경설 목사님을 모시고 집회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복음 증거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재확인했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이들과 멀리 있는 이들에게 전도도 하고, 선교도 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힘을 복음에 집중시켜야 합니다. 교회가 가진 시설, 물질, 인적 자원 모두를 복음에 쏟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2월말에 있을 <전도 동력 세미나>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이 일에 많이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도위원회 소속이신 분들은 물론이고, 이번 기회에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하길 원하는 분들은 모두 게시판에 이름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오십 명 이상의 교우들이 참석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서로 독려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축복의 기회가 되길 원합니다. 

또 오늘 오후예배 시간에는 해외선교위원회 헌신예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슬람권에 방대한강물 선교사님 가정을 파송했습니다. 선교사님 가정은 추방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고, 감사하게도 거기 세례 받기를 사모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축출당할 것을 각오하고 주님께로 나온 사람들입니다. 올해 적절할 때 가서 세례식을 거행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에 아직 선교사들이 오시기 전에 서상륜, 백홍준 같은 분들이 만주 심양에서 존 로스 선교사를 통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우리말로 된 성경을 번역했고, 이 성경이 황해도 송천에 반입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방대한 강물 선교사님 가정을 통해 복음을 듣고 세례를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그 민족 복음화의 초석이 될 줄 믿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김성훈 선교사님 가정을 통해 더 놀라운 열매가 맺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예배 시간에 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정말 귀하게 사용하시는 특별한 분이 오셔서 이 시대 우리 민족을 위한 선교적 과제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다른 데서 들을 수 없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이 뜨거워질 것이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헌신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오셔서 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위해 온 마음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교회가 힘쓰는 지역 사역들, 봉사들, 교육들, 홀리조이센터를 통한 다양한 사역이 모두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창고교회>가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복음, 생명의 말씀, 그리고 은혜와 축복이 우리교회와 성도 여러분들에게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 지역에, 우리나라에, 세계로 퍼져나가길 원합니다. 

이 본질적인 사명을 위해 나머지는 모두 내려놓길 원합니다. 누가 지도자가 되는지, 제도가 어떠한지, 방식을 어떻게 하든지, 그리고 내가 어떤 형태로 참여하는지 등의 문제는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내 의견이 관철되든, 그렇지 않든,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기분이 어떻든 상관없이 복음만 잘 전해질 수 있다면 그 나머지는 어떤 형태이어도 좋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본질에 충실하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에 철저히 순종해야 합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하며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한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대항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와 아론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세는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려고 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할 수 없다고 거절하다가 하나님의 진노까지 샀던 사람입니다. 그들을 세우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모세만한 인물이 누가 있었습니까? 모세가 애굽 왕 바로와 고독하게 맞설 때 고라와 같은 사람들은 무엇을 했나요? 다단과 아비람은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모세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갈라 백성을 인도할 때, 그 숱한 어려운 순간들을 눈물의 기도로 극복할 때,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하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게 되었을 때, 차라리 자신을 하나님의 책에서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눈물로 매달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다름 아닌 모세였습니다. 그 모세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란을 하나님을 향한 반란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그들을 처벌하게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방식으로 직접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를 세우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이런 질서를 분명히 세우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은 후 하나님께서는 열 두 지파의 대표에게 지팡이 하나씩을 가져오게 하셨습니다. 지팡이는 히브리어로 <맛테>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지파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결국 지팡이를 가져오게 했다는 것은 열 두 지파 모두가 나오게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열 두 지파를 불러내서 당신의 질서를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각 지파의 지도자들이 지팡이에 이름을 써서 가져왔습니다. 레위지파의 대표는 아론이었습니다. 그들은 열 두 개의 지팡이를 성막에 두었습니다. 그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고 꽃이 피고 살구 열매가 달렸습니다. 학자들은 이 일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으로 봅니다. 아론의 지팡이의 한쪽에는 움이 돋고 순이 나고, 한쪽에는 꽃이 피고, 한쪽에는 살구 열매가 달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른 막대기에 이런 일이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요, 동시에 이루어진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징조를 통해서 열두 지파 중에서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섬기도록 선택되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또 아론을 세워 제사장이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다시는 그들에게 도전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우주만물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정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질서입니다. 교회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목회자와 교인들,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등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의 체계가 있습니다. 교회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은 스스로 행복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본질이 아닌 문제 때문에 다투고, 이런 갈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아시지요? 

우리 땅끝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서 우리의 가나안을 향해 하나 되어 전진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질서 있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길 원합니다. 땅끝교회를 통해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가 파괴해서는 절대로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팡이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지팡이는 생명 없는 말라버린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지팡이는 스스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지팡이는 자신을 손에 잡고 있는 분에게 절대 복종합니다. 지팡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손의 힘이 강한 분에게 붙들리면 엄청난 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죽은 막대기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는 막대기처럼 볼품없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엄청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불평하면 안 됩니다. <왜 나를 여기 두셨는가? 왜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가?>라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 저를 당신께 맡깁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쓰이길 원할 따름입니다. 저를 원하시는 대로 써 주옵소서. 저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지팡이가 되길 원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고라도, 다단과 아비람도 이런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소중하게 쓰셨을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에도 움이 돋고 열매가 맺혔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스스로 벗어나려고 했고, 그 결과는 멸망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부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하나님의 능력으로 꽃 피고 열매 맺힌 지팡이들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을 지켜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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