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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니 (왕하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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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니 (왕하 5:8-14)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특이하게도 이방인이고 또 이스라엘의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을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방인이란 다만 지옥불의 불쏘시개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볼 때 성경이 그를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모든 세대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겸손한 믿음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간 성경은 나아만을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5장 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로 하여금 크고 존귀한 자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가 잘나서 높은 지위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뛰어나게 용감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주셨기 때문에 그가 크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은 이스라엘을 넘어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통치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원수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대상에는 당연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또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였지만 안타깝게도 나병환자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나병환자라고 한 것은 오늘 우리가 말하는 한센 병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치료하기 어려운 악성 피부 질환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잡아온 한 어린 소녀를 통해서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를 만나면 나병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런 사실을 왕에게 아뢰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왕은 그에게 즉시 사마리아로 갈 것을 지시했습니다. 다만 병을 고치러 가도록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에게 자기의 신하 나아만의 병을 고쳐 줄 것을 요구하는 편지까지 써 주었습니다. 

일이 아주 이상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보낸 그 글을 읽고 몹시 당황했습니다. 열왕기하 5장 7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그렇습니다! 강대국인 아람 왕의 그와 같은 요구를 받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좀 경솔했습니다.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가 말한 것처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그 문제를 먼저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옳지 않았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소식을 듣고 사람을 왕에게 보냈습니다. 그가 보낸 사람이 왕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왕하 5:8 하반절) 그리하여 나아만은 말들과 병거들은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으로 갔습니다. 

물론 치료의 대가로 준비한 엄청난 예물도 함께 가지고 갔습니다. 병을 고쳐 줄 선지자를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한껏 부푼 가슴으로 선지자의 집 문에 섰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실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몹시 화가 치밀었습니다. 당연히 문에 나와 자기를 영접할 줄 알았는데... 엘리사가 어떻게 했습니까?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왕하 5:10) 

아마도 나아만은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라는 지위에 걸맞는 융숭한 대접과 또 특별한 종교 의식 같은 것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심하게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그는 크게 화를 내며 그대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그의 종들이 그를 만류했습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왕하 5:13) 그러자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강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아만이 어떻게 해서 병을 고치게 되었습니까?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써 보낸 편지가 위력을 발휘했습니까? 아니면 그가 가지고 온 그 많은 예물이 효과를 보게 했습니까? 아닙니다! 선지자는 그 예물을 아예 받지도 않았습니다. 또 그가 기대했던 특별한 종교 의식 같은 것도 전혀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그는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갔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하자 병이 낫게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하게 순종할 것 같으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병이 깨끗이 치료되는 사건은 한 어린 소녀의 확신에 찬 말 한 마디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극히 작은 자가 믿음으로 큰 자를 변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포기했던 불치병을 고치는 사건을 시작한 것은 잡혀 온 한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은 나아만의 종들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이스라엘의 한 소녀와 아람의 종들이라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 힘을 합해서 큰일을 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은 선지자나 제사장과 같은 나름대로 유명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봐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이름 없는 한 소녀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전령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 소녀는 전쟁 포로였습니다. 나아만의 아내의 몸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가 나아만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 소녀는 나아만의 치유 사건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또 이 치유 사건이 중단될 뻔했던 순간에 슬기롭게 대처한 자들도 이름 없는 나아만의 종들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지극히 작은 자들이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의 병을 낫게 하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시작했고 또 위기를 극복하고 그 일을 완성했던 것을 보면서 오늘 삶의 현장에서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극히 작은 우리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일을 계획하고 추진하고 또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너무 쉽게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파당을 짓고 분열하고 대립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들이 자기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서로 손가락질하면서 으르렁거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찍이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혀 주님을 배척한 사람들을 향해서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특별히 오늘 이 이야기를 예로 드시면서... 누가복음 4장 27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스라엘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을 비난하고 오히려 이방인을 치켜세우는 듯한 주님의 그 말씀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면서 주님을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룻의 이야기나 요나의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편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나아만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높은 담을 다 허물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히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뿐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막힌 담을 헐고 지극히 작은 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회복의 기적을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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