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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라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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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경험하는 성도가 되라 (요 2:1-11)

어떤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른손에는 낚싯대를 잡고, 왼손에는 25cm자를 들고 있었습니다. 고기가 물려서 올라오면 25cm 자에 대어보고 25cm보다 고기가 크면 어떻게 했을까요? 
바다 속에 다시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25cm 이하의 피라미 같은 고기는 자기 바구니에 넣는 것입니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것을 쳐다보다가 물었습니다. 

“아니 여보시오. 왜 큰 고기는 바다 속에 다시 놓아주고, 작은 고기만 챙기고 있소!” 낚시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희 집에는 큰 프라이팬이 없습니다. 저희 집 프라이팬은 지름이 25c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큰 고기는 요리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고기만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 프라이팬이 25cm밖에 안 되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더 큰 고기는 잘라서 넣으면 되고 아니면 아예 프라이펜을 큰 걸 사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님, 더 머리가 좋은 분이라면 일단 잡았다가 더 큰 것은 장에 가서 팔면 되지 않겠습니까? 
더 다양하고 좋은 방법이 많았는데 이 낚시꾼은 꼭 25cm 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시각에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남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도 25Cm의 시각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평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25cm의 인생의 프라이팬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이 작은 머릿속에 갇히실 만큼 작은 분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정한 기준안에서만 우리를 위해 일하시고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를 다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제한적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무능한 하나님이라면 우리의 인생을 걸고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차라리 그럴바에야 나를 믿는게 낫겠죠?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계획속에 갇혀서 아무것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못하실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온 우주를 관리하시고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 할 일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이라는 여러분의 고백이 그냥 고백이 아닌 진정한 믿음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그 믿음의 고백을 따라 반드시 여러분의 인생에 불가능이 없는 능치 못함이 없으신 위대한 역사를 펼쳐 나타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기적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적을 믿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고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기적을 믿으십니까? 
기적을 믿는 여러분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기적을 믿으십니까? 
왜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기적의 주인공인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인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우연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기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적의 원천이요 주인공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을 믿는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는 이 하나님의 기적,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복음에는 몇 개의 표적이 나올까요? 
7개..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 예수님의 7표적 즉 기적 중 첫 번째 표적인 갈릴리 가나 지역에 혼인잔치집의 기적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2000년 전 일어났던 그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단순히 성경의 활자를 통해 보는 기적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기적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자 이제 본문을 보겠습니다. 
먼저 3절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이상하지 않습니까? 기적을 이야기하는 오늘 본문의 시작은 기적이 아니라 문제였습니다. 어떤 문제였습니까? 3절 말씀에 보면 그 혼인집에 포도주가 모자르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당시 유대인의 결혼은 오늘날처럼 하루에 끝나는 결혼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결혼식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 동안이나 길게 치루어졌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신랑은 신부를 데려와 신랑의 집에서 모든 가족과 친족들이 모인 상태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흥겨운 잔치자리에서 포도주나 음식이 떨어진다는 것은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기분 좋게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이다가 갑자기 무엇인가가 뚝 떨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손님들을 대접하는 잔치주인집 입장에 있어서 큰 실례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가나 혼인집에 이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인가가 우리의 삶 속에 부족하게 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물질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또 때로는 어떤 일을 추진해 나감에 있어 에너지가 떨어지고 열정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또 그 무엇인가가 우리의 삶 속에서 떨어져 버려 큰 낭패를 당하게 될 위기를 맞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우리 인생의 목자로 영접하고 모셨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풍성함을 허락해 주시기로 약속해주셨습니다. 

요10:10장 말씀을 한번 찾아볼까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였다면 주님이 우리의 모든 부족함과 연약함을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를 만나고 삶의 부족함을 느끼게 될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상 기본적으로 이 문제가 나에게 영원한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의 이 가나 혼인집에서도 포도주가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 문제는 계속해서 문제로 자리 잡을 수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절 말씀을 보기 바랍니다. 이 혼인집은 예수님을 초정하고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였기 때문에 비록 지금 당장은 포도주가 떨어져 위기인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그래도 그것이 계속해서 문제로 자리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첫째로 여러분이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면 그 예수님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속에서도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이 부족함을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문제를 문제로 내버려두지 않고 반드시 해결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풍랑을 만난 제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배에 함께 타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어 닥치는 풍랑에만 정신이 팔린 나머지 예수님이 그 배에 함께 하고 계심을 인식치 못하고 믿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그 문제들을 결단코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해결하실것이라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이 없다는 그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여러분,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한 문제이지만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게 되면 더 이상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때부터 예수님이 내 주인이시고 그럼 나는 그때부터 예수님이 하라는 데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책임은 주인이신 예수님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제들을 예수님께 맡기지 않고 내가 해결하려고 하니 그게 나에게는 더 큰 문제가 되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이 아침에 주님 앞에 오신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어떤 문제든지 어떤 어려움이든지 모두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 예수님께 다 내어 맡기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벧전5:7 말씀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오늘 예배에 올 때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무거운 문제를 가지고 오셨든 여러분 모두가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다 주님께 맡겨버리고 기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시 다 싸 짊어지고 돌아가시는 분은 한 사람도 없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고 우리는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놀면 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짐을 맡기라고 하셨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놀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는 신실한 예수님의 일꾼은 절대 그냥 노는 법이 없습니다. 주인 되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면 
이제부터는 두 번째로 그 분께 간구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는 예수님께 간구한다. 

3절 말씀을 보십시오.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아룁니다. 예수님, 포도주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없으면 없다고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문제가 있으면 이것이 문제라고 아뢰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야고보 기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사람은 간사해서 무엇인가가 부족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으려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가 없어지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은 때때로 고난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실 때가 많습니다. 부족하게 해서라도 없어지게 해서라도 문제가 생기게 해서라도 당신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가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우리의 삶에 무엇인가가 없어지거나 우리의 삶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고난의 나팔을 통해 우리를 부르고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군인들은 나팔소리를 듣고 움직입니다. 기상나팔 소리가 나고 아침 점호 나팔소리가 나면 집합해야 합니다. 몰려오는 잠을 물리치고 사열대 앞으로 집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나팔이 울려 퍼지면 그때야말로 하나님이 기도의 나팔을 우리에게 불고 계심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성도들 되길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동시에 문제를 예방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독감 예방 주사 맞으셨나요? 주사는 아픈 것이고 귀챦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맞고 싶어서 맞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더 많이 고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주사를 맞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 바로 기도는 고난을 치유하는 주사인 동시에 고난을 예방하는 고난 예방 주사인줄로 믿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인 동시에 문제를 예방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문제 있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인 동시에 문제 없는 사람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문제가 생긴 다음에 하면 그 만큼 늦는 것입니다. 문제가 없어도 미리 미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성도는 반드시 문제를 예방하며 부족함을 막으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해 봅시다. 기도는 기적을 가져오는 열쇠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마리아의 기도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육신의 어머니가 말씀을 했으니까 그래요 어머니 포도주가 부족해요.. 그럼 포도주를 채워야겠네요 이렇게 말씀하면 좋았을 것 같은데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사역에 있어 인간적인 동정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이니까 들어주고 다른 사람의 말이니까 들어주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제대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역해 나갈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자기의 공생애를 시작하는 첫 번째 표적인 이 가나 혼인잔치의 표적에서부터 철저히 인간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역해 나가길 원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 기도하는 대로 그대로 응답되지 않는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기 바랍니다. 지금이 아니어도 내 때 즉 예수님이 역사하실 때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적금을 붓습니다. 한번 붓고 두 번 붓고 은행가서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찾을 때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 한번 두 번 부었다고 아무 때나 가서 적금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봄에 농부가 씨앗을 뿌립니다. 한번 뿌리고 다음날 가서 열매를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씨앗이 열매를 맺을 때 까지 수도 없이 돌아보고 관리해야 가을이 되어서 열매 맺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번 두 번 기도해보고 응답이 없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도해봐야 별 것 없구만 이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야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부족한 포도주를 채우기 위한 예수님의 때가 따로 있었듯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의 부족함이 채워지기 위한 예수님의 때가 따로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걸릴 뿐이지 그때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한국 지성을 대표하는 이어령씨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934년생, 평소에 종교란 문화의 한 분야라고 일관되게 믿고 주장했던 그가 예수를 변증하고 있으니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그가 기독교를 선택하게 된 것은 딸과 손자에게 닥친 이런 저런 시련이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랑하는 딸이 14년 동안 그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도 믿음에 한치 흔들림 없이 아버지께 복음을 전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눈물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결국 이 책에서 이어령씨가 세례받던 날 이어령씨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딸에 게 보냅니다. “너희 편지를 겨우 다 읽었다. 여기저기 글이 눈물로 번져 있더구나. 네가 웬일로 그렇게 많이 울었느냐? 너의 기도가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높은 문지방을 넘게 했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 방울 하나의 힘은 아주 작습니다. 그러나 물 방울이 쉼 없이 몇 년 몇 십년 몇 백년을 떨어지면 결국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바위도 뚫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물 방울이 우리 인생의 바위와 같은 문제를 뚫게 될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의 눈물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인생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주실줄로 믿습니다. 

자주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가 잘 아는 기도의 사람 가운데 죠지 뮐러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평생 동안 5만번이상이나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상상할 수 없는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살아 생전 응답받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 친구 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하여 60여년 동안이나 기도했지만 결국 목사님의 살아생전 그 친구가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조지 뮐러 목사님이 60년 동안 기도했던 그 친구가 결국 목사님의 장례식에 참여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 간증을 들으면서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죽어도 기도는 죽지 않는다.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기도하다가 결국 응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을 향하여 정말 간절하고 진실하게 드려진 기도만큼은 반드시 살아서 역사하여 응답되게 되는 놀라운 영광의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봅시다. 기도하는 사람은 죽어도 기도는 죽지 않는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다시 주님 앞에 기도하는 기도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는 순종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아닌데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라는 예수님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이 너희들에게 말씀을 하실 텐데 그러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할 때 일어나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하인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말씀합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웠다고 하였습니다.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항아리가 몇 개 있었습니까? 하인들이 몇 명인지 몰라도 큰 항아리 여섯 개의 물을 채울 때 별 생각이 다 들지 않았겠습니까? 아니 포도주가 부족한데 포도주를 채우라고 하지 않고 물을 채우라고 하는 거야? 나 참 우리를 바보로 아나? 이런 생각이 안 들었겠습니까? 

또 항아리 여섯 개인데 그 여섯 개 대충 반쯤 채워가지고 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대충 눈가림으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구 까지 흘러 넘치도록 물을 채웠습니다. 
이 하인들이 바로 신실한 주의 일꾼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들을 감당하다보면 별 생각이 다 들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걸 왜 이렇게 하라고 하지? 이렇게 하면 훨씬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니 어떻게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지? 내 상황과 형편은 모르나? 
나는 절반만 채워도 죽을 지경인데 나를 죽일 작정이신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하인들은 그런 생각들 때문에 예수님께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왜 물을 채우느냐고? 왜 아구까지 채워야 하냐고? 
왜 여섯동이를 다 채워야 하냐고 ?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물을 채우라고 하면 물을 채웠고 여섯 동이를 채우라고 하면 여섯동이를 채웠고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니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그들은 아마 땀이 비오듯 흘렀을 것입니다. 무거웠을 것입니다.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너무 무겁게 느껴지고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일들이 있습니까? 어떻게 아구까지 채우나? 하는 답답한 생각이 드십니까? 
그러나 기적은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순종하는 그때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만약 기적이 아무렇게나 순종하고 대충 순종하는 사람에게도 일어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일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 기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일을 가리켜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 즉 평범하지 않은 그 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평범하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평범치 않음이 있어야 하는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남들과 다른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남들이 하듯이 그렇게 순종해서는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적을 체험한 수 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그냥 대충 그저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평범하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사렙다 과부를 보십시오. 나아만 장군을 보십시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상황에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것을 순종하였기에 도저히 될 수 없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기적을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적이 일어날 만큼 순종하는 사람이 없어서라는 것을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깜짝 놀랄 변화와 획기적인 인생의 서프라이즈가 생겨나길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대충 그저 그렇게 남들이 하는 대로 그렇게 하나님을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충 그저 그런 남들이 받는 은혜밖에 받을 수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남들과 다른 특별한 기적을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 순종에서 남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이 종들은 남다른 순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구까지 채우라고 했으니까 채우는 것은 땀은 좀 나고 힘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지 몰랐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는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아구까지 채우는 게 힘들까요? 연회장에게 갖다주는 게 힘들까요? 육신적으로야 아구 까지 채우는게 훨씬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회장에게 갖다 주는 것은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순종까지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항아리 속에 담겨있는 것은 물입니까? 포도주입니까? 아직 그 물은 포도주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물인 상태 그대로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이 물인 상태 그대로 항아리를 연회장에게 갖다주면 이 종들은 어떻게 될까요? 그야말로 몰매감입니다. 그야말로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맞을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연회장은 안 그래도 지금 포도주가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얼굴이 벌겋게 되었을텐데 그런 연회장에게 포도주로 변하지 않은 물을 갖다 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휘발유를 끼얹는 격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실컷 일하고 대신 실컷 두들겨 맞을지 모르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쯤에서 한번 쯤 종들은 예수님께 말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아구까지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것은 좀 너무 하네요. 만약 이 물이 든 항아리를 그대로 가져갔다가는 연회장이 그야말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텐데 일단 포도주로 만드신 다음에 가져가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을 보니 그 종들은 그렇게 예수님께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종들은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맞아 죽을 각오하고 갖다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맞아 죽을 각오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땀 흘려 봉사하는 것을 뛰어넘어 아직 물이 포도주가 되지 않아도 포도주가 될 것을 믿고 가져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의 물이 포도주가 되면 그때 가져다 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물이 든 항아리를 가지고 갈 때 어느 순간엔가 포도주로 변화된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열 명의 문둥병자가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에게 가서 그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제사장에게 가는 것은 깨끗하게 된 다음에 가는 것입니다. 만약에 문둥병자 그대로의 몸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찾아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이런 부정한 놈이 어딜 왔어 하면서 그야말로 난리가 나지 않았겠습니까? 어쩌면 부정한 놈이 왔다고 돌로 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적은 문둥병 걸린 몸 그대로 제사장에게 갈 때 일어난 것입니다. 가고 있던 그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문둥병 걸린 더럽고 냄새나는 몸이 깨끗하고 정결한 몸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이렇게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는 고백은 잘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적은 그렇게 아직 되지 않은 상태에서 될 줄로 믿고 그렇게 할 때 일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순종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순종이 있을 때 그 사람이 정말 신실한 주의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생긴 다음에 물질을 드리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시간이 많은 상태에서 시간을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변화되지 않았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된 줄로 믿고 믿음으로 전진해 가는 것 그것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이것을 주님을 위해 할 수 있을 때 그 때 기적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신실한 주의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도 때로는 오늘 가나 혼인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듯이 무엇인가 부족하게 느껴지고 또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게 될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실한 일꾼들,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은 결단코 그 문제의 상황 속에 갇혀 그대로 주저 앉아 있지 않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구주로 모신 이상 문제가 결코 영원할 수 없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결단코 이 문제를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도록 역사하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은 이 믿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둘째, 그렇기에 신실한 일꾼들은 그 어려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 아뢰는 기도를 드리는 성도들입니다. 때로는 지금이 아니라고 거절 당하고 외면당해도 응답되는 그 날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신실한 일꾼들은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는 성도들입니다.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시면 아구까지 채우고 여섯통을 채우라고 하면 여섯통을 채우고 물로 채우라고 하면 물로 채우고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면 갖다주는 성도입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났고 사람들은 기뻐하였으며 예수님의 영광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우리의 삶 속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고 변함없이 기도하며 순종하여 아구까지 여섯통을 다 채우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적이라고 하는 평범치 않은 역사는 바로 평범치 않은 결코 쉽지 않은 믿음과 기도와 순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채우라고 하시는 항아리가 어떤 것인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것이 기도의 항아리일수도 있고 인내의 항아리일수도 있고 봉사의 항아리일수도 있고 전도의 항아리일수도 있습니다. 용서의 항아리일수도 있고 인내의 항아리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다 채울 때 기적은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올 한해 광교와 죽전 두 교회 시대를 함께 섬겨 나가는 우리는 마치 오늘 본문의 종들처럼 아니 도대체 내 몸이 몇 개인데 아구까지 채우라고 하는 거야?
내 상황을 아시나? 모르나?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때로 주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항아리를 다 채우기 위해 때로는 밤잠을 설치면서 새벽기도회를 해야 하고 또 때로는 불편함 몸을 이끌고 봉사해야 하고 또 때로는 없는 가운데서도 주님께 물질을 드려야 할 지 모릅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렇게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포도주로 변화도 되지 않고 연회장에게 갖다주라고 하신 것처럼 어려운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신적 순종을 요구하실 때 많이 힘들 고 지칠 수 있습니다.
힘써 채우고 또 채우고 있는데 뭐가 어떻느니? 그게 뭐냐느니? 별 말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은 아실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채우는 그 항아리가 다 채워지고 아구까지 차면 반드시 주님이 원하시는 기적이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신실한 일꾼이 되어 오늘도 더욱 힘써 기도하고 봉사하며 전도하며 순종하는 신실한 주의 일꾼들이 되심으로 우리 모두 아무나 받을 수 없는 결코 평범치 않은 놀라운 기적과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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