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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실한 일꾼들 (빌 2: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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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일꾼들 (빌 2:19-30)
  

들어가는 말

영국 프리미어 리그 아시지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가 그 팀에서 200회 출전을 했습니다.
동양선수로는 처음이고, 유럽선수로도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박지성 선수가 이렇게 잘 나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좋은 조력자이기 때문입니다.
맨유는 골을 넣는 스타로 박지성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골은 루니나 호나우드가 넣으면 됩니다.

그의 임무는 산소탱크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며 공간을 만들어주고, 동료선수에게 패스해 슈팅할 좋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조력자가 있는 팀이 좋은 팀입니다.
모든 포지션에 최고의 선수들로만 이뤄진 ‘레알 마드리드’가 중요한 경기에서 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두 잘난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도와주는 법을 모릅니다.

1990년대 전설적인 승리를 이끌었던 ‘시카고 불스’라는 농구팀이 있습니다.
NBA사상 이 팀만큼 화려한 승리와 주목을 받은 팀도 없습니다.
90년대에 NBA 3연패를 두 번이나 한 팀입니다.
이 팀의 감독이 필 잭슨입니다.
필 잭슨은 마이클 조던 한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조직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에게 패스를 잘 하는 선수, 마이클 조던의 슛을 리바운드 잘 하는 선수 등.
그래서 뽑힌 선수들이 피핀, 로드맨 같은 선수들입니다.
이들이 이끄는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전설적인 공격대형이 되었습니다.
좋은 조력자가 있을 때 강한 팀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사도의 좋은 조력자들이 나옵니다.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 그렇게 놀라운 업적이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조력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 두 조력자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1. 디모데 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세운 빌립보교회를 무던히도 사랑했습니다. 
그 교회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빌립보교회의 기둥처럼 여겨지는 두 여인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빌립보교회에 그런 시험이 있다니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려고 합니다. 

19절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사도 바울의 소식을 전함으로 빌립보교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고,
둘째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의 소식을 듣고 안심하기 위함입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명예’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그는 루스드라 출신으로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종교적으로 유대인 전통을 따라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참으로 놀랍습니다. 
부모가 다 유대인일 경우 그 자녀는 물론 히브리인이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 남자가 이방 여자와 결혼할 때 그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이방인입니다. 
또 유대인 여자가 이방 남자와 결혼해서 그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유대인입니다. 
그만큼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중요시 여겼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태어나서 잠간 동안만 어머니 요게벳이 기른 다음, 더 이상 기를 수가 없어 나일강에 떠내려 보냈습니다.
이 아이를 건져서 바로의 공주가 길렀습니다. 
바로의 궁전에서 40년을 자랐으나 모세의 마음속에는 히브리 사람의 혼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의 교육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우리 교우들도 어린 시절 어머니의 교육이 자녀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디모데를 만났습니다.(행16:3, 17:4)
디모데는 늘 사도 바울과 동행했습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 동행했고, 베뢰아, 고린도, 에베소는 물론 심지어 로마 감옥에까지 동행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를 ‘믿음의 아들’(고전4:17)이라고 불렀습니다. 

2. 디모데를 설명하는 본문에서 눈에 띄는 말씀이 있습니다.

22절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 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이것은 디모데가 훈련 과정을 거쳐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택한 것은 일시적이거나 충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책망도 해보고, 칭찬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다 맡겨 보고 그의 진실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려면 두 가지를 시험해보면 된다고 합니다. 

첫째 돈을 줘서 어떻게 쓰는가를 살피는 것이요, 
둘째는 칭찬을 해서 겸손한지 교만한지 그 반응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다 지내보니까 디모데는 역시 훌륭합니다. 
디모데는 연단을 통하여 일꾼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국민일보에 ‘이태형의 교회 이야기’라는 칼럼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라는 제목의 칼럼입니다.(2012.2.1) 
글의 한 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난 해 말, ‘구구라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연합통신사의 구범회 기자.
‘구라’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입담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기 때문. 

구 선배는 이후 정치권에 들어가 한나라당 부대변인, 이회창 전 총재특보 등을 역임했다. 용인시장 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다가 낙선했다는 소식도 들었다.그 ‘구구라 선배’가 연락해 온 것이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선배가 하나님을 만났구나.’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려 하고 있어. 늦었지만 신학도 전공했고. 약간의 신비적인 체험도 했어. 암튼 빨리 만나자고.”60세. 젊은 기상은 사라지고, 노년의 모습이 역력했다. 
한쪽 눈이 부자유스러워 보였다. 
“당뇨 합병증으로 결국 실명했어. 괜찮아.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이 많아.” 

용인시장 선거에서 떨어지고, 이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울분을 삭이지 못했던 것도 건강이 악화된 원인이었다. 
구안와사로 입이 돌아간 적도 있었다.
생명을 건 수술도 받았다.
“이대로 끝내 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수없이 들었단다. 그 때, 절망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다. 
먼저 신앙에 입문한 아내가 그를 인도했다. 
아내는 예수님이 수술복을 입은 남편을 꽉 안아주시는 꿈을 꿨다. 

“예수님이 당신을 살려 주실 거예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이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자신이 과거 미션스쿨인 숭실중·고등학교에 다닌 이유를 깨닫게 됐다. 모든 것이 섭리였다. 
그가 말했다. 
“생각해보니 다 지나가더라고. 지금 행복해. ‘뜻 모르고 사는 것 보다, 뜻 알고 죽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확인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연단을 통하여 빚어집니다.

3. 에바브로디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은 빌립보서에만 발견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을 가지며, 당시 헬라세계에서는 흔한 이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헌금을 사도 바울에게 전달하고(빌4:18), 사도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하여 빌립보교회가 파송한 사람입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들은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 사람은 뭐 늘 감옥에 들락날락 사람이니까.......’하고 그저 기도만으로 끝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빌립보교회의 사랑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기도도 했지만 헌금을 모았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능동적인 교회였습니다. 

문제는 그 사랑을 가지고 갈 사람입니다. 
아무나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날 그리스에서 아드리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가는 것입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와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에 에바브로디도가 자원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에바브로디도가 로마에 갔습니다. 
그런데 로마에는 그 지방 고유의 풍토병인 열병이 있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은 이미 다 앓아서 면역이 되었으므로 넉넉히 이길 수 있지만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할 풍토병이었습니다. 
로마에 간 에바브로디도가 그만 이 열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사도 바울이 크게 걱정하고 기도하며, 빌립보 교인들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에바브로디도 본인도 열심히 기도합니다. 
이 삼자가 한 사건을 놓고 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어 그의 병을 낫게 해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좀 더 데리고 있으면서 그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빌립보 교인들에게 건강해진 그의 모습을 보여주어 근심을 덜어주려고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으나)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25절)”라고 말합니다.

4. 에바브로디도를 설명하는 본문에서 눈에 띄는 말씀이 있습니다.

30절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저가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합니다. 
이것은 참 중요한 대목입니다. 
만일 에바브로디도 자신이 ‘나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했다’고 말했다면 이것은 별로 대단한 말이 못됩니다. 

그러나 제삼자인 사도 바울이 ‘저 사람은 죽기에 이르러도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높이 평가한 것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의 헬라어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원형은‘ 파라볼류오마이’라고 하는데 본래 ‘파라’는 ‘곁으로’라는 말이고, ‘볼류오마이’는 ‘던진다’는 말로 ‘곁으로 던진다’는 뜻입니다. 

원래 이 말은 도박 용어입니다. 
도박사들이 돈을 걸고 주사위를 던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께 온통 삶을 던진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자신을 던짐으로 도박한 것입니다.

새벽기도회 때 한 말씀 드리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힘은 무한대입니다.
무한대에 10을 더하나, 1만을 더하나 결과는 무한대로 똑같습니다.
그렇지요?
사람의 능력이 10이냐 1만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하지 하나님께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의 능력이란 계산에 넣을 변수가 되지 못합니다.
유능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힘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법을 터득하시길 바랍니다.

한 작고 가녀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테테사 수녀입니다.
1950년 인도의 캘커타 빈민굴에 테레사 수녀가 들어갔을 그곳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지옥이었습니다.
굶어 쓰러지고, 병들어 죽어가고, 도둑질과 살인이 백주에 난무하며 창녀가 거리를 누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고 가녀린 여인은 문맹자를 위한 학교를 지어 7,500명의 어린이를 졸업시켰으며, 진료소를 지어 96만 명의 환자를 돌보아 주었으며, 54곳의 나병치료소를 지어 4만7천명의 나병환자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20개의 고아원을 지어 1,600명의 고아를 기르고, 의지할 곳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3,400명을 위해 23개의 숙소를 지어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십시오.
신실한 일꾼은 연단을 통하여 빚어집니다.
신실한 일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는 법을 터득한 사람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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