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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 된다 (출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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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 된다 (출 1:15-22)

제가 군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마지막에 군종병 주특기를 받아서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입니다. 제가 배치된 부대는 ‘여단’이었기 때문에 여단장이 부대장이었습니다. 자대에서 맞은 첫 주일에 부대 교회가 군인들과 군인 가족들로 꽉 들어차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회가 미어터지도록 꽉 찼는데, 그 이유는 부대장님이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군목으로 제 신학대학 동기 동창인 목사님이 계셨는데, 교회에 부대장과 각 대대의 대대장들, 그리고 부대의 참모들(영관급)이 다 출석을 하니, 부대내에서 군목의 위상이 높았습니다. 덩달아 기독교 군종병인 저도 무시하지 못할 사병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부대장이 바뀌었는데, 그분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바로 그 다음 주일부터 성당은 꽉 차서 미어 터졌고, 교회는 좀 썰렁해졌습니다. 당연히 천주교 신부님과 군종병의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병장을 달았을 때, 다시 기독교 부대장님이 오셔서 제가 어깨에 은근히 힘 좀 주었습니다. 교회의 예배를 준비하려고 주보를 인쇄하고 하는 일을 부대 밖의 동두천시에 가서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여단장님이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말하면 돼요. 할 수 없어요. 군대는 계급이니까.... 어느 부대에서는 불교 신자인 부대장의 핍박으로 군목과 군종병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다행히 저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군 생활 경험에서 깨달은 것은 신앙생활에도 환경과 배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을 통해서 우리가 보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애굽으로 이주해 온 이스라엘은 3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혁명이 일어나 새 왕조가 일어나고 극단적 민족주의자인 새 왕이 세워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왕이 자기 민족이 아닌 타종족에게는 노예의 생활을 하게 하고, 강제노동으로 억압하는 통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대로 이스라엘은 민족을 이루어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미 이스라엘이 풍요로운 땅에서 안정적 기반을 잡았기에 떠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의 축복을 위해 고난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은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힘든 고난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 고난을 내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십시오. 어쩌면 고난이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고통이 나에게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봅니다. (15~16절)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애굽의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든 노동으로 인구 억제를 시도했지만 학대를 받을수록 이스라엘은 더욱 번성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바로왕은 다른 전략을 들고 나왔습니다. 

여러분, 사탄 마귀는 포기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약화시키고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온갖 짓을 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믿음을 지켜야 하고, 우리가 믿음을 지킬 때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불러 지시합니다. ‘히브리 여인이 해산했을 때 아들이면 죽이고 딸이면 살려두라’, 무섭고도 잔인한 계략입니다. 왜 남자 아기를 죽이라고 지시했습니까? 남자는 자라면 군사가 되고, 가정을 이루어 생육하게 되기에 아예 싹을 잘라버리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습니다. (17절)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산파들이 남자 아기들을 안 죽인거에요. 여러분, 고대 시대에 왕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어명이요’하면 토를 달 수가 없습니다. 

요즘 TV에 사극이 유행입니다. ‘해품달(해를 품은 달)’, 이제는 사극도 퓨전 사극이에요. ‘광개토태왕’, ‘무신’, ... 방송사 드라마 중에 항상 사극 하나는 방영을 합니다. 어느 집사님이 그렇게 사극을 좋아했대요. 그러다가 교회에서 기도 순서를 맡았는데, 기도를 이렇게 끝냈대요. “예수님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아멘.” 

옛날 시대에 어명에 불복하면 죽음입니다. 애굽왕 바로의 명령을 어긴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것은 애굽 왕은 포악한 한 인간일 뿐이고, 하나님을 참 신이요 주권자로 믿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칼바람이 부는 상황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식하고 하나님 눈치만 보며 살았다는 것은 굉장한 믿음의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사람을 두려워하는가?’... 

이 일에 화가 난 왕이 산파를 불러 말했습니다. 
(18절) “...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그러자 산파들이 대답합니다. 
(19절)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거짓말?’, 왜 이러는 걸까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이 불현한 진실! 십계명 중에서도 9계명이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런 거짓말을 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거짓말 중에서도 ‘하얀 거짓말’은 해도 괜찮은 것입니까? 어느 정도는 거짓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히브리 여인들은 혼자서도 별 무리없이 해산하고 뒤처리까지 할 수 있는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20절)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바로왕보다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산파들,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뛰어드는 산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은 번성하고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이 본문의 핵심구절입니다. 

(21절)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케 하신지라”, 

하나님을 경외하니까 그 결과로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그들의 집안이 흥왕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생명을 걸고 나가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은 잘 되어가고, 악한 애굽 왕은 점점 더 잔인해져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 됩니다”, 

‘플러스 인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밀어주시고, 부어주시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채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고, 내 힘과 능력으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도우시고, 순풍을 주셔서 만사형통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최하진 선교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최하진 선교사님을 만난 것도 10여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동생이 꼭 한 번 만나보라고 해서 만났습니다. 서울 강남의 근사한 호텔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처음 만나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에 최 선교사님은 지금의 학교를 짓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모태신앙인으로 어려서부터 교회는 다녔지만 뚜렷한 체험은 없었던 생활... 카이스트에서 박사 학위받고,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교수 생활, 보장된 앞날,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가 된 과정... 그런데 저를 감동시킨 것은 그동안 쌓아놓았던 명예와 부,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다 소진된 이후,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나가게 되었을 때, 그때부터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감동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늘 자신감이 차 있고, 긍정적이고, 하나님만 믿고 나가면 된다는 믿음이 강했습니다. 그 이후로 너무도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나가고, 하나님이 더 크게 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내 힘과 능력으로, 내 지혜로 살려고 하기보다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그 하나님이 순풍으로 우리의 인생길을 형통케 하시는 줄 믿습니다. 

어린아이가 철문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열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때 아빠가 있어서 밀어주면 무거운 철문도 쉽게 열립니다. 이것이 플러스(+)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왜 하나님이 산파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셨습니까? 왜 그들에게 은혜와 번성의 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러분, 인생은 좋은 환경, 재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경외’가 무엇일까요? 

1. 경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젊은 남,녀가 만나서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어 연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상대방의 관심이 내 관심이 되고, 상대방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됩니다. 본문의 산파들도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경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2. 경외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연극이나 영화의 배경과 같습니다. 배경은 항상 주연을 위해 존재합니다. 배경이 좋아야 작품이 사는 것입니다. - 여러분, 우리는 그냥 하나님이 주인공으로 역사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파들처럼 살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작품이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품이 성공하면 배경도 인기 있게 되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잘 섬기고 살면, 내 삶도 존귀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이 됩니다.” 

여호수아서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 먼저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 정탐꾼들이 들통나려는 위기에서 여리고성 안의 기생 라합이 그들을 숨겨줍니다. 여러분, 여리고성의 기생 라합이 숨겨둔 정탐꾼을 내어주면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서 알고 있었던 라합은 믿음의 길을 선택하여 그들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 결과 라합과 그 가족이 구원받고,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산파들도 믿음이 있었기에 애굽 왕의 명령에 복종하여 출세하는 길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면 은혜와 복, 승리, 존귀함이 따라옵니다. 

(시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이어지는 2절, “...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된 사람이 됩니다. 형통한 사람이 됩니다. -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마이너스(-) 인생이 됩니다. 갈수록 인생이 어두워지고, 불통하고, 세상에서 시달리며 살게 됩니다. 

마이너스(-)로 큰 숫자를 대입하면 더 많이 잃게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다윗 왕 이후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자 하나님이 강대한 적들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의 영토와 재산을 ‘마이너스(-)’ 시켰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패망하는 마이너스를 당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애굽왕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애굽왕은 주위의 사람이나 환경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 눈치보는 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면 마이너스 인생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힘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히브리 산파들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플러스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갈수록 흥왕해지며, 나를 통해 주변 사람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 된다”, 

우리의 인생에는 환란과 역경, 고난, 그리고 시험이 있습니다. 애굽 왕(환경)의 명령은 큰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인생의 플러스, 인생의 순풍을 만난 산파들처럼 그러한 인생을 사십시다. 

18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복음의 일꾼 중에 ‘탑레이디(A.M. Toplady)’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494장)” 라는 찬송가 가사를 지은 분입니다. 그분은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폐결핵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남긴 불후의 찬송시들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가슴을 영원토록 울려 줄 것입니다. 

그분이 작시한 찬송 중에 373장 찬송이 있습니다. 그 찬송 1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2절에서는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탑레이디 목사님의 찬송가가 말해 주고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는 순풍과 역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고난과 고통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한 생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와 어려움,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장이 우리에게 주는 분명하고 명백한 교훈이 있습니다. ‘고난은 축복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플러스 인생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의 기도제목이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하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게 하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플러스 인생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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