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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약의 하나님 (신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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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하나님 (신 5:1-6)                

교우 여러분들에게 좋아하는 단어들을 다섯 개씩만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단어들을 고르겠습니까? 저는 그 중에 반드시 <아버지>란 단어를 포함시키고 싶습니다. 아버지란 단어는 저를 낳으시고 기르신 육신의 아버지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아버지란 단어는 제게 하나님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저는 기도할 때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좋습니다. <아버지!>하고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되는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려면 우리 속에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14-15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멘.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제게만 아버지가 되시는 게 아닙니다. 교우님들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우리 모두는 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이요, 형제자매가 됩니다. <우리 아버지>, 이 얼마나 친숙한 표현인지 모릅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남남으로 살던 우리가 하나님을 공동으로 아버지로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아름다운 축복을 공유하게 됩니다. 땅끝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축복이 계속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도 이런 아름다운 표현이 나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2절을 보세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라고 했지요? 여러분, 이건 대단한 일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 거룩하시고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분,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그 분을 감히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 언약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언제부터 하나님을 처음 깨닫고 믿게 되었는지도 잘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 한 복판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또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다른 것을 보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의 믿음 하나를 보시고, 이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15장 7절을 볼까요?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목적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질문합니다. 8절을 보면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했지요. 약속의 증거를 구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고대 근동의 예를 따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짐승들을 잡아 가운데를 쪼개서 벌여 놓았습니다. 당시에는 중요한 언약을 맺을 때면  짐승을 둘로 갈라놓고 언약의 당사자들이 그 가운데로 지나갔습니다. 이는 <만약 이 언약을 어기면 이 짐승처럼 된다.>는 경고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언약을 세운다>고 할 때, <세운다>는 말의 원뜻은 <베다, 자르다>인데, 이게 바로 짐승을 잘라 놓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을 때도 그랬습니다. 창세기 15장 9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자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 이 언약은 후손에게로 계승되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로 이어지고, 또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로 이어졌습니다. 그 언약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넌 내 사람이다. 나는 네게 복을 주겠다. 넌 나를 믿고 순종해라. 난 네게 후손의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고, 땅을 주어 기업이 되게 하겠다...> 여러분, 이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길 원합니다. 

언약을 맺은 사람은 뚜렷한 확신,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살았습니다.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이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습니다. 자신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그들의 삶은 안전했고,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언약을 맺으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이 말씀의 의미는 대단히 큽니다. 우선 이 말씀은 <이젠 우리도 당당히 하나님의 언약의 파트너가 되었다>는 감격적인 말입니다. 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만 맺은 게 아닙니다. 그로부터 사백 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치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야곱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언약을 맺는 영광을 얻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 말씀은 <언약은 시대마다 새롭게 갱신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은 <후손을 번성하게 하시고, 땅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언약이 성취되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이 되었고, 가나안 땅이 눈앞에 왔습니다. 이제 과거의 언약의 새로운 언약으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새로운 언약을 호렙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호렙산, 즉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아니라, 그들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과 맺으신 언약이었습니다. 

본문 3절을 다같이 읽으실까요?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아멘. 모세는 호렙산 언약의 의미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호렙산 언약이 맺어지는 과정을 출애굽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도 짐승의 피가 등장했습니다. 출애굽기 24장 3절부터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여기, 언약의 피가 등장하지요? 이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준수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호렙산, 즉 시내산 언약을 통해 과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과거의 언약이 개인 차원의 것이라면, 호렙산 언약은 한 민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이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사십 년 세월이 흐른 후 다시 한 번 갱신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호렙산 언약은 하나님과 출애굽 1세대와의 언약이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이란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얼마 전까지 애굽에서 벽돌을 구워 성을 쌓던 노예였습니다. 이들은 벽돌을 굽는 고통, 아기를 낳아 강에 버려야 하는 고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십 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모세는 모압 평지에서 다시 그 언약을 갱신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파트너가 바뀌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여전히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만, 이때의 이스라엘은 새로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기성세대는 그 사십 년 동안에 다 죽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올 때 아직 어렸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가 성장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을 형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의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통해 다음 몇 가지를 우리에게 적용하길 원합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와 언약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와 언약을 맺고자 하실까요? 그것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처녀 총각들이 사랑하는 이와 평생을 함께 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우리 입장에서는 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할까요? 그것은 그 분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도대체 누구이십니까? 이스라엘 백성 입장에서 보면 그 분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분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알고 보니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그 고통스런 곳에서 건져 주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이 손을 내미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악과, 사망과, 사단의 손에서 구원하셨는데, 어찌 언약을 맺자고 하시면서 손가락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손을 어찌 뿌리치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손가락을 내밀어 약속하십시오. 언약을 맺으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약속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여러분의 아버지로 모시고 사십시오. 그 분의 품안에서 복되게 사시길  바랍니다. 

더구나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갈 때 우리는 그 분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언약을 맺지 않으면 손해가 막심합니다. 

얼마 전 제 아들 녀석이 높은 곳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려 휴대폰 액정이 박살이 났습니다. 그런데 액정 유리를 교체하는 비용이 무려 이십 여 만원 가까이 든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가입할 때 휴대폰 보험을 드는 제도가 있는데, 보험을 들어놓은 사람은 불과 몇 만원으로 액정을 교체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은 보험을 들지 않았습니다. <아빠, 그래도 글자를 볼 수 있느니, 그냥 쓸게요....> 미안하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보험은 개인과 회사 사이에 맺어지는 일종의 언약입니다. 언약을 맺은 사람은 보호를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보험회사와 언약을 맺은 사람이 회사의 보호를 받듯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로 작정한 그 날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품안에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됩니다. 그 위대한 분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 친밀성이 느껴지지요. 가장 위대한 분이 우리 곁에서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그 분이 남이 아닙니다. 우리와 손가락을 걸고 있는 소중한 분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에게 주시는 복에 대하여 시편 103편 17-18절 이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할렐루야! 
  
또 일단 언약을 맺었다면 그 언약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밥 먹듯이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몹시 섭섭하게 했습니다. 언약을 맺은 사람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1절을 읽어봅시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아멘. 여기 보면 <이스라엘아>라고 부르는 단어와 <듣고>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말을 붙이면 <들으라 이스라엘아>, <쉐마 이스라엘!>이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약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한 순간도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 결혼한 부부 사이에는 상대방의 말을 청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지나가는 남자의 말을 듣는다면 그건 심각한 일입니다. 

여러분,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주체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애쓰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몸부림칠 때 <아, 난 하나님의 사람이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는 것에 대해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어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의 참된 언약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는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44편 17절을 보면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까? 그 과정에 누가 계셨습니까? 그 과정에 계신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언약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잡수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을 보면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새 언약은 단지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 새 언약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가나안 땅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내용은 죄의 용서, 몸의 부활, 영생의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온통 불신의 세상입니다. 가짜투성이입니다. 심지어 계란까지 가짜가 있다는 보도를 보셨을 것입니다. 이 때 믿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모든 신분 중에서 가장 축복된 것은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을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이 은혜가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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