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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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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4-21)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1년여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보복으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뉴욕 타임즈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보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진보 진영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 정치보복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15일 충남 서산시 한 공장에서 30대 남자가 공장직원들을 향해 수렵용 엽총을 난사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범인 성모씨는 ‘공장에 다니던 시절 나를 괴롭힌 직원들에게 보복하려고 총을 쐈다.’고 말했습니다. 경찰 조사결과 성씨는 ‘고 3때 왕따를 당한 고통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심각한 정신병을 13년 동안 안고 있었다...’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TV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의 한 중학교에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부모가 피해 학생의 아버지를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자기 아이가 보복 폭행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학교의 교사도 직무유기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피해학생 부모가 교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처벌해달라고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한데 이어 학부모끼리 고소 사건이 불거진 것입니다. 학교 폭력과 그 폭력에 따른 보복, 고소 고발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스러운 모습들입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 자체로는 결코 행할 수 없습니다. 또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운다는 것, 그리고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산다는 것 역시 인간의 노력과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유교의 경전 예기(禮記)에는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란 뜻으로 반드시 죽여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부지수불여공여천(父之?弗與共戴天)<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
형제지수불반병(兄弟之?不反兵)<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리>
교유지수부동국(交遊之?不同國)<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해서는 안된다>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으므로 반드시 죽여야 하고, 형제의 원수를 만났을 때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갔다가 놓쳐서는 안 되므로 항상 무기를 휴대하고 다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고,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서 같이 살 수 없으므로 나라 밖으로 쫓아내든가 아니면 역시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에 대해 철저히 보복하라는 것인데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가능하고 그렇지 못하면 한을 품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2. 다윗이 물매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트리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모든 성읍에서 나와 사울을 환영하며 춤을 추고 노래하는데 그 노래 가사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였습니다. 이에 사울이 몹시 불쾌하며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이렇게 분통을 터트립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셈인가? 저들이 다윗에게는 수만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을 돌리다니! 다음번에는 저들이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세우겠구나.”(삼상18:7-8)  

그리고 그 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다윗을 없애버리고자 했습니다. 기회만 주어지면 다윗을 죽이고자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사울은 완벽한 기회에 다윗을 죽이고자 창을 던졌지만 실패를 거듭하자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을 깨닫고 다윗을 두려워하기까지 했습니다.

(삼상18:10-13) 다윗을 살해하고자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더욱더욱 두려워하며 평생 다윗의 대적(對敵)이 되었습니다.

(삼상18:28-29)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사울이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그런데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여인의 사랑보다 승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로 지내기로 다윗과 굳게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 사울이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하자, 요나단은 다윗과 돈독한 우정을 언약한 맺은 터이기 때문에 아버지 사울의 모든 작전을 사전에 알아내 다윗을 안전하게 도피하도록 도왔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 왕에게 다윗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간청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신하 다윗을 해치려고 하십니다만, 이런 죄를 지으시면 안 됩니다. 다윗은 아버지께 죄를 지은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아버지를 도와서, 아주 좋은 일들만 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 장군을 쳐죽였고, 그래서 주께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것을 직접 보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엇 때문에 이유도 없이 다윗을 죽여, 죄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사울의 다윗 살해 작전이 시행될 때마다 다윗을 안전하게 피신시켰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이 아들 요나단에게 노발대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생아 같은 자식아, 네가 이새의 아들과 단짝이 된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런 아이와 단짝이 되다니, 너에게나 너를 낳은 네 어머니에게 욕이 될 뿐이다. 이새의 아들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은, 너도 안전하지 못하고, 너의 나라도 안전하지 못할 줄 알아라. 빨리 가서 그를 당장에 끌어 오너라. 그는 죽어야 마땅하다.” 

한번은 사울이 다윗을 추격하는 중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정예병력 3천명을 동원했습니다. 그곳에 이르러 사울이 볼 일을 보러 동굴 속으로 들어갔는데 그 동굴 속에는 이미 다윗과 그 일행이 피해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홀로 동굴 속으로 들어온 사실을 알고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제 당신의 때가 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원수들을 당신에게 넘겨 줄 테니 좋을 대로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에게서 성령을 거두시고,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신 마당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사울 왕을 원하는대로 처형해도 좋다고 말씀하셨으니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에 대한 원수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생명에 손대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울 왕은 끝내 다윗을 죽이지 못하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요나단 역시 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에 등극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가의 자손으로 겨우 살아남은 이스보셋이 있었는데, 사울 왕 당시 장군인 아브넬이 이스보셋과 함께 역적 모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아 요압 장군에 의해 아브넬이 살해되고 또한 레갑과 그 형제들이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베어 다윗 왕에게 드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삼하 4:8)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고하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3. 다윗은 자신의 원수를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겼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원수를 갚으셨습니다. 다윗이 원수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성령과 말씀이 그와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추격하던 중 ‘십’ 광야에서 진영 한 가운데서 자고 있었습니다. 다윗 일행이 이같은 정보를 입수하고 아비새 장군이 다윗에게 이렇게 자청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제가 그를 당장 땅바닥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이, 한 번이면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에게 이렇게 타이릅니다. 

“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든지, 주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자를 죽였다가는 벌을 면하지 못한다. 주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지만, 주께서 사울을 치시든지, 죽을 날이 되어서 죽든지, 또는 전쟁에 나갔다가 죽든지 할 것이다. 주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이를 내가 쳐서 죽이는 일은, 주께서 금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삼상26:1-11) 

여기서 다윗은 사울을 친히 죽여 복수해서는 안될 이유를 제시합니다. 먼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택하사 기름 부은 자는 여하한 경우일지라도 그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때문에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사람이 침해하면, 곧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고 모독한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원칙에 입각하여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 사울의 생명을 하나님의 뜻에 맡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아니한 것은 단순히 다윗의 관대한 성품이나 혹은 정치적 의도 때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아니한 이 두 번째 이유 역시 첫 번째 이유와 마찬가지로 기름 부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전적 주권 사상에 입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을 택하사 왕으로 기름부어 세운 분이 하나님이시듯, 또한 왕을 폐하고 죽이는 일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인 영역에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끊임없는 추격을 받았음에도 시종 일관 이러한 사상에 입각하여 사울을 대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사울을 전쟁터에서 블레셋 족속의 손에 붙이심으로써(삼상31:3, 4), 다윗의 원수 사울에 대해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을 행사하셨습니다. 다윗이 “(삼상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라는 말씀은 신명기32:35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신32:35) 보수(報酬)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히10:30)

이를 두고 오늘 본문에서도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고 한 것입니다. 


4.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원수갚는 것을 금했고, 무방비 상태의 사울을 단번에 처치하자는 아비새 장군은 하나님께서 사울의 생명을 다윗에게 일임했다는 것을 들어 당장에 처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록 허락하셨을지라도 만약 다윗이 아비새의 말대로 했다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참된 승리’(삼상26:21,25, 롬 12:21)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이 얼마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살려둔 사실을 깨닫고 사울이 이렇게 실토합니다.

(삼상26:21)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중히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 되었도다...(삼상26:25)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 길로 가고 사울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사울이 뜨끔한 순간을 경험하면서 다윗이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다윗이 선으로 악을 이기게 되리라는 것을 실토한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는 조그마한 일로부터 원수 갚은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인도와 선한 판결에 맡기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롬12:19-20) 사울이 죽은 후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젊은 사람이 사울의 진에서 왔습니다. 그는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 써서, 애도의 표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다윗에게 와서, 땅에 엎드려서 절하자 다윗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그가 “저는 이스라엘 진에서 가까스로 살아서 빠져 나왔습니다.”고 대답하자 다윗이 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서 나에게 말하라.” 

그는 “우리의 군인들이 싸움터에서 달아나기도 하였고, 또 그 군인들 가운데는 쓰러져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께서도 전사하셨습니다.” 다윗이 자기에게 소식을 전하는 그 젊은이에게 다그쳐 물었습니다.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께서 전사한 줄을 네가 어떻게 알았느냐?” 그는 “제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다가, 사울 왕이 창으로 겨우 몸을 버티고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적의 병거와 기병대가 그에게 바짝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이 뒤로 고개를 돌리시다가, 저를 보시고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시느냐고 여쭈었더니, 저더러 누구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말렉 사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사울 왕이 저더러 ‘어서 나를 죽여 다오. 아직 목숨이 붙어 있기는 하나,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일어나서 사실 것 같지 않아서, 다가가서 명령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저는 머리에 쓰고 계신 왕관을 벗기고, 팔에 끼고 계신 팔찌를 빼어서, 이렇게 가져 왔습니다.

” 다윗이 자기에게 소식을 전하여 준 이 병사에게 “너는 어디 사람이냐?” 하고 묻자, “저는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입니다.” 하고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그에게 “네가 어떻게 감히 겁도 없이 손을 들어서,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살해하였느냐?” 며 호통을 치며 부하 한 사람을 불러 칼로 쳐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죽어 가는 그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죽는 것은 너의 탓이다. 네가 너의 입으로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제가 죽였습니다.’하고 너의 죄를 시인하였다.” 이 아말렉 병사의 진술은 거짓이었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해서 죽였다는 것은 다윗 왕으로부터 상급을 받아내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사무엘상31:4에 보면, 사울은 할례없는 이방인들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결한 것이었습니다.(삼하1:1-16)  

(삼상31:4)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그러므로 아말렉 병사에게 죽여달라고 했다는 것은 거짓된 보고였음이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병사의 거짓된 보고를 두고 “네가 죽는 것은 너의 탓이다. 네가 너의 입으로 ‘주께서 기름을 부어서 세우신 분을 제가 죽였습니다.’하고 너의 죄를 시인하였다.” 고 한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대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원수갚는 것을 맡겼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하나님의 영, 성령이 그에게 크게 감동하신 이후 계속해서 그 성령이 함께 하셨고, 또 다윗이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따랐기 때문에 원수 갚은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과 말씀이 함께 하므로 다윗은 선으로 악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원수에 대해 보복할 수 있는 모든 권한과 권위가 하나님께 있음을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많은 수욕(受辱)과 고난(苦難)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보복하지 않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벧전 2:22-23) 그는 죄를 지은 일이 없고,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우리에게 대한 진노를 그리스도로 인해 거둬가심(롬8:1)을 생각하며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보복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선으로 악을 이겨내야 합니다. 성령과 하나님 말씀이 항상 충만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어린나이에 형들에 의해 죽을 뻔 했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대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 형들이 양식을 구하려 애굽에 왔지만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들을 구원코자 자신을 먼저 애굽에 보낸 것이라며 안심시켰습니다. 창세기45:7-8을 보겠습니다.

(창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그리고 훗날 아버지 야곱이 죽었을 때, 형들은 요셉이 혹시 자신들을 미워하여 보복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50:19-21입니다.

(창50:19-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했지만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자신에게 행했던 형들의 모든 악을 선으로 바꾸신 분은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악을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본문 20절,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는 것은 원수에게 은혜를 베풀어 원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키게 되어 서로에게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원수를 진실로 사랑하면 그 원수가 고개를 들 수 없도록 큰 부끄러움을 주는 것이 되어 원수를 갚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다스리면 더 큰 악을 초래하게 됩니다. 악을 이기는 방법은 미움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원수를 이기는 확실한 방법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더 나아가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므로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다윗은 이렇게 성령과 말씀으로 악을 선으로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우는 자들, 곤경과 불행으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수가 죽었다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슬픈 노래로 조상(弔喪)하고 백성들에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 슬픈 노래가 사무엘 하1: 17-27에 있는 ‘활 노래’입니다.

(삼하1:17-27) 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 명하여 그것을 유다 족속에게 가르치라 하였으니 곧 활 노래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으되 이스라엘아 너의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저희는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이스라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여 울지어다. 저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개를 너희 옷에 채웠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전쟁 중에 엎드러졌도다. 요나단이 너의 산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으며 싸우는 병기가 망하였도다.
 
잠언 24:17에서도 “네 원수가 넘어질 때 즐거워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죄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겔 18:23,32).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가 수십 명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루마니아의 감옥에 갇혀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감옥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감옥 속으로 던져졌는데, 어두운 감방 속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곧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챘습니다. 그는 바로 자기들을 체포하고 고문하며 기독교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던 비밀 경찰 대위였습니다. 그가 왜 감옥에 들어왔는지 궁금해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얼마 전, 열 두 살 된 소년이 자기를 면회 왔다고 하여 사무실로 들여보내라 했습니다. 주눅들고 수줍어하는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소년의 품에는 아름다운 꽃다발이 한 아름 안겨 있었습니다. 소년은 곧 입을 열었습니다. “대위님, 우리 엄마와 아빠를 체포해 가신 분이 당신이지요. 오늘은 우리 엄마의 생일이에요. 나는 엄마의 생일 때마다 예쁜 꽃다발을 사서 선물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부모님이 어디론가 체포되어 가셨기 때문에 이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꽃을 선물할 수 없게 되었어요. 어머니는 언제나 내게 가르쳐 주셨지요. 원수도 사랑하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말이에요. 내게는 지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대신 이 꽃으로 대위님 아기들의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 가지고 왔어요. 이 꽃을 대위님 부인에게 전달해 주실 수 있겠어요?” 

대위는 말없이 그 소년의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소년을 끌어안고 눈물로 사과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의 마음에는 양심의 가책과 회개가 왔고 남은 생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기로 결심하여 이렇게 끌려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며, 원수를 사랑하므로 악을 이기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도록 성령과 하나님 말씀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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