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야곱이 깨달은 하나님 (창 48:1-11)

첨부 1


야곱이 깨달은 하나님 (창 48:1-11)
 

오래 전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원주민들이 해변에서 조개를 캐면서 무엇을 바다에 자꾸 던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것이 무엇일까 하고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것은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였습니다. 진주 양식이 되지 않던 그때에 진주는 최고의 보물이었습니다.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한 미개한 아프리카 인들은 그 귀한 보석을 바다에 버렸던 것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유럽 여행객들이 아이들 장난감이나 인형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버리지 말고 모아서 준다면 이 인형이나 장난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인형이나 장난감 하나로 진주 한 바가지와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럽 여행객들 가운데 거부가 된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훗날 아프리카 학생들이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분노했다고 합니다. 진주의 가치를 알고 있는 유럽 사람들은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행운이었고, 진주를 알지 못한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그들 눈앞에 있는 고귀한 보물들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가치를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함의 차이가 이렇습니다. 오늘날 첨단 과학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진주보다 더 고귀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잠언 3장 15절~18절 말씀에“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하셨습니다. 

이 지혜의 가치는, 진주에 비길 바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모하는 그 어떤 것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장수가 있고, 부귀가 있으며, 평강과 생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지혜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깨닫고 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시편 53편 1절에“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2장 6절~8절 말씀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밝히시기를“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 하나님을 내가 찾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큰 은혜입니다. 인간은 고장 난 기계와 같아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능력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1절~12절에“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섬깁니까? 하나님이 찾아 부르신 사람입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한복음 6:44)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야곱의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국명이 바로 야곱의 다른 이름 이스라엘입니다. 그 의미는“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이 야곱이 밝히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십니까? 

1.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에“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시다는 것은“모든 것이 가능하시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시며, 무엇이든지 가능하시며, 못하실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8장 14절 말씀에“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하셨으며, 예레미야 32장 17절에는“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귀하신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주님의 성전인 교회로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말씀하시기를“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높이며,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우리 자신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마음을 주관하신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들을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깨닫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들을 지키시며, 영원한 하늘나라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남다른 자격이 있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야말로 웬 일인지 웬 은혜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로마서 3장 23절~24절에 밝히시기를“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하셨습니다. 이 큰 은혜를 무엇에 비기겠습니까?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유럽 여행객들이 아프리카 원주민들로부터 인형 하나로 그 귀한 진주를 한 바가지씩 얻은 행운에 비길 수 있겠습니까?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나의 인도자 나의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나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낙심할 권리가 없습니다. 무덤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승리만 있습니다. 당하는 환난은 연단이며 승리로 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2절 말씀에“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하셨습니다. 

2.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3절~4절 말씀에“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야곱에게 나타내신 축복이란 무엇입니까? 

후손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리라는 축복입니다. 이 말씀은 야곱이 젊은 날 형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피하던 중 가나안 땅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속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야곱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던 젊은 때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야곱의 나이 147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처럼 야곱의 후손들을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37장 27절 말씀에 기록하기를“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후손 번성은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이민 올 때의 숫자가 모두 70명이었습니다. 이들이 400여 년 동안 애굽에서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번창했던지 이들이 애굽 나라가 위협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을 박해하며 노예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번성을 막기 위해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죽이고 여자아이만 살리는 남아말살 정책까지 썼습니다. 이런 무서운 박해가운데 태어난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은 기이한 방법으로 모세를 살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남자아이는 다 죽이도록 명령을 내린 사람이 애굽왕 바로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후 그 바로의 궁궐에서 40년 동안 자라며 생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성장한 모세를 통해 애굽의 노예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셨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애굽을 탈출해 나올 때 이스라엘 민족의 숫자는 약 300만 정도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것은 기원전 약 1400년경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모진 풍랑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민족의 오늘날 삶은 어떠합니까? 세계역사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민족은 소수민족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로 2000여 년 간 나라 없는 민족으로 지구촌의 고아처럼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이나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 국토는 우리나라 강원도 땅 넓이 정도로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살고 있는 유태인의 숫자는 약 1천 5백만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22% 가량이 유태인이라고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세계를 움직이는 나라가 아직은 미국입니다. 이 미국에 살고 있는 유태인 교포들이 약 500만 정도 된다고 합니다. 

2억 5천이나 되는 미국 국민 전체에 비춰본다면 불과 2%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2%의 유태인들이 미국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실제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은 이스라엘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들에게 복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족보상으로 야곱의 혈통을 따라 오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독교 신앙은 온 세계에 편만 합니다. 세계인구의 1/3에 해당되는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이 지구상의 선진국은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나라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고자 몸부림친 야곱을 사랑하셔서“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게 하며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창세기 48:3-4).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약 3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2장 6절~8절 말씀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죽음과 삶, 가난함과 부유함, 높음과 낮아짐, 존귀함과 비천함 등 이 모두가 하나님의 수중에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3. 기대 이상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11절에“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가장 아끼며 사랑한 아들이 요셉이었습니다. 그 아들 요셉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야곱의 다른 아들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생 요셉을 시기하며 미워한 나머지 노예로 팔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노예로 팔아넘기고는 맹수에게 물려 죽은 것처럼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 야곱에게 보였습니다. 

야곱은 그토록 사랑한 아들 요셉이 산짐승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야곱은 한을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죽은 줄만 알고 있었던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살아있되 구차하게 살아가는 못난 사람이 아니라 당대 최대의 문명국인 이집트 국무총리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야곱은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을 만났고, 남은 여생을 아들 요셉으로부터 극진한 효도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은 이제 147세 노령으로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임종이 가까웠다는 소식을 들은 효자 요셉은 아들 둘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들 요셉과 두 손자를 바라보는 야곱은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말하기를“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뜻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지켜주셨고, 요셉의 몸에서 태어난 두 손자까지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 모두는 야곱으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야곱에게 기대 이상의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그의 자녀들에게 기대 이상의 축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3장 20절 말씀에“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하나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대 이상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솔로몬 왕이 왕위에 오르자 나라를 잘 통치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구한 솔로몬에게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부귀와 영광을 겸하여 주셨습니다.“솔로몬이...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열왕기상 3:10-13)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가난한 어부였습니다. 이렇게 못난 사람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한 능력으로 각색 병자를 고쳤습니다. 한번 설교에 수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 베드로를 기리기 위해 그가 순교한 로마의 바티칸 언덕에 기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 건물이 현재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평가되는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세계의 순례자들이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베드로 동상의 발을 만지고 입을 맞춘 까닭에 발가락이 달아 발등처럼 되어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 의하여 이토록 위대한 인물이 될 것으로 꿈엔들 상상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처럼 베드로의 기대에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기대에 넘치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야곱이나, 요셉이나, 솔로몬이나, 베드로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넘치도록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그렇게 축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원칙 중 한 가지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 말씀에도“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후 복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들이 행한 대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칙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나게 됩니다. 부모와 국적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됩니다. 그러나 태어난 후의 삶은 자신의 행하기에 달렸습니다. 국적과 부모와 상관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영광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의 기업의 귀재라 부르는 내쇼날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집안의 몰락으로 초등학교 4학년에 중퇴하고, 자전거포 점원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온몸으로 살벌한 세상을 배워가며 570개의 기업,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의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나는 세 가지의 행운을 누린 자이다. 첫째, 조실부모한 것이고, 둘째, 건강이 약한 것이고, 셋째, 초등학교를 중퇴한 것이 그것이다. 열한 살 때 부모를 잃었으니 일찍 철이 들어 부지런히 일을 했고, 건강이 약함으로 건강관리를 잘해서 95세를 살 수 있었으며, 배운 것이 부족하기에 열심히 듣고, 배운 결과 경영의 귀재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기대 이상의 넘치는 복을 받아 누린 야곱과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환경은 참으로 열악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20년간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아들 요셉은 에굽에서 13년간 노예와 억울한 죄수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한 순간도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야곱과 요셉을 사랑하셨습니다. 크신 능력으로 야곱과 요셉에게 그들의 기대보다 넘치는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아름다운 변함없는 신앙, 그들의 인내하는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야곱과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기대 이상의 넘치는 축복을 우리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