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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멘으로 순종하는 신앙 (고후 1: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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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으로 순종하는 신앙 (고후 1:15-22) 

어떤 여행자가 여러 도시를 여행하다가 한 도시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가 어떤 곳인가 궁금하여 그곳에서 사는 노인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어르신, 이 도시사람들의 인심이 어떻습니까?” 노인은 그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댁이 여기 오기 전의 도시사람들의 인심은 어떠했소?” 그러자 이 여행자가 말하기를 “아이고 말도 마세요. 천박하다 못해 믿을 사람하나 없었고 아주 최악이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도 똑같을 것이요.” 

얼마 후 또 다른 여행자가 이 도시에 와서 노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노인은 이번에도 역시 그 여행자가 머물렀던 도시의 사람들이 어떠했는지 묻자, 두 번째 여행자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정직하며 성실하면서도 아주 너그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을 떠나기가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마 여기도 그러할게요.” 

부정적인 자아상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도 좋은 면을 보기 보다는 나쁜 것을 먼저 봅니다. 자기처럼 부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볼 때도 나쁜 것 보다는 그 사람의 가능성과 좋은 면을 먼저 봅니다. 

신앙적인 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간 사람은 모두가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사고는 바로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느냐? 생각을 바로 하느냐? 믿음으로 행동 하느냐? 이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끄느냐 그르치느냐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그를 반대하는 대적자들과 또 사랑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예하며 삽시다, 아멘하며 삽시다, 긍정적인 생각을 합시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도 바울은 모든 일에 ‘아멘’의 사람이 되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원래 고린도 방문 계획은 15절과 16절에 있는 대로 에베소에서 바닷길을 통하여 고린도로 직행했다가 거기서 마케도니아를 들른 후 다시 고린도로 돌아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획에서 바울은 고린도를 두 번 방문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전 16:5-9절을 보면, 고린도 교회의 사정으로 이 계획이 변경되어 고린도 교회를 한 번 밖에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 안에 있는 바울의 대적자들은 바울을 향해 ‘말을 경솔히 하고 신실하지 못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자신의 계획 변경은 자신이 신실치 못해서나, 혹은 감정에 치우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17절에 보시면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겠느냐”고 했습니다. 즉 자신이 계획을 변경하여 급히 고린도로 갔다가 금방 돌아오고 한 행동이 결코 경솔한 행동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육신적인 편의를 따라 이랬다저랬다 한 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의 고린도 방문의 계획과 변경도 이 원칙에 따른 것입니다. 바울은 선교 현장에서 이 원리를 늘 적용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부딪혔을 경우 어디에 우선권을 두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언제나 “예”라고 하며 절대로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진실성을 변증하면서 그 근거를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에 “하나님은 미쁘시니라”고 하여 하나님의 신실성을 강조하면서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하여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예’라고 하셨다가 ‘아니오’라고 하는 일이 없습니다. 

민 23: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말을 바꾸거나 속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종인 자신도 ‘예’라고 하면서 동시에 ‘아니오’하는 일은 없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아멘’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도 ‘아멘’이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입술로 고백하는 아멘은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언어 중 가장 아름답고 친밀한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아멘하는 신앙의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멘 하는 신앙이 왜 중요합니까? 

1. 아멘 하는 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믿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멘은 “그렇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원합니다.”는 뜻입니다. 아멘은 기도나 축도 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대해서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라는 동의의 표시입니다.  

눅 1장에 보시면 마리아는 자기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을 했습니다. 그때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마리아는 즉시 태도를 바꾸어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마리아처럼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이 아멘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아멘”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인간과의 언약을 맺으셨고, 그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언약을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은 바로 아멘의 신앙을 소유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고 안되는 것을 될 줄로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마 9:21절 이하에 보면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세상의 의사를 다 찾아다녔지만 돈과 시간만 허비했을 뿐 치료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병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예수님의 능력이 그녀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나타난 것을 확인하시고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구의 믿음을 원하십니까? 바로 나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우리의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2. 아멘 하는 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멘은 찬성의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맹세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조건 없이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손해냐? 이익이냐를 계산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의 생명과 뜻과 정성을 다 바쳐서 순종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기뻐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순종입니다. 삼상 15:22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순종”이란 헬라어에 보면 “예속시키고 복종시키고 굴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해타산 때문에 신앙과 양심과 인격을 저버리고 사람 앞에 쉽게 굴복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아무리 종처럼 복종하고 굴복해도 존경과 영광과 높임을 받는 자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19세기 영국이 낳은 유명한 부흥사 스펄전과 조지 뮬러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언젠가 스펄전이 브리스톨이란 도시에서 고아원 운영에 당장 필요한 300파운드를 모금하려는 계획으로 그곳에서 제일 큰 세 군데의 침례교회에서 설교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스펄전은 계획대로 집회를 하고 300파운드도 모금을 했습니다. 

일정의 마지막 날 스펄전이 집회를 끝내고 와서 피로한 몸을 쉬려고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은은하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300파운드를 조지 뮬러에게 주어라!” 스펄전은 당황해서 항의했습니다. “주님 이 돈은 런던에 있는 우리 고아원의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돈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그 300파운드의 돈을 조지 뮬러에게 주어라.” 계속되는 음성에 스펄전은 “아멘, 주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순종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스펄전은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지 뮬러가 운영하는 고아원을 찾아갔습니다. 고아원의 문을 열자 조지 뮬러의 모습이 보였는데 큰 성경책을 펴놓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스펄전은 조지 뮬러에게 “하나님께서 이 돈 300파운드를 주라고 하시더군요.”라고 하면서 그 돈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조지 뮬러는 놀라고 감격해서 대답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 제가 주님께 간절하게 요청한 금액이 바로 300파운드였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두 기도의 용사들은 서로 얼싸안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스펄전은 런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의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300기니의 영국 금화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환산하면 330파운드입니다. 스펄젼은 기쁨에 넘쳐 흥분의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께서는 300파운드에다가 이자까지 덧붙여서 돌려 주셨구나”고 했습니다. 스펄전은 성령의 감동에 순종으로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심은 것보다 더 거두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우리의 마음과 심령을 평화롭게 하고 큰 축복과 은혜를 선물로 받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절대로 손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이요, 또 순종의 비밀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아멘 하는 신앙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 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멘은 성도에게 축복을 주는 순종의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아멘은 그 자체로 예배이며, 하나님에 대한 경배입니다. 우리는 아멘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어느 시골 교회에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시골교회에서 가장 열심히 믿는 할머니 집사님이 맨 앞자리에 앉아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마다 아멘 했습니다. 강사 목사님은 할머니 집사님이 진짜 아멘 꾼인지 가짜 아멘 꾼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낮 성경공부 시간을 마치고 몰래 할머니 집사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할머니 집사님이 은혜가 충만하여 찬송을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옛날 부흥회는 낮 성경공부 시간은 길게 해서 2시가 훨씬 넘어 3시가 다 돼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오자 영감님이 투정을 부립니다. "아니 맨 날 예수한테 미쳐서 교회 가서 사느냐고 남편 점심도 안 차려 줘?"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할머니 집사님이 혼자 말로 "은혜 받고 오니 마귀새끼 또 역사 한다"고 했습니다. "뭐라고 내가 마귀라고 그래 내가 마귀다 어쩔래!"하고 할머니를 향해 빗자루를 집어 던졌습니다. 할머니도 질세라 함께 소리 지르며 쓰레받기를 할아버지를 향해 집어 던졌습니다. 이로 인하여 대판 부부싸움이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가짜 아멘 꾼은 아무리 아멘을 외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진짜 아멘꾼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참고, 사랑하고 인내하며 양보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시면서 세상 사람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멘의 신앙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고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의 증거가 아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 바울은 19절 중반절에서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가라.”고 하셨을 때 주님은 “예.”하고 순종하셨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고 하실 때도 주님은 “예.”하고 순종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예”라 하고 “아니라” 함이 없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처럼 “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최고 중의 최고였던 자신의 과거로부터 떠나라고 하실 때 “예”하고 떠났으며,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증인, 그것도 가장 까다롭고 어렵고 힘들다는 이방인을 위한 선교 사역으로 부르실 때에도 “예”했습니다. 도리어 그것을 부득불 할 일로 하지 않으면 화가 임할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역의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과 수도 없는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그것도 “예”로 받아들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그리고 사도 바울이 “예”하는 삶을 살았듯이 이제 여러분도 그렇게 “예”하면서 살고, 그렇게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주님도 “예” 하셨고, 바울도 “예” 했으니, 어떻게 저와 여러분들이 “아니요” 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뜻과 명령에 전적으로 “예”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여러분에게 하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멘”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입니다. 

올 한해 아멘으로 순종하는 신앙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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