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형통한 삶의 비결 (창 39:1-6)

첨부 1


형통한 삶의 비결 (창 39:1-6)

미국 백화점왕 제이 씨 페니는 위대한 백화점 왕입니다. 그는 가난으로부터 놀라운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평탄한 것인 줄 안 한 친구가 성공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제이 씨 페니는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두 마디라네. 역경과 그리스도야. 역경은 나 자신을 만들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구원자요 안내자 였었다네." 그의 설명에 그의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습니다. 

역경은 가장 좋은 경건의 훈련의 재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인생의 역경을 통하여 귀한 훈련을 시키며 경건의 훈련을 쌓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역경중에 있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역경의 훈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말하는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 하나님이 함께 할 때 형통한 자가 됩니다.(2-3절)

형통한 삶의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합니다. 2절과 3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성경은 요셉에 대해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사람"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죽어도, 실패도, 병이 들어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히브리말로 '자라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장애물이 있는 곳을 '뛰어넘다' 혹은 '건너가다'라는 뜻입니다. 또는 번영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형통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처음에는 안되다가도 잘나가고 앞길이 확 열리고 장애물이 있으나 건너가고 넘어가고 결국 번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형통이란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뚫고 이겨내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함께 한다는 뜻은 함께 산책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이 힘들어 지치면 하나님은 업어 주시고, 안아주시기도 하십니다.(나의 등 뒤에서 찬양)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그 얼굴 표정이 확실히 다릅니다. 그 얼굴에는 근심이나 걱정의 빛이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의 차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하면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임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학자에 의하면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144번이나 기록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제가 신학을 처음 시작하고 집을 떠나 한참 배고프고 어려울 때 큰 힘과 위로를 주었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상호와 함께 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어떤 경우에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감옥에 있든지, 자유하든지, 죽든지, 살든지 상관없이 마음속에 하나님이 가득한 것이 만사형통입니다. 요셉에게 노예라는 신분은 큰 고통이었지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그는 오히려 만사에 형통한 자가 되었습니다.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 형통한 자가 됩니다.(4절)

하나님과 함께 했던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본문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집이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보디발은 바로왕의 시위대장이었습니다. 시위대장이란 오늘날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대단한 권세를 자기고 있는 집에 노예로 간 것입니다. 요셉은 비록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신세타령하고 되는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만약 요셉이 노예로 발려가서 형들을 원망하고 신세타령만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날마다 술이나 퍼마시다가 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하거니 좌절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주인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보통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하는 일이 척척 잘되어 가자 보디발은 그를 보배같이 여겼습니다. 요셉이 복 있는 사람인 것을 안 보디발은 그를 귀히 여겨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맡겼습니다. 보디발은 그에게 어떠한 보고서나 회계 장부도 요구하지 않을 만큼 그를 신뢰하였습니다. 보디발은 요셉의 업무를 조사하기 위해 공인회계사를 부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젊은 청년의 정직한 인격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에도 일어났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성실성과 책임감이 얼마나 뛰어 났는지 감옥안에서도 간수장에게 인정받아 제반 모든 일을 맡아 일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같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에 들어갔는데 사장이 믿음의 사람이 아니고 불교인라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절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요셉이 지금 가정 총무로 있는 보디발의 집은 우상을 섬기는 집입니다. 나중에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는 애굽이란 나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상을 섬기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곳에서 이방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방 왕에게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까지 높이고 전하였습니다. 오늘 이런 전투적인 믿음의 용사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기업에서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 북치고 장구친다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지 않습니다. 정말 믿음이 좋은 청년들은 믿음의 기업이라는 이랜드나 신원 에벤에셀 같은 곳에 들어가지 말고 불신자가 경영하는 곳에 들어가서 빛을 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셔서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드려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만 사랑받는 분들이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호감을 사는 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때는 믿음 좋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미움을 받고 배척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린 귀로, 열린 마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자기 자신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다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특수한 사정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을 받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에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항상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지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출근시간도 거의 매일 같이 5분 정도 지각합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눈치를 주면서 늦지 말라고 해도 또 늦습니다. 약속시간도 무책임하게 빵구내 버립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상관의 눈치를 살피면서 대충대충 일해 가지고 성공한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상관이 모르는 것처럼 보여도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대충대충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사람을 속이면서 일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일하는 데에는 별로 열심이 없고 월급에만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직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고 그 성실함으로 인하여 유능한 사람이 된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분들은 어디에서나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다섯 개만 하면 되는 일을 일곱이나 열 개까지 자진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일을 맡게 될 것입니다. 진급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잠언 3장 4절에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은 것은 귀중한 축복입니다. 요셉이 이 같은 복을 받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축복을 받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 형통한 삶의 비결은 자신이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5절)

요셉은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혼자서 형통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요셉 때문에 그 주인이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하나님은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는 때를 확실하게 획을 그어 놓았습니다. 본문에서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란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핵심은 '....한 때부터'입니다. 요셉이 가정 총무로 일하는 그 때부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영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환경적인 영역도 포함합니다. 본문에서는 보디발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물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하나 고용한 것으로 인하여 그 회사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집안의분위기가 달라지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는 일마다 잘 되어 대박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야곱이 이런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에 가 일하는 그 때로부터 라반의 집이 부자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이 이런 축복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총무가 되니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요셉이 애굽의 국무 총리가 되니 애굽의 온 백성이 복을 받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예수님이 형통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손에 대는 것마다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곳마다 변화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죄인은 회개하고, 병든 자는 치료되고, 포로 된 자는 자유케 되고, 가난한 자는 부요케 되었습니다. 귀신은 떠나가고, 관계는 회복되고,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 중에도 이런 변화의 물결을 주도해 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하나님이 복 주시는 일들이 여러분 주위에 계속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화복한 가정으로 변화고,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어지고 가난한 가정이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믿지 않는 부모님과 형제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는 캠퍼스가 변해야 합니다. 여러분 때문에 정직한 학교가 되고 여러분 때문에 음란한 캠퍼스가 변하길 바랍니다. 

직장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술 문화와 회식문화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기독 인들이 회사에 입사하여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회식만 했다면 퍼 마시고 즐기는 문화가 바꾸어져야합니다. 비리가 사라져야 합니다. 접대 문화가 사라져야 합니다. 접대하지 않으면 거래처를 잡지 못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안되는 일도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접대를 잘 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 못된 술 문화로 외국 바이어들을 대하고 있습니다. 외국 바이어들은 이해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실력으로, 기술로 승부를 해야지 뒷거래하면서 접대 문화로 해결하려고 하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잘 못된 문화가 사라져야 세계화 시대에 경쟁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들어가면 팀이 달라지고, 성가대가 달라지고, 교회학교가 달라지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왕 교사로 수고하려면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늘 지각하여 학생들이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선생님 이번 주에는 지각하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비극이 없기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주일학교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길 소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형통한 삶의 비밀이란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여러분은 이미 형통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형통케 하는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형통한 삶의 비밀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면 막힌 것이 뚫립니다. 꼬인 문제도 풀립니다. 어둠도 물러나고 광명의 빛이 오는 것입니다. 형통한 삶의 비밀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나님의 사람은 이방 사람들에게도 사랑받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통한 삶의 비밀은 자신이 축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캠퍼스에서 직장에서 변화를 주도해 가는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까지 축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