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 15:21-28)

첨부 1


가나안 여자의 믿음 (마 15:21-28)

사람이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입니다. 아기가 엄마라고 부를 때 여자는 엄마가 됩니다. 자기 이름보다 더 귀한 엄마의 존재감을 가지고 여자의 일생을 살아갑니다. 여자의 인생은 곧 어머니의 인생입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배우는 노래가 엄마로 시작됩니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우리 엄마가 웃는다 우리 아빠가 웃는다” 엄마는 자식 때문에 웃고, 자식 때문에 웁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한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는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 당하는 어머니가 예수님을 찾아와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합니다. 그 어머니의 믿음의 간구가 귀신들린 딸을 구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어머니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하셨습니다. 

  
󰊱 소문을 듣고 찾아와 소리지르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는 그 어머니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어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내 주시기를 간구”(막7:25-26)했다고 합니다.
  
소문이란 입에서 귀로 귀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영국 속담에 세 사람이 알면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문을 듣고 잧아와 소리질러 간구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22절) 
  
소리의 강도는 내면의 깊이에 비례합니다. 깊은데서 나오는 소리는 깊습니다. 들이 마신 함량이 많으면 많은만큼 나가는 소리가 크게 길게 나갑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10:14-15)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사도들은 법정에 끌려가서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위협하여 이후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며, 그들을 불러 경계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행4:20). 
  
보아야 믿고 들어야 믿습니다.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으면 할 말도 없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들은 소문이 원동력이 되어 예수님을 찾아 왔고, 소리질러 간구했습니다. 
  
전기줄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추운 겨울에 전깃줄이 웁니다. 세찬 바람이 전깃줄을 스치고 지나갈 때우는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가 겨울의 음성입니다. 
  
가나안 여인의 간구하는 소리는 전깃줄의 울음소리 같은 어머니의 애끓는 소리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귀신이 사람을 망가뜨립니다. 딸이 귀신 들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닌 나쁜 영에 사로 잡힌 것을 말합니다. 귀신이 인생을 망가뜨립니다. 딸의 혼란한 모습이 안타까워 예수님께 소리질러 간구하고 있습니다.

  
󰊲 무시를 당해도 절하며 도움을 구하다. 

그 여자가 아무리 이방인이지만 예수님은 너무하십니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23절)
  
예수님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완전히 무시합니다. 제자들의 말을 듣고 나서 하시는 말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24절) 내 자식도 보살피기 바쁘다. 남의 자식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25절) “절하며”라는 말은 ‘예배하다’입니다. 예를 갖춰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어려움에 처해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주저 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납니다. 구름이 끼고 고비가 와도 구름 속의 해를 바라봅니다.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라”(잠24:10) 낙심하는 것은 힘이 약하다는 증거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의인은 사자같다고 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허무한 것에 굴복하면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 굴복해야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믿음 얻기 위해 기도하고, 은혜 받기 위해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육신의 생각이란 죄의 본성을 말합니다. 죄의 본성은 하나님을 거스를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7,13-14) 어떤 방해나 핍박이 있어도 예배하는 자가 되십시오. 예배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예배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 단호한 태도로 정면 돌파하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절)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로 여겼습니다. 유대인의 선민사상이 빗나가 민족의 우월주의에 빠졌습니다. 
  
요즘 같이 말 때문에 상처받은 많은 때가 없었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부모의 언어 폭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친구로부터 언어 폭력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에게 상처되는 말을 하신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었다면 그것은 언어 폭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이 가나안 여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말도 상처를 받지 않으면 언어폭력은 아닙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절)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고 단언합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산다고 말합니다. 개라는 말을 듣고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웹스터 사전에서 “단언하다”(asset)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어떤 사실에 대해 명확하고 솔직하게 말하다”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분명하게 토로하다” “자신이 옳다고 하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단언하다”라는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필요 등을 분명하게 표명함으로써 상대방이 나를 올바로 이해하고 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욕을 해도 안 먹으면 됩니다. 저주를 해도 안 받으면 됩니다. 상처를 주는 말은 안 들으면 됩니다. 가나안 여자는 상처를 받지 않고 은혜를 받고자 했습니다.  
  
골리앗은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자기와 싸우러 나오는 것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하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삼상17:43) 막대기만 보아도 자기를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가나안 여자는 개라는 말을 듣고도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상처는커녕 적극적으로 부스러기라도 떨어뜨려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단호한 태도로 정면 돌파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이 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개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자들을 삼가고, 손 할례당을 삼가라”(빌3:2)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단호한 언어로 그리스도인임을 선언하시기 바랍니다. 

  
󰊴 믿음으로 소원을 이루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절) 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보고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귀신들린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간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그는 운명의 역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일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르쳐 사이비 종교인 같다고 합니다. 가나안 여자의 행동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광신자 같아 보입니다. 그 여자를 처음 대하는 예수님은 언어 폭력자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자는 시험이나 당하고 쉽게 실족할 자가 아님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말을 날려도 끄떡도 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보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말을 들어도, 흔들리지 마십시오. 흔들리면 넘어집니다. 틈을 보이지 마세요. 틈을 보면 끼어듭니다. 끼어 들면 쪼개집니다. 마귀가 틈타지 못하게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큰 믿음을 칭찬하신 일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백부장을 보고 믿음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하인이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하셨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까지 오심을 황송하게 여기며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래도 종이 낫겠나이다! 라고 하니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하셨습니다. 

가난한 남자가 부자집 무남독녀와 결혼했는데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씨받이 여자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얼마 있다가 아내가 죽었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남자가 뭐라 한지 아세요. “멋진년!” 친구 아내 장례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집에 와보니 아내가 시드러지게 자고 있었습니다. 뭐란지 아세요. “질긴년!”
  
가나안 여자는 끈질기게 매달립니다. 간구합니다. 소리 지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원합니다. 무시당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개 취급을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답니다. 
  
예수님은 그의 큰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으로 딸은 나았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